기획(경기)

[이슈&스토리]`역사편찬원 설립` 학계·시민사회 한목소리

[이슈&스토리]'역사편찬원 설립' 학계·시민사회 한목소리

해방 이후 '인천 市史' 단행본 꾸준… 2001년부터 '역사자료관' 운영별도기구 아닌 문화재과 소속 '한계' 국·시장 지시 받는 종속적 관계 연속성 상실·홍보용 전락등 문제의식 느껴 서울서도 연구행정 분리인천시 역사 편찬과 사료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역사편찬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최근 인천지역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 역사 편찬을 단순히 애향심 고착과 시 정부의 홍보의 수단으로 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남겨줄 하나의 기록 유산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역사편찬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천시사편찬의 역사한국전쟁 이후부터 인천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인천부사'(1933년)가 아닌 인천 사람들이 만든 인천 역사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1956년 당시 김정렬 시장은 향토사 편찬 작업에 착수해 지역 향토사학자인 고일과 김인규, 이종우 등에게 자료 수집과 편찬 업무를 맡겼다. 그러나 작업 도중 이종우가 타계하면서 흐지부지됐다.인천시 역사자료관 강옥엽 전문위원이 정리한 시사 편찬 연혁을 살펴보면 '인천시사편찬위원회'가 정식 발족한 시기는 1965년이다. 당시 윤갑노 시장이 고일, 최정삼, 한상억을 시사편찬위 상임위원으로 위촉하고, 시사 발간을 책임지게 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73년 9월 30일 총 12편 70장으로 구성된 '인천시사(상·하)'가 세상에 나왔다. 시사는 고대부터 해방 후 25년까지의 역사를 다룬 500쪽 분량의 '향토사'편을 비롯해 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 백서 형태로 구성됐다.이어 1982년에는 첫번째 인천시사를 보완하는 형식의 '인천시사(70년대편)'가 추가 발간됐고, 1993년 3번째 '인천시사(상·중·하)'가 나왔다.1995년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옹진군과 강화군이 인천에 편입돼 인천시사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인천시는 2002년 '인천광역시사'를 발간했고, CD-ROM으로도 처음 제작해 컴퓨터로 원하는 대목만 쉽게 검색해 읽을 수 있도록 했다.2002년 인천광역시사 발간 과정에서 인천시 역사편찬 업무에 큰 변화가 생긴다. 2000년 6월 시사편찬에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전문위원 2명을 뽑았고, 2001년 10월 중구 송월동 인천시장 공관을 개조해 '역사자료관'을 설립했다.자유공원(응봉산) 기슭에 자리한 역사자료관은 개항 후 일본인 사업가의 자택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에 서구식 레스토랑과 사교장으로 사용된 건축물이다. 1965년 인천시가 시장 공관으로 활용하려고 매입했고, 2001년 최기선 인천시장을 끝으로 모두 17명의 시장이 거쳤다. 2명의 전문위원이 시사편찬 업무를 전담하면서 역사자료관 운영까지 함께 맡았다. 역사자료관은 이때부터 분야별, 시대별 역사를 다룬 '인천역사문화총서' 시리즈를 발간해 80여 권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2013년에는 '인천'이라는 이름을 얻는지 600년 되는 해를 기념한 '인천광역시사-미추홀 2000년 인천 정명 600년'을 펴냈다.# 시사 편찬의 독립성 문제인천시 역사 편찬 업무는 1975년 제정된 관련 조례를 근거로 운영되고 있다. 위원장은 당연직으로 인천시장이 되고 2명의 부위원장 중 한 자리도 행정부시장이 맡는다. 25명 이내로 구성하는 시사편찬 위원은 시장이 임명·위촉하도록 돼 있다. 인천시 입김에 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향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인천시 역사편찬 독립성과 관련해서는 과거부터 안팎으로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역사'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기 보다는 인천시의 발전상이나 미래 비전을 담아내는 백서 형태의 모습은 인천시사가 홍보용으로 전락했다는 따가운 비판도 받아왔다. 인천시 역사 연구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자료 축적에 대한 미흡도 문제점으로 대두되어왔다. 2001년 역사자료관의 설립과 전문위원 채용으로 이러한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됐으나 독립성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역사자료관은 얼핏 별도의 기구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천시 문화재과 소속이다. 역사자료관을 운영하는 2명의 전문위원도 문화재과 소속 임기제 공무원 신분이라 담당 과장, 국장과 시장의 지시를 받는 종속적인 관계에 묶여 있다.서울시도 일찍이 이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2015년 1월 서울시사편찬위원회를 서울시 산하의 사업소(서울역사편찬원)로 개편했다. 1927년 구성된 경성부사편찬위원회를 모태로 하는 서울시사편찬위원회는 이미 1990년부터 위원장을 시장에서 민간으로 전환해 일부 독립성을 갖췄다. 그럼에도 역사 편찬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가 이어지자 서울시는 2015년 1월 서울역사편찬원을 설립했다.서울역사편찬원이 설립된 이후 서울시 역사 편찬 행정은 확 달라졌다. 기존에는 모든 업무의 결재권자가 일반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모든 업무가 행정 관점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조직이 만들어진 이후 전문적인 기획과 연구가 역사 연구가의 입장에서 가능해졌다. 시정 논리에 따라 사업이 축소되거나 부풀려지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역사 편찬 업무가 가능해졌다고 서울역사편찬원 측을 설명한다. 조직의 확대로 5~6명의 연구원이 전담하던 시사편찬 업무를 20여 명이 맡아 하게 되면서 매년 7~8권 발간하던 책자도 20여 권으로 늘었다.# 인천역사편찬원을 설립하자올해 인천에서는 인천역사편찬원 설립을 위한 2차례의 의미 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5월 인천시 역사자료관 주관 심포지엄에서 역사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모여 역사편찬원 설립의 당위성을 고민했고, 지난 10일에는 인천시의회와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인천역사편찬원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특히 인천역사편찬원의 설립은 독립성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조선시대 기록을 담당한 사관은 왕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처럼 인천시 역사편찬 업무는 시장 등 권력자로부터 철저히 독립돼야 한다는 얘기다. 인천역사편찬원은 큰 틀에서는 서울시를 모델로 하되 인천만의 특색을 담은 운영 방식을 갖춰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안도 있다. 강화, 부평, 원인천, 옹진 등 권역별 연구와 고대 역사, 전쟁, 개항, 해양, 평화 등 주제별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하고, 각 군·구 시사편찬위원회와도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민선 6기 강화고려역사재단과 인천문화재단의 통폐합으로 만들어진 '인천역사문화센터'의 기능 중복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인천시 역사자료관.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역사자료관 내부 전시.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시 역사편찬원 설립방안 토론회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시 역사자료관 전경.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터뷰… 공감]`계양산 골프장 백지화 불씨` 신정은 인천녹색연합 녹색참여국장

[인터뷰… 공감]'계양산 골프장 백지화 불씨' 신정은 인천녹색연합 녹색참여국장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은 그룹을 총괄하던 1974년 계양산 전체 면적의 3분의2에 해당하는 275만㎡(약 78만평)를 매입했다. 계양산 북사면 일대를 골프장이 포함된 위락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인천의 진산(鎭山)이면서 시민들의 쉼터인 계양산에 골프장을 만드는 일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롯데건설은 2006년 6월 인천시에 테마파크 조성과 친환경 구상을 덧입힌 '새 계획'을 제출했다. 개발 논리가 확산됐다. 계양산 골프장 개발을 주저하던 인천시의 입장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8월 인천의 4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발족해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뭔가 부족한 게 있어 보였다. "개발 행정은 빠르게 움직이는 반면 그에 대응하는 이슈를 만드는 일에 한계"를 느꼈다. "평화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계양산의 가치를 알리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어느 날 대책위 한승우 사무처장이 미국의 환경 운동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Julia Butterfly Hill)의 '삼나무 시위'를 얘기했다. 1997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당시 스물 두 살의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수백 년이 된 삼나무를 베지 말자'며 삼나무 55m 높이에 오두막을 짓고 목재 회사와 738일을 싸웠다. 그렇게 계양산에서는 2006년 10월 26일 자정 무렵 인천녹색연합 신정은(40) 녹색참여국장이 목상동 솔밭의 소나무 위에 올라가 56일을 지냈다. 계양산 골프장 반대 시위는 인천뿐 아니라 전국의 이슈가 됐다. 차기 지방선거 후보들은 '계양산 골프장 반대 공약'을 내걸어 선거를 치렀고, 당선 이후 계양산 골프장 계획을 폐지했다. 이런 행정절차가 부당하다며 롯데 측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근 대법원 판결로 패소해 계양산 골프장 건설은 백지화됐다. 계양산 소나무 시위 12년 만의 일이었다. 12년 전 계양산의 소나무에 오른 신정은 국장을 만났다.-계양산 골프장 반대 투쟁에서 시민단체가 긴 싸움을 거쳐 대기업을 이겼습니다."우선 저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 단체가 힘을 합쳐 이뤄낸 일이에요.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요. 저는 초기에 불씨를 붙이는 역할을 했을 뿐이에요. 제가 소나무에서 내려온 뒤 바통을 이어 소나무 시위를 약 150일간 하신 윤인중 목사님도 기억해야 합니다. 계양산 골프장 반대 운동에 동참하면서 그 안에서 같이 성장하고 커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천녹색연합 박주희 사무처장은 2008년 인턴으로 들어와 실무를 보며 기자회견, 삼보일배, 시민조직, 서명운동 등을 현장에서 지켜봤어요. 이한구 시의원은 계양산 주민으로서 골프장에 반대했고 '시민의 후보'로 시의회에 입성해 골프장을 막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오카리나 연주가 정미영 선생님은 골프장 반대 촛불문화재 때 매번 나오셨고, 이제는 '거리의 어려운 이들'이 있는 현장에서 연주하고 계세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싸움에 동참하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계양산이 크게 여러 사람을 품어온 것 같다고."-12년 전 소나무 시위, 무섭지 않으셨나요."2006년 10월 26일 자정 무렵 녹색연합 암벽팀 녹색친구들, 인천녹색연합 활동가 등 10여 명이 다남동에서 20~30분간 고개를 넘어 목상동 솔밭으로 넘어갔어요. 암벽팀 선배님들이 소나무 3그루에 올라가 못질 하나 안 하고 노끈으로 대나무를 엮어 1.5평 공간을 만들어 주셨어요. 소나무 시위 이틀째 되는 날 '관리인'이라는 분이 나무에 낫을 들고 올라와 집기를 밖으로 던지는 소동이 있었는데, 그때 관리인 측에서 나무에 오르기 위해 박은 못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나무 위에 한참 있다 보면 소나무 향기가 몸에 배어요. 이러다가 나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인간이 해에 큰 영향을 받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요. 한밤에 비가 쏟아져도 아침에 해가 뜨면 물기가 마르고, 바람이 그렇게 불어도 해가 뜨면 잦아들어요. 바람이 불 때 산골짜기에서 바람이 후후후 밀려오는 소리가 들려요. 초반에는 공포감을 느낄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바람과 같이 흔들리니까 무섭지 않더라고요."신정은 국장은 녹색연합 암벽팀 회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등산 실력이 수준급이고, 암벽 등반 기술도 익혔다.-환경 운동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20대 초반에 우연한 기회에 녹색연합이 발행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접해 읽기 시작했어요. 삶의 방식이라든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시작됐어요. 그 책을 인천에서 안 팔아 서울 영풍문고까지 가서 사다 봤어요. 그것을 쉽게 받아보려고 (서울)녹색연합 회원이 됐어요. 터진개 문화마당 황금가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시작한 것도 변화의 계기가 됐어요.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인천에 애정이 크게 없었는데 그게 잘 몰라서였던 것 같아요. 그냥 별 고민 없이 '그 시기에 해야 할 것 하면서 사는 인생'이었거든요. 사부님(이종복 대표)이 '그딴 식으로 공부하면서 세상을 산다고?'라고 말씀하셔도 싫거나 그러지 않고 잘 받아들였어요. 산이 좋다고 열심히 다녔는데 제가 기억하는 계양산은 힘든 산이었어요. 남사면 쪽은 계단이 많고 경사가 가팔라 썩 좋은 숲이 아니라고 봤어요. 녹색연합 하고 와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이렇게 좋은 곳이 인천에 있는데 바깥의 좋은 데만 찾아 다녔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환경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 회사 생활은 어땠나요."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인천에 있는 건설 설비 회사에서 일하면서 인천공항 옥외 배관 그림을 그렸어요. 당시에는 맨날 영종도 공항 건설 현장으로 출근했어요. 또 용인에 있는 회사에 다니면서 원전 설계에 참여한 적도 있고요."-환경운동가가 개발 분야에서 일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직장 생활이 힘들었어요. 보수도 너무 낮았고 파견직, 계약직으로 일해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몸소 겪었어요. 녹색연합 회원으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제가 하는 일의 괴리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계약 끝나고 외국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인천녹색연합 자원봉사를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활동가 1분이 그만두게 됐고, 사무처 상근을 제안받으면서 활동가를 시작했어요."신정은 국장은 상근 활동가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 "활동가?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제 일이 아닌 것 같아요"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인천녹색연합 회원 교육을 담당하는 중견 활동가로 성장했다. 환경 관점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게 그의 임무다. 신 국장은 "제가 바르게 잘 사는 것을 옆에 사는 사람이 보고 귀감이 될 때, 그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신정은 국장은?1978년 인천 송현동에서 태어나 축현초, 인천여중, 인화여고를 졸업한 인천 토박이다. 부천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설비 설계 분야의 민간 기업에서 일했다. 2006년 1월 인천녹색연합 녹색교육팀 간사가 되면서 환경운동에 본격 나섰다. 같은 단체에서 생태보전팀 간사, 조직지원팀 간사 등을 거쳐 현재 녹색참여국 국장을 맡고 있다.지난 2006년 계양산 소나무 시위에 나섰던 신정은 국장이 12년 전 오른 소나무 눌직이를 15일 찾아가 두 팔로 껴안았다. 신 국장은 소나무 3그루에 기대 시위를 벌였다. 신 국장에 이어 소나무에 오른 윤인중 목사는 그 이름을 우직이, 묵직이, 눌직이로 지어 불렀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신정은 국장은 2006년 10월 26일 밤 계양산 소나무에 올라가 그 이튿날인 27일 오전 6시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사진은 시위 첫 날 모습이다. /경인일보DB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 안준경 하남시 자율방범대 감북지대 고문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 안준경 하남시 자율방범대 감북지대 고문

위례초교 개교 이래 쭉 학생 지켜봐소아마비 앓고나서도 '마당발' 활동도시락 배달등 자타인정 모범 봉사왕"몸이 좀 불편하기에 남을 돕는 봉사활동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매일 오후 2~5시 하남 위례초등학교 정문 초소에서 학교안전지킴이로 활동하는 안준경(64) 하남시 자율방범대 감북지대 고문.지난 2015년 11월 위례초교가 개교한 때부터 학교안전지킴이로 활동한 안 고문은 학교안전지킴이 활동시간이 끝나는 5시부터는 다시 하남시 자율방범대 순찰차량을 타고 하남 위례동 일대를 순찰한다.하남 위례동은 아직 파출소가 없어 야간이면 어쩔 수 없이 치안 사각지대가 발생하곤 하는데 안 고문과 감북지대 자율방범대원들이 사각지대를 메워주고 있다.감북지대 대장을 역임한 그는 사람들의 통행이 끊기는 자정까지 순찰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감북동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새벽 2~3시까지 순찰을 하는 날도 허다하지만 안 고문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안 고문은 "하남 위례초교가 개교했을 땐 주변에 건설현장이 많아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시작했다"면서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사실 안 고문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조금 불편하지만, 하남 서부지역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다른 자율방범대원들이 인정하는 마당발이다. 그는 오히려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이 오히려 봉사활동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계속하고 있는 이유"라고 짧게 말했다.하남시 자율방범대 감북지대 창립 멤버인 그는 10여 년 전부터 밤에는 감북동과 춘북동의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고 낮에는 하남시종합사회복지관의 도시락 배달봉사는 물론 지역 독지가와 청소년들을 연결해 주는 피자·통닭 배달봉사를 5년 넘게 했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봉사왕이다. 그가 시작했던 배달봉사활동은 지금은 후배 자율방범대원들에게 대물림되면서 지역의 전통으로 여겨지고 있다.안 고문을 아는 한 지인은 "하남 서부지역은 옛날부터 지역색이 강해 서로를 배척하는 문화가 유지됐지만, 안 고문이 서부지역 통장단 총무를 역임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유대감까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마지막으로 안 고문은 "농촌 지역은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만 정치인들의 관심이 낮다"며 "봉사단체와 봉사자는 점점 늘고 있는데 정치색을 띠면서 의미가 퇴색하는 듯하다"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하남/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안준경 하남시 자율방범대 감북지대 고문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는데 있어 몸이 불편한 것은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지역 순찰을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남/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농민과 시민 행복, 직거래로 잘 버무린 건강한 밥상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농민과 시민 행복, 직거래로 잘 버무린 건강한 밥상

道 주최·경인일보 주관 안양서 이틀간부스 76곳 가성비 높은 농·축산물 선보여300인분 비빔밥 등 다양한 이벤트 '호응'이재명 도지사 체제에 돌입한 후 경기도는 도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도내에 우선 공급돼 소비되는 유통체계 구축에 나섰다. 먹거리에 대한 안전을 강화하고 도민들이 연령, 성별,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우수한 먹거리를 제공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이는 '밥상 안전'이 위협받는 점과 맞닿아있다. 오랜 기간 둬도 썩지 않고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도통 알기 어려운 음식들이 도처에 놓여있다. 섭취해선 안 되는 물질들이 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자재에서 검출되기도 한다. 건강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우리 사회에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열풍을 불러온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은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삶의 에너지를 채운다. 손수 기르고 가공한 채소와 고기, 생선으로 만든 소박한 밥상이 어느새 '행복'의 상징이 돼버린 셈이다.지난 13~14일 이틀간 안양 평촌 중앙공원에서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인일보가 주관한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가 열렸다. 경기도 각지의 농부들이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 등을 한 아름 안고 이틀간 도시민들을 만났다. 모두 경기도에서 생산된 안전하고 우수한 먹거리, 모두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줄 건강한 음식들이었다.설치된 농·축산물 직거래 부스만 76곳. 품목도 다양했다. 빛 좋은 과일들이 주부들의 발길을 붙잡기도 했고, 고구마 굽는 냄새가 공원을 뛰노는 아이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중간 유통단계 없이 판매하다 보니 품질은 좋고 가격은 저렴했다. 소비자들은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가 훌륭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농가들은 거둬들이는 이익이 크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직접 기른 채소와 유기농으로 재배한 꽃을 말린 차를 판매 중이던 양주 옹달샘 농원의 김복순 대표는 "모두 깨끗한 산골에서 정성스럽게 기른 농산물들인데, 이렇게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돼 기쁘다. 많은 분들이 찾아줘서 장사도 잘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바로 옆 부스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여주·도라지 등을 가공해 판매하고 있던 양주 아름담의 김진숙 대표도 "고생해서 몸에 좋고 안전하게 기르고 만들었다는 점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행사장 곳곳에서 진행된 다양한 이벤트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 13일 개막식 이후 진행된 비빔밥 퍼포먼스가 대표적이었다. 경기도 곳곳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이 담긴 300인분의 비빔밥은 몰려드는 인파에 금세 그릇이 동 나기도 했다.이밖에 캐리커처, 페이스 페인팅, 연·바람개비·레고팔찌·에코백·아쿠아 젤 양초·도자기 만들기, 모래 그림, 캘리그래피, 전통놀이 체험장 등 여러 체험 행사는 아이와 함께 주말 산책을 즐기던 가족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줬다. 경품 행사와 각종 버스킹·마술 공연들도 호응을 이끌어냈다.한편 이틀 동안 심재철 국회의원, 안혜영 경기도의회 부의장, 정상균 경기도 농정해양국장, 남창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장, 김종찬·국중현·김성수 경기도의원, 박정옥·이은희·김은희·이채명·정맹숙·최병일 안양시의원, 이완우 안양시 복지문화국장 등이 행사장을 찾았다.심재철 의원은 "생산자도 이득이 되고, 소비자도 이득이 되는 그런 기회다. 어떤 농산물이 어느 가격으로 얼마나 좋은 품질로 나왔는지 직접 보면 그동안 슈퍼에서, 집 근처에서 샀던 것과 비교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경기도에서 얼마나 농산물을 잘 키워내고 있는지, 직거래가 얼마나 소중한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축사했다.행사를 주관한 김화양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은 "경기도 각지에서 직접 기른 농산물을 애용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건강해지고, 농가에서도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라며 행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석철·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13~14일 이틀간 안양 평촌 중앙공원에서 열린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에 설치된 농·축산물 부스가 많은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도자기체험부스에서 어린이들이 도자기 빚는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주부들이 농·축산물 부스에서 시식을 하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전통문화체험장에서 어린이들이 굴렁쇠 굴리기, 피에로와 함께 풍선 만들기, 활쏘기를 체험하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13일 안양 평촌 중앙공원에서 열린 '2018경기도 농산물직거래대잔치' 개막식에 참석한 심재철 국회의원, 안혜영 경기도의회 부의장, 김화양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 정상균 경기도 농정해양국장, 남창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장 등 내빈들이 비빔밥을 비비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인터뷰]정상균 경기도 농정해양국장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인터뷰]정상균 경기도 농정해양국장

정상균(사진) 경기도 농정해양국장은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는 품질 좋고 안전한 먹거리로 소비자와 생산자간 신뢰를 만드는 '상생의 장'임과 동시에, 경기도 농산물 판매를 촉진하는 매우 의미있는 행사"라고 밝혔다.정 국장은 "우리 도에선 우수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생산 농가에 대한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친환경·우수 농산물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좋은 유통 시설을 지원하는 등 직·간접적인 지원 정책들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생산에서 유통까지 경기도·소비자단체에서 한번 더 철저히 검증하고 깐깐하게 관리하는 도지사 인증 G마크 농산물을 도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경기도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그러면서 "앞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이 우리 경기도 농산물을 선택, 소비하게 하고 먹거리 기본권을 강화하는 한편 안전을 보장하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토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정 국장은 "뜻깊은 행사를 하게 돼 기쁘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경기도 농산물을 많이 구매하고 다채로운 체험도 함께 즐긴다면 그 추억으로 행복도 한층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인터뷰]안혜영 경기도의회 부의장

[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인터뷰]안혜영 경기도의회 부의장

안혜영(사진) 경기도의회 부의장은 "먹거리 안전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 때, 의미있는 자리가 마련됐다"고 말했다.'경기도 농산물 직거래 대잔치'를 찾은 안 부의장은 "먹거리는 건강과 직결되고 친환경 농·축·수산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선 주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전통시장을 찾기도 하지만 신선한 먹거리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농가에선 판로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소비자들은 같은 경기도 안에서도 어느 지역에서 무엇이 생산되는지 일부 채소·과일 등을 빼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때 경기도의 우수한 농·축·수산물을 도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돼 기쁘다"고 말했다.도의회 농정해양위원회 소속이기도 한 안 부의장은 "저는 도시지역인 수원 영통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농업이 도시지역 주민들에게 결코 먼 일인 것은 아니다.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기르는 것은 건강한 밥상과 직결되는 만큼, 도심과 농촌이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가 그런 부분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도의회에서도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이슈&스토리]방탄소년단 성공으로 본 한국대중문화의 저력

[이슈&스토리]방탄소년단 성공으로 본 한국대중문화의 저력

빌보드 앨범차트 1위, 빌보드 뮤직 어워즈·아메리칸 뮤직어워즈 수상, 최연소 문화훈장 수여. 한국의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수식하는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철옹성처럼 단단했던 미국 주류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며 '스타'로서의 확실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7명의 20대 청춘들이 써내려가고 있는 기록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미국 시장을 끈질기게 두드렸던 수많은 K-팝 가수들의 역사를 발판삼아 우리 대중문화의 저력을 드디어 인정받은 일이다. BTS, 빌보드 앨범차트 1위·최연소 문화훈장 기염국내보다 해외서 인기 얻은 비결 '유튜브 스트리밍'드라마 → K팝 콘텐츠 확장… 음식·패션까지 관심한류월드 개발 앞둔 고양시 등 '관광 산업' 기대감 # 랜선을 타고 전세계로 흘러간 한류 =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랜선'을 타고 전세계 음악시장을 석권한 한류 콘텐츠의 가장 성공적인 예다. 2013년에 데뷔한 7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은 알려진대로 대형엔터테인먼트에서 육성한 가수는 아니었다. 대형 기획사에 소속돼 풍부한 자본과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내에서 팬덤을 쌓은 후 탄탄한 기획을 앞세워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기존 K-팝 가수들과 달랐다. 오히려 국내의 인기는 해외로부터 역수입됐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국내에서는 크게 팬덤이 형성되지 못했던 2014년에 이미 방탄소년단은 미국에서 조사한 '좋아하는 K-팝 아티스트'로 가장 많이 언급돼왔고 지난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으로 방탄소년단의 국내 인기가 더욱 치솟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힘이라고 분석한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실제로 '2018 해외한류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해, 2016년에 비해 TV 이용은 감소했지만 대다수 콘텐츠 분야에서는 온라인 모바일 스트리밍이 TV를 앞질렀다. 이 중에서도 K-팝은 온라인 모바일 스트리밍을 통해 접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진흥원은 이 조사를 통해 "1년 사이 한류콘텐츠를 온라인·모바일 스트리밍으로 이용하는 이용자가 급증했다는 것은 앞으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한류콘텐츠의 주요 유통경로가 될 것이라고 유추된다"고 분석했다.유튜브와 SNS의 활용도 주목할 만하다. YG엔터테인먼트가 유튜브에 공식채널을 개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알려 싸이가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했다. 방탄소년단은 유튜브와 SNS까지 적극 활용해 미국시장에 정식데뷔나 공식 프로모션 등의 현지화 전략이 전무했음에도 한국어 노래를 가지고 미국에서 성공했다. 이 같은 한류의 전파 방식은 방탄소년단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방탄소년단 이전, 2010년대에 넘어서면서 이미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등 국내 인기 아이돌 그룹들은 온라인을 통해 그들의 음악과 활동이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이같은 흐름은 K-팝이 이미 자리잡은 아시아 시장뿐 아니라 선진문화로 인식되는 미국, 유럽 시장 등에서도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K-팝은 이제 단순히 아시아 변방의 문화가 아니라 세계적인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다.# 한류의 확장 = 한류가 2000년대에는 국내 드라마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비롯 동남아시아, 중동 등 아시아 권역에서 확고하게 입지를 다졌다면 현재는 k-팝이 가장 강력하게 한류를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2018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도 한류 콘텐츠의 인기순위는 2012년 1위는 '드라마'였지만, 지난해에는 'K-팝'으로 바뀌었다. 드라마가 이끈 한류의 경우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얻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K-팝 중심의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서 미주, 유럽 등의 서구문화권까지 한류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해당 조사에서도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K-팝을 통해 한국을 떠올리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장 만나고 싶은 한류스타 역시 '싸이' '방탄소년단' 등 K-팝 가수였다.지역의 확장은 한류 콘텐츠의 다양성에도 영향을 준다. 1차적으로 K-팝 스타들의 패션과 뷰티, 음식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는 유튜브, SNS 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한류를 접하는 세계인이 우리의 문화를 큰 거리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 한국의 패션·뷰티 제품을 구매하고 현지에서 한국음식을 접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더불어 애니메이션과 만화 캐릭터, 웹툰, 출판물, 게임 등 한국이 생산한 또 다른 콘텐츠에 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 조사결과 한국의 출판물을 접촉하는 경로로 자국 온라인 사이트 못지 않게 한국 온라인 사이트의 비율이 높았고, 웹툰 역시 한국의 모바일 애플을 다운받아 즐겨보는 비율이 반수를 넘었다. K-팝이 이끄는 한류는 산업적 측면에서 전방위적인 파급력을 보이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 그 자체를 브랜드화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접한 이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설문에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응답이 60.4%로 집계됐다. 특히 미국과 브라질 등 미주 지역에서 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도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 또 이같은 인식은 '한류콘텐츠를 많이 이용하는 층'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한류문화 콘텐츠의 힘을 실감케 했다.# 한류 콘텐츠의 활용=한국의 대중문화를 접하고 열광하는 외국인들은 온라인에서 한국을 소비하고, 오프라인에선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자연스럽게 한국 '관광산업'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진다. 특히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는 다양한 한류 관광지를 조성하며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이미 한류 관광지로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남이섬'은 물론, 남북평화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DMZ는 '태양의 후예' 등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된 캠프 그리브스를 한류 관광지로 조성해 최근에는 캠핑장 까지 새롭게 문을 열었다. 특히 고양시 일산에 한류월드 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류월드에는 CJ그룹이 만드는 문화콘텐츠단지도 조성되는데, 한류콘텐츠를 한 곳에서 집약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와 공연장 등이 구성되고 호텔과 상업지구 등도 함께 조성돼 한류 관광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스튜디오의 결합형 모델이라고 이야기되는 CJ문화콘텐츠단지는 지난 4월부터 부지대금의 납부가 완료되면 토지소유권을 확보하고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美 시사 주간지 '타임' 최신호 커버모델이 된 BTS. /타임 홈페이지 캡쳐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한류 스타들. (왼쪽)소녀시대 태티서·승리. /연합뉴스·경인일보DB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한류 스타들. (왼쪽부터)방탄소년단·싸이·이병헌. /연합뉴스·경인일보DB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남양주 오남읍 방문소년단·복지넷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남양주 오남읍 방문소년단·복지넷

지자체 차원 주민·학교등 파트너십소외이웃 사연 받아 희망물품 전달두 단체 콜라보 내달까지 공동사업"맞춤형 봉사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사회가 돕는 복지 브랜드가 바로 '방문소년단'입니다." 남양주시 오남읍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인 '방문소년단'이 있다. 방문 소년단은 매주 토요일 남양주시 오남읍에 살고 있는 노인과 장애인, 다문화 가정과 한부모 가정, 가정위탁 및 입양아동 등을 직접 찾아가 그들이 원하는 맞춤형 봉사를 진행한다. 이는 전국 최초 복지 브랜드(brand) 마케팅 사업으로 말 그대로 전국에서 오남읍에만 있는 대표적인 복지활동이다.방문소년단은 지난해 2017년 5월 오남고와 동화고 등 관내 120명의 고등학생들로 구성돼 현재 150명의 학생들이 관내 23개 가정과 결연을 맺고 매주 토요일 학습 멘토링과 공감 멘토링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봉사활동은 오남읍 복지넷 위원과 방문소년단 학생들이 팀을 이뤄 소외 이웃과 어려운 가정을 보살피고 있다.특히 오남읍은 방문소년단 홀로 하던 봉사활동을 주민과 학교 그리고 공공기관 간의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올해부터 공동으로 참여한 '우리가족 두-드림!(Do-Dream!)'사업을 전개하고 있다.우리가족 두-드림!(Do-Dream!) 사업은 다문화 및 장애인, 한부모가정, 가정위탁, 독거노인들이 두-드림 카드에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고 또 받고 싶은 선물을 각각의 사연에 담아 공모하는 형식으로 실시해 소망활동을 지원하고 희망 물품을 전달하는 사업이다.방문소년단을 이끌고 있는 오남읍사무소 맞춤형복지팀 김일녀 팀장은 "방문소년단 활동은 단순한 봉사활동에 그치지 않고 어르신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고 또래 아이들과는 함께 공부하며 서로의 꿈을 키워나가는 것"이라며 "주민 욕구와 학생 봉사의 코-마케팅(co-marketing)으로 복지 전달체계를 새롭게 디자인해 주민 중심의 마을 공동체 확립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오남읍 복지넷(지역사회보장협의체)과 방문소년단의 콜라보레이션 사업 테마인 가을하모니와 follow-up 파티를 다음 달까지 진행할 예정"이라며 "방문소년단 활동이 남양주시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오남읍 복지넷과 방문소년단의 콜라보레이션 사업 두-드림!(Do-Dream!)의 일환으로 진행된 희망물품 전달식 모습. /오남읍사무소 제공방문소년단을 이끌고 있는 오남읍사무소 김일녀 팀장이 방문소년단 활동을 통해 마을공동체 확립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

[인터뷰… 공감]박태원 서해5도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의 막중한 임무

[인터뷰… 공감]박태원 서해5도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의 막중한 임무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었던 황금어장. 인천 서해 최북단 도서 지역 어민들은 분단 이후 보이지 않는 선에 갇혀 살아왔다. 서해북방한계선(NLL) 일대를 넘나들며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어선을 눈 뜨고 지켜만 봐야 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꼈고, 툭하면 대피소에 몸을 숨겨야 하는 현실에 비통함마저 느꼈다. 서해5도 어민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점박이 물범과 철새들을 보면서 평화의 날을 꿈꿀 뿐이었다. 한반도 깃발을 배에 달고 조업하면서 언젠가는 남북 어민들이 함께 꽃게를 잡고 어획물을 사고파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왔다.바람으로만 그칠 줄 알았던 일들이 4월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후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분쟁의 바다에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을 가장 가까이서 맞이하는 이가 있다. 연평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섬을 지켜온 박태원(58)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다.연평도 어촌계장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단순히 서해5도 어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서해가 평화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불과 1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요즘 한반도와 서해에 평화의 분위기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제 생애에 통일이 되는 게 아닐까 기대감마저 듭니다."박태원 상임대표는 2일 경인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상기된 목소리로 이같이 밝혔다. 그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이 서해에 공동어로구역을 시범 설치하겠다고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고 한다. 어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정부와 인천시에 전달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그에게 있다.그는 "일단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지지한다"며 "어렵게 찾아온 이 평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 '진정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서해5도 주민들은 안보를 이유로 정부의 통제 아래 제한된 시간과 협소한 어장에서 조업하는 피해를 감수하며 살고 있다. 야간 항행 금지로 야간조업이 금지된 게 올해로 45년째라고 한다. 그는 "긴 세월 동안 서해5도 어민들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12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주민의 정주권도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많은 규제를 받았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섬은 군사 요새화 됐고, 여객선의 야간 운행도 안보 문제로 제한됐다. 그러는 사이 중국어선이 연평도 앞바다를 점령했고, 2년 전 연평도 어민들은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2척을 직접 나포하기도 했다.박태원 상임대표는 "365일 분쟁지역에 사는 당사자인 서해5도 주민의 생존과 인권의 문제를 논의하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며 "우리도 '대한민국 주권 국민'입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는 백령도와 대청도, 연평도 등 서해5도 어민단체와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2016년 중국어선 나포 사건을 계기로 '서해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의 단체가 결성됐고, 정권이 바뀌면서 서해 평화를 위한 범시민 캠페인 등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명칭을 바꿨다.박태원 상임대표는 "서해5도는 정전 후 유일하게 북한의 군사 도발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고 서해 최북단에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이동권, 정주권 등이 제약된 곳이다"며 "남북 긴장 관계 완화를 통한 평화 분위기 정착,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 강화, 서해5도 주민 이동권·정주권 보장 등을 위한 활동을하고 있다"고 했다.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으로 공동어로구역 시범적 설치가 합의됐다. 서해 평화수역 조성의 첫 발걸음이다. 남북은 시범 공동어로구역을 남측 백령도와 북측 장산곶 사이에 설정하되, 구체적인 경계선은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해 정하기로 했다.박태원 상임대표는 "5월과 9월 정부와 가진 2차례 비공개 회의 때 우리가 제시한 의견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 같다"며 "특히 올해 봄에 어민들이 평화의 마음을 담아 한반도기를 배에 달고 조업을 했는데, 이번 합의에 남북 어선들이 한반도기를 달고 평화수역에서 조업하자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또 "장산곶을 공동어로구역에 포함한 건 중국어선이 들어오는 길목을 막으면서 남북 간의 NLL 해상파시, 해조류 공동양식, 공동조업 등 다양한 확산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공동어로구역은 조업의 문제뿐만 아니라 서해5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주민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상징적인 정책수단이다. 단기적으로 불법조업 중국어선이 줄고 어족자원이 풍부해질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박태원 상임대표는 "이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남북 어민들의 조업이 활성화되고 수산물 경제협력 사업도 가능할 것이다"며 "이를 위해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고, 서해5도 옹진반도 해역을 '수산자원의 보고'로 관리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 한반도의 수산자원을 보존하는 길이다"고 강조했다.현재 서해5도 어민단체, 지역 시민단체, 해수부, 인천시, 옹진군 등이 민관 공동협의체 구성에 합의했고, 조만간 3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박태원 상임대표는 이제 정부가 더는 새로운 약속을 하기보다는 기존의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는 속지 않겠다는 얘기다.그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대 정권 모두 서해5도 주민들에게 수많은 약속을 했다"며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약속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정부가 한 약속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이다"고 했다. 그는 고향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도가 평화의 바다로 정착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정치권이 정쟁을 멈추고 평화를 위해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서해5도에는 젊은 장병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입니다. 분단의 환경이 계속된다면 이 아들의 아들이 또다시 그 자리를 지켜야 할지 모릅니다. 이곳 주민과 군인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있습니다. 소모적인 정쟁을 멈춰야 합니다. 특히 서해5도 주민들 가운데는 실향민이 많습니다. 이들이 고향 북녘땅을 밟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랍니다."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박태원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 프로필▲ 1960년 연평도 출생▲ 1975년 연평중학교 졸업▲ 옹진군 장애인협회장(전)▲ 옹진수협 비상임 이사(전)▲ 옹진부천산림조합 대의원(전)▲ 연평어촌계장(전)▲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 1980년부터 38년 간 어업종사박태원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가 2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서해 평화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제공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당섬선착장 인근 해상에서 한 어선이 '서해5도 한반도기'를 달고 이동하고 있다. 서해5도 한반도기는 흰색 배경에 푸른색의 한반도가 독도와 함께 그려진 기존 한반도기에 서해5도를 추가해 제작된 깃발로 서해 평화와 어장 확장에 대한 염원이 담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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