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푸른인천글쓰기대회]이모저모

[푸른인천글쓰기대회]이모저모

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수국·튤립… 인근 3만7천송이 꽃전시회 인기○…"인천대공원으로 봄꽃 보러 오세요."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행사장 인근에서 열린 '푸른 인천 꽃 전시회'도 관람객들에게 인기. 수국, 튤립, 가자니아 등 30종 3만7천여 송이가 전시된 '푸른 인천 꽃 전시회'는 다음 달 6일까지 인천대공원 꽃 전시관에서 열려. 초등학생 딸들과 함께 전시회를 찾은 김희연(41)씨는 두 딸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 그는 "수많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 #올바른 손 세정법등 생활속 보건교육은 '덤'○…보건교사와 함께하는 '생활 속 보건 교육'이 행사장에서 성황리에 진행. 참가자들은 '올바른 손 세정 방법', '스마트폰 중독 방지 방법 '등을 직접 체험. '하임리히요법'(이물질로 인해 기도가 폐쇄됐을 때 시행하는 응급처치법)을 체험할 때는 학부모와 학생 모두 보건교사 설명에 집중.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행사장에 온 최윤정(39)씨는 "평소 심폐소생술이나 하임리히요법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유익한 시간이 됐다"고 전해.#"좋은 결과 있기를…" 전년도 수상자들 응원○…전년도 대상 수상자들이 대회장을 찾아 참가자를 응원. 지난 제16회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김륜원(10·인천청라초4) 군은 "평소에는 글을 쓸 기회가 많지 않은데, 대회에선 자기 생각을 마음껏 글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며 "올해 참가 학생들도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써서 모두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 이번 대회에 초등학교 3학년 딸을 참가시켰다는 지난해 학부모 부문 대상자인 김경아(48·여)씨는 "자연과 봄을 만끽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대회"라며 "모든 참가자들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른들이 생각치 못하는 좋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웃음.#차세대여성지도자聯 10년 넘은 자원봉사 '눈길'○… 자원봉사자들은 이번 대회의 성공적 개최·운영에 큰 역할. 차세대여성지도자연합회는 10년 넘게 푸른인천글쓰기대회 자원봉사자로 참여. 연합회원 25명은 원고지 배부, 접수 등 대회장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 김성희 연합회장은 "대회에서 봉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의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에 힘을 얻고 간다"며 "자연과 어우러져 아이들이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푸른인천글쓰기대회가 열리길 바란다"고 소감. #화재대피법부터 로봇댄스까지 '119 안전체험'도○…인천소방본부가 대회장 인근에 마련한 '119와 함께하는 안전체험장'이 아이들로부터 큰 호응. 대회장을 찾은 아이들은 진지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구조대, 완강기를 이용한 화재대피법과 심폐소생술을 학습. 또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부모들로 가득. 심폐소생술을 익살스런 동작으로 표현한 'CPR 로봇댄스 공연'도 참가자들에게 인기. /김성호·김주엽·공승배기자 ksh96@kyeongin.com20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대공원에서 열린 제17회 푸른인천글쓰기 대회 행사장이 참가자들의 텐트로 가득 메워졌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진지한 꼬마작가-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진지하게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아빠는 고민중-참가자의 아버지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市교육감·학부모 '반갑습니다'-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원고지를 배부하면서 학부모와 악수를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yong@kyeongin.com'심폐소생술을 춤으로'-로봇댄스 인천소방본부의 '119와 함께하는 안전체험장' 부스에서 심폐소생술을 익살스런 동작으로 표현한 CPR 로봇댄스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1만8천명 참여 열기

'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1만8천명 참여 열기

우리 아이들에게 푸르고 맑은 인천을 물려주기 위해 시작된 '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17회 행사가 지난 20일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 일대에서 개최됐다.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1만8천여명의 학생과 학부모 등이 참여해 봄꽃의 향연을 만끽하며 '푸른 인천'을 만들어 가겠다는 소망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글쓰기 대회에 참석한 박남춘 인천시장은 "인천을 푸르게 가꾸는 일에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며 "2003년부터 시작한 푸른 인천 글쓰기대회는 미세먼지를 줄이자는 시민 공감대 형성에도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도성훈 인천시 교육감도 "학생들이 글쓰기 대회를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푸른 인천을 만드는데 우리 학생들이 앞장서자"고 강조했다.이번 대회 시상식은 오는 6월 13일 인천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며 수상자 명단은 5월 말 경인일보 지면과 홈페이지(www.kyeongin.com·우수상 이상 개별 연락)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대회'가 지난 20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대공원에서 1만8천여명의 학생과 학부모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됐다. 개막식에서 내빈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참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원고지를 배부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화보]`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

[화보]'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

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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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인천대공원에 완연히 찾아온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경인일보경인일보와 가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7회 푸른 인천 글쓰기 대회'가 20일 1만8천여명의 학생·학부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대공원 문화마당(옛 야외극장)에서 열렸다. 참여자들은 녹색 도시 인천을 바라는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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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 인천·(9)`성명회 사건` 오주혁과 무의도 유배]최초 항일독립선언 이끌고 고초 `가리어진 귀양살이`

[독립운동과 인천·(9)'성명회 사건' 오주혁과 무의도 유배]최초 항일독립선언 이끌고 고초 '가리어진 귀양살이'

을사늑약 반대 상소·계몽운동하다 러 블라디보스토크 망명 해외 독립단체 '성명회' 조직1910년 망국직전 '일제 만행 고발·독립의지 천명' 8624명 서명서 美·佛등 외국정부에 전달'주도 혐의' 일제에 붙잡혀 소무의도에 발묶여… 알려진 내용 없지만 이동휘와 교류 유추이후 대한국민의회등 활동 '사회주의' 색깔론 묻혀 2006년에 애국장 추서… 행적 연구 필요 "장차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진정한 대한국민은 자신의 자유와 국가의 광복을 획득하기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1910년 8월 한국이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다는 소식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사회에도 전해졌다. 경술국치일 엿새 전인 그해 8월 23일 결성된 해외 독립단체 '성명회(聲明會)'는 일제에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하고 26일 한인 지도자를 비롯한 8천624명의 서명을 받아 세계 각국 정부에 발송했다.성명회 선언서 사건으로 일본은 러시아에 주동자 체포와 인도를 요구했고, 성명회 블라디보스토크 회장 오주혁(1876~1934)은 이 사건으로 러시아에서 쫓겨나 인천 무의도에서 1년간 유배생활이라는 고초를 겪었다. 오주혁은 2006년에 이르러서야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는 등 뒤늦게 공적을 인정받았던 터라 그의 행적이나 일대기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가 소무의도로 유배를 갔다는 일본 기록만 있을 뿐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학계의 관심과 연구가 절실한 상황이다.함경남도 단천 출신의 오주혁은 1905년 유생들과 함께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상소 운동을 벌이며 일제에 대한 항거를 시작했다. '헤이그 밀사'로 유명한 이상설도 이때 상소 운동을 주도하며 고종에 같은 내용의 상소를 5번이나 올렸다.오주혁은 애국지사들의 상소를 반박하는 선언서를 낸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를 "개와 말만도 못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간사한 계교와 여우 같은 아첨으로써 우리 선량한 백성을 몰아다가 남의 보호 지도, 감리하는 밑에 돌아가고자 하느뇨"라고 일갈했다.오주혁은 1906년 함경도 지역 인사들이 국권 회복을 위해 서울에서 결성한 계몽운동단체 '한북학회'(漢北學會)에 참여했다. 황성신문 1907년 12월 19일자는 같은 단천 출신 이동휘 등과 함께 오주혁이 평의원으로 선출됐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한북학회는 학교를 설립해 신교육을 실시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한북학회는 훗날 평안도·황해도 출신 지식인들이 조직한 서우학회(西友學會)와 통합해 서북학회(西北學會)로 개편됐다.오주혁은 이후 이상설 등과 함께 해외로 망명해 교육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소무의도 귀양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성명회 선언 사건을 주도했다. 성명회는 망국을 앞두고 연해주 각처로 망명한 유인석·이상설 등이 만든 단체다. 오주혁은 성명회의 핵심 근거지인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회장이라는 중역을 맡았다. 연해주의 한인들은 1910년 8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척리 한민학교에서 한인대회를 열어 성명회를 조직하였다. 개척리는 블라디보스토크 서쪽 외곽인 초기 한인마을 이름으로 1910년 전후 항일 망명가들의 독립운동기지였다. 이 개척리는 1911년 5월 전염병 유발을 이유로 러시아 당국이 강제 철거해 기병대 주둔지로 삼으면서 사라졌고, 인근에 신개척리가 만들어졌다.개척리에서 만들어진 성명회 설립 목적은 '대한의 국민이 된 사람은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하고 성취한다'는 것이었다. 성명회라는 이름은 "적(일본)의 죄상을 성토하고 우리의 원통함을 밝힌다"는 의미의 '성피지죄(聲彼之罪) 명아지원(明我之寃)'에서 땄다. 성명회는 이어 8월 26일 합병무효를 천명하는 선언서를 여러 언어로 작성해 미국과 프랑스 정부 등으로 보냈다. 지금의 청원서처럼 뒤에는 서명인 연명부를 첨부했는데 그 숫자가 8천624명에 달했다. 성명회는 선언서를 통해 "한국인의 과업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한국인의 자유에 도달할 때까지 손에 무기를 들고 일본과 투쟁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밝히며 해외 열강들이 일제의 만행을 비난하고 한국인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워싱턴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100여 장에 달하는 '성명회 선언서' 한 질이 보관되어 있다. 100장이 넘는 이유는 선언서 뒤에 붙은 중국·러시아 한인들의 서명부가 그만큼이나 되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한일강제병합에 대한 민족의 반대결의와 독립의지를 천명한 최초의 선언서로 한국독립운동사를 상징하는 귀중한 자료 가운데 하나다.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은 이 선언서가 광복 때까지 줄기차게 전개된 항일독립선언의 원류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오주혁은 성명회 사건을 주도했다가 1911년 일제에 붙잡혀 국내로 압송된 것으로 여겨진다. 일제가 해외 독립운동가의 동향을 기록한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의 시베리아 3편을 보면 오주혁은 1911년 7월 15일부터 1년 동안 이 사건으로 경기도 인천부 소무의도에서 거주제한 조치를 당했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그가 1912년 유배를 갔다고 나오는데 이 문서의 생산연도가 '메이지(明治) 44년 8월 5일'인 점을 보면 1912년이 아닌 1911년이 확실하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소무의도 유배생활이 그의 독립운동 생애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그가 무의도 유배 처분을 받기 한달 전 동향 출신 독립운동가 이동휘가 '105인 사건'에 휘말려 유배처분을 받고 이미 대무의도에 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강화에서 의병 활동과 교육사업을 이끌었고, 임시정부에서는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독립운동 역사의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이동휘는 앞서 한북학회에서 오주혁과 만나 교류를 해왔다. 둘은 또 나란히 해외로 망명해 각자의 단체에서 독립을 도모하던 차였다. 동아일보 1935년 2월 15일자 신문은 이동휘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생애를 정리했는데 기사에 "어떠한 사건으로 오주혁과 같이 황해도 백령도에 귀양을 가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동휘가 무의도에서 유배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이 됐기 때문에 기사에 나온 백령도는 무의도의 오기로 보인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부고 기사에서 오주혁과 함께 귀양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언급된 것을 보면 둘의 관계가 단지 알고만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대무의도와 소무의도는 지금은 인도교로 연결돼 있는 사실상 하나의 섬이다. 두 섬의 거리가 500여m에 불과해 언제든지 왕래가 가능했던 곳이기도 하다. 둘은 당시만 해도 인천의 외딴섬이었던 무의도에서 훗날을 기약하며 해외 독립운동의 원대한 꿈을 나눴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유배 이후의 오주혁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과 연구자료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동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주요 사건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러시아 한인사회 우두머리급 지도자였던 이동휘는 1914년 12월 30일 하바롭스크 이남 순회를 마치고 오주혁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했다. 이상설이 앞서 1월 19일 러시아 지역 항일단체 '권업회'를 탈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후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충청도 출신의 '기호파' 이상설은 권업회를 주도했던 함경도 출신과 갈등을 빚어왔다. 권업회 기관지 권업신문 1914년 2월 8일자 기사에는 이상설 탈퇴 후 재정비된 권업회 간부 명단이 나오는데 오주혁이 교육부장으로 기재돼 있다. 권업회는 1911년부터 러시아가 대일 관계를 우려해 강제 해산한 1914년까지 교민의 단결과 기념일 행사를 명분으로 항일독립운동 의식을 전파했고, 회원수는 8천500여명에 달했다.오주혁은 1919년 2월 25일 전로한족회중앙총회가 확대·개편해 만든 대한국민의회에 참여한다. 이는 임시정부 성격을 띤 최초의 조직으로 이동휘가 선전부장으로 장정 모집과 군사훈련을 담당했고, 오주혁은 군자금 모집 역할을 맡았다. 이동휘는 이후 상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오주혁은 1920년에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대한국민군, 군무독군부가 연합해 결성한 대한북로독군부 제1군사령부 참모로 활동했다. 1922년에는 흑룡강성에 조직된 항일무장단체 혈성단 일원으로 일제에 항거했고, 1936년 고국의 독립을 맞이하지 못하고 타국에서 숨을 거두었다.오주혁은 러시아를 무대로 했던 독립활동가들이 그러하듯 사회주의 색깔론에 의해 외면당하다 2006년에서야 애국장이 추서됐다. 그의 후손들은 중국에 흩어져 있다. 2018년 독립유공자 후손의 특별귀화법에 따라 오주혁 외증손자의 부인 설순화(62·여) 씨가 특별 귀화했다.만주·러시아 지역 한인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변병설 한국외대 교수는 "오주혁은 성명회 사건의 주역이었고 러시아와 중국 항일 단체에서 활동을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평가와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오주혁의 형제와 자식들도 독립운동을 위해 싸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주혁만 뒤늦게 애국장을 받았을 뿐이라 아쉽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왼쪽부터 성명회 선언서 불어본, 주한 독일 영사가 본국으로 보낸 성명회 전문과 성명회 선언서에 첨부된 서명인 명부. 총 112장의 서명부 8천624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국가보훈처 제공오주혁의 소무의도 유배 처분 내용이 담긴 일본 외무성 자료의 첫 장.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3)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메이지 44년(1911년) 8월 5일자로 기록돼있다.성명회 사건 등 해외 국권회복운동의 무대였던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의 1910년대 전경. /민속원 제공오주혁의 소무의도 유배 처분 내용이 담긴 일본 외무성 자료. 왼쪽에서 두번째 줄에 '경기도 인천부 소무의도에 거주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선명하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독립운동과 인천·(9)오주혁과 무의도 유배]제대로 평가 못받은 `항일 성명회 사건` 주역

[독립운동과 인천·(9)오주혁과 무의도 유배]제대로 평가 못받은 '항일 성명회 사건' 주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항일 투쟁을 하다 인천 소무의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독립운동가 오주혁(1876~1934)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러시아와 만주 지역에서 벌어진 항일운동에 거의 빠짐 없이 이름이 등장하나 그가 주인공으로서 주목된 적은 없다.함경남도 단천 출신의 오주혁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마을에서 '성명회(聲明會)'라는 항일 조직을 이끌면서 일제의 강제합병이 부당함을 세계 각국에 호소했다. 이 때 만들어진 성명회 선언서에는 중국과 러시아 한인 8천624명이 서명해 뜻을 같이 했다.성명회 사건으로 러시아에서 쫓겨난 오주혁은 1911년 일제로부터 거주제한의 조치를 받고 인천의 외딴섬으로 귀양 보내졌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묶인 몸이 됐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마침 러시아·만주 항일 운동가의 대부 이동휘가 한 달 먼저 대무의도로 유배를 왔고, 그와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훗날 해외에서 무장투쟁을 벌일 수 있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2006년에서야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오주혁은 간단한 연보조차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다.정부의 공식 자료라고 할 수 있는 국가보훈처 공훈록조차 그가 소무의도에 유배됐던 해를 잘못 기록하고 있다. 인천에서라도 그의 행적을 연구하고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나오는 이유다. 독립유공자이면서도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조차 구하기 어렵다. 권업회와 대한국민의회, 혈성단 등 해외 항일단체에 참여한 화려한 이력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연구 상황이다.해외 항일운동을 주로 연구한 변병설 한국외대 교수는 "성명회 사건 하나만으로도 오주혁은 중요한 인물인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인천에서라도 그를 기억하고 조명해줬으면 하는 바람" 이라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인천의 얼굴·(7)남동소방서 김철수 주임 ]`나를 던져 남을 살리는 사명`… 당신은 이 시대 영웅입니다

[인천의 얼굴·(7)남동소방서 김철수 주임 ]'나를 던져 남을 살리는 사명'… 당신은 이 시대 영웅입니다

18년간 1200여건 출동 동료도 많이 잃어딸이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할때 뿌듯어디 하나 모난 곳이 없습니다. 둥글둥글, 참으로 순한 인상입니다. 이글거리는 화마(火魔)에 맞서는 강력한 전사 소방대원이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할 얼굴입니다. 인천 남동소방서 김철수(48) 주임입니다. 18년여간 1천200여 건의 화재현장에 출동했습니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동안 선후배 동료들도 많이 잃었습니다. 불의 결과는 잿더미입니다. 살아 있는 것이거나 평생을 일군 것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한순간에 날려버립니다. 초토화란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망연자실한 피해자들만 남은 현장에는 늘 슬픔뿐입니다.소방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판단력과 결기입니다. 큰불인 '대불'이 될지, 작은 불인 '소불'로 끝날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특히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그 결기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겁니다.여러분! 내 목숨을 내놓고 저 사람의 목숨을 건져야 할 순간에 맞닥뜨린다면 망설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를 던져 남을 살리는 소방관은 그 자체로 언제나 우리의 영웅입니다.불은 나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지만 났다 하면 빨리 끄는 게 그다음입니다. 이달 초 온 나라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강원도 산불도 그나마 초동 대처가 잘 되었기에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전국의 소방관들이 강원도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다들 정말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습니다. 불을 끄는 데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칫하다가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강원도 산불 진압 이후 많은 국민들이 소방관의 대우를 걱정해줍니다만 그게 지나쳐 불쌍한 존재로 여긴다면 오히려 사기를 꺾는 겁니다. 영웅을 불쌍한 존재로 보아서야 되겠습니까.김철수 주임은 하나뿐인 딸이 "소방관인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할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도 소방관을 자랑스럽게 여기자고요. 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인천의 얼굴'을 찾습니다. (032)861-3200이메일 : say@kyeongin.com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독립운동과 인천·(8)]독립운동 주역 이동휘, 지우개로 지운듯한 유배행적

[독립운동과 인천·(8)]독립운동 주역 이동휘, 지우개로 지운듯한 유배행적

사회주의 혁명가 굴레 속에 '외면'평화시대 맞아 남북공동연구 필요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일생을 항일 독립운동에 바친 성재 이동휘(1873~1935)는 사회주의 혁명가라는 굴레에 갇혀 오랜 기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남북분단 상황은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조직을 세운 그의 존재를 애써 외면했고, 광복 50주년인 1995년 독립운동 유공자 추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연대기조차 정리하지 못했다. 이승만과 대립하고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그를 조명하기엔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 엄혹했다.1990년대 후반부터 이동휘에 대한 연구 기틀이 체계적으로 잡혔지만, 해외 망명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인천 무의도 유배생활(1911~1912년)을 비롯한 그의 일부 행적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쏙 빠져 있는 점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무의도 유배는 이동휘가 국내 항일운동에 마침표를 찍고, 해외 항일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중요한 연결고리이지만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이동휘에 대한 연구는 대개가 2차 사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냉전시기 남북분단과 중국, 러시아와의 단절은 그의 주된 활동무대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오늘날 이동휘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접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민족의 단결을 부르짖으며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한인사회당을 조직한 사회주의 혁명가이기도 했다.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북한과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남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무의도 유배생활 등 이동휘 일대기에서 사라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내 맞춰야 할 적기라고 할 수 있다. 함경남도 출신이지만 인천의 독립운동가라 해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그를 남북이 공동으로 재조명하는 학술연구도 평화의 시대를 맞아 새로이 요구되고 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독립운동과 인천·(8)]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와 무의도 유배

[독립운동과 인천·(8)]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와 무의도 유배

함경도 출생 1903년 강화진위대장으로 인천과 인연 이후 계몽운동 펼쳐강화읍에 보창학교 세워 '훈맹정음' 창시 박두성 선생등 인재 다수 배출기독교 전도사로 간도 오가며 독립활동 1911년 '105인 사건'으로 귀양생활무의도 행적 구체 내용 확인안돼… 항일단체와 지속 교류 뒷날 도모 추정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성재 이동휘(1873~1935)를 인천의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해외로 망명하기 전 강화도에서 교육과 종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동휘가 인천에 남긴 발자국은 강화도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한일강제병합 이후 이동휘는 인천 용유도에 딸린 섬 무의도에서 꼭 1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동휘와 관련한 각종 연구 서적이나 독립유공자 공적서를 보면 무의도 유배는 그의 위대한 여정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건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동휘가 인천 무의도에 남긴 역사의 흔적을 이제라도 되찾아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난 무관 출신의 이동휘는 1903년 강화진위대장으로 임명되면서 인천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는 강화 부윤과의 갈등으로 이듬해 스스로 군복을 벗은 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애국계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무렵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강화읍에 보창학교를 세웠고, 대중강연과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노력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일제의 감시가 매서워지자 그는 기독교 전도사 직책을 갖고 북간도를 넘나들며 항일 독립운동을 모색했다.강화도와 함경도를 중심으로 애국 계몽운동을 펼치던 이동휘가 무의도로 유배를 가게 된 이유는 1911년 일본총독부가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에 휘말리면서다. 안명근이 국권 회복을 위한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었는데, 일제는 이를 데라우치 총독의 암살을 위한 군자금 모집으로 날조해 관련 인사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백범 김구도 이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이 선고됐고, 이동휘는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섬으로 귀양을 보내는 '원도안치' 1년의 행정처분을 받아 무의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나는 이동휘와 상면이 없었는데 유치장의 명패를 보고서 역시 체포당한 줄 알았다"며 이 같은 사실을 기록했다.이동휘가 무의도에서 1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를 따르던 항일단체와 끊임 없이 교류하며 뒷날을 도모했던 시기로 여겨진다. 또 기독교에 심취해 성경 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러시아지역 한인신문 '선봉(先鋒)'은 1935년 2월 15일자 신문에 이동휘의 부고 기사를 실으면서 '리동휘 동무의 일생'이라는 제목의 일대기를 썼는데 여기에 짧지만 중요한 대목이 등장한다. 그가 해외에 조직한 항일단체를 유배 생활 기간에도 이끌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그는 삼년 안치의 처분을 받고 황해의 외로운 섬-무의도에서 삼년의 세월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가 간도에 있을 때 지도-조직한 철혈 광복단은 쉬지 않고 열렬히 활동하였다."기사에는 유배 기간이 3년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1년이 맞다. 러시아 한인사회에서 이동휘의 국내 행적이 구전으로만 전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여기서 등장하는 '철혈 광복단'은 이동휘가 105인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1~2개월 전 간도에서 기독교 전도 활동을 하면서 그를 따르는 항일 그룹 대표자를 소집해 조직한 비밀 항일운동 지도부다. 이동휘는 1911년 3월 한성 경무총감부로 압송됐다가 그해 6월 19일 무의도 유배 처분을 받게 됐다. 광복단 회원 명단과 구체적인 활동 내역은 자료 부족으로 학계에서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훗날 이동휘가 조직한 사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한인사회당과 대한국민회의, 북간도 국민회 등 해외 항일단체의 씨앗이 됐다. 이동휘는 무의도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이 조직한 광복단의 활동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무의도 유배 생활은 그가 더는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해외 이주를 결심한 계기가 됐다. 1912년 6월 귀양 생활에서 풀려난 이동휘는 1년 뒤 기독교 전도사로 변장해 북간도로 탈출한다. 1919년 일제가 작성한 '재외배일조선유력자명부'에는 이동휘가 1913년 6월 4일 간도로 이주했다고 나와 있는데 이동휘가 안창호에 쓴 1913년 9월 22일자 편지를 보면 그보다 3~4개월 전에 망명했다고 나온다.상해 임시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로 잘 알려졌지만, 그가 해외에서 펼친 사회주의 독립운동 이력 탓에 왜곡된 평가를 받기도 했고, 군사정권이 종식된 1990년대에 들어서야 제대로 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에서야 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일부 기록은 구전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무의도 유배 사건에 대한 기록도 제각각이다.대표적인 사례가 그의 유배 기간이다. 독립유공자의 공식 정보라고 할 수 있는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이동휘가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함경도에서 체포돼 황해도 무의도에서 3년간 유배되었다고 나와 있다. 또 1912년 가을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유배지를 탈출하여 북간도로 망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3년의 유배 처분을 받았으나 중간에 탈출했다는 내용으로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영종·용유지역 향토지도 독립투사 이동휘가 무의도 3년간 은신했다고 썼다.이는 이동휘 부고 기사에서 일대기를 쓴 신문 '선봉'과 이동휘의 아들이 남긴 여러 버전의 이동휘 전기 내용이 뒤섞인 것으로 보인다. 이동휘의 아들 이일영은 직접 집필한 전기를 1991년 공개했는데 "황해도 무의도 섬에서 정배사의하고 있던 이동휘 선생은 섬 중에 사는 어부들의 도움과 전우들의 활동 아래에서 예수교 전도사로 변장하고 1912년 무의도 섬에서 탈주하여 무사히 두만강을 건너갔습니다"라고 했다.그러나 재미 한인단체가 발행한 신한민보는 1912년 7월 29일자 기사로 이동휘가 1년 간의 유배 생활을 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학계는 이동휘의 일대기 전체를 살펴봤을 때 "작년 6월 18일부터 인천부 대무의섬에 안치를 당하였던 대한교육가 이동휘씨는 1년 기한이 찼음으로 해방되어 그 고향 성진군으로 보내었는데 이씨는 섬에 있을 때에 성경 연구에 전심하였다고 한다"는 신한민보 기사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이동휘와 인천의 인연은 그의 유배 생활 종료로 끝났지만, 20여 년이 지난 1935년 2월 그의 죽음이 국내에 전해졌을 때 강화도 주민들은 추모 행사를 계획했을 정도로 이동휘가 인천에 남긴 공적은 뚜렷하다. 강화의 유지들은 이동휘 추모식을 준비했지만 강화경찰서가 허가하지 않아 불발됐다.이동휘가 강화에 설립한 보창학교는 우수한 인재를 다수 배출했다. '훈맹정음'의 창시자 송암 박두성 선생이 대표적이다. 1888년 교동에서 태어난 박두성은 1895년 되던 해 이동휘가 보창학교에서 신교육을 받았고, 이동휘의 주선으로 한성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육계에 몸담았다. 한일병합의 굴욕을 맞은 1910년 이동휘는 망명을 권유했으나 그는 남아서 후진 양성에 힘쓰기로 헀다. 이에 이동휘가 소나무의 절개를 지키라며 송암(松岩)이란 호를 지어주고 '남이 하지 않는 일에 평생을 바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가 박두성에 의해 만들어졌다.이동휘는 교육가이자 웅변가이기도 했다. 이동휘는 1907년 군대 해산령이 내려지자 강화도 진위대원과 주민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우리는 지금부터 배워야 하겠고 알아야 하겠다. 군함도 있어야 하겠고 대포도 있어야 하겠다. 독립군도 양성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10리 사이에 1교씩을 설립하고 삼천리 강토에 3천교를 설립하여 3천만 동포의 애국정신을 배양하여야 하겠다. 이것은 오늘부터 또 내일부터 시작하여야 하겠다."이동휘는 망명 이후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상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대통령 이승만과 갈등을 빚었고,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단체인 한인사회당을 조직했고, 러시아 공산당과 교류하며 독립을 꾀한다. 이동휘는 혁명적 방법으로 조국 광복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했고, 무장을 통한 항일 투쟁 방식을 선호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강한 눈보라를 만나 독감에 걸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치료를 받던 중 1933년 1월 31일 서거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1921년 1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 신년축하식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이동휘(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중국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 핵심 간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이승만 대통령의 상하이 도착 환영식. 꽃목걸이를 걸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왼쪽이 이동휘다. /독립기념관 제공1935년 2월 15일자 러시아 한인 소식지 '선봉'에 실린 이동휘의 부고 기사. /독립기념관 제공천안독립기념관에 조성된 이동휘 어록비. /국가보훈처 제공

[zoom in 송도]인천경제청-SLC, 내부수익률 정산·분배방식 합의

[zoom in 송도]인천경제청-SLC, 내부수익률 정산·분배방식 합의

SLC 사업대상지 6곳 단지조성"기투입 860억원 조건없이 포기"A11 올 6월·A13 내년 2월 입주블록별로 이익 초과분 협의키로인천 송도랜드마크시티 개발사업이 정상화될 전망이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송도랜드마크시티유한회사(SLC)는 최근 개발이익(내부수익률) 12% 초과분 정산·분배 방식에 합의했다. 그동안 인천경제청과 SLC는 인천타워 설계비 등 기투입 비용 약 860억원 인정 여부를 놓고 이견을 보여왔다.SLC는 개발이익 초과분을 정산·분배할 때 기투입비 860억원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고, 인천시는 기투입비를 고려해 공동주택 용지를 싸게 공급한 것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었다. 인천경제청은 지난달 말 협상에서 SLC로부터 '기투입비 860억원을 조건 없이 포기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인천경제청과 SLC가 합의서를 체결하면 송도랜드마크시티 개발사업이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송도랜드마크시티 정상화 전망송도랜드마크시티는 송도 6공구 공동주택 용지(총 34만㎡)에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사업 대상지는 A11블록, A13블록, A14블록, A16블록, A15블록, A8블록 등 총 6개다. → 위치도·표 참조송도랜드마크시티 개발사업은 송도 6·8공구에 151층짜리 인천타워를 짓고 그 주변 228만㎡를 개발하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인천타워 건립이 무산되면서 아파트 단지 조성사업으로 축소됐다.인천시와 SLC가 2015년 1월 체결한 사업계획조정 합의서에는 송도 6공구 아파트 용지 '7개 필지' '34만㎡'를 3.3㎡당 300만원에 공급하고 개발이익 초과분을 절반씩 나누기로 돼 있다. A12블록도 사업 대상지에 포함됐었는데, 이들 면적을 합하면 40만㎡가 된다. 합의서 총면적 34만㎡를 넘기 때문에 A12블록(약 6만㎡)은 SLC 사업 부지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인천경제청은 송도 워터프런트 조성사업과 연계해 A12블록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SLC 사업 대상지 6개 블록 중 A11블록(886가구)은 올해 6월 입주가 시작된다. A13블록(889가구)은 내년 2월 입주가 예정돼 있다. A11블록과 A13블록 주변 도로 등 기반시설은 이달 중 준공될 예정이다. 송도랜드마크시티 사업 대상지에는 학교 용지가 있는데, 2021년 3월에야 개교한다. A11블록과 A13블록 입주자 자녀들은 인근에 있는 기존 학교를 다녀야 하는 상황으로, SLC는 2년간 통학용 버스 2대를 운행할 계획이다.A14블록(1천137가구)은 경관 심의를 앞두고 있다. SLC가 2017년 3월 경관 심의를 신청한 '송도 A14블록 공동주택 건립' 안건은 6차례 재검토 또는 반려 결정이 내려졌다. 오는 5월 경관위원회에 재상정될 예정이다. SLC 관계자는 "5월 경관 심의를 통과하면 건축 심의 등을 거쳐 내년 3월에는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분양 시기는 부동산 경기 등을 고려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관 심의 통과 후 건축 심의, 사업계획 승인, 착공까지는 10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SLC가 인천경제청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해야 하는 A16블록은 1천186가구, A15블록은 661가구, A8블록은 436가구다.■ 개발이익 정산·분배는 어떻게개발이익 초과분 정산·분배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부수익률 산정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개발이익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청과 SLC가 각각 회계법인을 선정해 내부수익률 산정 기준을 정한 후 세부 사항을 협의해 나가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인천경제청과 SLC는 블록별로 개발이익 초과분을 정산·분배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오는 6월 입주가 시작하는 A11블록부터 개발이익 초과분 정산 작업이 이뤄질 예정인데, 그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입주자들은 입주와 동시에 잔금을 치르기 때문에 입주가 완료돼야 개발이익을 산정할 수 있다. 입주가 지연되면 정산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는 게 SLC의 설명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송도랜드마크시티 사업 대상지 전경. 이 사업은 송도 6공구 호수 인근 6개 공동주택 용지(총 34만㎡)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송도 A11블록과 A13블록에 짓고 있는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 1·2차 아파트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독립운동과 인천·(7)구한말 강화 의병운동]주민과 의병 일으킨 강화진위대… 망국의 길목에서 최후까지 맞서

[독립운동과 인천·(7)구한말 강화 의병운동]주민과 의병 일으킨 강화진위대… 망국의 길목에서 최후까지 맞서

강화도 의병들은 망국의 길목에서 최후까지 일본에 맞서 싸웠다.1907년 8월 1일 황실을 지키는 서울시위대를 시작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일본에 의해 해체됐다. 서울시위대 군인들은 해산을 거부하고 남대문에서 봉기했지만, 일본군에 3시간 만에 제압당했다. 전국의 지방군대 중에서는 강화진위대와 원주진위대만이 해산 명령에 불복종했다.50여명에 불과했던 강화진위대 군인들은 그해 8월 9일 강화도 주민 500여명과 합세해 의병을 일으켰다. 다음날 군대 해산을 위해 강화에 진입한 일본군을 상대로 이틀 동안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군인 출신 연기우(생몰 미상), 지홍윤(?~1909), 이능권(1864~1909) 등이 강화 의병투쟁의 선봉장이었다. 일본군의 화력에 밀린 강화 의병의 주력부대는 황해도와 경기도 북부 일대로 퇴각해 전국적인 의병 연합전선에 합류했고, 일부는 강화에 남아 무장투쟁을 지속했다.강화도는 지정학적 위치상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던 땅이다. 그래선지 강화도 민중들은 외세에 대한 저항정신이 유독 강했다. 하곡 정제두(1649~1736)로부터 대대로 이어진 강화학파 사상과 이동휘(1873~1935)의 교육운동은 강화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강화 의병이 일어난 게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 의병투쟁은 1919년 3월 강화지역의 대대적인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됐다. 이후에도 강화 만세운동 현장에 있었던 죽산 조봉암(1899~1959)을 필두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강화에서 배출됐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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