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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학대` 입양모, 사망 고의 없었다…공소장 `살인죄` 변경

'정인이 학대' 입양모, 사망 고의 없었다…공소장 '살인죄' 변경

'서울 양천구 16개월 여아 학대 사망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입양모가 첫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13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신혁재) 심리로 열린 입양모 장모씨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사건 1차 공판에서 장씨 측은 피해자 '정인이'를 밀듯이 때리거나 떨어뜨린 사실은 있으나 사망에 이르게 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장씨 측 변호인은 "평소보다 피해자의 등과 배 부위를 때린 사실이 있고, 쇠약해진 아이에 대한 감정이 북받쳐 잡아 흔들다 피해자를 떨어뜨린 적은 있지만, 췌장이 끊어질 정도로 강한 둔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변론했다.이어 "훈계로 때린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피고인의 행동과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고의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이날 검찰은 공소요지를 진술하기에 앞서 장모씨의 주된 범죄 사실을 살인 혐의로, 예비적 공소사실로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도록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해 받아들여졌다.검찰은 "피고인은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해 몸 상태가 나빠진 상태에서 복부에 강한 둔력을 행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피해자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발로 피해자 복부를 밟았다"고 밝혔다.이어 "이 사건 범행은 발로 밟는 행위로 췌장이 절단돼 복강 내 출혈이 발생하는 등 복부 손상으로 사망하게 해 살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장씨는 지난해 10월13일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를 학대 끝에 사망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입양부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검찰은 장씨를 기소한 뒤 사안의 엄중함을 감안해 전문 부검의 3명에게 정인이 사건의 재감정을 요청했다. 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자문을 받은 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손성배·김동필기자 son@kyeongin.com13일 '정인이 사건' 첫 공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법 앞 분노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21.1.13 /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서울남부지법 출입문 앞에 취재진, 유튜버, 시민단체 등이 몰려 있다. 2021.1.13 /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③수원 진천생고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날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③수원 진천생고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날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제2의 고향' 수원서 문 연 고깃집코로나19는 '삶의 맛'을 무척 단조롭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분노와 슬픔만이 남은 듯합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처럼 고된 하루를 위로해줄 일상의 소소한 행복조차 욕심이 되어버린 요즘입니다.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지난 1991년 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문을 연 '진천 생고기'입니다. 온전히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지난 30년 세월 동안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즐거움을 제공한 곳입니다. 진천 생고기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진천(충북) 출신 진수진 대표와 부산이 고향인 그의 아내 김은순 대표가 '제2의 고향' 수원에서 고깃집을 연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이 곳이 개업 초기에 좀 더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참 재밌습니다. 주변에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넘쳐나다 보니 한 발 늦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근처 진천 생고기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운으로만 30년 넘게 가게를 이어갈 순 없었겠지요.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한 부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갖다가 손님이 보는 곳에서 직접 썰어줍니다. 고기 가지고 장난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신뢰를 주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네요."(진수진)"고기든 채소든 재료를 속이지 않고 좋은 걸 쓰니까 손님들이 알아준다고 생각해요. 반찬도 매장에서 파는 걸 쓰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는 직접 손으로 하니까 아직 가게를 이어나갈 수 있는 불씨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김은순)#부부가 '제2의 인생'을 사는 까닭이들 부부의 첫인상은 '금슬이 참 좋아 보인다'였습니다. 차분한 성품의 진 대표와 밝은 에너지를 가진 김 대표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오랜 기간 가게를 일궈왔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역경의 순간은 찾아왔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임을 내세우면서 접근한 사람에게 큰 돈을 사기당한 것입니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어 답답할 노릇입니다. 어린 자식들의 고생까지 얹어진 돈이라는 생각에 더욱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어린 딸을 근처 슈퍼에 맡기거나 가게 한편에 눕혀놓고 장사를 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두 손을 꼭 잡고 칠흑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가 남들 놀 때, 그러지도 못하고 죽으나 사나 가게에 매달리면서 번 돈인데, 이런 큰돈을 날렸을 때는 말도 못했죠. 그래도 애들이 있고, 아내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견뎌냈어요."(진수진)"둘이 손을 꼭 잡았어요. 죽어가는 목숨에다 투자해 살아나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라고. 젊으니까 다시 살 수 있다고."(김은순)#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게 하는 힘진천 생고기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은 이들 부부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게의 문을 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은순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경기도청 공무원들은 진천 생고기의 주요 고객층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 자주 방문하다, 퇴임 이후 옛 생각이 나서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폐암'에 걸린 아픈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찾아온 손님도 있었습니다. "'옛날에 진천집에서 먹던 고기 맛이 생각나서 왔다'고 하는데, 가슴이 엄청 뭉클했어요. 가게를 이쯤에서 접어야 하나 라는 고민이 드는 시점이었는데, 그 분을 보니까 잊지 않고 찾아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사를 해야 할 거 같아요."(김은순)물론 헤쳐 가야 할 어려움도 많습니다. 거북시장의 유동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엎친 데 덮친다고 코로나 여파로 매출이 3분의 2가량 감소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이들 부부에게 새로운 자극이자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 인내를 갖고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더라고요. 장모님께서 늘 하신 말씀이 '진 서방 밥이나 먹고 살겠나'였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뭐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변함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신선한 고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답하겠습니다."(진수진)"모두가 대박을 원하는데, 대박보다 평범함 속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좋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성공에 비중을 크게 두면 정작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정직하게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해요."(김은순)*진천 생고기 위치: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934번길 25. 메뉴: 육회, 안창살, 등심, 차돌박이, 갈매기살, 항정살, 삼겹살 등(소고기·돼지고기 국내산).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위치한 진천 생고기. 사진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진수진, 김은순 부부./디지털 콘텐츠팀.손님에게 신선한 고기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진수진 대표./디지털 콘텐츠팀.기억에 남는 손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김은순 대표./디지털 콘텐츠팀.진천생고기 상차림/디지털 콘텐츠팀.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②군포 재궁태권도장]태권도장을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되다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②군포 재궁태권도장]태권도장을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되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마약은 끊어도, 태권도는 못 끊는다여러분은 '태권도'하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여럿과 함께 태권도장으로 향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선명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문대성 선수가 상대 선수를 멋진 뒤돌려차기로 제압한 장면도 기억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태권도를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남 재궁태권도장(군포) 총관장입니다.이영남 관장이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유년시절 남들보다 작은 '키' 때문이었습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그렇듯 이 관장의 아버지도 자식의 성장이 또래보다 더딘 걸 염려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낸 것이었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것이지만, 그는 금세 태권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긴 태권도가 어느새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고, '태권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태권도를 시작한 뒤로는 몸집이 큰 사람들을 상대해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이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말 그대로 배짱이 아주 대단해졌죠."그토록 사랑한 태권도였지만 한때나마 스스로 도복을 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태권도 관련 단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가 승단 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무도인으로서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요? 다시 도복을 입을 수밖에 없던 그였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태권도는 마약 이상이라고 볼 수 있죠. 마약은 끊을 수 있지만, 태권도는 못 끊으니까요."#낮에는 태권도 관장, 밤에는 경비원이 관장의 태권도 사랑은 말 그대로 흘러넘칩니다. 그를 보며 느낀 감정은 일종의 '부러움'이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애정만으로 도장을 지켜나갈 순 없습니다. 28년 된 도장을 운영하는 그가 밤에는 강남의 한 빌딩에 경비원으로 취업해 밤샌 근무를 하는 이유입니다.그의 도장에는 이요한 지도관장과 이다해 수석사범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관장의 아들, 딸입니다. 2대가 함께 힘을 모아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원이 대폭 줄면서 둘의 인건비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입니다. "태권도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제가 체육학 박사이고 한 체육관의 총관장이지만 경비원으로 일하며 땀 흘리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게 저의 태권도 정신이자, 철학입니다."백년가게 선정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추천 방식으로 백년가게가 된 재궁태권도장은 한 자리에서 28년 간 도장을 운영한 점과 앞으로도 도장을 이어나갈 가능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도장을 지켜 온 이 관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입니다. "자기가 중소기업 도와주는 쪽 직원이라고 하면서 전화로 백년가게 이야기를 하길래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어요. (웃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백년가게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한 길을 걸어오길 잘했구나!',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었죠."#한옥 도장에서 대통령 배출을 꿈꾸다대를 이어 도장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아들과 딸이 모두 태권도를 업으로 삼고 있고, 곧 사위가 될 사람도 태권도인입니다. 말 그대로 '태권도 집안'인 셈이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겠다'는 자식들과 이견(?)이 좀 있지만 손주들이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기대까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욕심인 건 알지만 손주도 다른 운동 말고 꼭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웃음) IMF 등 많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백절불굴'의 자세로 도장을 지켜왔습니다. 제 자식과 후손들이 이 도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틀 정도는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이 관장의 최종 목표는 한옥 도장을 짓는 것입니다. 당장 건물을 짓지는 못하겠지만 군포와 안산 경계지점에 이미 부지도 사놓았습니다. '올바른 정신과 건강한 신체 수련'을 강조한 그는 이 공간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임입니다. "많은 후배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불태울 수 있는 멋진 도장을 짓는 게 남은 인생의 중요한 계획입니다. 제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듯이 제 자식들은 실력과 인성을 갖춘 훌륭한 지도자가 돼 대통령까지 배출하는 도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재궁태권도장 위치: 군포시 산본로 296-1 401호.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재궁태권도장 이영남 총관장. 도복을 입은지 벌써 45년이란 오랜 지났지만 그의 태권도 사랑과 열정은 초심 모습 그대로 인듯 했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백년가게로 선정된 재궁태권도장./이영남 총관장 제공재궁태권도장의 이영남총관장과 이요한 지도관장(왼쪽), 이다해 수석사범이 품새를 선보이고 있다. 세 사람은 가족이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 윤성여씨, 재심서 `무죄` 선고받았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 윤성여씨, 재심서 '무죄' 선고받았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재심 선고공판에서 혐의를 벗고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17일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박정제)는 윤씨의 살인, 강간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하면서 사법부를 대신해 사과했다.앞서 지난달 1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과거 사건 수사 당시의 과오를 인정하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은 "재심 공판에서 피고인이 화성연쇄살인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무죄를 선고해주기 바란다"고 최종의견을 밝혔다.재판부는 윤씨 측 변호인단이 확인했던 ▲불법체포 감금 ▲독직폭행·가혹행위 ▲조서 허위작성 ▲현장검증의 위법 ▲진술서 작성 강요 ▲족적 조작 ▲훈련된 자백 녹음 ▲국과수 감정서의 문제점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 등을 살펴봤을 때 유죄로 판단됐던 주요 증거의 객관성이 부족하고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재판부는 "경찰은 피고인을 화성경찰서에 데리고 온 뒤 가혹행위를 하여 자백을 받아냈으며, 조서도 피고인이 받아쓰거나 경찰이 작성한 것을 보고 피고인이 그대로 쓰게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조서에 입회했다고 한 사람도 실제는 입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등의 의혹이 있어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했다.이어 "당시 피해자 집이 잠겨 있어 담을 넘어서 들어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잠금장치가 없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으며, 피고인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평지를 걷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신체 조건도 진술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의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재판부는 "이춘재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사건 내용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범행 당시 양말을 벙어리 장갑처럼 끼고 목을 졸랐다는 부분은 피해자에게서 나온 표피 박살 흔적과도 부합했다"고 말했다.또 "경찰의 가혹행위와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로 잘못된 판결이 선포됐고, 피고인은 오랜 기간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며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못 한 것에 대해 사법부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재심 판결이 피고인에게 위로가 되고 피고인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했다.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범인으로 몰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씨는 수감 20년 만인 2009년 8월 출소했다.윤씨는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한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청사를 나와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2020.12.17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미성년 성추행` 안산 교회목사 감금 등 추가고소 "하루 헌금 40만원 강제"

'미성년 성추행' 안산 교회목사 감금 등 추가고소 "하루 헌금 40만원 강제"

안산의 한 교회 목사에게 십수년간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감금 혐의 등에 대한 추가 고소장을 접수했다.피해자 고소대리인인 법률사무소 부유 부지석 변호사는 17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안산 지역 모 교회 목사 A씨에 대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감금, 폭행) 혐의 고소장을 제출했다.앞서 이 교회에 다니던 20대 여성 3명은 미성년자였던 과거 A 목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하고 목사가 추행 장면을 영상 촬영해 시청하게 했다는 피해를 호소하며 지난 4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고소했다.이날 추가 고소장 접수에 앞서 고소대리인은 "피해자들은 7~8세의 어린 나이에 교회에 들어가 감금을 당한 채 목사의 지시에 의해 온갖 변태적인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한다"며 "이 같은 일이 무려 2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는 복수의 증언이 있다"고 말했다.이어 "A 목사 일가는 변태적인 성폭력과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에게 밥과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을 시키고 하루에 헌금액을 40만원까지 받아오지 못하면 폭행을 하기도 했다"며 "또 다른 수십명의 피해자들을 만나 이단 교회의 추악한 범죄 행위를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경찰은 A 목사를 불구속 입건하고 지난 15일 교회와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압수수색에서 카메라 등 영상 저장장치가 확보된 것으로 전해졌다.경찰은 고소장과 압수 물품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17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종합민원실 앞에서 '안산 교회 목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법률사무소 부유 부지석 변호사가 추가 고소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2020.12.17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①안산 할리바버샵]사람 몸에 칼을 댄다는 책임감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①안산 할리바버샵]사람 몸에 칼을 댄다는 책임감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안산시 '할리바버샵'에 가다경인지역에는 총 119곳(경기도 85곳, 인천 34곳)의 백년가게가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들은 자기 업종의 전문성을 가지고 최소 20년 이상 가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인'입니다. 이 중 어떤 장인을 첫 번째로 소개해야 할지, 가게 선정 과정부터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러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한 '바버숍'이 백년가게로 선정돼 있는 걸 발견하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것의 향기가 나는 백년가게와 현대적인 느낌의 바버숍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였죠. 이곳의 대표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손에 쥔 빗과 가위를 놓지 않고 있는 신태민 이용기능장입니다. 그는 이용사 자격증 취득 시험의 감독관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이용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치면 심사위원 격인 셈이죠. 이런 그도 바버숍 매장을 열기 위해 지원자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과 연륜은 있다고 하나, 최신 이용 트렌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느지막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신 기능장의 고생길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발소를 운영하다 새롭게 트렌드를 접목시켜 바버숍 문을 연 건 5~6년 전 일이에요. 매장 운영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교육을 받았죠. 집에 도착하면 새벽 3~4시가 됐어요. 그렇게 7~8년 정도를 했죠. 기존 매장을 운영하면서 평소 해오던 틀에서 벗어나려고 아이템 구상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저희 가족, 지인분들을 상대로 연습을 많이 했죠. (웃음)"*바버숍이란?- 남성의 머리카락을 깎고 구레나룻과 수염을 다듬는 이발소를 현대적으로 브랜딩한 가게.(출처: 박문각) #가위를 든 자부심그가 바버숍을 운영하면서부터는 소위 진상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일반 이발소를 운영할 때는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손님부터 술을 마시고 와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답니다."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일반 이발소를 할 때는 고객님들과 말다툼한 적도 있죠. 작은 인테리어부터 제 나름대로 갖춰야 할 것들을 갖추고 바버숍을 운영하다 보니 매장의 품위도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처럼 막무가내인 고객님들은 요즘은 별로 없어요."개인적으로 바버숍이든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머리카락을 자르러 가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용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용사와 미용사는 가위 혹은 면도칼 등 날카로운 물건을 사람들의 얼굴에 직접 대는 직업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부심 또한 대단합니다. "자격증 체계로만 놓고 보면 사람 몸에다 칼을 대는 직종은 우리 업종과 외과의사 밖에 없어요.(웃음) 여태까지 이 일을 먼저 했던 선배들이 후배를 육성할 때 그런 마음으로 가르쳤어요. 지금은 제가 후배들에게 직업에 대한 애착이나 장인 정신 하다못해 프로 정신을 가질 수 있게끔 지도를 하고 있죠."#백년가게 그리고 책임감 신 기능장은 자기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백년가게 선정을 꼽았습니다. 이용기능장이 됐을 때, 기능대회에서 최고 기능인으로 선정됐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백년가게 선정은 그의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업력 30년 기준을 채우지 못하다 보니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이런 그가 바버숍으로는 처음으로 백년가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추천제 덕분이었습니다. 평소 그를 좋게 본 지인이 직접 그를 추천한 것이었죠. "제가 기능공부 할 때부터 알고 있던 고객님인데, 내색은 안 하셔도 그 분인 것 같아요. 저를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분 밖에 없거든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백년가게로 선정된 가게들은 정부의 각종 행·재정적 지원을 받게 됩니다. 더불어 여러 소상공인들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신 기능장에게는 업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도 큽니다. "우리 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지면서 이용업종이 활성화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이용업이나 바버숍 관련 매뉴얼을 전수해 나가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야죠. 미래가 보이고 희망이 보이는 직업군이 될 수 있게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바버숍 이용 tip지저분한 머리카락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미용실을 찾는 기자에게 바버숍 경험은 '생경' 그 자체였습니다. 매번 기성복을 입다, 맞춤복을 사러 간 느낌이랄까요? 특히, 얼굴의 잔털 하나하나까지 관리해 주는 면도 서비스를 받고 난 뒤에는 '시원함' 그 이상의 기분을 느꼈습니다.신 기능장의 추천은 국가에서 준하는 인증이나 거기에 걸맞은 기능장,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전문 매장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취향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후회하지는 않을 거랍니다. 바버숍이 남성 전용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여성분들도 이용 가능합니다. 정기적으로 면도 서비스를 받는 여성분들이 꽤 된다고 하네요. 안산 '할리바버샵' 위치: 안산시 상록구 충장로 432 홈플러스 안산점 2층. 영업시간: 10:00~21:00(명절 당일 휴무).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매장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신태민 기능장. /디지털 콘텐츠팀신태민 기능장의 가위에 몸을 맞긴 기자./디지털 콘텐츠팀백년가게 마크./중기부 제공.신태민 기능장의 면도 서비스를 받고 있는 기자. 베일까 걱정했던 것도 잠시, 이내 편안함에 빠져들면서 비몽사몽을 오가는 행복을 맛봤다./디지털 콘텐츠팀

[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2)빛나지 못하는 무지개]다름을 인정한 엄마는 `내편이 됐다`

[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2)빛나지 못하는 무지개]다름을 인정한 엄마는 '내편이 됐다'

중학교때 동성애자 정체성 깨달은 정예준씨, 4년전 털어놔부모님, 성소수자 부모모임 등 나가 조언 구하고 위로받아"가족인 내가 내 아이 부정하면 누가 지키겠나" 받아들여A="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반대하지요."A가 재차 묻는다.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는 같은 답을 한다. "그럼요."2017년 있었던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의 모습이다. 이때 A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B는 문재인 후보다. 선거결과 A는 2위로 낙선했고, B는 당선돼 대통령이 됐다. 두 후보의 합산 득표율은 65.1%다.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했던 이들은 무엇을 반대할까. 동성애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다. 성 소수자 모두가 그렇다. 다수의 기준과 비교했을 때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다르게,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다.고양 일산에 사는 강선화(52)씨는 4년 전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 토론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 18일 강선화·정예준(25) 가족을 인터뷰했다. 강선화씨는 "'내가 내 아이를 부정하면 누가 내 아이를 지키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들 예준씨가 커밍아웃한 뒤 든 여러 생각 중 하나였다. 예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처음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친구를 피해 다녔지만 이내 다른 남자아이에게 두근거림을 느꼈다. 고민 끝에 20살이 됐을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어렵게 말했는데 친구는 예상외로 시큰둥한 반응이었어요. '뭐 어쩌라고'라는 투였죠. 이후 1년 동안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렸고, 부모님에게도 말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정예준씨는 편지로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렸다. 그가 식탁에 올려두고 떠난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모님께.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저는 사실 동성애자예요'. 아들이 게이일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직업이 항공승무원인 선화씨는 "일 때문에 다음날 미국으로 떠나야 했는데, 비행기 탑승 전부터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48시간 가까이 잠을 못 잤다"며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면 아이가 두 번 다시 다수의 삶으로 못 돌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했다. 선화씨는 힘들게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에게 시간을 주면 좋겠다.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고 싶은데 아직은 힘이 드네'.한국에 남아 있던 남편 정동렬씨는 아들의 권유로 커밍아웃 사흘 만에 '성 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갔다. 같은 처지의 부모에게 위로를 받고 아들과 함께 조언도 구했다.선화씨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세 가족이 만났다. 소주에 삼겹살을 곁들이며 예준씨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선화씨는 "아이가 혹시 우리한테조차 버림 받을까봐 500만원 정도 모아뒀더라구요. 부모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죠"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또 "가족인 내가 아이를 부정하면 누가 내 아이를 지키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했다.커밍아웃을 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선화씨는 남편과 함께 '성 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여했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한 달 전에 아들이 게이라고….'라며 말을 못 잇고 계속 울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모임 운영진을 맡고 있다.예준씨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선화씨 가족은 모두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선화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성 소수자 관련 집회에 참석한다. 서울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나는 게이 아들을 둔 부모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군대내 동성 간 성행위 처벌법인 군형법 제92조 6항 폐지를 위한 집회에도 참여한다. 예준씨도 인권단체에서 제대로 공부하며, 게이합창단 단원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많은 성 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춘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성 소수자가 많다. 드러내놓고 그들의 존재를 "반대한다"고 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화씨는 많은 성 소수자가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더라도 불편함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 차별 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캐나다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은 자식이 커밍아웃을 해도 우리처럼 슬퍼하지 않더군요.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등의 걱정이 없기 때문이겠죠. 한국 아이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합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4년 전 아들 정예준(25·오른쪽)씨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밝혔을 때 어머니 강선화(52)씨는 큰 충격 속에서도 아들을 품고 이해하기로 했다. 아들의 고백 이후 가족들은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등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인권 운동가'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18일 고양 일산에서 만난 강선화씨는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도 불편함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0.10.26 /기획취재팀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트랜스젠더 이한결씨의 `새 인생`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트랜스젠더 이한결씨의 '새 인생'

여성으로 출생… 정체성 고민 털어 놓자어머니 "차라리 레즈비언으로 살았으면"수술후 법원 성별 정정 기각, 1년뒤 허가"다른 소수자 상담… 함께 변화 만들것""모두가 여자 혹은 남자 어느 한 성별로 저를 규정하려 해요. 저는 그냥 저인데."이한결(26)씨는 트랜스젠더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수술을 통해 남성이 됐다. 이씨와 같은 트랜스젠더는 미국에 100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7년 미국 공중보건 저널(Public Journal of Public Health)은 인구 10만명 당 390명이 트랜스젠더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우리나라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10만명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MtF(Male to Female)가 더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씨와 같은 FtM(Female to Male)은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소수다.그는 "제가 가진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가족을 설득했고, 수술을 받고도 법정에서 성별 전환이 거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기간은 10년이 넘는다.이씨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6~7세 때부터 자신이 지정받은 성별(sex)은 여성이지만, 사회적 성별(gender)은 남성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치마 대신 바지 한복을 입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여성에게 이끌렸다. 당시 모습을 보고 이씨의 어머니는 '딸이 레즈비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가슴이 나오는 게 싫어서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그는 중학생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가슴 제거 수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돼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후에도 한결씨는 여성 애인을 소개하는 등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이씨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가족 입장에서는 수술을 해야 하고,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과 다르게 사는 트랜스젠더보다는 레즈비언으로 사는 게 나아 보였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틈날 때마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끌림, 젠더에 대해 알렸다"며 "어머니는 피곤해 하고 간혹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 질문이라도 하면 너무 반가워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3년 전인 2017년 마침내 어머니를 설득했고,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기 위해 그해 11월에 가슴 제거 수술을, 이듬해 1월에 포궁(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수술날 마취가 덜 풀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고맙다'고. 어머니는 '이제 만족하냐?'고 하셨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수술은 끝났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성별정정허가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것이다. 그는 다른 법원에 다시 신청했다. 성별정정허가신청은 판사의 재량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씨는 성장환경진술서에 '어릴 적부터 파란색과 로봇을 좋아했다'고 쓰는 등 한국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에 맞춰 조사에 임했다.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지난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이씨는 퀴어 커뮤니티에서 '봉레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뮤지컬 아카데미 '밤 아카데미'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고 있고, 트위터와 유튜브에 '성 소수자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대로 살지 못한 기간을 '벽장 안에 있었다'고 표현했다."벽장을 나오기 전 저는 어머니와 한참 싸우고 울던 사람이었지만 이제 '오픈리(직장 가족 대중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한 성 소수자)'가 돼 다른 성 소수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해요. 이 변화의 중심엔 어머니가 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함께 만들 것을 의심치 않아요."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해 여성에서 남성으로 법적 성별 정정에 성공한 이한결(26)씨. 2020.10.26 /이여진 기자 aftershock@kyeongin.com

[58년생 김영수-베이비부머 이야기·(3·끝)브라보, 마이 라이프]연륜과 감각이 통했다… 그렇게 닮아가는 우리

[58년생 김영수-베이비부머 이야기·(3·끝)브라보, 마이 라이프]연륜과 감각이 통했다… 그렇게 닮아가는 우리

'30년 터울' 신경철 명장·우진구 대표 협업수제가구 품질·마케팅 조화… 젊은층 어필서로에게 멘토 역할도… 세대간 장벽 넘어용인에서 원목 가구 주문제작 기업 '블라노스'를 함께 이끄는 우진구(33) 대표와 신경철(63) 명장에게 '30년 터울'은 세대 간 장벽이 아닌 서로를 잇는 '연결다리'였다. 신 명장이 쌓은 40년의 기술이 우 대표 사업의 뿌리가 됐고, 정보기술(IT) 시대에 걸맞은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우 대표는 신 명장과 젊은 소비자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살아온 시대가 다른 둘은 서로 이해하고 멘토가 되어주면서 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한참 어린 우 대표가 사업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내민 손을 신 명장이 열 번이나 뿌리쳤다. 어떤 이유였을까?신 명장은 대한민국의 전통가구목공예 명장(제16-명71호)이다. 최고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사람에게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이다. 그는 수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1977년부터 40년 넘는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수십 년 간 제조 공장만 운영하다가 직접 판매까지 하는 매장을 차렸는데 경기 불황에 부닥치며 큰 피해를 봤다. 우 대표가 2016년 말 처음 찾아와 사업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도 이 같은 실패를 물려줄까 봐 거절했다. 하지만 이후 1년간 열 번이 넘도록 끈질기게 요청한 우 대표의 '십고초려'는 결국 신 명장의 마음을 돌렸다. "주문 제작 가구는 가격이 비싸지만 수요가 적어 수익을 올리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계속 거절했는데 매일같이 찾아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도우며 매달리니 결국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과거에 내가 사업에 실패했던 건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을 우 대표가 채워주고 있습니다."우 대표는 수년간 호흡을 맞춘 젊은 동료 가구 디자이너가 곁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신 명장을 고집했던 이유는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주문 제작 가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제 가구 40년 인생을 살아온 신 명장과의 협업이 필요했다."젊은 기업 대표로서 마케팅과 고객서비스 등은 물론 기술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아무 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기성 제품은 싫었어요. 오랜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어 내는 명장님과 어떻게든 협업을 해야겠다고 판단했죠. 30년의 나이 차는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베이비붐 세대인 신 명장은 "나도 꼰대"라고 말한다. "우리 땐 '까라면 까!'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 세대는 그런 걸 찾기 힘들어요. 대신 요즘 젊은이들한테 느끼는 열정은 분명 남다르죠."하지만 우 대표는 신 명장을 꼰대로 보지 않는다. "분명 자기 고집도 있으실 텐데 절대 본인 의견만 내세우지 않고 뭘 제안하든 끝까지 들으세요." 그렇게 블라노스에서는 신 명장의 오랜 기술과 경험, 우 대표의 젊은 감각이 합쳐져 단 하나밖에 없는 원목 수제가구가 만들어진다. 열 번의 거절 끝에 우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인 신 명장도 "젊은 대표와 함께 일하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임승재차장, 김준석, 배재흥기자 사진 : 조재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 김동철, 박준영차장, 장주석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원목 가구 기업 블라노스의 공장에서 '젊은 대표' 우진구(33)씨와 '40년 기술 명장' 신경철(63)씨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제가구에 평생을 바친 신 명장의 오랜 기술과 경험, 정보기술(IT) 시대에 적합한 우 대표의 젊은 감각이 합쳐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원목 가구가 만들어진다. 2020.9.22 /기획취재팀인터뷰 하는 신경철 명장. 2020.9.22 /기획취재팀인터뷰하는 우진구 대표. 2020.9.22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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