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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8)차이콥스키의 죽음]거장을 죽인 콜레라, 혹은 동성애 혐오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8)차이콥스키의 죽음]거장을 죽인 콜레라, 혹은 동성애 혐오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전염병을 소재로 한 책과 영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많은 칼럼에선 전염병 관련 옛이야기를 소환하고 있다.음악계에도 전염병 관련 이야기가 여럿 있다. 19세기의 콜레라는 '근대적' 질병이었다. 런던을 비롯한 유럽 도시들의 팽창 속도와 비교해 상하수도 시설이 따라주지 못했고,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렸다.무역이 발달하고 교통망이 확대되면서 2차, 3차 감염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1820년 전후, 1800년대 유럽에선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유행했다.당시 콜레라로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러시아 낭만주의'를 완성한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를 꼽는다.1893년 2월, 교향곡 6번 '비창'의 작곡을 시작한 차이콥스키는 그해 9월에 작품을 완성했다. 10월 지휘대에 올라 이 작품을 초연한 차이콥스키는 9일 후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 황실에선 차이콥스키가 죽기 며칠 전 식당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고서 콜레라에 걸렸으며, 끝내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차이콥스키가 타계하고 12일 뒤 개최된 두 번째 '비창'의 공연에서 청중은 꺼지듯 사라지는 작품의 마지막 음형과 함께 작곡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함께 눈물지었다. 작곡가의 염세적 세계관과 개인적 슬픔이 집약된 '비창'을 사람들은 '자살 교향곡'이라고도 불렀다. 이와 함께 대작곡가의 죽음에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특히 지인들은 콜레라로 죽었다고 하면서도 소독이나 검역이 없었던 점을 의심했다. 차이콥스키의 시신 앞에 6만명에 이르는 참배객이 다녀갔지만 제지하지 않았다는 거였다.차이콥스키에겐 비밀이 있었다. 그는 당시 윤리기준에서 용납될 수 없었던 동성애자였다. 동성애 성향을 감추기 위해 여 제자와 결혼을 하지만, 며칠 만에 집에서 뛰쳐나왔다.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차이콥스키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률학교를 나왔으며, 법무부 서기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했는데, 비밀을 알아챈 법률학교 동료들은 소규모 '동문 청문회'까지 열어 자살을 종용했다. 이를 받아들인 차이콥스키가 콜레라와 비슷한 증상을 내는 독극물인 비소를 먹고 사망했다는 설이 오늘날에는 설득력을 얻는다. 이게 맞는다면, 차이콥스키의 경우는 자살이면서 타살인 기묘한 죽음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7)윤이상]아시아 최초 유럽 음악계 인정받은 작곡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7)윤이상]아시아 최초 유럽 음악계 인정받은 작곡가

간첩으로 몰린 동백림 사건 겪어정치·사회적 표현 150여편 남겨 윤이상(1917~1995)은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럽 음악계의 인정을 받은 첫 작곡가였다. 그는 서양 모더니즘 음악기법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적 이미지를 구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해방 이후 부산과 통영에서 음악교사로 있었던 윤이상은 1957년 유럽으로 떠났다. 1966년 독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초연된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예악(Reak·禮樂)'은 윤이상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줬다. 윤이상은 1960년대 들어서 펜데레츠키와 리게티 등이 추구한 음향작곡(Klangkomposition) 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우리 전통음악에서 유래한 여러 요소들, 즉 미분음과 비브라토(농현), 장식음 등이 가미된 독특한 음향 세계를 선보이며 서양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1967년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 북한에 다녀온 윤이상을 간첩으로 지목해 강제로 데려왔다. 북한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 평남 강서군의 강서대묘에 있는 고구려의 사신도를 보고 돌아온 윤이상에게 징역 10년이 최종 선고됐다. 윤이상은 옥중에서도 작곡을 이어갔다. 사신도를 보고 받은 영감을 실내악곡 '영상(Images)'에 담아냈다. 1968년 탄생한 이 작품에서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는 하나이자 넷으로 어우러지며 다채롭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곡가는 후일에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채로 빛났고, 넷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고 회상했다.세계 음악계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2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윤이상은 이후 정치·사회적 경험들을 명확한 음악 언어로 구사했다.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축하작이었던 오페라 '심청'을 비롯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하라',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분신한 사람들의 넋을 추모한 '화염에 휩싸인 천사와 에필로그',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 15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작곡가 이건용(73)은 윤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윤이상은 큰 인물이다. 그래서 전체를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통일운동가로서의 그를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작곡가로서의 그를 얘기한다. 또 다른 사람은 현대작곡가인 그를, 다른 사람은 민족음악가인 그를 주목한다. 그의 대강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심이 모여서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룰 때에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는 크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6)음악의 성인(聖人)]"브루크너 음악에는 신이 살아있다"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6)음악의 성인(聖人)]"브루크너 음악에는 신이 살아있다"

교향곡 3번 말러 기립박수 일화거대 성당·장대한 우주 연상시켜 음악사에서 '3B'는 성이 B로 시작하는 작곡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 등 3인을 지칭한다. 베토벤과 말러 사이의 가장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되는 안톤 브루크너(1824~1896)를 브람스 대신 포함하기도 한다.오스트리아 린츠 인근의 안스펠덴에서 태어난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과 성 플로리안 성당에 종종 갔다. 높이 솟은 탑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바로크 건축양식의 성당과 웅장한 오르간(1771년에 제작된 이 명품 오르간은 현재 '브루크너 오르간'으로 불린다)은 어린 브루크너에게 종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13세에 이 성당의 성가대원이 되었고, 24세에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는 등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보낸 17년은 브루크너 음악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31세에 빈 음악원 교수였던 지몬 제히터를 찾아가 6년 동안 작곡을 배운 후 나름의 스타일을 갖춘 첫 작품('미사 D단조')을 40세에 발표했다. 슈만과 바그너, 브람스 등의 첫 걸작이 20대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늦었다.44세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한 브루크너는 5년 후인 1873년엔 '교향곡 3번'을 완성해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와 곡의 난해함으로 인해 당대 오케스트라들은 연주를 거부했다. 1877년에 이르러서야 작곡가가 직접 빈 필하모닉을 지휘해 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공연장의 청중은 하나둘 빠져나갔고, 연주가 끝났을 땐 20여명 만이 남았다고 한다. 굴욕의 순간에 17세의 청년 음악도였던 말러가 기립 박수로 작곡가에게 존경을 표시한 일화는 유명하다.1884년 '교향곡 7번'으로 대성공을 거둔 브루크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 '8번'을 완성했으며, 이어지는 걸작인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을 끝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거대한 성당과 장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악상과 숭고한 아다지오 악장, 압도적인 피날레 악장 등을 갖춘 그의 음악은 꾸준히 음악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말러의 제자이자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생전에 "말러는 신을 찾기 위해 계속 방황한 반면 브루크너는 이미 찾았다. 그의 음악에는 신이 살아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5)세상에서 제일 긴 클래식]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일동안 16시간 연주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5)세상에서 제일 긴 클래식]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일동안 16시간 연주

영화 '반지의 제왕' 모티브 음악극에릭 사티 '벡사시옹' 13시간 걸려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은? 19세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Musikdrama)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이하 '반지')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었다. 총 연주시간은 16시간(휴식시간 제외)이나 된다. 이 작품은 전야(前夜·'라인의 황금')와 3일간의 본편('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구성됐다. 평균 4시간에 이르는 작품들이 4일 동안 펼쳐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제전에서 상연했던 3부작의 '그리스 비극'을 모델로 했다. 그러나 프롤로그 격인 '라인의 황금'에서 이미 구체적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4부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단일 음악으로는 13시간 동안 연주해야 하는 에릭 사티의 전위적 작품인 '벡사시옹(Vexations)'도 무척 길다.바그너는 총체 예술 작품(Gesamtkunstwerk)을 표방하며 음악과 연극, 이야기가 하나로 결합된 예술인 '음악극'을 창안했다. '음악에 봉사하는 연극적 요소'를 갖춘 기존의 오페라와 차별화를 꾀한 거였다.바그너 음악극의 정수인 '반지'는 작곡가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는 데 26년이 걸렸다. 또한 바이에른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음악극 상연에 적당한 극장을 건립한 바그너는 1876년 극장 개관 기념작으로 '반지'를 초연했다. '반지'는 북유럽의 신화와 게르만족의 전설을 혼합해 만들어졌다. 저주받은 반지가 저주에서 풀리기까지의 40여년 동안의 과정과 반지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극은 16명의 주역을 포함해 3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바그너는 16시간에 이르는 복잡한 이야기를 관객에 쉽게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합창단)는 전지적인 관점에서 극의 전사(前事)를 설명하고 무대 배경을 제시하며, 주인공을 비난·설득·독려했다. 바그너는 이 역할을 오케스트라에 부여했다. 이를 '유도동기'(Leitmotiv)라고 한다. '반지'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유도동기가 사용됐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음악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상황들을 연계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이러한 장치들은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을 질서와 구심력을 갖춘 가장 정돈된 작품으로 만들었다.20세기의 거장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생전에 "나는 13~16세에 바그너의 작품 전부를 암보(暗譜)로 연주할 수 있었다"면서 "바그너는 초인이며, 그에게 필적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셰익스피어뿐"이라고 말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4)악마의 트릴]꿈에서 영혼과 맞바꾼 `악마의 연주`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4)악마의 트릴]꿈에서 영혼과 맞바꾼 '악마의 연주'

'서거 250주기' 주세페 타르티니바이올린 소나타 에피소드 유명 올해 음악계의 시선은 탄생 250주년인 베토벤에게 쏠려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 중 일부는 올해 서거 250주기를 맞는 후기 바로크 시기의 작곡가이자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이탈리아)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개관 3년 차를 맞는 아트센터 인천 또한 3월부터 본격적인 시즌을 시작하는 가운데 베토벤 탄생 250주년, 타르티니 서거 250주기을 기념한 공연을 주요 자리에 배치했다. 오는 4월부터 12월까지 격월로 매주 마지막 토요일 오후에 '해설이 있는 음악회 토요 스테이지'를 통해 두 작곡가를 조명할 예정이다. 특히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는 베토벤과 타르티니를 주제로 한 공연과 강연, 토크 콘서트를 갖는다.타르티니는 비발디와 함께 바로크 시기 2대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힌다. 뛰어난 음악 이론가이기도 했던 타르티니는 작곡가로서 수백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를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이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이다. 이 작품에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1713년 어느 날 밤, 꿈속에서 타르티니는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타르티니의 영혼을 사는 대신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타르티니가 바이올린을 건네자 악마는 황홀할 정도의 트릴(떤꾸밈음이라고도 하며, 악보에 쓰인 음과 그 2도 위의 음의 빠른 연속적인 반복으로 이루어짐)이 있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다. 잠에서 깬 타르티니는 기억을 더듬어 악마가 연주한 선율을 악보에 기록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악마의 트릴'이다. 작품 발표 후 타르티니의 왼손가락이 여섯 개였기 때문에, '악마의 트릴'을 연주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타르티니의 초인적인 기교와 작품의 탄생 일화가 만나 생겨난 가십으로 치부할 수 있다.이 같은 가십은 비르투오소(virtuoso) 연주자들에 종종 따라 붙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악마의 연관 관계의 대표격은 타르티니의 후배인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파가니니는 2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다. 파가니니의 예술과 사랑을 다룬 영화의 제목 또한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2013년)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3)모더니즘 Ⅱ]극한의 객관성으로 진화한 `음렬음악`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3)모더니즘 Ⅱ]극한의 객관성으로 진화한 '음렬음악'

전쟁후 쇤베르크 미학 강화…향후 음색음악은 음결합 치중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음악계도 폐허로 만들었다. 나치는 유대인 음악가들을 탄압했으며, 자신들의 정책에 부응하는 음악만을 인정했다. 실험적이거나 사회주의적 이념을 표방한 작품은 탄압 대상이었다. 1945년 전쟁 후 작곡가들의 관심은 나치 독재로 인해 중단된 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쏠렸다. 계승 대상은 여럿이었지만, 주된 흐름은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음렬음악)이었다. 독일 다름슈타트는 이러한 흐름의 진원지였다. 1951년 다름슈타트의 현대음악연구소 여름 강좌에서 음렬음악의 대표주자였던 피에르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강연을 했다. 쇤베르크의 작곡사상과 단절을 공표하는 강연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절이라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진실'을 일깨워야 한다"는 쇤베르크의 미학을 한층 강화한 것이었다. 쇤베르크의 음렬이 음의 높고 낮음만을 계열화했다면, 불레즈를 비롯한 음렬음악 작곡가들은 음의 길이와 강약, 음을 두드리는 방식(어택), 음렬을 택하는 순서까지 계열화해 작곡했다. 이를 통해 작곡가의 감성이나 주관이 요즘 말로 단 '1'도 끼어들 수 없는 '극한의 객관성'으로 무장된 음악을 창안했다. 그 결과물들은 혼란스럽고 우연한 소리의 집합으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전쟁 후 혼란한 시대상과 그러한 환경에 놓인 개개인의 상황을 일깨운다. 불레즈의 '구조들 Ⅰa'는 이 같은 시도의 첫 작품이자 대표작이다.1960년대 나타나는 '음색(音色)음악'은 음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전체적인 효과(음렬음악은 한 음 한 음에 집중)에 치중한 음악이었다. 폴란드 태생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는 27세에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를 발표했다. 우리에겐 광복을 안긴 사건이었지만,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의 종결을 알린 비인간적인 사건을 소재로 택한 작품이었다. 52개의 현악기로 9분 동안 연주되는 이 작품에선 피아노 건반을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보다 더한 불협화음을 낸다. 반음을 다시 반으로 쪼개 4분의 1음으로 나뉜 음들을 악기들이 한꺼번에 소리내기 때문이다. 작품은 사이렌 소리, 음산한 비행음, 원자폭탄 투하 직후의 섬광을 그려내는 듯한 강렬한 음향, 사람들의 울부짖음, 악기의 몸통을 때리면서 야기되는 부산스런 소음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은 리게티의 '대기'와 함께 음색음악의 대표작이며, 윤이상의 음악과 함께 모더니즘 음악의 후반부를 찬란히 장식하는 작품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2)모더니즘Ⅰ]불협화음 내세운 `12음 기법의 탄생`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2)모더니즘Ⅰ]불협화음 내세운 '12음 기법의 탄생'

쇤베르크, 상투적 조성음악 거부진실 추구위해 불안·긴장 등 표현 "독일 음악이 앞으로 200년의 주도권을 확보했다."20세기 초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조성(調聲) 음악을 대체할 '12음 기법'을 창안하고 나서 이같이 말했다. 서양음악사에서 바흐의 '평균율'로 주도권을 쥐었던 독일 음악이 자신의 12음 기법으로 인해, 다시 서양음악의 근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찬 발언이었다. 열두 개의 반음으로 만든 음렬(音列)을 근거로 한 작곡법인 '12음 기법'은 조성과 무관할 수 있으며, 악곡을 통일시키는 선율적 근거도 얻을 수 있었다. 쇤베르크는 왜 조성과 결별을 택했을까?1900년을 전후한 오스트리아 빈에는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을 중심으로 한 '제2 빈 악파'(제1 빈 악파는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와 '빈 왈츠'가 공존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한 작곡가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작곡가로 나뉜 것이다. 왈츠와 희가극인 오페레타를 작곡한 음악가들과 달리 쇤베르크와 그를 따르는 작곡가들은 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해 주는 작업을 해 나갔다. 기존의 상투적인(조성) 어법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거부한 쇤베르크는 조성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을 구축할 원리를 찾아냈다. '12음 기법'이 조성을 대체하면서 이전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불협화음들이 작품 전면에 나타났다.쇤베르크의 음악적 표현은 이전 시기 작곡가들이 즐겨 택했던 사랑과 기쁨, 슬픔이 아니었다. '기대, Op 17'(1908년)이나 '달에 홀린 피에로, Op 21'(1912년)에서 보듯 불협화음을 통한 불안, 긴장, 두려움, 내적 갈등, 충동 등이었다. 당시 쇤베르크는 "예술은 장식이어선 안 된다. '진실(Wahrheit)'이어야 한다"라는 유명한 논제를 남겼다.음악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과 사회학, 미학 등 광범위한 연구활동을 한 20세기 독일의 사상가 테오도르 W. 아도르노 또한 "청중의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선율은 자체의 비판력을 상실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불협화음은 유희·순응적 태도를 부정함으로써 '진실'에 다가서게 한다"는 견해를 더했다. 쇤베르크로부터 시작되는 모더니즘 음악들은 클래식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작곡가의 초기작으로, 조성과 결별하기 전 작품인 '정화된 밤, Op 4'(1899년)로 친숙해져 보자. 이어서 투철한 작가 의식을 앞세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 위대한 산물들을 접하면 좋을 듯싶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1)영화와 음악]클래식 가장 잘 활용한 `스탠리 큐브릭`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1)영화와 음악]클래식 가장 잘 활용한 '스탠리 큐브릭'

대표 작품 '스페이스 오디세이'라이브 시네마 콘서트 이어져 배경 음악과 음향 효과 없는 영화와 드라마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집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음량을 최대한 줄이고 시청해 본 적이 있는가.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그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3D와 가상현실(VR) 등 현란한 시각 효과 속에서도 이와 어우러지는 음악은 한결같은 품위로 우리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는 클래식 음악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로 꼽힌다. 영화는 클래식과 영상의 이상적인 결합을 통해 대담하면서도 완벽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 성과에 힘입어 영화의 '라이브 시네마 콘서트'가 제작돼 2010년 런던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세계 30여 도시에서 선을 보였다.우리나라에선 2017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국립합창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콘서트는 2시간40분여 동안 진행되는 영화 전편을 상영하면서 대사와 음향은 그대로 들려주고, 음악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됐다.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는 영화팬과 음악팬 모두에게 강력한 충격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준다.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50여 종의 유인원 중 하나가 동물의 뼈를 몽둥이(무기)로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순간이 슬로모션으로 처리될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도입이 흘러나온다.영화와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아서 C 클라크 작)은 치밀한 과학적 지식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해부했다.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상황은 일종의 윤회사상으로 풀어냈다.이에 비춰 볼 때 큐브릭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설파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테마를 영화와 연결하려 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선택된 음악에 대한 필연성도 부여된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외에도 리게티의 '대기'와 '레퀴엠', 하차투리안의 발레 음악 '가이누',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을 사용했다.음악의 자극(에너지)을 자신의 영상 연출에 반영한 큐브릭은 음악과 완벽히 결합한 걸작을 만들어 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0)왈츠]80회째 오스트리아 새해를 여는 `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0)왈츠]80회째 오스트리아 새해를 여는 '흥'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장식정치서 국민 관심 돌리던 역할 올해 첫날도 어김없이 오스트리아 빈은 왈츠의 열기로 휩싸였다. 누구나 알고 공감하면서 즐길 수 있는 대표 클래식 이벤트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PO) 신년 음악회'가 지난 1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렸다. 레퍼토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등이 작곡한 왈츠와 폴카 등으로 구성됐다. 지휘는 라트비아 출신의 안드리스 넬슨스가 맡았다. 41세의 넬슨스는 보스턴 심포니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의 지휘자이다. 우리나라에선 같은 날 오후 7시 전국의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생중계됐다.'WPO 신년 음악회'의 시초는 1939년 12월 31일 정오에 열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회'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클레멘스 클라우스가 지휘하는 WPO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레퍼토리를 꾸몄다. 오페레타 '박쥐' 서곡을 비롯해 '아침의 꽃잎', '황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의 왈츠로 구성됐다. 이듬해에도 송년 음악회로 개최된 이 음악회는 이튿날인 1941년 1월 1일 오전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됐다. 이때부터 'WPO 신년 음악회'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첫 날에 거르지 않고 개최된 '신년 음악회'는 올해로 80회째를 맞았다.'신년 음악회'는 빈의 전통에 기반한 왈츠의 흥겨운 멜로디를 새해 선물로 선사해 더 많은 음악팬과 가까워지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고난 속에서 국민에게 음악을 통한 위안을 주고 복잡해진 정치 문제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빈의 왈츠는 이전에도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800년을 전후해 유럽을 지배했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유독 오스트리아에는 폭넓게 전파되지 못했다. 왈츠의 매력에 빠져 무도회장을 찾으며 분위기에 취해 있는 국민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이뤄졌던 왕정 타도 물결이 오스트리아는 비켜갔다는 것이다.이젠 이런 역사를 기억하며 '신년 음악회'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수억 명의 음악팬들은 세계로 전송되는 고화질 화면을 통해 음악적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취하고 있다. 올해 '신년 음악회'에선 공연 전과 휴식 시간 등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과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맞춘 홍보 영상이 상영됐다. 클래식 음악의 열기가 1년 내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9)합창교향곡]인류애 메시지 담아낸 클래식 대명사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39)합창교향곡]인류애 메시지 담아낸 클래식 대명사

청력 잃은 베토벤 초연무대 지휘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 영향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9번 '합창'은 클래식의 대명사격이다. 초연 이후 약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청자들을 매료시키는 메인 테마가 강렬하다. 5번에서 운명을 극복한 성취는 마지막 교향곡 9번에서 혼돈과 반목을 극복한 인류애의 메시지로 승화한다.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자신의 지휘로 1824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교향곡 9번을 대중 앞에 선보였다.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은 지휘자로 참여한 앞선 공연들에서 연주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아닌지에 신경을 쓰다가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이는 커다란 혼란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주위에선 지휘를 만류했지만, 베토벤은 9번의 초연 무대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그로 인해, 포디엄(지휘대)엔 베토벤이 서지만, 단원들은 무대 한쪽에 숨어있는 또 한 사람의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프의 지시에 따라 연주를 했다. 당시 초연에 참여했던 한 합창단원은 "베토벤이 연주에 맞춰 악보를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한 악장이 끝났는데도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고 증언하는 등 베토벤의 지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연주회는 성공적이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새로운 교향곡의 출현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작곡가의 창조적 열정과 비감에 찬 우수의 세계가 표출되는 1악장, 비감에 찬 세계를 헤쳐나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저지되는 2악장, 세상의 조화를 그린 3악장에 이어 4악장에선 앞서 제시된 세계와 장애가 회상처럼 지나간 후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와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새로운 사회를 그려낸다. 이 작품으로 인해 '교향곡'은 인류애를 노래하는 거대한 표현 수단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 이는 교향곡을 통해 하나의 우주를 구현하려 한 말러 등 후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메시지의 강렬함으로 인해 교향곡 9번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에 연주되는 등 정치적 목적이 결부된 이벤트에도 자주 선을 보였다. 또한 유럽의 일부 지역과 아시아의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도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은 네 명의 독창진과 130명 규모의 연합합창단과 함께 27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 작품을 연주한다.교향곡 9번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2020년엔 보다 다양한 그의 작품들과 친해져 보는 건 어떨까.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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