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불안심리가 경제활성화의 주적(主敵)

[경인칼럼]불안심리가 경제활성화의 주적(主敵)

작년 취업자 증가, 9년 만에 가장 저조해단기부동자금 1117조… 10년간 40% 증가외환위기 후 안전자산 선호지수 더 높아져선순환 담보 안된 정책 '언 발에 오줌누기'지난해 경제실적이 별로이다. 9일 발표한 통계청의 '2018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증가가 9만7천명에 그쳐 9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낸 것이다. 실업자수는 전년보다 5만명이 증가한 107만명으로 2000년 이후 가장 많다. 현 정부의 '일자리정부' 타령이 민망하다.올해 경제성적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경제는 사람들의 심리를 먹고 크는 법인데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천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19년 경제전망을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70%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24일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확인되었다. 극히 일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확신은 금물이나 대다수 서민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정부는 금년 상반기 중에 일자리 및 사회간접자본 예산 61%를 쏟아부어 경기를 진작시키기로 했다. 2003년 카드 사태를 계기로 도입한 조기집행 중 가장 규모가 크나 재정의 경기진작 효과가 갈수록 떨어져 성과는 의문이다.주목되는 것은 넘쳐나는 국내의 부동자금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MMDA) 등 단기부동자금이 무려 1천117조원에 이른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2009년의 800조원에서 10년 만에 무려 40%나 불어난 것이다. 작년 하반기만 해도 8월 대비 3개월 만에 부동자금이 28조원이나 증가했다. 넘쳐나는 국내 부동자금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 정답이나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유발한 통설적 견해는 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대미무역 흑자국인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을 압박해서 해당국가의 통화가치를 10% 이상 끌어올리도록 한 플라자협정을 든다. 이후 엔화 환율이 상승하고 금리가 하락하자 해외자금들이 일본에 대량 유입되어 주가와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버블경제가 초래되었지만 일본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장기경제부진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 브린튼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일본연구소 소장과 일본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야마기시 토시오(山岸俊男) 교수는 공저한 '위험에 등을 돌린 일본'(2010)에서 일본인들의 지나친 위험회피 성향이 '잃어버린 20년'의 근본원인이라 지적했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조사대상 일본인의 73%가 자신이 위험기피자라 응답했다. 버블붕괴는 일본인들의 위험회피지수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은행이자율이 0%에 가깝지만 주식으로 원금을 까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돈이 은행으로만 몰린다. 배당과 주식자본 이익에 대한 세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음에도 가구총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다.국내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현상들이 간취되는데 1997년 외환위기가 결정적이다.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낭패했음은 물론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은행들마저 줄줄이 폐업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격이니 종신고용시스템의 붕괴와 고령화는 한국인들의 안전자산 선호지수를 더욱 높였다. 부동자금 탓에 부동산투기가 만연하는 등 국민경제는 더 불안해졌다.임상심리학자 주디스 바드윅의 미국 장기경제부진에 대한 진단도 눈여겨볼만하다. 1947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연간 GDP성장률은 3.5%였지만 2002년 이후 이 숫자는 1.9%로 떨어졌다. 오바마정부와 진보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저성장의 시대를 '뉴 노멀'이라 명명하고 그 원인을 인구구조 변화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바드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 장기호황으로 미국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업이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에 안주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자금 선순환이 담보되지 않는 경제활성화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법이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경인칼럼]사회개혁은 정치개혁에서 출발해야

[경인칼럼]사회개혁은 정치개혁에서 출발해야

국민들 국회의원수 늘리는데 부정적 입장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변화 인식 낮아기득권동맹 방치땐 지속가능한 발전 불가능선거제 획기적 개혁만이 한국 바꿀 수 있어 올해 정치의 키워드는 내년 총선과 한반도 평화 의제, 경제 등이다. 여권으로서는 경제지표의 개선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위기는 깊어질 수 있다.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위기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일 수 있다. 지지율이 반등 국면으로 가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개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변화는 정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의 작동구조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재 권력도 결국은 기존의 정치문법에 따라 움직인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불편하지만 현실을 보는 인식과 사고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시각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결 구도는 정치부재를 가속화하는 구조적이며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정치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 한국사회가 보다 진전된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반정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적대와 대립에 입각한 지지층 결집이라는 아날로그식의 정치의 생존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정당의 생성과 존재양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선거제도의 혁신으로 귀착된다. 국민들은 선거제도 개혁엔 동의하지만 국회의원 증원에는 부정적이다.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대체로 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 때문이다. 이 제도는 불가피하게 국회의원 정수의 확대를 동반한다. 정치에 대한 무한불신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은 의원 정수 확대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에게 소요되는 예산을 동결하기 위하여 의원 1인당 경비를 줄인다고 해도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기득권 동맹의 공고화를 방치한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시대지만 절차적 차원의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진화는 요원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방관하고 일자리와 고용만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수구야당의 태도는 반시대적이다.소수와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가 정당체제 내에서 반영되지 않는 지금의 구도에서 사회적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실질적으로 가능한가. 연동형 비례제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떠한 제도도 완벽하게 순기능적인 제도는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 때 주권자의 일반 의지를 담보했던 시민들의 요구와 주장은 현행 정당구도에서 수렴되거나 반영될 수 없다. 시민사회의 균열과 갈등이 조직화되지 않는다면 정당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서구의 부르주아 혁명을 가능케 했던 동인은 16~18세기에 발흥한 신흥 상공업 계급의 이해를 직접 정치영역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부르주아지들은 노동계급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체제를 타파하고 기본권의 보호와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소외된 프롤레타리아도 그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영역에서 대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 보통선거다. 이러한 선거권의 확대가 바로 민주주의의 역사다. 정당은 PART라는 어원에서 보듯이 부분을 대표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어느 계층도 대표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는 대표성·책임성· 참여성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어떠한 원리와도 친화적이지 않다.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정치영역에서 대표되지 않는 계층의 이해는 관철될 수 없다. 유치원 3법은 결국 말뿐인 패스트 트랙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1년의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여야 합의가 없다면 2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민생은 결국 정치영역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소수와 약자들의 이익은 대표되지 않을 것이다. 선거제도의 획기적 개혁만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경인칼럼]문재인 정부도 역사의 한 줄기일 뿐이다

[경인칼럼]문재인 정부도 역사의 한 줄기일 뿐이다

국민은 정권 교체해 가며 산업·민주화 성취특정집단 완벽한 역사 쓰려 조바심 칠일 아냐정부·집권여당, 겸손해지려고 노력 한다면 새해에는 사회의 많은 갈등 해소될 수 있어기해년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덕담을 나누고 새해 각오를 다지는 각계의 신년사는 풍성하다. 덕담과 신년사의 각오가 실현된다면 대한민국은 2019년 한해에 역사에 없었던 천국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꿈과 희망은 장황해진다.1월 1일은 2018년 12월 31일의 연장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기해년을 맞아 갑자기 달라질 리 없다. 지난해 마지막 날 국회 운영위가 그 증거다. 청와대 특감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말했다. 국민 눈에는 국적이 다른 외국인들의 시비로 보였을 것이다. 장담하지만 말이 안통하는 외국어 정치는 새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황금돼지의 해라고 하지만 밑천 없는 장사는 없는 법이다. 2019년 경제의 밑천은 2018년의 경제다. 밑천만 보면 올해 경제전망은 불온(不溫)하다. 세계 경기의 하강국면이 예사롭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결과가 어디에 미칠지 안 가본 길을 가야하는 두려움이 크다. 작년의 자동차, 철강산업 쇠퇴가 올해 반도체로 이어지면 대한민국 주력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다. 황금돼지의 기운에 편승한 낙관은 막연하다.정치는 막장이고 경제는 어려우니 새해는 글렀다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그저 어떻게든 살아날 구석을 만들어 버틴 거지." 지난 연말에 만난 한 기업인의 얘기다. 1990년대에 제조업을 시작해 IMF환란, 세계금융대란 등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남은 사업가다. 그의 말대로 국민은 위기가 닥치면 모든 생존 수단을 동원해 살 길을 뚫어왔다. 이것이 현대사다. 대한민국은 위기와 극복의 무한궤도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적립해왔다.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민이 적립한 일상의 누적이자 역대 정권이 분담했던 역사적 역할의 총합이다.면면히 흐르는 역사의 강(江)에서 문재인 정권도 지류이자 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역사의 본류를 자임하고 전체임을 자처하면서 감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감당하고 있다. 고난의 원인은 정권의 자부심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자신들의 지고지순한 DNA를 강조한다. 초월적인 도덕성과 순수성에 기반한 정권의 국정운영에 오류는 없다는 태도는 너무 완강해 강박에 가깝다.무오류 정권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 소득주도성장, 원전 폐지 등이 그랬다. 북한 비핵화를 명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요청도, 원전산업 붕괴 우려도 사소한 시비나 불순한 의도일 뿐이다. 대변인은 문재인 정권은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단정했다. 여당 의원에게 조국은 '유전자 가위'고 김태우는 '불량 유전자'다. 대통령은 강력한 '경제실패 프레임'으로 정부의 경제적 성과가 빛을 잃는다고 답답해 한다. 야당의 비판은 적폐의 대변이고, 언론의 지적은 순결한 정권을 향한 저격일 뿐이다.정권이 스스로 완벽을 자처할수록 작은 상처에 휘청인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 그러나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상대적 우월감을 절대적 선으로 착각하면 실수를 교정하고 방향을 전환하기 힘들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민중으로부터 사랑받지 않아도 좋지만 원망받지는 말아야 한다"며 "시민들이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만 해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야당의 사찰의혹에 대해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대통령을 떠난 민심이 만들어낼 호랑이는 얼마나 무서울 것인가.역사의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은 정권을 바꿔가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현대사의 본류를 이루어 왔다. 남북관계나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정권을 바꾸어 가며 긴호흡으로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특정 정권이 완벽한 역사를 만들겠다고 조바심 칠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과 집권여당이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지면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그래야 2019년 한해가 역사에 의미있게 보태질 것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경인칼럼]교착국면과 남북 교류협력

[경인칼럼]교착국면과 남북 교류협력

상호주의 원칙따라 평등한 분야부터 추진'분단 70년' 차이 극복위한 양측 노력 필요지식재산권 보호등 관련법·제도 우선 정비문화예술·스포츠·학술교류 활발히 이뤄져야눈앞에 다가온 듯했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이다. '선 비핵화'를 내세우는 미국과 '동시적 상응조치'를 내세우고 있는 북한 간의 줄다리기가 몇 달째 팽팽하다. 대화 기조와 유화적 제스처는 유지되고 있을 뿐 교착 타개의 책임은 상대편에 서로 떠넘기는 상황이다. 지루한 교착국면에서 초조한 것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비핵화를 선언한 북한이다. 파부침선(破釜沈船) 했지만 강화된 경제 제재로 성과를 낼 수 없게 되었으니 딜레마인 것이다.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의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미국은 남북 협상에 제동을 걸고, 북한은 미국 눈치만 본다고 불만이다.북미협상의 교착상태는 처음이 아니다. 제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격렬한 상호비방을 주고받았으며 싱가포르선언 이후에도 상당기간 답보상태였다.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의 교착 상태를 여러 차례 해결해 왔듯이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북미 간의 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중재를 해나가야 한다. 북한이 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와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평화협정이고 이를 위한 실질적 협상의 신속한 진전이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기존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북한은 적대행위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핵 폐기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합의와 실천으로 신뢰를 쌓고 큰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미국은 우리 정부에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제재와 무관한 남북이 교류협력 사업에 오히려 속도를 내는 것이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촉진하고 속도감을 부여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이 길어지면서 협상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공존한다. 최악의 경우 2017년의 위기상황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비핵화 협상에서 속도는 중요하다. 이미 임기의 반환점을 지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며, 임기 내에 정치적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경우 비핵화 협상은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합의한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지원사업의 운명처럼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전철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남북이 추진하고 있는 육로와 철도, 항공로의 연결은 통일한국을 위한 기초 사회적 자본이다. 이 사업은 남북한의 공동번영을 위한 투자이면서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불가역적임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며, 동맹국들에게 적극적 협상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재국면에도 가능한 교류협력 사업을 발굴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교류는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며 비교적 평등한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이 상호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다. 언어와 민속과 같은 문화적 차이는 물론 경제 제도와 생활, 행정, 교육, 법률 등 사회 제도의 이질감이 크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남북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류와 협력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남북한의 교류 협력이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관련법을 비롯한 제도가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지식과 정보의 교류 촉진을 위해서는 지적 재산권이 남북한에서 동시에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포츠와 문화예술 및 학술 교류는 언제든 가능한 사업이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은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단일민족임을 천명하고, 남북 화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문화예술행사를 통한 문화예술작품과 문화예술인의 교류는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 파급력이 크므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또 학술교류도 남북한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중단되지 않고 추진돼온 사업이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경인칼럼]우측통행은 약속이다

[경인칼럼]우측통행은 약속이다

횡단보도 '우측통행' 2010년 7월부터 시행8년 지났지만 여전히 뒤섞여 '무질서 보행'사회가 필요로 한 규칙 지켜져야 삶도 지속오늘도 걱정스러운 그 길 불안하게 걷는다좌측통행은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보행방식이었다. 1998년 영국에서 로마제국의 채석장을 발견했는데 도로의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꺼져있었다. 반출하는 돌의 하중이 길 왼쪽에 집중된 결과라고 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인류의 85∼90%는 오른손잡이다. 중세 봉건시대라고 다를 리 없었겠다. 오른손잡이 기사(knight)는 몸의 왼쪽에 칼집을 찬다. 말 등에 오를 때에도 왼쪽이 훨씬 편하다. 오른쪽에서 오르려면 긴 칼집이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말안장에 앉아서도 적의 왼쪽에 서야 오른손으로 잡은 칼을 최단거리에서 휘둘러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에도시대 일본의 사무라이들 역시 좁은 길에서 자존심의 상징인 칼이 서로 부딪치는 걸 피하려면 칼집이 최대한 멀리 거리를 두게 되는 통행방식을 택해야 했다.인류의 3분의 2가 우측통행을 하게 된 것은 겨우 250년 전부터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와 미국에서 여러 필의 말이 끄는 커다란 마차가 농작물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 대형마차엔 마부(teamster)가 앉는 자리가 따로 없었다. 마부들은 왼쪽 뒤편의 말에 올라탔다. 왼손으로 말고삐를 말아 쥐고 오른손에 쥔 채찍으로 말들을 조종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였다. 그 위치에서 맞은편 달려오는 마차의 바퀴와 내 마차바퀴가 충돌하는 '치명적 교통사고'를 피하려면 눈으로 직접 바퀴 사이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우측통행이 해결책이었다. 마침내 179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가 우측통행을 법으로 정했다. 프랑스에선 1789년 대혁명이 우측통행의 일대 계기가 됐다. 전통적으로 귀족은 길의 왼쪽, 평민은 오른쪽을 이용했다. 하지만 바스티유 감옥이 불타고 대혁명의 파고가 날로 높아지자 위협을 느낀 귀족들이 스스로 몸을 낮췄다. 평민들의 무리에 섞여 오른쪽으로 통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나폴레옹의 무력도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 프랑스식 우측통행을 이식하는데 큰 몫을 했다.우리는 어땠나. 1960년대 후반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하는 노래를 배웠다. 학교 복도에서, 횡단보도에서, 큰 길에서, 심지어 역전광장에서도 모두들 왼쪽으로 걸었다. 내 등 뒤에서 화물을 산더미처럼 실은 트럭이 덮칠 듯 달려와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제와 미군정의 잔재가 겹치면서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다니는 국가 중 유일하게 사람은 왼쪽으로 다니는 나라의 국민이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그러던 중 1994년 3월 경찰청이 자동차와 보행자 모두 우측통행을 하자며 캠페인을 벌였다. 특히 횡단보도에서는 우측통행을 해야 정지선을 넘는 차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횡단보도에 늘어선 핫팬츠 차림의 미녀들이 피켓을 높이 들고 우측통행을 외쳤다. 15년 뒤인 2009년 10월 1일 비로소 법 개정을 통해 우측통행이 명문화되고, 이듬해 7월 1일 전면시행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길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있다. 제한된 폭의 보행로에 왼쪽으로 걷는 사람, 오른쪽으로 걷는 이들이 마구 뒤섞인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채 걷는 '스몸비(smombie)'까지 합류하면 무질서는 가히 절정이다. 손에 든 가방들이 부딪치고, 어깨들이 부딪치고, 저러다 싸움 나지 걱정스러운 상황까지 발생한다. 실제로 올봄 포항에선 길 가다 어깨를 부딪치는, 이른바 '어깨빵' 시비 끝에 30대 행인이 무참하게 폭행당해 숨지는 일까지 있었다. 유사한 일들이 잦다. 물론 제각기 편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다 보면 저절로 최적의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측통행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시행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도 보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토록 어지러운 보행로를 이대로 내버려두어야 할까. 좌측통행이든 우측통행이든 그때 그 사회가 필요로 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런 약속들이 지켜져야 인류의 삶도 지속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그 길을 불안한 시선으로 걷는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경인칼럼]끓는 물속의 개구리

[경인칼럼]끓는 물속의 개구리

전쟁 폐허서 '한강의 기적' 만든 한국인도전 엔진 멈추고 계산적 사업가만 넘쳐정당정치에 이데올로기 대신 도덕적 해이좌면우고의 '황금돼지 해' 되길 기대한다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의 돌연 사퇴 발표가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두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외 62개 계열사의 자산총액이 10조8천400억원이며 매출액 9조740억원에 당기순이익 570억원의 창업 3대 대물림 재벌인데다 이 회장은 1996년에 총수직에 오른 이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도록 큰 무리 없이 경영을 해온 때문이다.특히 그가 20년 동안 공을 들여온 세계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가 결실을 맺고 있어 더 의아하다. 인보사는 지난해 국내 허가획득 이후 중국, 홍콩,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에 제품 수출은 물론 지난달에는 글로벌 제약사인 먼디파마와 6천677억원의 기술수출 계약까지 체결했다. 4대강 사업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개연성이 큰 데다 고(故) 장자연 사건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회장직 퇴임사에 주목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도 흉이 될 것이 없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금수저를 내던지고 새로 창업에 도전하겠다니 말이다. 어떤 사업을, 어떻게 시작할지가 관건이나 만일 창업에 성공한다면 그는 국내 최고의 늦깎이 창업기업가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늦은 나이에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는 고(故) 조홍제인데 그는 56세에 사업에 착수해서 효성그룹을 완성했다. 1996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잉크' 편집장이 경영학의 큰 스승인 피터 드러커에게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다. 드러커 교수는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이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어떤 산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각국은 산업혁명 이후 200년 만에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한국인의 성공신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도전 엔진이 멈춰버렸다. 시간이 아깝다며 햄버거로 한 끼를 때우고 밤을 낮 삼아 세계시장을 누비던 경영자들 대신 꿀단지만 지키려는 계산적인 사업가들만 수두룩하다. 2015년 KBS 방송문화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는 한국경제가 역동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공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경기침체 극복과 경제활성화가 한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지목했다. 한 나라의 경제역동성을 측정하는 보편적 도구는 '기업교체율'이다. 전체 기업수에서 신생기업과 퇴출기업이 각각 차지하는 비율로 수치가 높을수록 역동적이다. 2015년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 국내 제조업의 기업교체율은 2002년 30%에서 2011년에는 19%로 하락했다. 과거에는 10대 기업의 80%가 새로운 기업으로 교체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는 10대 재벌 순위가 거의 불변이다. 경제성장률은 1960~70년대의 연평균 7% 이상에서 최근 5년 동안에는 3% 미만으로 반 토막 났다.기업가정신지수도 1976년의 150에서 2013년에는 66으로 급락했다. 2016년말 세계 기업가정신 발전기구(GEDI)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34개국 중 23위로 중하위 수준이다. 일본은 25위를 기록했다. 기업가정신이란 기업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기회에 도전하는 혁신행동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기업가들의 모험정신이 쇠퇴한다며 자본주의의 장래를 우려했었다. 그러나 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배 이상인 미국의 경우 최근 경제성장률이 우리나라를 능가했을 뿐 아니라 기업가정신지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권자들의 표만 의식한 역대 국내 정부들의 천편일률적인 '좌향좌' 지속에 기인한 바 크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개발독재와 정경유착 때문이나 결과적으로 국내 정당정치에는 이데올로기 대신 도덕적 해이가 자리 잡았으며 5천만 국민 모두는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13년에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회원국 중에서 가장 빠르게 둔화되는바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 후반에는 0%대로 추락할 것이라 경고했다. 좌면우고(左眄右顧)의 '황금돼지 해'를 기대한다./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경인칼럼]지지율 하락의 함의

[경인칼럼]지지율 하락의 함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자영업자들 어려움상·하위 소득격차 더 벌어져 양극화 심각개혁 지체로 진보진영과의 대립구도 형성공직기강 해이 등… 대처 안하면 반전 없어내년엔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의 통합과 연대 등 정당구도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개혁지향적 정당재편성을 결과할지, 보수·진보 양 극단의 전통적 지지층 결집을 통한 거대양당의 카르텔 체제로 귀결될지 알 수 없다. 정당재정렬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국회가 민심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20대 여소야대 국회는 촛불민심과 친화적이지 않다. 문재인 집권 1년 7개월이 지났으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 의한 사법처리를 제외하고 사회구조적 혁신을 펼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한국정당체제는 집권당이 의석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여소야대 현상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는 대통령과 의회의 충돌로 인한 국정 교착을 야기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타개할 합의의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정당문화는 이를 더욱 강화시킨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야당들의 지지율 정체에 안주하여 개혁과 협치에 소극적이다. 임기 초 80%를 넘던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연 9주째 하락세다. 특기할 현상은 특정 계층, 지역에서는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민주당의 지지율을 앞서고,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높게 나오는 세대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긍정과 부정 평가가 수렴한다는 사실은 집권 2년 차 시점에서 총체적인 국정 로드맵을 재설정하라는 강력한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대 정권의 경우 집권 측에 대한 피로감과 집권세력의 안이함 등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적신호를 간과한 결과는 임기 말 극심한 레임덕 현상이다. 국정 난조를 거쳐 임기 말 권력누수로 이어지는 한국정치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지율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보수적 관점에서는 일자리와 투자, 고용 등의 거시지표의 악화와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는다. 다른 관점의 분석도 가능하다. 통계청 발표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과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력 집중 완화 등의 정책 부재, 최저임금의 산입범위와 탄력근로제 확대 등 개혁 지체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진보진영과의 대립구도는 화물연대의 파업 등에 대처하지 못했던 노무현 정부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같지 않지만 집권 후 국정운영에서 마주하는 현실적 딜레마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보수·진보 양쪽으로부터 협공받는 구도는 지지율의 하락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경남·부산 지역 등 전통적 야권 강세 지역의 표심도 집권 초와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수구적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며 반격을 모색하고 있다. 촛불세력 대 촛불정부의 대립구도마저 읽힌다. 청와대와 공직 기강의 해이 등 정권의 위기가 의외로 빨리 오고 있다. 이러한 경고음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반전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핵심은 촛불이 지향했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를 제도화할 수 있는 동력의 상실이다. 경제 난맥 상황에서 개혁 의제가 추동되기 어렵고 지지율마저 난조를 보이고 청와대 기강 해이마저 노출된다면 마치 임기 말의 레임덕을 보는 것 같은 착시도 생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제도화하고 조직화함으로써 사회적 균열을 드러내고 이를 조율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사심 없이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면 경제도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집권세력 내의 친문이니 비문 등의 권력분화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역사엔 항상 반동과 수구가 있다. 새로운 '반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반격의 일격을 노리는 수구세력의 정치사회적 퇴행이 명분과 전의를 상실하게 하려면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공학도 그때 생각해 볼 일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경인칼럼]시대정신을 상실한 권력은 추악하다

[경인칼럼]시대정신을 상실한 권력은 추악하다

박정희의 '산업화'와 김대중의 '민주화'특별한 시공간 견인했던 남달랐던 리더십한국당 권력투쟁·여권 차기대권 예비 암투진로 잃은 '맹목적 정치' 대한민국 위기 본질현재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우리 현대사에 뚜렷했던 대립적인 시대정신에 기원을 두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다. 보수 정당은 산업화를 통해 이룬 경제적 성취를 성장판 삼아 오늘에 이르렀다. 진보 정당은 민주화 과정에서 획득한 우월적 도덕성에 발을 딛고 있다.산업화 시대의 주역은 박정희다. 그는 정변을 통해 장악한 독재권력으로 경제건설에 전력을 쏟았다. 집권 당시의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정권의 슬로건은 '조국 근대화'였다. 말 장난일지 모르나, 당시 한국 경제는 당대의 현대화를 꿈 꾸기엔 근대화 수준에도 한참 모자랐다. 전부 맨땅에서 시작했다. 머리카락 부터 시작해 돈이 될만한 건 모조리 내다 팔았다. 무역의 시작이었다. 고속도로를 깔고 제철소를 짓고 조선소를 세웠다. 제조업의 출발이었다. 모든 일이 최초의 시도였다. 경제부흥의 신화와 에피소드는 바로 그 '최초'에서 잉태되고 탄생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유보했다. "민주주의도 경제건설의 토양 위에서만 자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말대로 됐다.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욕망을 키웠다. 그 욕망이 분출하는 순간 그의 하수인은 그에게 권총을 발사했다.민주화 시대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김대중(DJ)은 어떤가. 그는 박정희가 유보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저항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결코 유보할 수 없는 가치였다. 목숨을 걸고 국가 권력 전체와 맞섰다. 현해탄에 수장될 뻔 했고, 망명의 설움을 삼켜야 했다. 박정희 사후 우여곡절을 거쳐 대통령이 된 DJ는 IMF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이라면 진보세력이 질색할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획득한 국민적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국제적인 리더십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아 국격을 높였다.대한민국의 오늘을 낳은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는 특별한 시공간이다. 그 시대를 견인한 '특별했던 리더십'은 존중받아야 한다. 진보진영은 박정희의 말대로 그의 무덤에 침을 뱉는다. 일본군 다카기 마사오의 흔적을 저주하고, 일본의 배상금과 월남전 목숨값을 이유로 산업화를 조롱한다. 그래도 박정희의 산업화 업적을 다 덮지 못한다.보수진영은 DJ를 진보진영의 사회주의적 경향의 원조로 평가절하한다. DJ로 부터 시작된 햇볕정책의 폐해만을 주목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조차도 DJ가 목숨 걸고 지켜낸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자금 수수, 가족비리와 같은 흠결에도 DJ의 민주화 업적은 꿋꿋하다.역사적 시대를 견인했던 의미심장한 리더십이 사라진 지금, 그 시대가 남긴 업적은 무너지고 유훈은 희미해졌다. 대신 적폐와 길 잃은 리더십만 남았다.보수세력이 먼저 무너졌다. 권력 내부의 민주화를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권위를 떠받들다 무너졌다. 산업화 시대의 계승자로서 그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만 물려받았다. 박정희의 시대정신은 까먹고 그 시대의 적폐만 남겼다. 적폐만 남은 폐허에서 의미없는 내부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으니 처연하다.진보진영은 새로운 적폐를 쌓아가는 중이다. 민주화 시대가 목숨을 걸고 남겨 준 민주주의 가치가 독선과 독단의 수단으로 전락중이라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이념적 자유와 인권이 경제적 자유와 법인의 권리를 압도한다. 정부와 민노총의 갈등에서 보듯이 이념과 가치의 주도권 다툼으로 진영내부는 시끄럽고 민주적 절차와 질서는 무너지고 있다.박정희는 산업화 시대를 열기위해 권력을 잡았고 DJ는 민주화 시대를 견인한 결과로 권력을 얻었다. 권력의 바탕에 시대정신이 있었다. 시대정신을 벗어던진 권력의 알몸은 추하다. 자유한국당의 내부 권력투쟁이나, 여권의 차기 대권 예비 암투가 그렇다. 시대의 진로를 상실한 맹목적 정치.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이다./윤인수 논설위원윤인수 논설위원

[경인칼럼]`신사와 숙녀`의 종언

[경인칼럼]'신사와 숙녀'의 종언

유럽에선 관행적 인사말 사용하지 않기로우리나라 '성중립' 국제적 수준 크게 미달폭력으로 중단 퀴어축제 '성평등의식 민낯'소수자 배려하는 도시의 개방·관용성 필요'신사와 숙녀'라는 호명을 유럽의 지하철에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행사나 연설을 시작할 때 관용적 인사말인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영국은 2017년 7월부터, 네덜란드는 2017년 12월부터 모든 열차와 역사 안내방송에서 승객들을 '신사 숙녀'라는 호칭 대신 '여행자(travelers, passengers)'로 바꾸어 쓰고 있다. 남자와 여자로만 나누는 기존의 성 구분이 성소수자를 소외시키고,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신사는 남자를 높여 부를 때나,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서양이나 동양에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신사'는 교양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급이나 권세 있는 지방의 토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 형성된 중산층 계급인 젠트리(gentry)가 영국 신사의 어원이었다. 한편 한자어 '신사(紳士)'는 중국 명·청 시대의 지배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신사'계급이 근대화 과정에서 상업에 진출하면서 상업에 종사하는 신사라는 뜻의 '신상(紳商)'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출현했다. 개항기 인천에서 활동한 인천신상협회(仁川紳商協會)라는 단체의 구성원을 보면 서상집, 박명규 등 주로 객주 상인들이었다.신분제와 모더니티를 버무린 '신사와 숙녀'라는 말의 퇴장은 어쩌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르고, 또 사소한 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소수자 배려라는 명분은 존중할만하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선진국들의 배려 정책은 세심하다. 스웨덴학술원은 2015년, 자신의 성을 남녀로 구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위한 대명사 '헨(hen)'을 공식단어로 등록했다. 스웨덴어로 남자(han)와 여자(hon)를 합성한 단어이다. 미국도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본격화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본인의 성을 표시할 때, 남성 또는 여성이 아닌 중립적인 성('ze'나 'they')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공공건물의 화장실에 남녀 구분 표지판을 없앤 '성 중립화'를 의무화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1인용 화장실의 경우 성 정체성의 구분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문단과 연극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와 일부 대학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성중립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국제적 수준에 크게 미달한다. 국가가 주민등록번호로 양성 구분의 '대못'을 숫자로 박아 놓은 상태이니 말이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만 여의사, 여교사, 여학생, 여비서. 여군, 여류시인, 여류화가 등으로 나눠 부르는 우리 관행에 대한 '정치적 언어 수정(political correctness)'도 시급해 보인다.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적 과제가 남아있지만 일상공간에서의 성소수자 배려와 젠더중립적 실천도 중요하다.지난 9월 인천 동구 동인천역 광장에서 열릴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축제가 기독교 단체의 위협과 폭력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성평등의식의 민낯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세계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에서, 그것도 개방성과 다문화성을 장소성이라고 내세우던 개항장 인근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도시의 개방성과 관용성, 시민의식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리트머스지와 같다. 세계도시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도시라면 마땅히 문화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다문화도시여야 한다./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경인칼럼]시선의 확대, 행동의 확산

[경인칼럼]시선의 확대, 행동의 확산

방송정책 수립·집행하는 해외전문가들드론촬영법 등 무료 프로그램 놀라워 해미디어교육 해외 무상지원 가능성 물음에마냥 마다하기에는 너무 미안한 마음 커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는 해외전문가들의 발길이 잦다. 주로 방송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위치에 있는 각국의 고위직 공무원들이거나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지난주만 해도 두 개의 그룹이 센터를 찾았다. 화요일에 방문한 이들은 아시아-태평양 방송개발기구(AIBD) 회원국 관계자들이었다. 한국은 26개 회원국들로 이뤄진 AIBD의 집행이사국인데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AIBD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공동주관하는 '시청자권익증진 국제세미나'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의 첫째 날, 참가자들은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시청자권익증진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인 뒤 곧바로 인천으로 이동했다.먼저 송도국제도시의 해송중학교에서 '찾아가는 미디어버스'의 실제 교육현장을 참관했다. '찾아가는 미디어버스'는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직접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이동형 미디어교육프로그램이다. 방송체험시설과 VR장비를 갖춘 대형차량 2대가 강원도 산골부터 제주도와 서해 덕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누빈다. 이날은 AIBD 관계자들을 위해 도심에서 운영한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어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교육프로그램 전반과 시설·장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마침 다목적 홀에서 진행 중인 드론 촬영교육을 참관하고, 1인 미디어 스튜디오에서는 직접 실시간 방송에도 참여했다. "와우, 원더풀!" "잇츠 그레이트!" 탄성이 이어졌다.금요일 방문그룹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과 시청자미디어재단 등이 공동주최한 '2018 미디어·정보리터러시 국제심포지엄'의 기조강연자와 각 세션별 주요 발제자들이다. 기조강연을 맡았던 폴 미할리디스 미국 에머슨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메이저 언론에도 기고하고 있는 미디어리터러시와 시민미디어운동 전문가다. 해마다 5개 대륙의 청년미디어제작자 70여 명과 교수 12명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3주 동안 모여 사회변화를 위한 독특하고 창의적인 미디어리터러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미디어와 글로벌 변화를 위한 잘츠부르크 아카데미' 이사로서의 활약상이 특히 두드러진다.미디어·정보리터러시 글로벌협의회(GAPMIL) 부의장인 하린더 팔 싱 칼라 인도 펀잡대 교수,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디지털시민성교육위원회의 가이드라인 개발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알렉산드로 소리아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 유엔 전기통신연합(ITU)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트 영국 인터넷안전센터 소장 등은 각 세션에서 주제발표를 했다. 이들 역시 세미나의 주요 일정으로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실제 현장인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은 것이다.센터를 둘러본 대부분의 해외전문가들은 동영상 제작, 1인 미디어 실습, 드론 촬영 등 기존 미디어부터 최첨단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와 관련한 모든 교육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놀라워한다. 그리고 이런 시설과 장비를 갖춘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이 전국적으로 계속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부러워한다. 지난주에 방문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특히 우리와 이웃한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관계자의 부러운 반응을 온몸 가득히 느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우리는 지금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그 위상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날도 실제로 한 전문가는 우리 미디어교육시스템의 해외 무상지원 가능성을 내게 물어왔다.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내부에서 그러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현지를 방문해 여건을 살피기까지 했다. 여러 이유로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쯤 다시 들여다볼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도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밀어야 할 손길을 마냥 접어두기에는 그 시간 쌓이게 될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의 크기가 너무 클 것 같다. 시선의 확대, 사고의 확장, 행동의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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