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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배달의 민족 수수료 50%인하" 주목

[수요광장]"배달의 민족 수수료 50%인하" 주목

獨업체가 '배달앱 1·2·3위' 독과점자영업자 땀 대가보다 큰이익 문제외국자본 유출·은폐마케팅 논란 속코로나19 소상공인 고통분담 약속사회공헌적 방안 도출 가능성 다행두 달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다. 확진자 뉴스에 혹시 우리 집 근처? 매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정도로 비보 일색인데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눈에 띈다. 더불어민주당이 '코로나19' 고통 분담을 위해 배달의 민족 등 '배달앱' 업체들의 수수료 50% 인하를 추진한다는 것이다.더 정확하게는 지난 30일 오전 국회에서 "소상공인들이 부담하는 배달앱 수수료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도록 공정위 등 관련 기관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민주당 김진표 후보가 수수료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수수료 인하문제는 해당 지역 유권자인 외식업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수수료에 멍드는 전국의 수많은 요식업자를 위한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마디로 특정 지역이 아닌 사회 공헌 적인 공약인 것이다. 단순 공약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성과를 나타낼지 귀추가 주목되는 까닭도 그 지점에 있다.사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앞장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 공헌을 촉발하는 조그만 단체를 이끌면서 공헌 운동의 어려움을 잘 안다. 사회공헌 운동이란 말로만 하는 경우라도 쉽지 않다. 실천으로 사회적 성과를 가져오기란 정말로 어려움이 많다. 더구나 공헌 적인 공약을 실체 있는 성과로 나타내기란 더욱 그렇다.이런 관점에서 김진표 후보의 수수료 50% 인하문제는 결코 쉽게 이루기 힘든 일이어서 그 의미를 크게 보게 된다. 실제 지속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국내 배달앱 관련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위 회사 배민이 국내 2위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운영하는 독일업체 딜리버리 히어로(DH)에 매각되면서 독과점 문제와 국내 자본의 국외 자본 유출 논란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로부터 얻은 이익이 고스란히 외국으로 넘어간다면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자본 유출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은 자영업자의 땀의 대가 보다 IT 대기업의 배달 중개수수료 이익이 더 많다는 것에 있다. 그런 이유로 김진표 후보의 수수료 50% 인하 추진발표에 반가움과 우려가 느껴진다. 왜냐하면 앱을 통한 주문 시장과 자영업자 간의 갈등과 긴장 국면 등 사태의 심각성과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망설임 없이 사회 공헌적 공약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도 그런 이유에서다.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창출이라고 하지만 서민들,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 희생으로 발생하는 이윤이라면 이 문제는 자영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로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풀어내야 한다. 설령 해당 기업이 법적으로는 위법성이 없거나 적법하다 할지라도 부당한 이윤을 취득한 경우라면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가 있어야 한다. 법적 책임뿐 아니라 윤리적 책임도 사회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자료를 모으고 관찰하면서 배민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몇가지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째, 진실을 은폐한 마케팅 의혹이다. 배민 수수료 인하를 발표, 올 4월부터 수수료율 5.8%를 주창하는데 실제 자영업자에게 확인해보면 대략 총금액 수수료율은 15%대를 넘는다는 것이다. 둘째,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전단지 배포라는 소소한 일거리를 뺏어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왜냐하면 배민 김봉진 대표는 "왜 전단지를 보고 음식을 주문해야 되지?"라는 의문에서 사업이 시작됐다는 창업 멘트에서도 드러난다. 전단지로 생계를 잇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에 대한 인식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셋째, 배달용기의 범람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데 실제 전혀 그렇지 않다. 최소한 배달과 관계된 플라스틱 범람으로 인한 환경부담금을 내든지, 이도 아니면 친환경적인 배달 용기를 개발해야 한다.배민 수수료 문제를 그저 단순한 논란쯤으로 봐서는 안된다. 그나마 김진표 후보의 공약 덕분에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통해 꼼수가 아닌 사회 공헌적 방안 도출 가능성이 열려 다행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수요광장]공영방송,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수요광장]공영방송,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국민 부담 TV 수신료로 운영 불구수당 부당수령 등 사건사고 잇따라정치적 중립·상업성으로부터 독립공익적 '고품격 콘텐츠' 개발 위해종사자들 엄격한 도덕성 전제돼야KBS 일부 아나운서의 '연차수당 부당수령'뉴스는 우리 사회에서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KBS는 국가 기간(基幹)방송으로서 그 재원을 시청자인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TV수신료' 명목으로 매월 2천500원을 전기료와 함께 징수하고 있다. 고지서에 KBS가 명시되지 않고 비교적 소액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는 이들이 많다. 한 가구당 연 3만원이다. KBS도 공익성이 강한 프로그램의 끝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했다는 자막을 띄운다. 수신료가 헛되이 쓰이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이다.공사(公社) 종사자의 부정행위는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그것은 공무원의 세금 횡령과 다를 바 없다. KBS는 방만한 조직 운영과 예산관리, 조직원의 일탈행동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지적을 받고 있다. 특정 출연자의 과도한 출연료, 직원의 유흥업소 출입 등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다른 조직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다.더 중요한 문제는 KBS가 공영방송 본연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통신망을 통해 제공되는 동영상 서비스는 물론 민간 상업 방송들과는 차별화되는 공영방송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시청자인 국민들은 수신료를 부담하는 것이다.눈에 잘 띄지 않지만 공영방송으로서 KBS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예를 들어 재난방송 주관사를 담당하고 해외방송을 통해 해외교민과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가시적인 방송프로그램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는 정치적 중립과 객관적 보도, 상업성으로부터 독립, 고품격 콘텐츠로 요약할 수 있다.우선, 뉴스는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방송법에 방송은 국민통합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그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최소한 특정 정파에 편향된 방송을 하여서는 곤란하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뉴스의 시청률 하락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하면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신뢰성은 저하된다. 그러한 뉴스는 시청자가 외면한다.다음은 상업성을 지양해야 한다. 민영방송은 기본적으로 광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공영방송의 효시인 영국의 BBC는 처음부터 수신료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의 NHK도 마찬가지다. 제작비를 시청자인 국민들이 부담하는 대신 방송은 상업적 고려 없이 국민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영방송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KBS 2TV와 다른 상업방송이 차별화되고 있는가.시청자들은 품격 있는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최소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내용이 방송되어서는 곤란하다. 기본적으로 폭력과 성적 표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절제와 품위 있는 언어 사용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싶다. 영국의 표준어는 BBC 아나운서가 사용하는 언어다. BBC 종사자들은 세계의 표준어가 자신들이 사용하는 '말'인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유튜브 영상에는 비속어, 상대방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표현이 난무한다. 학생들이 제작하는 영상과제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그 심각함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앞으로 영상 제작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공영방송의 콘텐츠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방송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다. 더불어 수익도 감소하여 위기라고 한다. 다원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공영방송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뉴스는 믿을 수 있고,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으며, 자녀들이 안심하고 볼 수 있다면 공영방송은 시청자의 채널 선택의 우선 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시청자들은 수신료 인상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엄격한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수요광장]완장은 권력이 아닙니다

[수요광장]완장은 권력이 아닙니다

완장 차면 대부분 공익 앞장서지만기업등 일부 저급한 갑질 부끄러워자리 차지하더니 변했단 말 듣거나자신 이익위해 타인 희생시키기도우한 총영사 부임 '희생' 모범답안윤흥길의 소설 '완장' 주인공 종술은 동네 건달입니다. 빈둥거리던 그가 어느 갑부의 저수지를 관리하는 양어장 감시원이 됩니다. 일거리가 생긴 건 좋지만, 그가 차게 된 '완장'이 문제였지요.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호통을 치고, 물고기를 몰래 잡던 동네 사람을 때리기도 합니다. 완장의 위력을 알게 된 그는 읍내에서도 '갑질'을 합니다.갑질은 갑(甲)의 위치에서 을(乙)에게 일삼는 저급한 행태를 일컫지요. 그가 갑질을 하며 나대는 것은 최 사장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만행으로 완장을 박탈당하고 동네를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완장(腕章)은 자격이나 지위 등을 나타내지요.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완장을 찬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대부분 완장을 차면 사회 발전과 공익을 위해 정성을 다해 봉사하지만, 개중에는 감투를 앞세워 저급한 '갑질'을 부리기도 합니다. 기업에선 인사권을 쥔 간부의 행패가 심각하지요. '땅콩 회항'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동안 구체적으로 잘 몰랐던 갑질의 실상이 제대로 밝혀졌고, 그의 어머니마저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퍼부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파장이 컸지요. 이러한 연유로 '갑질 신고센터'까지 생겼으니 정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입니다.완장에 걸맞은 품격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완장을 찼다고 반말을 일삼고, 인사 안 한다고 폭행하고, 뜬금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거들먹거리고 이권에도 개입하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완장을 곧 권력으로 인식하니 '셀프 완장'도 생겨나지요. 골프장, 아파트, 물류단지 등이 들어서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스스로 위원장 감투를 쓰고 행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민을 선동해 투쟁하고 발전기금 명목의 기부(?)를 받기도 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하지요. 완장을 차면 세상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완장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완장을 찼을 때나 차지 않았을 때나 자신은 별다르게 행동한 것 같지 않은데 "자리를 차지하더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완장 착용 전후가 달라진 게 없더라도 이렇듯 비판을 받기 쉽지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완장의 숙명이거든요. 완장을 차게 된 초기에는 안 그랬던 사람도 예우를 받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완장에 대한 욕심이 많아지고 잘못되는 일도 생겨나지요. 완장에도 철학과 인격이 담겨 있는 만큼 높을수록, 많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가진 게 많은 것도 완장일 수 있지요. 부자라는 것 자체가 완장인데 사장이나 회장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며 갑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엔 종종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업보는 고스란히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하늘의 섭리고 세상의 이치이지요. 남보다 가진 게 많다고 다른 사람을 깔보면 안 됩니다. 가진 게 적어도 잘 사는 사람이 많지요. 세상엔 돈보다 더 소중한 게 많은데, 그걸 모르면 사람 노릇 못 합니다.공익을 위해 주어지는 완장의 상징성은 매우 크고 중요하지요. 중국 후베이성 우한(湖北省 武漢)에서 발원된 코로나 19로 지구촌이 온통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특별전세기를 보내 우한에 있던 자국인을 본국으로 귀국시켰던 것도 전염공포 때문이지요. 이런 판국에 우리나라의 우한 총영사가 부임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꺼이 희생과 봉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완장을 찰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완장은 결코 권력이 아닙니다. 완장은 찰 사람이 차야 완장이 완장답게 쓰이고 세상이 바로 설 것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수요광장]옥중서신

[수요광장]옥중서신

부당한 권력과 싸우다 격리된약자 입장 최후 저항 수단인데탄핵된 박근혜 前대통령 메시지실패한 정치인으로서 성찰 대신훗날 기약하는 '정치적 포고문'옥중서신(Captivity Epistles)의 문헌적 역사는 2천년 전 사도 바오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전에도 옥에 갇힌 인사가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사례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신약성서 가운데 네 편을 옥중서신으로 남긴 바오로에 이르러 그 원형이 마련되었다고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는 회심 전 모세의 율법에 열심이었고, 당대 최고 학자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유대인이었다. 예수를 핍박하다가 강렬한 빛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는 예수 앞에 무너졌다. 그 후 사도로 변신하여 선교하다가 옥중 생활을 겪으면서 서신을 남겼는데, 그 안에는 바오로 자신의 피압박 경험과 새로 얻은 소신들, 교회에 대한 권면을 담고 있었다.옥중서신으로 유명한 또 한 사람은 독일의 사제였던 본회퍼일 것이다. 그는 나치스에 저항하고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한 분이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를 옹호하는 교회와 하느님 중심을 부르짖은 교회로 분열되어 있었다. 본회퍼는 후자인 '고백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로서 신앙의 양심을 지켜 스위스 국경을 넘는 많은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었고, 이차대전의 참상과 독일 교회의 현실을 알리는 운동을 지속했다. 일련의 저항, 체포, 죽음의 과정에서 본회퍼는 자신의 생각을 옥중서신의 형태로 남겨두었는데, 인간의 한계가 곧 신(神)의 역사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믿음으로 불의에 저항했던 그는 종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은 본회퍼의 길이 옥중서신에 적힌 대로 "낮아짐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용서의 길"이었음을 깊은 감동으로 알게 되었다.우리 현대사에서도 1970~80년대 김대중의 옥중서신과 김지하나 김남주의 옥중시(詩)는 감옥보다 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에게 역설적 광휘를 선사해준 사례들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수인(囚人)들은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매인 역설적 자유인이었다. 특별히 김남주는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어 만 10년만에 풀려나온 '옥중시인'의 대명사다. 표현의 부자유와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옥중시는 참으로 쓰기 어려운 것인데, 김남주는 권력에 대한 당당한 분노와 역설적으로 찾아온 따뜻한 희망을 동시에 노래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한번 읽어보자. "사랑만이/겨울을 이기고/봄을 기다릴 줄 안다//사랑만이/불모의 땅을 갈아엎고/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천년을 두고 오늘/봄의 언덕에/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사랑만이/인간의 사랑만이/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사랑 1) 옥중에서 전한 소식이 이 정도니 정말 큰 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옥중서신 혹은 옥중시는, 부당한 권력과 정의로운 싸움을 벌이다가 현실적으로 격리된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에서 쓰게 되는 최후의 저항 수단이다. 그러니 그 안에는 글쓴이의 삶과 함께 그가 평생 추구해온 가치까지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다. 편지나 시를 읽는 이들은 그들의 한시적 부재를 통해 오히려 그들의 커다란 존재감을 깊은 울림으로 느끼는 것이다.얼마 전 우리 역사에 옥중서신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측근 변호인을 통해 흘려보낸 글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의 일대 결집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 탄핵된 대통령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 대신, 현실 정치인으로서 잔광(殘光)을 뿌리면서 훗날을 기약하는 정치 행위를 재개한 것이다. 옥중서신의 역사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 번쯤 물어야 한다. 그녀는 정의로운 싸움을 하다가 옥에 갇혔는가? 그녀는 부당하게 박해받는 저항 인사인가? 어쨌든 옥중서신의 역사는 오명 하나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녀의 옥중서신은 정의로운 약자도 아니고 탄압받는 소수자도 아닌, 스스로 탄핵을 불러온 실패한 정치인이 다시 지지세력 결집을 유도한 정치적 포고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해야 한다. 박근혜는 왜 갇혔던가?/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수요광장]더 낮은 곳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할 시간이다

[수요광장]더 낮은 곳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할 시간이다

전 세계적인 재난 '코로나19 사태'차별받는 집단 가장 큰 고통 받아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대재앙배려·연대 힘으로 주위 둘러보고어려운곳 부터 먼저 손 내밀어야바이러스 감염은 생물학적으로는 종교, 인종, 지역, 소득수준, 장애 여부 그리고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은 저마다 속한 위치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국가적 재난과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국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차별받는 집단이라는 점이 이번 코로나19 확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이번 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곳은 경북 청도 대남병원이다.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병동 입원환자 102명중 10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중 7명이 사망했다. 이곳에 입원하고 있던 환자들은 의학적으로는 병원에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으나, 가족이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의 환자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사망자가 다수 나온 점은 "정신질환자가 있는 폐쇄병동으로 환기가 잘 안되어서"라는 당국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이후 별도의 조사가 필요해 보이나,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의 사례는 이런 위기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크게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월20일 구로중학교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지역의 중국인 및 중국동포 그리고 지역의 교육관계자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지역의 학교 선생님들은 겨울방학 종료 후 학교에 모였던 아이들중 한국 아이들이 중국 아이들과 급식을 같이 먹을 수 없다고 거부하고 일부 학부모는 학교로 전화를 걸어와 중국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것에 항의전화를 했다고 한다. 개학 이후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학생들간의 혐오와 차별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봄방학 기간인 지금도 학생들이 함께 속해 있는 여러 카톡방에서 "너희들은 개학이 되어도 학교에 못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동포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뉴스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청도 대남병원의 최초 전파자가 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선족 간병인 두 명이라는 유튜브의 방송이 얼마 전 나왔다. 이들이 감염된 상태로 귀국 후 병원에서 간병을 하면서 병원의 다수에게 전염을 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두 명 모두 두 차례의 바이러스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더욱이 이들이 근무했던 3층 일반병동에서는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확진자를 범죄자 취급하거나 확진자가 나온 지역이나 집단을 과도하게 차별하는 일도 큰 문제다. 경남은행에서는 직원들에게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책임을 묻겠다는 문자를 전 직원에게 보냈다. 이후 비난이 일자 곧바로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또한 군인 중에서 확진자가 나온 이후 지역의 군인아파트에 배달을 거부하는 음식점이 나오는 사례도 있었다.이와 반대로 연대와 공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대구에 의료 인력이 필요하다는 호소에 많은 의료진이 자원해서 대구로 찾아갔다. 지역 곳곳에서 상대적으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곳에 마스크를 찾아가 나누고, 이런 이웃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해주고 있다고 한다. 역대급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임대료를 할인하거나 일시적으로 받지 않는 착한 임대인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대구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었던, 광주광역시는 대구의 어려움을 함께 하겠다면서, 대구의 확진자를 수용할 병상을 제공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 세계적인 재난 속에서 한쪽에서는 배제 비난 그리고 차별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배려, 나눔 그리고 연대가 함께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이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르나, 결국 미래는 오늘을 함께 겪어나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어깨를 기대가며 함께 살아갈 이들 또한 우리 자신이다. 연대와 배려의 힘으로 주위를 좀 더 둘러보고 어려운 곳을 먼저 살피며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가야 할 때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수요광장]성 평등과 공존 공생문제, 여성 국회의원 비율 높여야

[수요광장]성 평등과 공존 공생문제, 여성 국회의원 비율 높여야

現 女의원 17.1% 'OECD 최하위'선거법 개정으로 더 줄어들 전망공천 확률도 남성보다 훨씬 낮아여성목소리 제대로 낼 수 없을듯'지역구 30% 의무' 반드시 지켜야4·15 총선이 50일 남았다. 후보공천 발표를 접할 때마다 여야 여성 의원 30% 공천 약속 이행이 궁금해진다. 필자의 개인적 관심 차원을 넘어서 한국 여성 의원 비율이 'OECD 최하위'라는 국제적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1%로 세계 193개국 중 120번째의 낮은 순위라고 한다.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게다가 여야가 입을 모아 '지역구 의원 여성 후보 공천 30% 의무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못이 박히도록 공언한 터라 기대가 컸다.그러나 정치적 성평등 문제를 갈망하며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배반당할 것 같다. 선거법 개정으로 여당은 비례대표 의석수가 줄게 되는데 이 경우 여성 30% 달성은 고사하고 오히려 여성 의석수가 기존보다 더 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천이 진행 중이라 통계가 없어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선관위 총선 예비 후보 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남녀 후보 간 성비 불균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비후보자 선관위 등록 수는 여야 모두 합해 1천949명인데 남성이 1천371명 여성 578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대략 2.4배나 많은 숫자다.물론 후보 등록이 공천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공천한다고 반드시 당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여성 후보가 여야 모두 등록 자체를 남성보다 훨씬 적게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 그랬을까? 결코 여성의 정치적 능력이나 야망이 남성보다 낮아서는 아닐 것이다.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공천 확률이 남성보다 현저하게 낮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주는 대목인 것이다. 후보 등록에 이어 공천 발표 역시 애초의 여성 비율 약속도 공천잡음도 여야 서로 다른 듯 닮아 보인다. 최근 여당인 민주당 남인수 최고위원은 "약속했던 여성 공천 30% 쉽지 않다"고 우려를 밝혔다.진보 정당인 여당의 초선 여성 의원 토양이 이렇다 보니 당내 중진 여성 의원 비율도 남성 중진 의원에 비해 턱없이 낮다. 경인일보가 소속된 경기 지역의 경우 현재 여성 국회의원이 7명뿐이고 심지어 인천 지역은 70년 동안 단 한 명도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래저래 여성 다선 의원 진출은 그야말로 척박한 환경이다. 이번 총선은 남성 중심 국회에서 소수지만 어렵게 중심을 잡아주던 여성 중진 의원들이 대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여성 중진 실종 사태를 보게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여성 초선이나 중진 의원 비율이 지금보다 낮아 질 경우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갈등 많은 국회에서 성불평등 우려가 커지면서 여성 유권자 표심잡기 쇼라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 수차에 걸쳐 '성평등이 국정 기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성평등 관점에서라도 이번 지역구 공천의 여성 공천 30% 의무화로 여성 진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 요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힘내라는 격려의 말로 힘이 나오지 않은 것처럼 여성 비율을 높이겠다는 말만으로는 남녀 성평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권이 남녀 조화 속에 균형 있는 정치를 원한다면 여성 공천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 물론 여성 후보 당사자의 뛰어난 경쟁력은 필수다. 무엇보다 여성 의원 진입 문턱을 낮추고 여성의 국회 재선 진입을 돕는 여성 정치 토양이 시스템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유권자 역시 남녀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로 정치 풍토 개선에 협력해야 한다.정치는 남녀 균형 속에 약자와 강자가 조화롭게 공존·공생해야 발전이 있다. 정치권이 여성 후보를 선거철 선거 구호로만 이용하거나 진정한 남녀 성비 균형 의지 없이 표심만 현혹하려 한다면 정치 불신은 더 커질 뿐이다. 시대의 요구인 여성 후보 비율 확대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곧 여성 중진 의원을 키우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수요광장]나에겐 냉정하게, 다른 이에겐 따뜻하게

[수요광장]나에겐 냉정하게, 다른 이에겐 따뜻하게

살다보면 돌발 변수가 '수두룩'고비 넘기는 건 오롯이 자신 몫스스로에 엄격하고 냉철함 필요타인에겐 관대·배려할줄 알아야그것이 세상 사는 常道이고 순리사는 일이 간단치 않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기도 합니다. 저는 틈이 나면 철학 강의를 듣고 있지요. 삶에 대한 화두를 풀어보자는 생각도 있지만 강좌를 진행하는 철학박사 한 분의 이야기에 매료돼서입니다. 이분은 5년 전부터 매주 한 차례씩 시민을 위해 '태장마루도서관'에서 무료로 철학을 강의합니다. 듣다 보면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박식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곤 합니다. 강의도 강의지만, 그의 삶에서 배울 게 많습니다. 이분이 일곱 살 때,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4남매를 남겨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장면 배달을 시작으로 자동차정비소, 전파사, 주유소 등에서 20여 가지 일을 했지요. 그렇게 살면서도 학이시습(學而時習). "사람은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철학을 전공해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정치, 사회복지 분야 등의 다른 공부도 했는데 2개의 박사 학위, 3개의 석사 학위를 받았지요. 20여 종의 자격증은 치열한 삶의 부산물입니다. 이분을 보면서 저는 제가 했던 말을 한 번씩 떠올려 보곤 합니다.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속을 비운 데다 중간중간 생겨난 매듭이 지탱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처음 어려운 고비를 맞은 것인데, 튼튼한 매듭이 하나 새로 생겼다고 생각하면 앞으로의 행보에 좋은 보약이 되지 않겠습니까." 공직에서 물러나 쉬고 있다가 우연히 다시 공직에 몸담은 일이 있었지요. 그때 모시던 분이 난관에 부딪힌 적이 있었을 때 조심스럽게 드렸던 말씀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돌발변수가 생겨날 때가 있습니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봄 골목길을 걷는데, 담장을 돌면서 갑자기 휘몰아쳐 오는 회오리를 맞는 것처럼 마른하늘 날벼락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 당황스럽고 황당한 일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합니다. 이를 이겨내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으로 겪을지 모를 더 큰 사건 앞에서 그 사건은 하잘것없는 사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지나고 나면 추억일 수 있는 일로 여기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고비를 극복하는 건 오롯이 자신만의 몫입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내려놓는다는 것도 쉽지 않지요. 시간이 필요하고 고생이 뒤따르지만, 매듭이 있어야 내공도 깊어지고 사는 맛도 있습니다. 살면서 길을 가다가 넘어져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지요. 넘어질 수는 있지만, 엎어져 있지는 말아야 합니다. 넘어져 봐야 다시 일어서는 방법도 터득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그렇습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해야 합니다. 사고는 냉정하게, 행동은 치열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듭만이 대나무의 궁극은 아니지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별것 아니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척 큰일로 느껴질 때가 있듯 내가 볼 때는 별것 아니어도 다른 이에겐 무척 큰일일 수 있습니다. 내가 큰일 앞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했듯 그의 큰일에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대나무가 매듭을 맺는 것은 자신을 튼실하게 하는 데만 있지는 않지요. 키 큰 숲이 되어 따뜻한 울타리가 돼주고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데에도 있습니다. 인생의 매듭이 그러하지요. 매듭 있는 사람이 나에겐 냉정하지만 다른 이에겐 관대하고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압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사회를 넉넉하고 살만하게 해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요.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상도(常道)이고 순리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수요광장]고단하고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쓰는 일`

[수요광장]고단하고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쓰는 일'

좋은 서정시는 독자들에게 따뜻하고 서늘한 '경험적 실감' 이재무 시집 '데스밸리…' 에도엄마 음성·목련 조등… 찰나 포착낮고 약한 인간 향한 위안 목소리좋은 서정시는 경험적 실감을 독자들에게 한편 따뜻하고 한편 서늘하게 제공한다. 구체적 상황과 절실한 기억이 아름다운 이미지의 도움 아래 제 목소리를 드러낸다. 무의미한 난해함이나 의뭉스러움 저편에서 쓰여진 그러한 시는, 그래서 찰나적인 정서적 충격을 주고 시인에게나 독자에게나 어떤 발견의 순간을 허락한다. 최근 나온 이재무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에는 40년 가까이 이어져온 그의 이러한 시적 기율과 원리가 지속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중요한 변곡점을 담고 있다. 기억할 만한 은유, 대상에 대한 간절함으로 낱낱 사물과 순간을 불러왔던 이재무는 이번 시집에서 자신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예감케 해준다. 특별히 그는 지난여름 데스밸리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원(始原)' 곧 원초적 순수 생명의 세계를 발견한 경험을 들려주고 있는데, "내 지난날의 습기 많은 생을 묻었다"라면서 존재론적 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렇다면 "습기 많은 생" 다음에는 어떤 차원이 펼쳐질까?이번 시집에는 지상의 감각들이 그의 예민한 관찰에 의해 다양한 소리와 풍경으로 선연하게 되살아난다. 시인은 창으로 들어오는 빗소리나 '차갑고 투명해진 개울물 소리', '엄마의 음성', '개구리울음', '낙과처럼 떨어지는/종소리'에 귀 기울인다. 스스로의 서식처인 '고요의 마을'에서 '어쩌다 쓰는 시에도 소리가 들어와 울음 짓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평생 소리의 형태를 관찰하며 살아온 연장선에서 '매순간 태어났다 사라지는 소음들'도 소중하게 안아들이고 있다. 이 점, 이재무 시의 가장 살가운 성과로 나타난다. 착착 안겨온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지상의 감각에 머물지 않는다.짧은 시 한 편을 읽어보자. "사회복지사가 다녀가고 겨우내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자 방 안 가득 고여 있던 냄새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무연고 노인에게는 상주도 문상객도 없었다 울타리 밖 소복한 여인 같은 목련이 조등을 내걸고 한 나흘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목련」) 이재무 시에는 낮고 약한 존재자들을 향한 위안의 목소리가 있다. 신이 버린 아프리카, 죄 없이 죽어간 인디언과 베트남 인민들, 노숙인과 무연고 노인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 있다. 이때 우리는 그의 시가 여전히 삶과 시대의 공공 기억에 닻을 내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그는 한 편마다의 미학적 완결성을 중시하되 그것이 삶의 구체적 조건을 충실하게 반영하게끔 해왔고, 지금도 자연스럽게 시대의 내력을 환기하는 내러티브적 속성을 견지하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가난과 눈물과 추억과 참회와 낭만과 싸움과 연민과 사랑의 시편'(문태준)을 읽게 된다.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데스밸리에서 죽은 자신을 품고 넘으면서 '시간의 먼 길'을 떠난다. '안부가 그리운, 먼 곳의 사람'을 그리고, '먼 곳에 사는 정인에게 손 편지'를 쓰고, '저 멀리 돌아갈 집'을 아득하게 바라본다. 물론 그는 '60년째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갑자기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비현실의 세계로 비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죽음 너머 아버지로부터 저수지 얼었다는 전화를 받고, 죽기 전에 나무 열 그루를 심어야 하고, 또 데스밸리에서의 죽음 이후를 설계해야 하니, 나로서는 그가 기억과 유목 사이를 가로지르면서도 형이상학적 존재론으로 이끌려갈 가능성을 짐작해볼 뿐이다. 이재무 시의 중추인 간결한 서정성, 타자를 향한 연대, 시대와 사회의 증언, 사랑의 열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의 후반기 시가 인간 존재에 대하여 더욱 두터워진 철학적 질문을 품어갈 것이라 생각해보는 것이다.오래도록 공유된 순간 때문에 사사로움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처럼 나는 그의 시가 여전히, 하지만 새롭게, 경험의 구체적 재현과 타자를 향한 사랑과 근원을 향한 매혹 사이에서 반짝여갈 것이라고 믿는다. 누구보다도 고단하고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쓰는 일'에 매진해온 그의 행로가, 슬픔을 머금은 글썽임으로, 그곳에서 하염없이 빛을 뿌리고 있을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수요광장]신종 바이러스에 우리 모두가 이기는 방법

[수요광장]신종 바이러스에 우리 모두가 이기는 방법

불안·공포·증오·적개심·혐오…우리 사회에 퍼진 더 무서운 증상신뢰·화합·격려로 위기 극복해야손씻기·마스크착용등 예방책 철저'바이러스의 해악'서 승자가 되자일주일 전 아이와 놀이터에 갔다. 7살 아이는 또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잠시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 말을 쓰는 사람들을 보며 누구냐는 질문에 "중국 사람들이야"라고 답했고 아이는 "바이러스"라고 외쳤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사람들이 못 들은 것 같아, 얼른 자리를 피한 후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TV에서 본 내용을 말한 것이었다. 우리가 피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지 사람이 아니며, 바이러스로 지칭된 사람들이 얼마나 슬퍼할지에 대해 한참을 함께 이야기 나눴다. 다행히도, 아이는 잘 이해해주었다.비상사태다. 매일 아침 사망자와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거린다. 몇 번 환자와 그 환자의 동선, 접촉자의 소식 그리고 비관적 전망이 뉴스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증상은 몸살, 기침, 고열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증상이 있다. 이번 바이러스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이 사회에 불안, 공포, 미움, 타인에 대한 적개심, 배제의 욕망 그리고 혐오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혐오 현상은 중국인을 대상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 확진자, 의심자, 접촉자, 보건 및 의료 종사자는 물론 그 가족 그리고 심지어 항공사에 근무하는 부모를 둔 자녀에게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자와의 2~3m 이내에서 밀접한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불안과 증오는 다르다. 전파를 타고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대위기다. 향후 사람들이 실제 얼마나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바이러스의 치명적 해악은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모두가 모두를 경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번 위기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따뜻한 인간미와 공존을 위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중국 우한에서 거주하던 교민들을 수용지로 아산과 진천이 결정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발했다. 사람들은 님비현상 또는 혐오문제를 크게 걱정했다. 어쩌면 이런 위기 속에 당연한 사람들의 반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입국 전날부터, 오히려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이곳에서 편히 쉬고 가족에게 안전하게 돌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신체 증상이 아닐 수 도 있다. 이 공중보건 위기를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움과 갈등을 넘어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를 쌓을 기회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다. 보건 당국에서 이번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행동수칙을 알려주고 있다. 자주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등이다. 그러나 어쩌면 더 큰 해악에 대해서는 아무런 행동요령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시민 행동수칙을 생각해보았다. '불안과 공포를 전파하면 안된다고 말해주세요. 가짜뉴스를 경계하고 정부 발표와 공신력 있는 뉴스를 봐주세요. 혐오와 차별에 대해 내 주변 사람들, 특히 아이들과 이야기 나눠주세요. 위기와 불안을 이용해 이득을 얻으려 하지 마세요. 의료진과 관계 공무원 등 관계자들에게 최대한 협조하고 응원해주세요. 이 위기를 공존과 화합의 기회로 바꿀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해주세요'.더 이상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 지역과 사람에 대한 한시적 격리와 이동제한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위기가 끝나고 나면, 위기 속에서 빛나던 우리의 진짜 본성을 서로 확인하고, 함께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그래서 이번 바이러스와 함께 기왕에 존재하는 우리 사회 혐오와 차별까지 박멸되면 좋겠다. 이것이 이번 바이러스의 해악으로부터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이다. 저녁 뉴스를 보며 아이가 말했다. 중국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싸워야 돼! 우리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 그래 지금은 기회다./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수요광장]공존의 조건, 사회통합형 주택

[수요광장]공존의 조건, 사회통합형 주택

現 주택정책 소수자 공존 불가능자기권리 주장 어려운 사람들도도시의 주인으로 함께 살아가야공동의 목적·필요를 가진 시민들차별·배제없이 어우러질 집 꿈꾼다"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새해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투기와의 전쟁을 언급하였다. 과거 아예 부동산에 대해 언급조차 않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인 것에 비하면 달라진 것이다. 이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민심을 어느 정도는 인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개혁 의지가 결여된 정권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레토릭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여전히 주된 관심은 '시장의 안정'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시장이고, 누구를 위한 안정인가? 문제는 아무리 시장이 안정된다 한들 그 '시장'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주택상품을 중심으로 '빚내서 집사라!' 일변도의 우리의 시장화된 주택정책은 집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집을 차별과 배제의 공간, 사회갈등, 주민갈등, 세대갈등의 진원지로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공에서 공급자 주도로 다양한 사회계층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소셜믹스 정책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집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만든 결과, 빚을 내어 집을 살 수도 없고 주거복지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렇게 기존 주택시장에서 소외된 시민들을 위하여 사회주택과 공동체주택이라는 공공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회주택은 사회적경제 주체를 통해 공급되는 주거약자를 위한 사회임대주택(임대료 시세 80% 이하)으로 주로 청년 1인가구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사업성 위주로 입지가 선택됨에 따라 임대료 수준이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공동체주택은 획일화된 아파트 대신, 같은 관심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며 공동으로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주택이다. 공동체주택 참여자들의 공동체소유(주택협동조합)를 위한 금융지원이 핵심이다. 어느 정도 지불능력을 요하기 때문에 주로 중산층 중장년세대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지원 주택정책은 사회주택과 공동체주택으로 이원화됨에 따라 또다시 소유와 임대로 구분되며, 청년과 중장년 세대를 분리하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나는 공동체주택을 통해 오랜 전세난민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10가구가 모여 공동의 건축주가 되어 자신의 필요에 맞는 집을 시장가격 보다 저렴하게 장만할 수 있었다. 개별 세대와 별도의 커뮤니티 공간을 설치하고,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들이 소통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는 주거 형태다. 공동체주택에 살아보니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빈부에 관계없이 다양한 시민들이 좋은 이웃으로 어울려 사는 것, 어쩌면 당연한 주거권이라고 생각되는 이 소망이 왜 어려운 걸까?"우리는 어느덧 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집을 가진 사람과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주택정책은 사회적약자 및 소수자와 공존이 불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의 주인은 건물주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미래세대 등 자기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 어려운 이들 또한 도시의 주인으로써 함께 살아갈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여야 한다. 공존할 수 있어야 우리의 도시라는 공동체가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2020년 새해를 맞아 나는 꿈을 꾼다. 공동의 목적과 필요를 가진 시민들이 나이, 학력, 경제력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거나 배제당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모두의 집, 사회통합형 주택을 꿈꾼다.토지는 공공에서 장기임대로 제공하고, 거주자로 구성된 주택협동조합이 사회적경제 주체들과 협력하여 건축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주택의 형태는 서민 중산층 자부담 참여자를 위한 코하우징과 주거약자를 위한 사회임대용 셰어하우스를 결합하여 진정한 소셜믹스가 가능하며, 지역에 개방된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지역의 공동체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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