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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한국의 인권현실… 산업재해 사망은 고작 1점

[수요광장]한국의 인권현실… 산업재해 사망은 고작 1점

이주노동자들 일터에서 다치거나죽는 경우 하루평균 '18.4명' 달해사업장 평가지표 점수도 '모욕적'現 고용허가제 사고 절대 못 줄여정부, 최소한의 생명권 지켜줘야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야기다. 필자가 일하던 외국인인권단체에서는 주된 주말 업무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상담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2006년에는 네팔사람들과 병원기록들을 수소문해가며,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찾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먼 타향에서 죽어갔는지에 대해 기록조차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긴 조사 끝에, 60여명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의 사망을 찾고 기록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병으로, 각종 사고로, 산업재해로 그리고 가혹한 조건 속에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도 당연히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 형제였고 아들과 딸이었다. 네팔로 찾아가서 만난 유가족들은 비탄에 빠져 있었고, 대부분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사결과로 충격에 빠졌다. 유가족들의 애끓는 절절한 이야기는 아주 작은 책자로 묶여져 나왔다. 이후, 한국에서 기록조차 없이 죽어간 이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 후로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덧없이 죽어가는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예전의 참혹한 시절의 옛이야기면 좋겠다. 그러나 모두에게 불행하게도, 매일같이 예전보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2019년 10월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의원실에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발표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자 실태 자료는 충격을 넘어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전체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총 971명중 11.14%인 114명이 외국인노동자였다. 산업재해로 인한 전체 사망자수도, 내국인의 경우 2014년 1천765명에서, 2018년 2천6명으로 13.65% 증가하였는데, 이주노동자의 경우 2014년 85명에서 2018년 136명으로, 60%나 증가하였다. 산재로 인정을 받은 부상자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18.4명의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0.54%인데, 외국인노동자의 경우는 0.86%에 달한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농어촌 영세 사업장의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니고 가입의무조차 없는 곳들도 많다. 심지어 산업재해로 인정받지도 못하지만. 2009년에서 2018년까지 자살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만 43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위의 통계는 아마도 최소한의 기록에 불과할 것이다. 비용과 노력을 들여, 위험한 작업장의 환경을 바꾸고 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드는 대신, 그 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사망자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줄일 실효성이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원하는 사업장을 선정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업장은 사전 배점에 의한 점수로 이주노동자 배정 가능 여부나 순서가 정해진다. 이 점수 평가지표를 살펴보면, '최근 2년 동안 사망재해 1명이 발생한 사업장은 감점 1점'. '2명 이상 발생 사업장은 2점 감점을 받는다.', 이에 비해 임금체불은 3점, 폭행 및 폭언은 5점 감점을 받는다. 그리고 심지어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허용인원에 대비하여 실제 고용인원이 낮으면, 최대 30점에서 최소 22.4점을 기본적으로 준다. 산업재해로 한 명이 죽는 경우 단 1점이 감점되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이 평가지표가 얼마나 이주노동자에게 모욕적인 상황인가! 이런 현재의 고용허가제 시스템으로 드러난 정부의 인식으로는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절대 줄일 수 없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1년간 사망자가 136명에 매일같이 평균 18.4명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아니 이것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전쟁과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다.정부를 비롯한 한국사회 전체에 다시 한 번 호소해 본다. 어떤 이유에서건, 최소한의 생명권은 지켜져야 하지 않겠는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수요광장]소유의 종말, 공유의 몰락

[수요광장]소유의 종말, 공유의 몰락

스마트폰·정보통신기술 발달로누구나 '접속' 가능한 시대 열려빠르고 효율적 플랫폼 경쟁 시작자본이 독점하면서 곳곳서 충돌기업권리만 주장 사회적책임 외면'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천불 국민소득'.초등학생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당시에는 저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국민소득 1천불'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80년대를 맞이하고 국민소득이 1천불을 넘어서면 모든 국민이 자기 차와 집을 가질 수 있다고 희망찬 미래를 제시했었던 기억. 그 기억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고 우리는 '마이 카, 마이 홈'을 향하여 치열하게 소유의 경쟁을 벌여왔다. 그 희망찬 미래, 우리는 다 이루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자기 차를 소유하고,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으며, 자가보유율도 60%가 넘는다. 국민소득은 무려 3만불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 가지고 다 이룬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소유' 대신 '공유'라는 낯선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공유는 빠르게 우리 일상에 퍼져나갔다. 옷, 공구를 비롯한 다양한 물건에서부터 자전거, 차와 같은 이동수단, 집과 사무실, 동네부엌 등 부동산과 공간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것은 물론 지식과 기술, 시간까지 이른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책 '소유의 종말'에서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으며,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임시적으로 접속하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접속'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저성장시대를 맞이하면서 그의 예언대로 '공유경제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듯했다. 사람들은 고장 난 자본주의 속에서 과거 '국민소득 1천불'과 같은 희망을 공유경제에 품기 시작했다. 모두가 공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소유를 이야기하면 구시대적이고 공유는 무조건 좋은 것이란 사회적 착각이 작동했다. 그러자 선의와 호혜를 기반으로 했던 공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접속하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고 자본은 다시 그 플랫폼을 소유하였다. 공유경제는 자본이 플랫폼을 독점하면서 기존 시장이해관계자들과 곳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기업의 권리만 주장할 뿐, 사회적 책임은 외면하였다. 최근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IPO(기업공개) 철회 기사를 보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워크 사태는 겉으로는 공유경제를 표방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설립자가 부동산장사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 때,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다. 공유경제의 본질은 신뢰의 문제이다. 막대한 돈으로 플랫폼을 구축한 자본은 사람을 믿지 말고 시스템을 믿으라고 했다. 대대적 마케팅으로 시장을 키웠다. 그들은 시스템을 믿으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공유경제가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공유경제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그래서 플랫폼 기반 공유경제와 차별화되는 '커먼즈(commons)'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원하는 공유는 서로 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자본이 소유한 시스템이 아니다. 상호적이고 호혜적인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그 운영이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한다.소유의 종말 이후 공유경제의 부흥을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아직 불확실하다. 아니 공유경제의 몰락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유와 공유의 문제는 단순히 '소유냐 공유냐' 이분법적인 질문은 아닐 것이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공유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어렵다. 일단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 소유는 줄이고 일상에서 다양한 관계와 공유를 늘려보자. 나는 공유주택에 살고 있다. 나의 일터는 조합원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다. 우리 사무실은 여러 입주단체가 함께 이용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공유사무실이다. 공유자전거인 '따릉이' 정류장이 곧 우리 집 가까이에 생길 예정이다. 나는 이웃과 함께 하는 공유주택에 살면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서 공유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한다. 내 것은 많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다. 이렇게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두렵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수요광장]`통합 메시지` 아예 없는 편가르기 세상

[수요광장]'통합 메시지' 아예 없는 편가르기 세상

조국장관 임명 '긍정-부정' 갈려의혹 위법·윤리 본질보다 '진영논리'갈등만 보이고 '합의 노력' 안보여분노·분열보다 냉정 찾는게 바람직'네편-내편' 싸움 폐해 국민들 몫최근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부부가 재임 시절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휴먼다큐 '아메리칸 팩토리'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상을 수상하며 영화사들의 찬사 속에서 '융합'이라는 메시지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큐 내용은 미국 내 중국 공장 얘기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국경과 문화 차이로 갈등이 있지만 이를 뛰어넘는 융합을 다루고 있다. 다큐는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편가르기식 정치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은 시기에 이런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던진 융합메시지가 전 세계에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치의 갈등은 이와 전혀 다른 양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 사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통합에 대한 신념과 노력은 이미 재임 시절에 높게 평가받았다. 실례로 재임 당시 이라크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는 심각한 갈등 상황에서도 오바마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국민을 감싸안았다. 갈등을 부추기는 대신 통합에 이르는 연설로 그렇게 했다. "우리 미국에는 두 부류의 애국자가 있다. 하나는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애국자이고, 또 하나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애국자다." 대통령의 이 연설은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통합으로 가는 힘을 발휘했다.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갈등 상황은 어떤가. 어느 정치인이 신념을 가지고 통합을 향한 노력을 보여줬던가? 조국 장관 혹은 정치권의 누군가를 비난하는 대신에 통합 메시지로 국민을 설득한 이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질 않는다. 신념을 내세우며 정치인들의 삭발 릴레이가 있었지만, 통합 메시지와는 거리 먼 퍼포먼스였을 뿐이었다. 더구나 야당의 행보는 '발목잡기식'으로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를 맹비난하는 거친 모습 외엔 그 무엇도 없었다. 민주주의에서의 정당 정치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정당 간 서로 다른 의견과 조우하게 된다. 조국 장관 임명과 관련해 긍정과 동의도 많지만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아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갈등 수준을 간과하기에는 우려스럽다. 편향된 언론의 보도 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분노 표출 방식도 다양하게 감지된다. 조 장관을 둘러싸고 있는 의혹에 대한 위법성 여부나 윤리적 책임이라는 문제의 본질보다 진영논리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요란스럽게 변질되고 있어 갈등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조국 장관을 지지하며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같은 시간 건너편에서는 조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렸고 그 다음날에는 검찰이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과 혼란스러움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물론 상대 진영의 잘못에 책임을 요구하며 집회할 수 있다. 또한 대립하고 경쟁하며 의견을 내고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건전한 대립을 통해 통합에 이르는 과정과 그 노력 속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성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갈등만 보이고 함께 풀어내려는 합의 노력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통합은커녕 편을 갈라서 서로 자꾸만 벌어지려고 하고 있다. 마치 공동체 정신은 실종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싸울 수도 있지만 대개는 대화에 공을 들이며 설득하거나 서로 양보해 타협 지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싸워서 양측 모두 손해를 보기보다는 타협하는 방법이 손실과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갈등과 분열로 가는 것 같은 현재 상황에서는 의견을 보태며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분열만 더 심화될 것이다. 분노하며 분열로 가기보다는 냉정을 유지하면서 여·야 모두 리스크 관리를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네편 내편' 편을 갈라 진영 싸움의 늪에 빠지게 될 때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수요광장]전국체전 100주년, 대한민국 스포츠 축제로 거듭나길

[수요광장]전국체전 100주년, 대한민국 스포츠 축제로 거듭나길

최초 개최지 서울서 열려 '상징성'민족화합·체육발전 중추적 역할항상 국민에 희망·자부심 안겨줘국민들 경기장 찾아 많은응원 필요'역사·권위있는 행사' 관심 가져야올해로 100회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산실인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가 이제 10일 앞으로 다가왔다(2019. 9. 24. 기준). 요즘 서울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100년을 맞이하는 전국체전을 알리는 홍보깃발과 현수막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대회는 오는 10월 4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7일간 진행되며 야구, 농구, 수영, 탁구 등 올림픽 종목부터 씨름, 택견, 궁도 등 한국 전통 스포츠까지 총 47개 종목(정규45, 시범2)에서 17개 시·도 3만여명의 선수단이 열띤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전국적으로 매년 개최되는 종합 스포츠 경기 대회인 전국체전은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후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행사로, 그해 11월에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삼는다. 전국체전은 일제강점기 말기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6·25전쟁으로 중단된 것 이외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1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올해는 제1회 대회 개최지인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은 전국체전 최초 개최지로서 100년의 상징성을 기리고 한국체육 발전의 전환점이 되는 미래 100년의 출발점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또한 각종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체육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균형발전 및 세계 스포츠 중심 도시로의 재도약을 준비하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전국체전은 스포츠를 통한 민족 화합의 역할뿐 아니라 스포츠 참여 증대 및 저변 확대, 우수 지도자 및 선수 발굴, 스포츠 시설 확충 등 그동안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감격을 안았던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전국체전은 국제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와 발판이 되었다. 또한 피겨여왕 김연아, 역도의 장미란, 체조의 손연재, 마린보이 박태환 등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올림픽 스타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미래의 올림픽 스타를 꿈꾸는 대한민국 스포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대회이다. 더불어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전문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즉, 전국체전은 대한민국 스포츠를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게 만든 발판이었다. 대한민국 체육의 중심에서 언제나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주었다.최근 전국체전 현장의 텅 빈 관객석을 보면 씁쓸하다. 많은 국민들이 경기장에 찾아올 수 있는 다각도의 방안을 모색해봐야 한다. 스포츠 현장에서 자기고장 선수, 올림픽 스타선수 또는 미래의 스포츠 꿈나무들을 응원하고, 단순히 '보는 스포츠'가 아닌 '함께 하는 스포츠'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전국체전은 명실상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스포츠 행사인 만큼 국내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통해 선수들의 피와 땀의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해주고 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국민적인 관심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꿈과 희망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 모두의 노력을 합쳐 스포츠 역사와 문화, 환경이 함께 100회를 맞는 전국체전이 국민 모두의 화합과 참여 속에 재도약하는 대한민국 스포츠 축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수요광장]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의 산문

[수요광장]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의 산문

부드러운 표현·진솔한 고백 '산문'비평집엔 시큰둥하던 친구도 반색충격적 정보 '스캔들화' 하는 요즘과잉문장으로 사람들 내면에 상처산문 통해 한시적 소음 벗어났으면얼마 전 처음으로 산문집을 한 권 냈다. 그동안 펴냈던 비평서들이 워낙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대뜸 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자연인 아무개'가 간직하고 있는 섭렵과 경험의 기억들을 한번 읽어보라고 건네줄 수 있었다. 그렇게 글에는 전문성과 보편성 혹은 낯섦과 친숙함이 상대적으로 담기게 마련인데, 흔히 '산문'의 범주로 묶이는 것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표현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산문'의 반대는 '비평'이 아니라 '운문'이 아니었던가.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리듬에 언어를 대응시켜 낭독과 음송에 어울리는 형식을 입힌 글을 운문이라고 한다면, 산문은 그러한 외적 리듬보다는 내용상의 명료함과 서사성을 강화하다 보니 생겨난 줄글 형식을 말한다. 장르로 말하면 소설, 수필, 비평 등이 모두 산문이다. 사전에서는 "운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리듬이나 정형성에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문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산문에 무한정한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장르적 관습(convention)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 장르를 통해 경험하고 또 기대해왔던 어떤 기율이나 원리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산문을 가장 잘 쓴 작가들은 누구일까. 내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심미적이고 예술적인 개성을 담은 산문을 쓴 분은, 일제강점기만 예로 든다면, 정지용과 이태준과 이효석과 김기림과 이상(李箱)이다. 이분들은 본인들의 주력 장르였던 시나 소설이나 비평만큼 아름다운 산문을 우리 문학사에 남겨주었다. 아쉽게도 김소월, 백석, 윤동주는 그분들이 남겨준 탁월한 시적 성과에 비해 산문적 충격은 약한 편이다. 반대로 산문에서 일가를 이룬 변영로, 양주동, 김진섭, 이양하, 피천득 등의 수필가들도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 점에서 근대문학사는 산문의 일대 부흥을 이룬 시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9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C. Baudelaire)는 산문을 일러 "영혼의 서정적 격정에도, 몽상의 파동에도, 의식의 충격에도 능히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한" 글이어야 하고, "이러한 이상(理想)은 무엇보다도 도시와 서로 무수하게 얽힌 복잡한 관계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운문인 서정시가 격정과 몽상과 충격을 순간적으로 주는 근대 이전 사회의 잔광(殘光)이라면, 산문은 막 떠오르는 근대 도시의 문학이요 서정시를 유연하고도 강하게 감싸고 있는 서광(曙光)임을 말함으로써, 자본주의가 형성시켜가는 '산문적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그만큼 산문은 근대의 본격적 산물인 셈이다.어쨌든 '산문'은 진솔한 고백을 통한 자기 확인을 욕망하면서, 특정 토픽에 대해 독자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타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줌으로써 그들의 삶과 생각에 충격과 변형을 주려는 계몽 의지가 그 안에 흐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여기에서의 계몽이 위압적 훈계나 자기 확신의 강요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공감에의 간곡한 요청이요 오랜 경험과 기억을 나누자는 호소일 뿐이다. 그러니 문장이 글쓴이의 인격이나 사람됨을 담고 있다면, 그 대표 사례는 아마도 산문일 것이다. 그동안 진력해온 비평과 달리 산문이 이러한 소통과 공감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산문집을 건네니까, 비평집에는 시큰둥하던 친구들도 더러 반색을 해준다. 네 글이 재밌다면서 말이다. 나로서도 재미난 경험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지금, 충격적인 정보를 스캔들화(化)하는 데 앞장서는 과잉 문장들에 사람들의 내면적 상처가 오히려 깊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을 고르고 다듬고 세련화해야 할 주체들이 그러한 언어 과잉을 통해 존재론적 잔명(殘命)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평화로운 위안을 주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의 충전을 꾀하는 산문을 통해 그러한 한시적 소음에서 벗어나 단정하고 강한 항심(恒心)을 가다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수요광장]외국인 앞에서만 멈추는 공정성과 형평성, 건강보험의 경우

[수요광장]외국인 앞에서만 멈추는 공정성과 형평성, 건강보험의 경우

6개월이상 머물땐 의무가입 법개정먹튀·재정적자 논란 연장선상 나와저소득에도 전체 평균 보험료 가혹부모·성년자녀도 부과대상 큰 부담빈틈없는 사회보장 형평성 담보부터지난 7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이제 국내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외국인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차치하고 그간 많은 시민사회단체 및 국제사회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보편적이고 차별 없는 건강권이 실현돼야 한다는 취지에 동감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내용과 과정을 살펴보면 본래의 취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작년 한때, 여론을 달구었던, 이른바 외국인의 건강보험 '먹튀'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2018년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재외국민 지역가입자 건강보험 재정수지 적자액이 2017년 2천51억원에 이르고 지난 5년간의 누적 적자액이 약 7천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어서 몇 십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몇 억원이 넘는 의료혜택을 봤다는 어떤 재외동포와 외국인의 사례가 크게 보도됐다. 여론은 매우 험악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2017년 건강보험 전체 재정수지 적자가 4조4천475억원에 달하는데, 외국인들이 부당하게 혜택을 받아간다는 점에 분개했다. 언론들은 먹튀 논란과 재정적자만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며, 외국인들이 부당한 혜택을 받아가고 국민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2017년 외국인의 직장가입과 지역가입을 모두 합친, 전체 외국인의 건강보험료 재정 수지는 오히려 2천490억원 흑자였으며, 2013년~2017년 5년간의 재정수지는 무려 1조1천억원의 흑자에 달한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임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외국인이 건강보험을 축낸다며 혐오와 차별의 근거로 사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이러한 논란의 연장 선상에서 정부의 이번 건강보험 개편안이 나왔다. 그렇다면 건강권이라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권 실현을 떠나, 보다 공정한 방향으로 건강보험이 변화됐을까?보건복지부는 외국인 등은 국내에 소득 및 재산이 없거나 파악이 곤란해 내국인 가입자가 부담하는 평균 보험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즉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한 이주민은 소득이 훨씬 낮더라도 최소한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인 11만3천50원을 내야 한다. 2018년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연말정산을 한 외국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전체 직장인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가난한 외국인의 주머니를 더욱 쥐어짜, 형편 나은 한국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꼴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사회보험 원칙을 강조했다. 이 기준은 내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내국인과 다르게 부양가족 범위도 매우 좁다. 내국인의 경우 폭넓게 세대원을 인정해 주지만, 이주민은 원칙적으로 개인을 하나의 세대로 보며, 세대주의 배우자와 19세 미만의 자녀만을 동일 세대 구성원으로 한다. 부모와 성년의 자녀가 각각 보험료 부과대상이 되어 훨씬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외국인도 모두 건강보험에 가입해서 사회보장에 빈틈이 없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형평성이 우선 담보되어야만 한다. 사실과 다르게 호도됐던 외국인의 명예 회복은커녕 더 가혹한 보험료 부과 그리고 보험료를 4회 이상 내지 않으면 강제 출국시키겠다는 겁박을 하고 있다.한국정부는 몇 달 동안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치료는커녕 비자를 취소시키고 내쫓을 수 있다는 냉혹함을 보이고 있다. 먹튀나 역차별이라며 성내던 언론과 여론은 더 가난한 외국인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부당함에는 침묵한다. 정말 이것이 한국사회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보건복지부는 문제가 생기자 문제를 파악해 보겠다고 한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의료 접근성의 문제, 농어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더 큰 비용을 내야 하는 지역가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직도 여전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이주민들, 그리고 소득 조사 없이, 더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의 문제까지, 공정하고 양심적인 조치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일까?/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수요광장]이름 있는 집

[수요광장]이름 있는 집

어린시절 부흥주택 문패 기억 또렷전세난민 늘며 도시 익명 공간으로캐슬·팰리스… 공동주택 이름 난해욕망대상·상품화로 자의적 조어법공간 걸맞은 의미부여 '건축의 완성'청량리 부흥주택, 1960년대 초 홍릉 서편에 서울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주택영단('LH'의 전신)에서 공급한 2층 연립형 국민주택단지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 200호가 넘으니 당시로는 적지 않은 규모의 집들이 골목을 마주하여 어깨를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작은 마당도 있었고, 옆집과는 낮은 울타리로 경계를 삼았지만 늘 열려 있는 문이 있어 자유로이 왕래를 했던 기억이 있다. 부흥주택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그 집과 골목 마당이 작다고 하는 것은 4년 전 우연히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다닥다닥 붙어있는 협소한 집과 골목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당시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러 가지 정보를 유추해보니 바로 그곳이 내가 살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 그곳은 나에게 절대로 작지 않은 우주와 같은 공간이었다.이제는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또렷이 남은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문패. 아버지의 이름이 한자로 새겨진 직사각형 나무 문패가 대문 기둥에 반듯하니 걸려 있었다. 문패는 그 집을 떠나 이사를 간 수유리 집에도 당당히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집안 경제사정의 악화로 전세난민의 삶이 시작되면서 문패는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다시 빛 볼 날을 기다리며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영영 찾을 수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문패가 필요 없는 익명의 공간들로 도시가 채워진 것이다.이름 없는 집 또는 무슨 뜻인지 모를 난해한 이름과 숫자로 호명되는 집이 익숙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집에 의미 있는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한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내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절골마을'이다. 천년고찰을 품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다. 우리 마을은 최근 개발이 허용되면서 20~30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캐슬OOO, OOO몽마르뜨, OOO파크, OOO하우스. 우리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공동주택의 이름들이다. 어쩌다 우리 공동주택의 이름들이 이렇게 국적불명의 언어공해 수준이 되었을까? 그것은 집이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시장에서 쉽게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택공급 사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10평대 아파트에 '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오늘날 20~30평 내외의 중소형 아파트에 '팰리스', '캐슬', '로얄' 등의 이름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물며 '빌라'는 이제 저층 주거지 다세대주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들은 거의 다 사용되었고 기존의 이름들과 차별화를 위한 자의적 조어법이 난무하다 보니 난해한 이름들이 속출하고 있다.아무튼 주택을 비싸게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의 고민의 결과이고 어쩌면 집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을 팔아야 하는 사업자들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자 하는 주민들이 집 이름을 짓는다면 저런 이름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구름정원사람들, 오시리가름, 하심재, 푸른마을, 가치이은, 꽃보라마을, 눈뫼가름, 소행주, 어쩌다집, 일오집, 오우가… 집이 위치한 지역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의미와 사연이 있는 공동체주택의 이름들이다.우리 집은 '여백'이다. 집에 대한 덧없는 욕망을 비우고 그 여백을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으로 채워가자는 뜻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우리는 다세대주택 두 개 동을 나란히 지으면서 각 건물에 '파란여백'과 '하얀여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물리적으로 집을 짓는 것만이 건축이 아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집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것으로 건축은 완성된다. 우리도 스스로의 언어로 집 이름을 한번 지어보자. 그곳은 더 이상 그렇고 그런 콘크리트 더미가 아니라 내겐 너무나 특별한 삶의 공간, '이름 있는 집'이 될 것이다./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

[수요광장]어느 작은 단체의 소통 지혜에 대하여

[수요광장]어느 작은 단체의 소통 지혜에 대하여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둘러싼 의혹청문회서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언론등 사회갈등 유발 책임 못피해반면 기자로 활동 발달장애인 '감동'그 나름의 노력을 우리가 배워가야 요즘은 TV를 켜고 싶지가 않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온통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를 둘러싼 의혹 보도뿐이다. 도무지 뉴스를 보고 싶은 욕구가 안 생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넘쳐나는 의혹에 더는 실망감과 허탈감을 맛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엄청난 기세로 미디어를 점령, 국민적 관심사가 돼버렸다. 어쩌면 관심사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분노와 갈등의 기제로 작동하는 것 같다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무더위에 지친 여름의 끝자락을 다시 또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듯해 갑갑하다. 조 후보자에 자격 논란과 의혹은 내달 2~3일 청문회를 통해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 확정단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매체는 긴급 여론조사를 통해서 조 후보 반대 여론전까지 가세하는 것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 문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더 큰 문제는 따로 또 있다. 조 후보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거나 혹은 반대로 의혹 내용과는 다른 결론이 난다 해도 정치권에 대한 이미지 손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불신 속에서 국민들이 입었을 상처 또한 회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조 후보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여당, 야당과 의혹 보도에 열을 올린 언론까지도 사회적 갈등 유발에 무죄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불필요하게도 과도한 국민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아무튼 조 후보에 대한 의혹 보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난히도 길고 힘든 여름처럼 느껴진다. 일본의 경제보복 등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 관련 복잡하고 무거운 이슈, 조 후보의 의혹에 대한 여야의 대립 등 온통 소통의 부재로 불거진 일이다. 물론 외교 문제는 국가 간 복잡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소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거운 이슈로 얼룩진 무더운 8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그나마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전화를 걸어온 용건은 '휴먼에이드'라는 잡지 표지에 자기 사진이 나왔으니 이 잡지를 꼭 사서 보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이유로 잡지 표지에 얼굴이 나왔냐고 물었더니 언론사 기자가 됐다면서 발달장애인 특유의 하이톤에 격앙된 어조로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말해 필자도 함께 크게 웃었지만 실은 깊은 감동으로 한동안 먹먹했다. 사실 이 단체와는 필자가 봉사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인데, 발달장애인들이 읽기 쉽도록 '쉬운 말로 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글 취약계층에게는 쉬운 말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일들은 발달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일반인들의 편견 불식에 기여한다. 쉬운 말 뉴스 만들기로 고생하면서 그리도 많은 품을 들이더니 어느덧 발달장애인을 기자로 채용할 정도로 성장한 것 같아 놀라웠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발달장애인 취재기자 추가 모집이라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세상에 없던 일이라 더 놀라웠다.굳이 필자가 이 단체 이름까지 밝히며 소개하는 이유는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차별받는 이들이 보여준 특별한 소통 능력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보통사람과 다름의 능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의 콘텐츠는 가치가 있어 보인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이 취재하고 기사 쓰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뭔가 나름의 소통 능력을 키우며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올여름은 아베의 경제 도발과 복잡 미묘한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 사회의 체감 온도는 더 높고 견디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법부무장관 후보자의 의혹까지 불거져 불신과 갈등은 증폭되고 사회적 소통 능력은 축소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비록 작은 단체이지만 이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한 소통 지혜를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수요광장]스포츠인들의 방송 진출

[수요광장]스포츠인들의 방송 진출

다양한 예능프로서 재능·끼 '발휘'신선함·재미 선사 시청자와 '소통'종목 호기심 유발 저변확대 효과도선수들 인정받는 '스포테이너' 위해꾸준한 운동·분야별 자기계발 필요요즘 TV를 틀면 그라운드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스포츠스타들의 예능프로 출연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두 곳의 프로그램이 아닌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스포츠스타들은 다양한 재능과 끼를 발휘하며 시청자들에게 신선함과 더불어 많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과거만 해도 운동선수는 운동에 집중하고 TV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겉 멋들고 운동을 등한시 한다는 말이 있었다. 특히 TV 출연 후에 성적이라도 안 좋아지면 많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스포츠스타들이 TV에 자주 등장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운동선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운동 경기에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운동선수라고 운동만을 해야하고, 운동만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 달리 선수들이 운동이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스포츠에서의 이런 변화된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시합을 할 때의 엄숙하고 강한 모습만이 전부가 아닌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인간미 넘치는 모습도 보여주며, 이미 스포츠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더불어 TV를 통해 스포츠스타를 만난 시청자들과 한발 더 가까워질수 있다. 결국 운동경기도 내재되어있는 끼와 능력을 발산하여 시합에 승리하고 팬들을 즐겁게하는 서비스업종이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운동선수들의 TV출연을 통한 인기상승은 당연지사라고 생각된다. 또한 스포츠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친숙해지고 저변이 늘어나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TV를 통해 익숙해진 선수들을 통해 스포츠 종목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도 유발 할 수 있다. 실제로 종영이 된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예능과 스포츠를 접목한 프로그램 이후에 많은 종목들의 저변이 상당히 확대된 경험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방송이란 것이 그 종목과 선수를 알리는데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몇몇 운동선수들은 은퇴 후 꿈이 방송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개인기도 연마하고 다양한 방송출연으로 내공을 쌓아가기도 한다. 특히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이 늘면서 운동선수들의 방송진출도 자연스레 늘고 있는 추세다. 방송까지 나올 정도의 커리어라면 본인관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수준이라고 인정한다.스포츠선수 출신의 예능인을 뜻하는 신조어로 스포츠(Sports)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인 '스포테이너', 이제 인정받는 스포테이너를 꿈꾸는 운동선수들이라면 더욱더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본업인 스포츠도 게을리해서는 안될뿐더러 다양한 분야의 자기계발도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청자들의 보는 관점이 높아지고 방송의 콘텐츠들도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 환경에서 스포츠스타들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콘텐츠 개발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인에서 방송인으로 성공적인 커리어 전환(Career transition)을 한 씨름 천하장사 강호동, 축구의 테리우스 안정환, 농구의 대한민국 국보급 센터 서장훈 선수 등과 같은 경우도 소재의 다양성과 자기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알고 있다.운동선수들의 장점인 성실함과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노력하고 연구한다면,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송계에도 운동선수들은 시청자들과 국민들에게 참신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유승민 IOC 선수위원·대한탁구협회장

[수요광장]그들 속의 우리, 우리 속의 그들

[수요광장]그들 속의 우리, 우리 속의 그들

日, 식민지배 사과·우경화반대 존재국내도 아베의 속내 지원자들 있어이번 사태 한일간 단기적 갈등아닌역사에 얽힌 오랜 저항의 싸움인 셈과정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되는 이유최근 한일 간의 갈등이 공식적으로 발생하고 번져가면서 둘 사이의 오랜 역사를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는 지적 흐름이 커졌다. 관계 서적도 많이 팔리고 있고,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는 듯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동안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해묵은 역설로 곧잘 그려져왔다. 지리적 인접성과 오랜 교섭 경험에서 발생한 근린성이 가까움이었다면, 둘 사이에 엄존하는 역사적 적대감은 오랫동안 서로를 멀게 했던 정서적 실체였다. 또한 일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근대의 표본 노릇을 하곤 했다. 우리는 일본식 자본주의의 핵심을 간취하고 활용하였고, 일본식 행정 직제나 경제 시스템을 선진적 전범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로 표현되는 침략과 지배와 폭력의 엄연한 역사는 그러한 경험과는 정반대 쪽에서 항일 혹은 극일(克日)의 정신을 요청했던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하나의 민족은 그것을 구성하는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여러 조건과 함께 민족의식이라는 주관적 측면이 맞물려 형성된다. 그 점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공유하고 있는 민족 경험에서 일본은 언제나 완강한 적대감 속에 위치해 있었다. 중세기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반일의식은 근대 식민지시대를 경험하면서 한층 더 증폭되었고, 우리에게 일본이란 언제든지 우리를 침탈할 수 있는 폭력의 근원지로 암암리에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한일 간 양가적 교섭 양태는 우리에게 선망과 혐오라는 이중의 정서적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이다.모든 주체에게는 자신을 개진하기 위해 부단히 마주 보면서 검색 및 수정을 할 수 있는 타자가 필수적이다. 타자는 본래 자신의 반성적 거울이자 자신 안으로 들어온 능동적 의식의 촉발자인데, 우리로서는 일본을 그 자리에 놓을 때 역사적 적실성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해석의 주체가 비록 우리 자신이지만, 일본을 통해 우리 스스로 해석의 대상이 되는 역설적 전환을 그동안 경험해온 것이다. 투항주의적 동일화 욕망에 의한 친일 성향과 피해 경험을 넘어 정당한 자기 복원을 목표로 했던 저항 성향이 그 맥락으로 나타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저항'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유형, 무형의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값을 주장하는 일련의 사유와 행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하나의 힘에 대한 반작용과 역동성(逆動性)을 그 핵심 속성으로 삼는다. 일본이라는 타자를 통해 우리를 세워왔던 엄혹한 역사의 흐름이 그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한일 간에 드러난 이번 갈등은 그것이 역사 해석 차원이든 경제 차원이든 단기적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관점을 견지해야 할까? 확연하게 드러난 현상은 일본의 아베 지지 세력과 우리 쪽 일부 세력이 보여준 절묘한 정치적 화음(和音)이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정부가 과거 일에 빠져 한일 관계를 그르친 것으로 규정하였다. 양국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들의 역사 감각이 오랜 민족 경험을 뛰어넘어 놀랍게 일원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문제의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으며 제대로 된 역사 해석과 입장 천명을 통해 일본이 새로운 길에 들어서야 함을 역설하는 이들도 일본과 우리 쪽에서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니 이번 사태는 '우리-그들'의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그들 속의 우리'도 '우리 속의 그들'도 있는 복잡한 형식을 띠고 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김응교 교수는 "일본의 민주시민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과 더 자주 대화해야 한다. 일본인들과 대화를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고 그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일본에도 식민지배의 사과와 우경화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고, 한국에도 아베의 속내를 지원하면서 민족 경험을 훼손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한일 간 단기적 갈등이 아니라, 양국 역사에 얽힌 오래고도 선명한 존재론적 저항의 싸움인 셈이다.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지면 안 되는 까닭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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