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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내 편 네 편 가르지 말아야

[수요광장]내 편 네 편 가르지 말아야

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를 두고진영논리로 민심 갈리는 안타까움조국·정의연 사태 때와 다를바 없어법정스님·김수환추기경 행보 반추지금은 다툼이 아닌 국민단합 중요'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물불 안 가린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입니다. 스님은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나누는데, 경전을 연구하고 강론하며 수행하고 포교하는 스님이 이판승이고, 사찰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고 종무를 돌보는 스님이 사판승입니다. 이판승의 꼭짓점은 종정이고, 사판승의 꼭짓점은 총무원장이지요. 가끔 이판과 사판을 두루 거친 스님도 있습니다. 이판이 없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을 수 없고, 사판이 없으면 가람을 존속시킬 수 없지요. 이판과 사판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고 동반자라는 방증입니다.살아보니 세상사는 일이 수학문제처럼 완벽하게 풀리지 않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구승이나 대처승이나 추구하는 진리와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지요. 기독교, 불교, 천주교도 추구하는 길이 다를 뿐 궁극적인 지향점은 같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선종과 입적을 하신 종교지도자로 한 시대의 큰 스승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은 걸어온 길이 다르지요. 추기경님이 열 살이 더 많아 나이 차이가 있고, 출신도 영·호남으로 다릅니다. 종교 역시 천주교와 불교로 다르니 당연히 삶의 철학이나 추구하는 가치관과 방향이 다르고, 견해 차이도 있었을 겁니다.그런데 두 분의 인연은 길동무처럼 오랜 세월 교감하며 각별하게 이어졌지요. 특히, 두 분은 개인적인 친교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 벽을 허무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정 큰스님이 길상사 개원 법회를 열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참석해 축사를 해 주었지요. 법정 큰스님은 그해 성탄절 때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했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자 큰스님은 언론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시(詩)를 기고하기도 했지요. 두 분의 깊고 넓은 생각과 넉넉한 행보는 아름다운 우정이자 격 높은 어른의 품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최근 생을 마감한 두 명망가의 죽음을 두고 민심이 갈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겨났습니다. 진영논리(陣營論理)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 것이지요. 자신이 속한 진영의 죽음은 미화시키고 상대진영의 죽음은 폄훼하는 이분법적인 행태를 보인 것입니다. 내 진영의 이념만 옳고 상대 진영의 이념은 그르다는 논리는 위험한 발상이지요. 답을 정해놓고 꿰맞추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을 포함한 사회전체가 진영논리에 갇혀있는 건 불행한 일이지요. 내편이라고 다 옳은 게 아니고 상대편이라고 다 그른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세간에 진영논리가 극명하게 대두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였지요. 그리고 조국사태 이후 촛불 행렬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눠지고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펼쳐졌습니다. 정의연 사태를 두고도 진영에 따라 주장하는 논리가 상반되고 있지요. 분명한 것은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진영논리에 갇혀 내 편 네 편 가리면 우리의 내일은 크게 기대할 게 없어지지요. 현상을 현상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합니다. 좌파, 우파, 극우니 빨갱이니 하는 진영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밝은 미래는 없습니다.살다 보면 죽자 살자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사람이 있지요.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그리 쉽고 간단하게 풀리지도 않고 100% 옳은 일도 없지요. 정치적·이념적으로 편을 가르고, 지역별로 나누어 편향적으로 흘러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은 내 편, 네 편 아옹다옹 다툴 때가 아니라 외환 위기나 코로나19를 극복하며 보여준 국민적 단합이 중요하지요.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큰스님의 큰 사랑과 자비의 행보, 그 가르침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편 가르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야 사랑과 평화가 온다는 것 아니겠는지요./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수요광장]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

[수요광장]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

스터디셀러 작가 '수필철학' 3인방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탄생 100주년김태길, 간결한 글 독자 공감·소통 안병욱, 민족정신 녹인 삶의 메시지김형석, 관념·대상 인생사로 풀어내김태길, 안병욱, 김형석 세 분은 모두 주요 대학의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독창적 문장과 사유를 통해 정통 수필가로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1960~80년대에 젊은 날을 통과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분들의 이름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분들은 독자들을 많이 거느렸던 스테디셀러 작가들이기도 하다. 세 분은 1920년생 동갑내기였으니 따라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된다. 이분들이 수행한 수필과 철학의 상호 결합 방식을 두고 '수필철학(essay philosophy)'이라고 부른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약간이나마 냉소적 반응을 품은 듯한 명명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철학적 사유의 소통을 가능케 한 문장의 친화력으로 이분들 작품의 정수를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김태길은 충북 충주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첫 수필은 1955년 '사상계'에 발표한 '서리 맞은 화단'이었다. 1961년 첫 작품집 '웃는 갈대'를 시작으로 하여 그는 누구보다도 철학과 문학의 접점을 찾으면서 그 장르로 수필을 선택했고, 창작 과정에서 공감과 소통을 가장 중히 여긴 수필가로 인정받고 있다. 단아하고 아담한 문채(文彩)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글을 주로 썼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글을 쓴다는 것'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은근한 함축이 담긴 글을 사랑한다"라는 그의 좌우명을 실천한 사례이다. 그의 글이 독자를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이끄는 것은 이러한 글의 품격과 구체성 때문이다. 중후한 철학적 사색과 매끈한 글쓰기에 매진했던, 스스로의 글쓰기를 즐겁고도 성실한 작업으로 여겼던 수필가가 김태길이었다.안병욱은 평남 용강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생활적 구체성에 토대를 둔 철학적 수필을 쓰면서 일찌감치 여러 베스트셀러를 펴내 삶과 인간에 대한 개성적 메시지로 주목받았다. 안병욱의 이념적 기반은 흥사단의 무실역행 정신이었는데,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의 맥락에 놓인 민족정신이 그 실질이었다. 안병욱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도산 안창호의 사상은 이러한 민족정신으로 충일한 것이었다. 명징한 문장과 진리 추구의 열정으로 당대 소개되기 시작한 서구 철학의 요체를 전달해준 공로도 크다. 대표작 '행복의 메타포'는 행복에 대해 일상적 경험과 순정한 필력으로 담아낸 명편이다. 사랑과 노동과 신앙을 행복의 정의로 제시한 이 작품은, 인생의 의미를 행복에 둔다고 할 때 그 실체가 보람을 느끼며 사는 긍정적 생활 태도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펼쳤다는 점에서 수필의 본질이 잘 드러나고 있다.김형석은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 예과와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중학교 교사로 생활하다가 1954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수필은 어떤 특별한 주제의 구심보다는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철학적 관념이나 대상을 구체적 인생사로 풀어내는 경향이 강하다. 순간과 영원을 오가는 수필가로서의 부지런하고 단아한 글쓰기 방식이 그의 양도할 수 없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종교적 감수성에 토대를 둔 공감과 친화의 문장을 통해 진중한 철학적 진경을 열어놓았다. 그의 대표작 '수학이 모르는 지혜'는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증명해준다. 눈앞의 이익에 너무 매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역리(逆理)를 친절한 우화의 제시를 통해 알게 해주는 인생론적 수필이다. 현역으로서 아직도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그의 창작 여정이 수필의 한 역사를 쓰고 있는 듯하다.이처럼 세 분은 우리 수필의 품격과 진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난해한 개념으로 인해 다가가기 어렵기만 했던 철학이라는 학문을, 수필이라는 소통 지향적 장르와 결합하여,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끔 한 이분들 공적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기를 소망해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수요광장]방송 프로그램 효능감, 다양한 편성에서 시작된다.

[수요광장]방송 프로그램 효능감, 다양한 편성에서 시작된다.

종편 오디션 프로그램 흥행 힘입어 요즘 '트로트 전성시대' 거센 열풍문제는 인기콘텐츠 우려먹기 병폐방송사마다 비슷한 예능프로 범람획일화는… 시청자 피로·외면 불러전에 없이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트로트 예능이 온통 방송가를 점령하면서 양적 성장은 물론 사회적 평가까지 바꿔놓고 있다. 얼마 전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이 '백종원' 대세론 거론 당시 '임영웅'(트로트 인기 가수)은 어떤가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물론 조롱에 가까운 비유이고 정치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트로트 열기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사실 트로트 장르는 지난해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의 인기 덕분에 재조명이 시작됐다. 올 상반기 '미스터트롯'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까지 트로트 예능프로가 11월까지 중점적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하니 그 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물론 트로트의 가치나 관련 예능 방송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중심 K팝 일색인 한국 대중음악 장르가 트로트 열풍으로 바뀌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송가인'을 필두로 트로트가 중장년층에게 미친 인기몰이 기세는 실로 엄청났었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는 1020 세대까지 즐기는 장르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덕분에 뽕짝이라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장르가 인기 높은 트로트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방송 광고 수입 하락세 속에서도 트로트 예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4월 언론사 경영 성적 발표에 의하면 JTBC와 채널A가 각각 252억원, 158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오직 지난해 '미스트롯' 열풍 효과를 톡톡히 본 TV조선만 14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트로트는 예능계의 핫 콘텐츠로 등극한 것이다. 이처럼 트로트 열풍이 방송가나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그러나 일각에서는 넘쳐나는 트로트 예능으로 인한 시청자의 피로감 문제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방송사들이 스타 트로트 가수들을 앞다투어 출연시키거나 흥행위주의 과도한 트로트 예능이 국민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이처럼 트로트 예능 문제 노정 속에서 필자는 무엇보다 방송 예능의 획일성이 걱정이다. 심각한 수준의 획일적인 방송 프로그램에서 과연 효능감이 있을지 우려스럽다. 인기 콘텐츠 우려먹기는 방송사의 고질적 병폐가 아니던가? 새로운 시도 없이 오직 인기 프로그램만 쫓아 방송사마다 비슷한 콘텐츠 범람은 상상만으로도 피로를 느끼게 해준다. 어떤 채널을 돌려도 동일 출연자가 나오거나 엇비슷한 프로그램일 때 그 피로감을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편성되어야 할 이유는 많다. 시청률과 트렌드만 쫓다 보면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방송 프로의 효능감은 낮아진다.방송 프로그램의 효능감은 각 프로그램이 가지는 독창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가미된 프로의 편성 속에서 가능하다. 그야말로 재탕 삼탕 우려먹기 식의 매번 비슷한 프로를 봐야 하는 식상함 속에서는 방송프로의 효능감을 찾기란 어려운 것이다. 시청률에 매몰되어 비슷한 장르 인기 프로만 고집할 때, 결국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정 트로트 가수의 인기몰이도 좋지만 계속 같은 톤의 예능을 고집할 때 이들의 이미지는 곧 소진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트로트 예능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능프로 편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TV를 보면서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고 싶은 시청자들의 소박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일상 속에서 가족 간 소통에 도움이 되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긍정의 가족관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그립다. 저널리즘의 여러 연구에서 나온 것처럼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상식과 개념형성 기여는 물론 문화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획일적인 트로트 예능으로 피로감을 주기보다 효능감을 높이는 시사 교양프로 등 다양한 편성이 필요한 이유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수요광장]야구장의 추억

[수요광장]야구장의 추억

고교야구 성지 동대문구장에 이어숱한 명승부 잠실구장이 사라진다평생 팬을 만들고 소설가도 만들고미·일 프로구장 '전통 고수'와 비교개발 아쉽지만 새구장의 탄생 기대잠실야구장이 사라진다. 지난 5일 서울시는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민간투자사업' 사업자 선정 공고를 연내에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존 야구장을 허물고 새 야구장을 건설한다. 새 구장은 더 크고, 위치도 한강에 가까워진다. 바다와 인접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같은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설계에 따라서는 홈런 타구가 한강까지 날아 갈 수도 있다. 강물에 '풍덩' 빠지는 야구공을 상상해본다.잠실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개최를 계기로 만들었다. 그 대회 결승전이 한국야구사의 최고명승부인 한일전이다. 선동열 선수의 호투, 김재박 선수의 개구리 번트, 무엇보다 8회말 터진 한대화 선수의 역전 3점 홈런은 전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이후 프로야구의 숱한 명승부가 그곳에서 펼쳐졌다. 새 야구장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동시에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이미 우리는 동대문야구장을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 그 자리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우주선같이 내려앉아 있다. 중국 관광객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지만 야구의 기억은 다 사라져 버렸다. 미국 프로야구단이 방한했으며(195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국내 최초로 야간조명시설(1966년)이 설치되었고, 고교야구의 성지였으며, 프로야구 개막전(1982년)이 벌어진 것도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필자의 고향은 수원이다. 수원에 야구장이 생긴 것은 성인이 된 후인, 1989년이다. 초등학교 시절, 형의 손을 잡고 동대문야구장을 처음 찾았을 때의 설렘과 경이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동대문야구장은 사라져 버렸다.프로야구 경기장은 도심지(都心地)에 있다. 일과를 마친 팬들이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장이 생기면 새로운 중심지가 만들어진다. 1980년대초 잠실 일대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야구장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연결되면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그러나 야구장의 활용도는 낮다. 시범경기, 포스트시즌을 포함해도 잠실야구장의 사용일수는 연간 200일이 안 된다. 경기 시간도 짧고, 겨울에는 완전 휴장이다. 연중무휴 사용하는 영화관과 비교된다. 도심에 위치한 야구장 부지는 개발사업자의 관심 대상이다. 최근의 마이스사업으로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고시되었다. 개발의 좋은 점도 있지만, 야구장은 허물어지고 팬들의 추억도 사라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곳이 있다.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필드는 1914년에 지어졌다. 1988년에야 야간조명시설을 설치했다. 그때까지 종종 일몰(日沒) 서스펜디드(일시정지) 게임이 발생했다. 메이저리그 최고(最古)의 구장인 보스턴의 팬웨이파크는 1912년에 개장했다. 관중 수용규모가 가장 적다. 이들 구장은 건설된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고시엔(甲子園) 구장은 갑자년인 1924년에 개장했다. 고시엔대회에 출전한 고교 선수들이 기념으로 그라운드의 검은 흙을 퍼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시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한신(阪神) 타이거스도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홈구장을 양보하고 원정을 떠난다. 오사카(大阪)에 고시엔이 있다면, 도쿄에는 1926년에 개장한 메이지진구(明治神宮)구장이 있다. 우리나라의 임창용 선수가 활약했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하루키는 1978년 진구구장에서 야쿠르트의 개막전을 보다가 선두 타자의 타구 소리를 듣는 순간, 소설가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반면에 개발을 택한 곳도 있다. 도쿄돔은 예전의 고라쿠엔(俊樂園) 야구장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었다. 그곳은 왕정치(王貞治) 선수가 통산 756호 홈런, 세계기록을 세운 역사적인 장소였다. 도쿄돔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다. 대규모 관객이 참여하는 콘서트, 대형 이벤트와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도심의 복합문화공간인 것이다.야구장은 야구를 하는 곳이지만, 팬들에게는 각자의 추억을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생 야구팬으로 만들기도 하고, 소설가로 만들기도 한다. 추억의 잠실야구장이 사라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 새로운 야구장의 탄생을 기대한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수요광장]누구나 가면(假面)을 쓰고 살아갑니다

[수요광장]누구나 가면(假面)을 쓰고 살아갑니다

이면에는 나를 초월한 욕망의 갈구힘들때 술한잔 기울이며 태연하듯삶의 억압·제약 속 낭만·해학 담겨그래도 눈빛은 내면을 엿볼수 있어감춰진 본모습 '이해' 사랑의 출발복면을 쓴 사람들이 얼굴을 감춘 채 노래 경연을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누구인지 맞혀보는 재미가 참 쏠쏠하지요. 감추는 것, 그게 가면의 본질입니다. 실제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모순된 일이지만, 민낯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울 때 가면은 좋은 방편이기도 합니다. 얼굴을 감추고 자신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려는 욕망, 그게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면이 소멸하지 않는 이유이겠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불리는 명작입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면무도회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대목이지요. 가면 속 눈빛에 빠져드는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가슴 설렘이 그들을 걷잡을 수 없이 불타게 합니다. 얼굴은 가려졌지만, 감춰지지 않는 내면이 엿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우리나라에서는 가면이 세상을 풍자하는 용도로 많이 쓰여졌지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양반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양주별산대놀이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주인공은 탈을 쓰고 한마당 연회를 신명 나게 이끌어갑니다. 물론, 그것은 흥겨운 잔치가 아니었지요. 가면 속에서 험한 세상과 고관대작들을 조롱하는 사설은 어느 사랑 타령보다도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지요. 영화 속이지만, 광대 스스로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억압과 제약 속에서도 즐거움과 정겨움과 낭만이 있는 가면 세상. 서양의 가면무도회가 소통하며 즐기는 모임이라면 우리 가면극은 주로 세상을 비판하는 해학과 풍자의 한마당이었지요. 그 게 우리 삶의 가치이자 여유입니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하늘이 내려준 인연을 맺고 사는 부부, 피를 나눈 자식, 형제자매간에도 감추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오랜 세월 함께 지낸 친구로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믿었던 얼굴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불찰이지만, 가면치곤 너무 무섭고 가혹했지요. 그러나 스스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르다고 그게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 친구의 생각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내를 감추고 아무 일 없는 듯 지내고 있는 저도 가면을 쓴 셈이지요.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과 다른 행태를 보는 건 참으로 무섭고 위험한 일이지요. 하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게 인생살이기도 하니까요. 세상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니 말이지요. 하지만 살면서 지켜야 할 상도(常道)는 있습니다. 그것마저 외면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그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지요.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러 놓고도 아주 당당하게 자기명분을 세우려는 사람이 우리를 당혹 시킬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왜곡된 프레임에 가두려는 사악한 일까지 벌여 세상이 무섭다는 걸 절감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지요.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사는 게 힘들고 버거울 때 초승달 눈 흘기는 포장마차에 들어 눈물이 녹아든 술잔을 기울이곤 태연한 얼굴로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이기도 하지요.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꺼풀만 벗기면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지요. 이렇게 보면 남을 속일 수밖에 없으면 가면이라도 쓰는 게 사람다운 몸짓이 아닐까요. 다만, 가면을 왜곡에 이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가면을 써도 사람 된 도리와 본분을 잊어선 안 되지요. 가면을 만든 이유도 최소한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게 숨구멍을 열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가면 속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그 모습을 이해해 주는 것, 이게 사랑의 출발이 아닐까 합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수요광장]다시 유월 앞에

[수요광장]다시 유월 앞에

대표적 표상은 6·25전쟁 6·10항쟁비극과 혁명의 비대칭 데칼코마니70돌 6·25, 분단·학살 참혹함 경종6·10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 굄돌평화·개혁의 상징 '균형 실천' 시점유월을 표상하는 사건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오랫동안 우리 역사에 가장 어둑한 그늘을 드리운 것은 1950년 6·25전쟁이었을 것이다. 한때 '사변'이나 '동란'으로 명명되다가 이제는 정부 공식용어로 '전쟁'이 채택되어 쓰이고 있다. 이 전쟁은 호국영령이나 현충일, 보훈 같은 단어로 금세 치환되는 비극적 성격을 강하게 품고 있다. 하지만 유월에는 1987년에 일어났던 6·10항쟁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념비도 있다. 그해 유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학생과 넥타이부대의 시민혁명이자 직선제 개헌 투쟁이기도 했던 사건이다. 이렇게 유월은 전쟁과 호국과 분단이 한 축을 이루고 혁명과 개혁과 민주주의가 한 축을 이루는 비대칭적 데칼코마니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달이다.올해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은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전이자 이념전이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동족상잔이었던 이 전쟁은 적의(敵意)와 학살, 월남과 월북, 휴전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부산물들을 생성해냈다.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는 전쟁 동안 '마을'들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에 주목했는데, 말하자면 당시 마을들마다 벌어진 학살의 갈등 구조를 낱낱이 밝힌 것이다. 마을마다 깊은 골로 잠복해 있던 신분갈등, 계급갈등, 친족갈등, 종교갈등, 이념갈등 들이 전쟁기간 폭발한 실례들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이 저작은, 평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그룹을 치안 부재의 상황에서 어떻게 제거해갔는가를 소상한 증언 채록을 통해 들려준 것이다. 전쟁은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더 참혹한 비극을 안겨준다는 역설을 웅변해준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반전(反戰)의 메시지로 경청할 만하다. 그녀는 전쟁의 야수성과 그 잔혹한 희생에 대해 주목하면서, 500여 명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전쟁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전쟁에 참여했던 소녀들의 실감 있는 증언을 기록하면서 그녀는 전쟁에 기꺼이 참여했던 소녀들이 얼마나 순진한 이상 속에서 비극을 겪어갔는가를 들려준다. 이 두 권의 책은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까닭을 충실하게 암시해준다. 그야말로 전쟁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전폭적인 상호 패배의 행위가 아니었던가.올해 33주년을 맞는 유월항쟁도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할 만한 민주화운동의 큰 봉우리이다.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하자 권력 쪽에서는 의문사로 덮으려고 했지만 시민들은 그의 죽음을 도화선으로 하여 장엄한 항쟁의 역사를 써가게 된다. 4월13일 대통령 전두환의 호헌 선언과 5월18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천주교 사제단의 성명으로 시작된 이 항쟁은 6월9일 대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면서 전면적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을 전국적으로 이어가게 된다. 결국 29일 여당 대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면서 이 항쟁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면서 이후 펼쳐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확연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이처럼 광주항쟁에서 유월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흐름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더없는 굄돌이 되어준 것이다. 항쟁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였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있었으며, 촛불혁명 등 시민혁명들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지금 현대사에서 가장 훤칠하고 선명한 민주주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이제 대한민국은 전쟁을 항구적으로 억지하고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키워가는 평화와 개혁의 쌍두마차에 올라타 있다. 양자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설계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염병이나 공황을 당했을 때 전쟁을 돌파구로 택하곤 했던 파시즘 세력이 역사 속에 늘 있었다는 점을 떠올릴 때, 우리는 코로나 대응을 잘하여 민심이 응집해준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였거나 없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쟁과 파시즘이(전염병까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을 기원하면서 다시 숭고한 희생의 유월 앞에 서 있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수요광장]언택트 시대, 디지털 부적응 등 격차에 대한 해법 마련해야

[수요광장]언택트 시대, 디지털 부적응 등 격차에 대한 해법 마련해야

교수들 '온라인 강의 적응' 어려움비대면 '라이프 스타일' 처음 경험정부 K-뉴딜 '격차해소' 대책 없어산업 성장할 수록 '소외자' 많아져패러다임 전환·대안마련 절실하다마스크를 낀 채 헤드폰을 장착하고 마이크를 확인한다. 마이크를 입에 너무 가까이 댈 경우 거친 숨소리나 불필요한 소음이 발생할 수 있어 체크는 필수다. 노안이 온 필자는 화면에 띄운 PPT를 잘 볼 수 없어 안경을 써야 한다. 마스크와 헤드폰, 마이크와 안경까지 착용하면 우주복이라도 입은 듯 거북하고 갑갑하다.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으면 비로소 온라인 강의 준비 끝이다.디지털 문화에 취약한 필자는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생소한 것에 눌려 지쳐버리는 느낌이 든다. 이게 다가 아니다. 분명 온라인 수업임에도 오프라인 수업과 다름없이 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온라인의 장점은 공간적 제약 없는 접속 아니던가? 누구나 아는 이 사실을 몰라서 멀리 학교까지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필자와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온라인 강의 적응에 어려움이 많다. 온라인 강의에 대한 학교 차원의 별도지원이 없다. 교수들은 각자도생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기 일쑤다. 온라인 수업은 파일을 저장해서 학교에 제출해야 되는데 파일 저장 대신에 취소를 눌러 버리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과 비대면의 디지털 방식은 교감이 없는 탓인지 불안하다. 특별한 피드백 없이 표정만으로도 교감이 이뤄지는 오프라인 강의실하고는 사뭇 다르다. 필자의 경우는 대학에서 20년 이상 강의를 해 온 터라 강의 자체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온라인 강의는 시작부터 끝까지 불안감과 부담 자체다. 이런 연유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조교의 도움이 있는 학교로 가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인데 왕복 3시간이 소요되는 학교로 가는 이유는 어이없게도 디지털 부적응 문제인 것이다.온라인 수업 디지털 부적응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강의의 질적 하락일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익숙지 않은 강의 방식이 주는 불필요한 긴장은 강의 집중을 방해한다. 실제로 온라인 강의 시작 한 달이 지났지만 익숙해질 기미가 없다. 어쩌면 종강 무렵에나 익숙해질지도 모르겠다.필자를 포함,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부적응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렇게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변화 속 혼란을 겪게 하고 있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비대면으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제도와 관행 속에 변화된 디지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부적응 문제가 속출한다.최근에 정부는 K-뉴딜 정책을 천명하며 디지털 산업 발전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디지털 산업 발전 구상 어디에도 디지털 격차로 인한 부적응 문제 등 격차 해소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온라인 강의 특성과 교수 학습방법이 조화롭게 훈련돼 있을 때 온라인 강의가 잘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디지털 성장 플랜도 국민 모두 적응하고 잘 따라갈 수 있어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디지털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디지털 중심으로 산업 구조 전반이 바뀔 것이란 얘기다. 한마디로 코로나와 언택트 비즈니스는 서로 맞물리면서 디지털 중심으로 세상의 자산이 이동되고 있다. 디지털 발전 속도에 비례해 부적응이라는 사회적 문제도 함께 발생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달라진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은 필수인 것이다.디지털 세상을 선도하겠다는 국정 기조에 맞춰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디지털 격차로 고생하며 소외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그저 아날로그 세대의 문제쯤으로 봐서는 안 된다. 디지털 격차에서 오는 정보의 불균등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격차는 빈부의 격차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 있다. 디지털 부적응과 정보격차 해소 방안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 부적응 문제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디지털 격차 해소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수요광장]슬기로운 야구생활

[수요광장]슬기로운 야구생활

美 MLB, 시작부터 신문과 공생관계라디오·TV·인터넷 등 미디어 발전韓 프로야구, 130개국 방송 콘텐츠로코로나시대 무관중에도 높은 시청률그럼에도 야구장 응원·치맥 그리워한국 프로야구가 전세계에 중계방송되고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22일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을 통해 130개국에 KBO 리그가 방송된다고 밝혔다. 한국프로야구가 세계적인 스포츠 콘텐츠가 된 것이다.프로야구는 시작부터 미디어와 분리할 수 없다. 미국의 메이저리그(MLB)가 시작된 것은 남북전쟁이 끝난 1870년대이다. 신문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와 일치한다. 국토가 넓은 미국은 전국 규모의 신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야구 기사는 지역지의 중요한 콘텐츠였다. 매일 경기를 개최하는 야구는 매일 발행되는 신문의 더없이 좋은 파트너였다. 경기기록을 매일 확인하는 야구팬은 신문의 충성 독자가 되었다. 야구와 신문은 공생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20세기는 전파 미디어의 시대다. 1920년, 피츠버그에서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탄생했다. 초기 라디오는 콘텐츠가 빈약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야구 중계방송이다. 야구중계는 라디오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동시에 프로야구의 시장도 확대되었다. 전파(電波)가 도달하는 지역까지 팬층이 형성된 것이다.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부터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다. 신생미디어인 TV에서도 야구는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TV는 전국방송이 가능했다. 또 그 시기부터 비행기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등장했다. TV와 비행기로 인해 미국 중동부로 한정되었던 야구 시장이 태평양 연안까지 확장되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LA다저스는 원래 뉴욕 브루클린이 본거지였다. 1958년 LA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이어서 뉴욕 자이언츠도 샌프란시스코로 본거지를 옮긴다.케이블TV는 1980년대에 본격 등장하여 다양한 전문 채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KBO 경기를 세계로 송출하는 ESPN도 이 시기에 스포츠 전문채널로 탄생했다. 카메라를 추가 투입하여 보다 입체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자막 정보를 제공하는 등 중계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1990년대는 위성방송의 시대다. 동구권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되자 첩보용으로 사용된 인공위성을 방송 중계에 이용하게 된다. 스포츠는 위성 중계방송의 적합한 콘텐츠이다. 이에 따라 메이저리그도 해외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94년에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노모 히데오도 같은 시기에 활약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청자들은 새벽에 라이브 중계방송을 볼 수 있었다. 최근의 류현진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리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했다. 일본도 마쓰이, 이치로, 최근의 오타니 쇼헤이 등 수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거로 활동해왔다.2000년 이후는 인터넷의 시대다. 인터넷 사이트인 MLB닷컴을 통해 전경기 실시간 중계, 다시보기, 하이라이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전세계의 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그리고 코로나의 공포가 세계를 덮친 2020년 야구시즌이 돌아왔다. 사실 우리보다 대만에서 먼저 프로야구가 개막되었다. 그러나 대만의 프로야구는 2009년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6개팀에서 4개팀으로 축소되어 팀간 40차전, 팀당 연간 120게임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수준도 우리보다 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미국의 팬들은 메이저리그만이 진정한 야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종 챔피언 결정전도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닌 월드 시리즈로 부른다. 그들에게 메이저리그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야구는 스포츠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진기명기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들보다 앞서 개막한 한국의 프로야구가 주목받는 것이다. 미디어는 새로운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코로나19가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꺼린다면 프로 스포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관중이 없어도 시청률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야구장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팬들의 관심은 여전하다는 징표이다. 그것이 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야구팬의 자세일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빨리 야구장에 가고 싶다. 관중들과 함께 선수들의 파이팅을 큰 소리로 응원하고 싶다. '치맥'도 생각난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이 그립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수요광장]아이들을 도울 때 진짜 어른

[수요광장]아이들을 도울 때 진짜 어른

어린이는 미래 희망이라 말하지만선뜻 나서 도와주는 사람은 드물다예전 사회복지공무원 특강 말미에기부 얘기 자발동참으로 확산 기억작은정성이나 큰 의미 멈출수 없어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짧은 식견이지만 도움이 되는 말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파주에서 일할 때 초빙강사가 사정이 생겨 우연찮게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되었지요. 강의를 마치면서 뜬금없이 물음표를 던져 보았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겠습니까?" 열 사람이 채 안 되었지요. 다시 한마디 던졌습니다. "사회복지는 국민 복리 향상을 위한 일, 그중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중요한데 실망이 큽니다. 일선 사회복지직 공무원이야말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후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매월 월급의 1%를 모금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지요.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시장께 사회복지직 뿐 아니라 시청 공직자 모두가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했지요. 설문조사결과 참여 의사를 밝힌 공직자가 98%를 넘었습니다. '공직자라는 사명감이 생각보다 상당하구나!' 새삼 직원들에게서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받았지요. 용기를 내 시의회와도 협의를 거쳐 공직자 모금액만큼 일반 예산에 반영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내친김에 'LG 필립스' 노조위원장을 만났지요. 박봉의 공직자들이 좋은 일을 하니 기업체에서도 도와달라고 했는데 며칠 후 흔쾌히 동참 의사를 밝혔습니다. 경기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도 함께 하기로 했지요. 공직자와 자치단체, 기업, 공익단체가 한마음으로 나선 것입니다.이듬해 1월부터 소년·소녀 가장과 시설 어린이들에게 매월 5만원씩 후원했지요. 공직자와 파주시, LG필립스,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하나로 뜻을 모아 가치 있는 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돕는 일이 펼쳐지자 시민의 공직자에 대한 인식과 평판도 좋아졌고 공직자들도 생각이 달라졌지요. 세간의 칭찬이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말마다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잡초 뽑기나 도배 등 봉사활동과 함께 위문품도 전달했지요. 서로 힘을 모으면 가치 있는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례는 '2010년 대한민국 휴먼대상' 우수상을 받으며 전국적인 관심으로 이어졌지요."어린이를 도울 때 진짜 어른이 됩니다"라는 크레파스로 쓴 글귀가 생각납니다. 공자는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老者安知) 친구들과 신의를 잘 지키며(朋友信知) 아이들을 품에 보듬고 잘 이끌어 주며 살고 싶다(少者懷知)"고 했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를 말하고 그 미래의 꿈과 희망은 어린이라고 말하지만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드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율배반적인 현상이지요.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라는 말,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해야 우리 사회도 밝아진다는 말도 두말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오늘을 사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라는 사실, 그건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당연한 말처럼 당연히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지요.너른 고을이라는 시골에서 자란 저도 어렸을 때 학용품을 제대로 못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시작한 소년·소녀 가장 후원이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지요. 제 이름 석자가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 헌액(獻額)된 영광도 이 때문입니다. 공직 은퇴 후에도 이 일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지요. 국민 세금으로 살았으니 아이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술 한 잔 덜하면 되는 적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이유이지요. 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누군가 기쁜 마음으로 학용품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소박한 일이지만 의미있는 일인데 멈출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아이들을 도울 줄 알아야 진짜 어른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수요광장]오월과 한국문학

[수요광장]오월과 한국문학

동·서양 서정시 역사에서 오월은자연미 정점·내면적 충일의 상징'1980 광주' 폭력 문단 저항의 시작경제 호황에 '대중문화 개화' 공존올 40周… 민주주의 혁혁한 기여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에/모든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나의 마음속에서도/사랑의 꽃이 피어났어라//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모든 새들이 노래할 때/나의 불타는 마음을/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어라'라는 내용의 서정시로서, 오월의 청신한 분위기와 사랑의 절절함을 잘 결합한 가편이다. 20세기 한국 서정시의 명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하염없이 지는 모란꽃을 보면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다시 기다리는 심미적 자세를 노래함으로써, 오월의 순수무구한 이미지와 시인의 내면적 슬픔을 잘 결속한 결실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서정시 역사에서 오월은 '봄의 여왕'으로서 자연미(美)의 정점과 내면적 충일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맞춤한 계절적 소재였다고 할 수 있다.그러다가 1980년 '오월 광주'의 충격을 접하고부터 한국문학에서 '오월' 상징은 크게 변모하게 된다. 어쩌면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는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광주민주화운동에 의해 규정을 받지 않은 곳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월 광주'를 애써 폄훼하려고 했던 이들조차 역설적으로 그 흐름에 긴박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신의 몰락과 더불어 형성된 새로운 열망들을 하나하나 좌절시키며 등장한 신군부 세력은 '오월 광주'를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80년대 내내 억압의 통치를 이어갔다. 이때 시인들은 권력과의 날카로운 대결과 그로 인한 내면적 저항의 언어를 세상으로 흘려보내게 되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김남주, '학살 2')에 나타난 시인의 격앙처럼, 우리 시는 불가피하게 이러한 시대적 역학 안에 유폐되었고, 윤리적 자아와 시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파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캠퍼스 안에서 은밀하게 소통되던 것이든, 훗날 대중적으로 성공한 '모래시계'나 '박하사탕' 같은 영상물에서 확인한 것이든, 이러한 야만의 시대가 남긴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성은 오래도록 사람들 뇌리에 혈흔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내면에는 가장 어둑한 충격과 가장 빛나는 저항의 역사가 동시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던 것이다.물론 우리가 80년대를 기억할 때 그 시대가 탈(脫)정치적 대중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은성한 시대이며, 세계경제의 활력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극점을 이룬 물질적 풍요시대였다는 점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후진적 정치와 호황의 경제라는 기묘한 불균형 속에서 제 물을 만난 것이 바로 문화의 대중화(popularization) 흐름이었는데, 이현세의 장편만화 '외인구단'이 대중들의 이목을 붙들었고, 김홍신의 장편소설 '인간시장'과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 등이 문학의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기도 하였다. 그만큼 1980년대는 절대권력의 폭력성과 그것을 후광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화려한 개화가 공존하는 시대였다.올해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보듯, 장훈의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보듯, 이제 우리 문학과 예술은 '오월 광주'를 가장 아프고 또 가장 빛나는 사회적, 윤리적 사건이라고 형상화하고 있다. 특별히 '소년이 온다'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소설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광주사태'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고, 객관적으로 밝혀진 것들까지 이념적 폄훼를 가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지만,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사회적 시스템이나 더 이상 절대권력이 들어설 수 없는 민주주의 장치 마련에 '오월 광주'가 끼친 기여는 자못 혁혁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은 위대한 역사적 분수령이 되어, 이제 누군가를 더 밝은 빛이 비치는 쪽으로 인도해 가는 역사적 힘으로 남았다. 그 숱한 죽음과 아픔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지금 다시 힘겨운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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