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거일폐백:  하나를 들어 백 가지를 폐기한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거일폐백: 하나를 들어 백 가지를 폐기한다

나를 이롭게 한다는 이기주의와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주의는 철학이나 윤리의 문제에 속한다. 이 기준을 가지고 나를 살피고 남을 살피기도 한다.맹자는 나만 위하는 마음과 천하를 위하는 마음을 지양하고 그 둘 가운데를 집착하여 택한 마음까지 다 쳐버렸다. 춘추전국 시기 양자는 자기 몸의 터럭 하나를 버리면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지 않는다. 묵자는 온몸을 희생해서 천하가 이롭게 된다면 기꺼이 그리한다. 맹자가 대비적으로 예를 든 두 인물은 사실 극단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맹자가 예로 든 것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를 그 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중용을 지킨다고 스스로 판단할 수도 있다.자막이라는 이가 양자와 묵자의 가운데 지점을 상정하여 일정한 태도로 집착하여 이기와 이타의 중도를 행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맹자는 이에 대해 중간을 정해 잡더라도 권도를 모르고 획일적으로 일정하게 고착되면 이것은 중용이 아니라 획일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획일적으로 '여기가 가운데이다'라고 고집하게 되면 오히려 그 하나에 집착함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다는 뜻이다.자기가 믿는 사상이나 철학이나 신념은 확고할수록 좋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고집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절에 합당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권의 정책결정이 중요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습이불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습이불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가족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습관은 보기 쉽고 알기 쉽다. 그래서 그에 관한 예측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습관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에 대해 "행동하면서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습관은 말 그대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익숙해져서 관성이 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도 습관이 있다.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행동으로 드러나는 습관의 뿌리는 생각에 있다. 더 넓게 말하면 마음에 있다. 습관이란 마치 물과 같아서 물을 독사가 먹으면 독을 뿜어내고 소가 먹으면 우유를 내놓는 것과 같아서 그것 자체는 중립이다. 익숙하게 길들여지는 원리는 중립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 애초부터 좋은 내용만 익숙하게 길들였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습관은 좋지만 어떤 습관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성찰(省察)이니 성찰은 반성과 관찰이다. 반성은 성찰의 방향을 자신 내부로 되돌리는 것이고 관찰은 그렇게 되돌려서 제대로 보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비유하면 반성은 방향의 전환이고 관찰은 살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은 방향이 제대로 잡히고 힘이 가해지면 그리로 가게 되어있다. 일상의 습관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정위응명:  자기의 바른 자리에서 소명을 완성하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정위응명: 자기의 바른 자리에서 소명을 완성하라

命의 갑골문의 본래 글자는 명령 령(令)자이다. 명령 령(令)자는 삼각형 모양의 모을 집( )아래에 영어의 p자형태의 병부 절( )로 되어있다. 모을 집( )자는 덮개를 의미한다. 작은 경우는 모자에 해당하고 큰 경우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궁궐, 대궐, 조정...]을 의미한다. 병부 절( )자는 사람 인(人)자의 변형으로 사람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명령을 내리는 것인데 그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입 구(口)자가 첨가되어 명(命)이 되었다. 명령(命令)의 의미이다. 명령(命令)이란 글자에 들어있는 절( )은 무릎의 마디를 의미하는 마디 절(節)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대나무 마디를 가지고 옛날에는 병부(兵符)를 만들었다. 명(命)자에서 건물 안에서 명령을 내리는 가장 높은 사람을 '임금'으로 보는데 그러면 임금의 명령이 된다. 옛날에 임금이나 명령권자가 명령을 내릴 때 쓰던 도구를 병부(兵符)라고 한다. '병부'는 주로 병력을 동원할 때 쓰던 도구이다. 대나무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반쪽 나뭇조각은 관찰사나 절도사 등이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 나무는 궁중에서 보관했다. 군대(軍隊)를 동원(動員)하는 표지(標識)로 쓰이던 동글납작한 나무패로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때 명령을 내리는 임금이 교서와 함께 한 쪽 나무 조각을 보내면 관찰사나 절도사는 그것을 자기가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과 맞추어보고 틀림없을 경우 병력을 동원했다. 병부(兵符)는 봉화(烽火)와 더불어 통신(通信)체계의 원형이기도 하다. 우리는 명령(命令), 천명(天命), 생명(生命), 수명(壽命), 성명(性命), 운명(運命) 등등을 이야기한다. 명은 주어지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이행하는 면도 있고 변화시키는 면도 있다. 어떤 의미이든 현실에서 각자의 소명을 잘 알고 그것을 완성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천명을 알고 이루는 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저양촉번: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치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저양촉번: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서로 고육지계(苦肉之計)로 들어섰다. 그 둘 가운데 낀 나라의 경제적 손실과 심리적 불안도 더해간다. 일종의 힘겨루기인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싶다. 주역에서 힘을 쓰는 도리나 상황에 대해 羊을 가지고 말해놓았다. 여기에서의 양은 뿔 달린 염소를 이야기한다. 羊은 겉으로 유순해 보이지만 속에는 강한 힘과 고집스러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 양이 자신이 지닌 힘을 과시할 때 벌어지는 상황을 저양촉번(저羊觸藩)이라고 묘사하였다.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친다는 뜻이다. 양을 키우기 위해 만든 것이 울타리인데 여기에서 울타리는 일종의 한계와 경계를 뜻한다. 양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사용하게 되면 울타리를 들이받아 부딪치는데 그러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것이 저양촉번(저羊觸藩)이다.주역에서 羊은 태괘(兌卦)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서방(西方)에 해당하고 현재 나라로는 서양의 강대국을 상징한다. 대표적으로는 羊자가 들어있는 아름다울 美자인데 美를 파자(破字)하면 대양(大羊)으로 큰 양이다. 나라로는 힘센 대국인 미국(美國)이다.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벌어지는 꼴을 보자니 꼭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넘어가고 싶은 모양새다. 그러나 보이는 한정된 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울타리가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인과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내게서 나간 것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백지를 기계로 돌려 무한정의 화폐를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내는 대국이라지만 그런 대국도 이 인과의 섭리를 어기면 멀지 않아 저양촉번(저羊觸藩)의 꼴을 당할 것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소이수신:  몸을 닦기 위한 방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소이수신: 몸을 닦기 위한 방법

닦는다는 말은 길을 닦으면 수도(修道)이고 마음을 닦으면 수심(修心)인데 몸을 닦으면 수신(修身)이다. 수신은 몸을 씻는다는 세신(洗身)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수심을 포함한 말이다. 마음이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이지만 당장에 존재하는 몸을 이야기하면 한량없는 마음은 그 가운데 갖추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심신을 닦아나가는 문제는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 사람마다 가장 중요한 문제다. 또한 사회속의 생활인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중용'에서는 몸을 닦아나가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호학(好學)이고 하나는 역행(力行)이고 하나는 지치(知恥)이다. 호학(好學)은 배움을 좋아한다는 뜻이고, 역행(力行)은 힘써 실행한다는 뜻이고 지치(知恥)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여기에서의 배움이란 중용의 도리에 관한 배움을 말한다. 어떤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이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호학(好學)이며 이렇게 되면 지(知)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알고는 힘써 행하는 실행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역행(力行)이다. 알고 나서 실행하려면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해야 하니 역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仁)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배우고 실천하는 학행(學行)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태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을 분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태해질 때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분발시키는 힘은 용기(勇)에 가깝다. 삼달덕(三達德)이라 부르는 지인용(知仁勇) 세 가지는 배우고 행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서 이루어지니 이것이 몸을 닦기 위한 방법이다. 확충해보면 비단 몸을 닦는데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어떤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상기자부:  재물과 권력을 잃는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상기자부: 재물과 권력을 잃는다

인생이 나그네란 말이 있다. 나그네란 주인과 달리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존재이다. 그렇게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한 곳에 영원히 상주하질 못한다. 먼 길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의 숙명을 지닌 나그네는 임시적으로 머물 여관과 같은 곳이 있어야 한다. 먼 길을 돌아다니려면 여행경비가 필요한데 옛사람들은 노자(路資)라고 불렀다. 자부(資斧)에서 자(資)는 본래 노자를 뜻하는데 이 노자가 재물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또 나그네에게는 초행길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변에 위협을 가할 요소들이 산재해있다. 그래서 옛날 나그네 길에 자기 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도끼를 지니고 다녔는데 도끼는 육체의 힘을 강력하게 연장하는 효과를 지니기에 권력의 뜻으로 통용되었다. 나그네의 자부(資斧)가 인생 나그네들에게 재물과 권력의 의미인 것이니 사람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상징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때로 이런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데 주역에서는 그런 힘을 잃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권력을 잃는 이유에 대해서 그 자체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질의 뜻으로 시세의 무게를 잘 달아보면서 쓰는 것이다. 시세의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서는 저울을 가감도 해보고 위치도 좌우로 변경해보면서 때에 적절한 저울질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면 권(權)을 잃은 것이고 힘만 억지로 지탱하려는 꼴이 된다. 때와 장소가 달라지면 그 방법을 달리해야 그 자부를 잃지 않지 만약 획일적 방법만 고집한다면 잃어버리기 쉽다. 특히 지금처럼 가속도가 붙은 시대에서 국가나 기업의 경제와 정치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럴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출서물:  여러 인물에서 하늘이 출현한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출서물: 여러 인물에서 하늘이 출현한다

하늘은 생명활동이 가능하도록 시간도 베풀어주고 공간도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공자도 하늘은 아무 말 없이 세월을 운행하며 모든 생명을 생육시킨다고 찬탄하면서 자신도 하늘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주역에서 하늘은 인체의 머리로 비유된다. 형상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는 인체의 꼭대기에 있으면서 둥근데 하늘도 위에 있으면서 둥글게 인식되어왔다. 그 성격의 차원에서 볼 때 머리에는 우리의 생각을 통솔하는 뇌가 있는데 하늘은 땅과 대비될 때 형이상적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하늘 천자의 옛 글자를 보면 사람의 형상에서 머리를 부각시켜놓았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내려왔는데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사람 속에 내재되었다고 여겨지는 하늘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발현시켜 써먹을지에 관한 것이다. 내 속에 있는 하늘만이 진짜라고 우기면서 싸워오고 지금도 싸우는 것이 인간 종교전쟁의 역사임을 돌이켜보면 하늘은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이다. 주역에서는 하늘은 한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여러 사람들인 서물(庶物)에 내재되어있으니 평범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출현해야만 세계에 평화가 온다고 하였다. 어느 한 사람의 구세주가 나타난다 해서 이 세상에 평화는 오지 않는다. 게다가 겉으로만 평화를 말하고 속으로는 싸움을 그치지 않으면서 하늘을 전파하는 행태로는 이 세상에 평화는커녕 재앙만을 재촉할 것이다. 공자는 하늘은 모든 사람 속에 있고 다양하고 평범한 여러 사람 속에서 하늘이 출현할 때만이(首出庶物) 온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라고(萬國咸寧) 하였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각종기류:  각기 그 부류를 따른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각종기류: 각기 그 부류를 따른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모임은 관찰해보면 그 모임에 소속된 사람들끼리 무언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정치판을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당과 야당의 행태를 보면 대체로 일정한 사안에 대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데 끼리끼리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에서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생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행위를 하는 원형을 자연계에서 찾는다. 동물도 물에 모여 사는 물고기들은 비늘이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날개가 있다. 이런 도리를 "솔개는 하늘을 날아다니고(鳶飛戾天) 물고기는 연못에서 헤엄치며 뛰고 있구나(魚躍于淵)!"하고 시로 읊조린다. 중용에서는 이런 도리는 모두 상하의 천지에 근본을 둔 것이라고 보았다. 주역에서는 끼리끼리 모여들고 따르며 감응하는 도리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구분해서 표현하였다. 사람이나 새나 물고기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도 이런 도리는 드러난다. 겨울철 동지(冬至)가 되면 음악에서 황종(黃鐘)이라는 율관이 상응하여 동지의 음률을 낸다. 이것이 해당부류의 소리가 감응하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근저에는 기(氣)의 운동이 있으니 기(氣)의 운동이 상호 감응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보고 듣는 현상계의 상호감응도 가능하다. 해당 부류가 기의 차원에서 상호 추구하는 것을 동기상구(同氣相求)라 한다. 본질적인 기(氣)가 다르면 드러나는 소리나 색이 다르고 다른 부류끼리 모여서 활동하니 자연 당파(黨派)가 생긴다. 그러니 당파끼리 매일 앙앙대며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건 지나온 역사가 증명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명야유성: 천명이지만 본성이 있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명야유성: 천명이지만 본성이 있다

한 일 없이 가을밤에 보름달만 쳐다본 것이 벌써 몇 해인가? 생각이 심각해지니 오늘은 인간의 본질적 주제인 천명과 본성에 대해 소개해본다. 성명(性命)은 동양철학의 핵심주제이며 인간의 본질에 관한 화두이다. 성(性)은 성리(性理)적 의미인데 누구나 지니고 있는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존재로 파악된다. 이에 비해 명(命)은 기수(氣數)적 의미인데 사람마다 다 다르게 타고난 이질적 존재로 파악된다. 성(性)이 일체를 수용하는 자유에 가깝다면 명(命)은 일정한 절도가 있는 구속에 가깝다. 본성은 사람이 얻고자 노력하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명은 얻고자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종류가 아니다. 그래서 맹자는 천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리 되는 것이 천(天)이고(莫之爲而爲者天也) 이르려 하지 않았는데도 그곳에 이르는 것이 명(命)이다(莫之致而至者命也)." 결국 천명이란 나의 본성과 관계없이 유행하는 비교적 현실적 기수(氣數)의 세계로 드러난다. 공자가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다."고 하면서 천명(天命)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천명에만 매어서 살 것인가? 맹자는 천명은 따르되 더 중요한 것은 본성을 되찾는 것인데 사람들은 거꾸로 한다고 생각했다. 구해도 얻지 못할 명(命)은 욕심을 내어 구하려 들고 배워서 깨달아 알 수 있는 성(性)은 포기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인(聖人)들이 천도를 깨닫는 일이 물론 천명(天命)에 가까운 부분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지닌 본성(本性)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일을 천명으로만 돌려 포기하지 말고 힘써 공부하라는 뜻이다. 몽고인들의 시력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타고난 것이 천명인데 본성이라 여겨 나의 시력도 그리되길 바라고 성인의 깨달음은 우리도 지니고 있는 본성에 근거한 것인데 천명으로 여겨 멀리한다는 뜻이다. 성인의 출세도 천명이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본성이 있음에 근거한 것임을 늘 잊지 말고 공부하라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폭십한:  하루는 햇볕을 쪼이고 열흘은 춥게 한다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폭십한: 하루는 햇볕을 쪼이고 열흘은 춥게 한다

추석을 앞두고 올해 농사는 망쳤다는 말을 듣는다. 날씨가 따라주지 않은 탓에 그렇다. 곡식은 싹도 중요하지만 그 싹을 잘 길러야 풍성한 곡식을 수확할 수 있다. 하루 동안은 햇볕이 나다가 열흘 동안 날씨가 쌀쌀해져 따스한 온기가 없으면 곡식이 제대로 생육할 수 없어 결국 죽기 쉽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날씨가 그 지역의 일정한 기후를 따라 일정하게 변화해야만 곡식이 제대로 발육된다. 곡식의 발육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기후의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맹자는 싹이 아무리 좋아도 일정함이나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망치는 것을 사람에게 적용하였다. 그 싹이란 바로 실마리 혹은 단서라고 부르는 것인데 맹자는 이를 사단(四端)이라는 인간이 지닌 마음의 싹으로 말했다. 이른바 싹수가 있는 지도자라도 지속적으로 그 싹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 싹수는 잘 유지되어 자라나기 힘들다. 맹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자의 싹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아래나 주위의 참모들이 선량하지 않거나 선량하더라도 그 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싹수는 쓸모가 없다. 자신의 충언을 듣고 실행하다가 열흘은 자신을 멀리하여 그 말을 듣지 않는 임금을 맹자는 이렇게 일폭십한의 비유를 들어 비판했다. 임금만을 지목해 말한 것이 아니다. 공자는 사람의 마음은 잘 잡으면 보존되지만 놓아버리면 없어져 버리니 그 들고남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도 하루는 자기의 마음을 잘 잡고 있다가 열흘을 놓아버리면 그것이 바로 일폭십한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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