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춘추칼럼]십대 올인 사회

[춘추칼럼]십대 올인 사회

특출한 재능 발견하면 '모 아니면 도' 요구승자독식 서바이벌게임 벌이는 그들에게 '공부·인성 겸비한 성공' 무슨의미 있을까어릴때부터 경쟁시키는 우리사회 미래 암담보통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는 줄 모르고 평생을 산다. 뒤늦게 알아서 대기만성을 이루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취미 정도로 만족한다. 일찍 시작해서 이미 상당히 이룬 자를 따라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일찌감치 특출한 재주를 드러내면, 자의든 타의든 평범히 살 수가 없다. 빨리 이뤄야 한다. 프로선수 혹은 국가대표가 되거나, 굴지의 상을 받거나, '스타'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 최소한 그런 대목으로 주목받아야 한다.천재의 부모는 가늠해야 한다. 이 놀라운 재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공 가능할지. 흔히 공부하는 재능 즉, 영수국과 문제 잘 푸는 능력이라면 고민이 없을 텐데, 스포츠·예술·문학·예능·게임 재능이라니!아무리 특출한 재능이라도 특출한 재능끼리 모이면 순위가 매겨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바둑 1급의 경지에 도달하면 엄청난 천재일 테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한국기원 연구생'이 될 수 있다. 청소년시절 내내 '연구생'끼리 경쟁하여, 다시 극소수가 '프로'가 된다. 걸그룹이나 보이그룹이 되고자 하는 엄청난 가무 천재들이 있다. 이 중에 기획사 오디션에 통과하여 수련생이 되는 아이들은 극소수다. 이 극소수 중에 또 극소수만이 데뷔에 성공한다. 데뷔한 누구나 '방탄소년단'이나 '소녀시대'를 꿈꾸겠지만 그런 성공은 또다시 극소수만 가질 수 있다. 무수한 천재가 야구 축구 재능을 인정받아 경쟁하지만 프로선수 드래프트에 선발되는 아이는 극소수다. 차선인 대학 선수가 되는 것도 극소수다. 이 재능들처럼 십대 때 데뷔하거나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암담한 분야가 꽤 많다. 특히 대중의 인기가 드높은 스포츠·연예 분야일수록 모든 운명이 스무 살 이전의 성과로 결정된다.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조기에 발현되는 특출한 재능은 모 아니면 도의 선택을 요구한다. 무조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올인하거나 아예 시작하지 말거나. 아이만 올인해야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함께 올인해야 한다. 금수저 집안이라면 취미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보통 가정은 집안의 모든 것을 거는 도박에 가깝다. 차라리 이러저러해서 가능한 빨리 포기할 수 있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이제 발을 뺄 수도 없다.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별다른 재능이 없어 국영수과만 했던 아이들은 어찌 됐든 대학의 길이 있지만, 남다른 재능 때문에 국영수과를 등한시하고 그 재능에 올인했던 아이들은 대학의 길조차 희미하다.각계각층에서 조기 발굴한 재능들이 '공부도 하는' '인성도 겸비한' 성공이 되도록 여러 가지로 애쓰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최고가 되고 일부가 상위권이 되고 소수가 대학에라도 갈 수가 있고 다수는 암담한 이십 대를 맞이하는 승자독식 경쟁시스템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이들에게 그따위 빛깔 좋은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침내 뭔가 돼도 끝이 아니다. 청춘스타들은 끝없이 누가 최고인가 경쟁해야 하며 경쟁력을 상실하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어도 편한 경우가 있다. 장기를 잘 두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니니 메달 따서 군대 안 갈 가능성 자체가 없고, 장기만 둬서 먹고사는 프로기사가 단 1명도 없고, 장기 재주로 갈 대학도 없고, 게임스포츠 같은 엄청난 장기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장기대회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언론에 기사 한 줄 안 나고, 그 어떤 부모가 장기 재능에 올인하도록 내버려두겠는가. 아이 스스로 크게 바랄 것이 없으니 취미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부모 또한 기대할 것이 없으니 공부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야단이나 친다.감사하지 않은가. 특출나지 않은 것이, 특출나기는 하지만 아무도 별다른 취급을 해주지 않는 재주를 가진 것이. 허나 특출한 아이들이 재주에 올인하는 것과 평범한 아이들이 영수국과 문제풀이에 올인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재능이 있든 없든 어릴 때부터 줄 세우고 박 터지도록 경쟁시키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우리 시대의 리더

[춘추칼럼]우리 시대의 리더

지금 살고 있는 상황 정확하게 파악무엇이 필요한지 분석후 문제해결 위해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전문가 배치 중요지도자가 모든것 결정하는 조직 결국 망해지난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역사적, 정치적, 외교적, 국제적 차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두 정상의 대화와 만남이 이뤄진 곳곳에 또 다른 가치와 해석의 여백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무엇보다 두 사람은 기존의 관습과 행태를 훌쩍 뛰어넘는 태도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과거 정상회담에서도 나름 좋은 성과를 냈지만 궁극적으로 형식을 탈피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로 절실하게 원하는 그 무언가가 형식을 뛰어넘게 만들었다. 형식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형식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형식을 바꾸자고 하는 실무적 접근에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전략과 비전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꿈꾸고,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가?다음으로 두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해 서로를 대했다. 우리의 태도와 표정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결국 형식까지도 변화시킨다. 그것은 사심(私心)의 문제이다. 사심 없는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왜곡을 배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국과 북한, 남한이 그동안 보여준 태도와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심 없는 사람의 태도와 표정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든다.이를 통해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고, 나아가 양쪽의 공동체 성원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 새로운 미래,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리더의 문제이다. 리더는 누구인가? 훌륭한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결국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조직을 잘 이끌어가는 사람일 것이다. 혹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사람의 기질을 언급하기도 한다. 개인적 혹은 사교적 만남이라면 기질의 문제로 쉽게 치환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순한 기질을 넘어 정확한 현실 판단과 목표에 따른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이 두루 담겨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는 잘못된 리더를 선택한 결과, 아직까지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리더는 단순히 인성이나 도덕성의 차원을 넘어 똑똑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과제가 얽혀 있는 현대사회에서 리더 개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이다. 리더 개인이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조직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구성원이 리더의 결정만 기다리게 되면 조직은 경직되고 구성원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실종될 것이다.이 지점에서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가짜 뉴스'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이유는 기술 발달에 따른 정보 공급 과잉의 문제도 있지만, 많은 정보 가운데 수많은 정보 중에서 제대로 정보를 분석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리더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분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가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짜를 잘 구별해내서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일본의 소설가 다나카 요시키의 대하 장편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양웬리 장군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멍청이는 보급 없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이지."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전략적 판단에 따른 보급 현황 등 구체적인 디테일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현실 분석과 자원 배분 등 통합적인 설계와 비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누구나 훌륭한 리더를 원한다. 경북 청도군에서 개그맨 전유성씨를 배제하고 코미디축제를 만들어가겠다고 결정한 것만 보더라도, 우리의 현실은 '멍청한 리더'가 넘쳐난다. 시민들이 리더에 대한 고민을 절실하게 해야 할 때이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평양정상회담 이후가 중요하다

[춘추칼럼]평양정상회담 이후가 중요하다

비핵화·적대관계 종식등 평화 분위기속남북관계 확대 발전위한 구상도 구체화美, 北 신뢰땐 '종전선언' 한발짝 다가가뉴욕 한미회담, 향후 북미회담 중요한 디딤돌2박 3일간 숨 가쁘게 전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사항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에 따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우리와 합의문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비핵화 문제를 남북간 핵심적 협의 의제로 삼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 없는 한반도, 핵위협 없는 한반도를 직접 언급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나아가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를 표명한 것은 그간 남북 간 합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구체적인 합의라 할 것이다. 그리고 양 정상은 향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서도 충분한 의견교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합의이다. 남북은 육상과 해상, 공중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상호 적대행위를 종식하는 내용의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그간 남북간 우발적인 무력충돌 등 전쟁위험과 긴장 상황이 조성되어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매우 구체성을 띤 이번 부속합의들은 남북 간 사실상 종전선언을 한 셈이 된다. 앞으로 이 같은 합의가 잘 지켜지면 군비통제와 군비축소 등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더욱 용이해 지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는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완화 등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남북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구상을 구체화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 개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정상화, 서해 경제 및 동해 관광특구 조성 등은 지난 10·4 선언 이후의 상황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리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문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개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합의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한반도의 변화와 남북 정상의 노력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이제 공은 북미 간 협의로 넘어갔다. 북한이 검증의 논란이 있었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폐기를 관련국 전문가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국제사회로 하여금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보다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하기는 하였지만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함으로써 보다 진전된 입장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24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북한이 공표한 조치를 토대로 미국이 어떠한 조치를 취할지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협의하게 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이며,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리용호 외무상과의 만남,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미 간 실무대화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향후 전망을 매우 밝게 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이 보인 조치를 신뢰하고 종전선언을 위해 한발 짝 다가간다면 비핵화 협상은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뉴욕 한미정상회담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을 추동하는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의 성사가 문 대통령 덕분이라고 하였고 미 대통령 또한 문 대통령을 수석 협상가로 명명하였다. 우리의 중재노력이 빛을 발하여 지연되었던 북미간 협상이 재개되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연결된다면 올해 더욱더 성과있는 이벤트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북미 간 협의가 잘 진행되어 남북미중 정상이 서울 혹은 워싱턴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게 된다면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보다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물론 최종 비핵화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와 앞으로 종전선언 등을 통한 신뢰구축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번영의 시대는 보다 빠르게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독서 취미가 고맙다

[춘추칼럼]독서 취미가 고맙다

할 일 산더미 상황속에서도 독서하는 일'입시문학' 고통스러운 행위 자리매김스마트폰등 볼것 많은데 책 읽는 청소년들그들 덕에 '국민 연간독서량 1권가량' 유지유유상종이라고, 청소년 때부터 1년에 50권 이상 기본으로 읽는 사람을 되우 만났다. 1년에 300권 이상 읽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만났다. 40대 들어 비문학인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평생 살면서 100권만 읽었어도 책 많이 읽는 사람으로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 살 때부터 읽었다 쳐서 1년에 두세 권꼴. 한국인 연간 평균 독서량의 두 배 넘는 수치니 많이 읽은 사람이 분명하다. 고1 아들에게 물었다. 책 읽기 좋아하는 친구 없니? 있으면 아빠 책 한 권 선물해주고 싶어. 아들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한 명도 없다고. 실은 요새 아이들만 안 읽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다. 일제강점기에도 보릿고개 시절에도 산업화시대에도 새천년에도 책 읽는 학생은 반에 한두 명이었다. 묘한 일이다. 선생님과 부모님과 그 밖의 멘토 어른이 삼위일체가 되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인생 성공한다, 세뇌 교육하듯 해도, 청소년은 읽지 않았다. 어른이 돼서도 읽지 않았다. 독서광이 책 읽다가 미쳐버린 돈키호테처럼 별종이고, 1년에 한두 권 읽는 이가 보통사람, 정상적인 사람인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인류에게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무서운 말씀을 남긴 분들은 어떻게 해서든 책을 읽어야만 하는 까닭이 허다했다. 마찬가지로 비독서인은 아무리 해도 책을 읽을 수 없거나 읽기 싫은 까닭이 허다했다. 따져보면 독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어머니가 자주 쓰는 말인데 '머리 쓰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보고 듣는 것과 달리 읽는다는 것은 두뇌를 심하게 써야 한다. 게다가 재미없기 십상이다. 사람마다 재미가 다르고 감동이 다를 텐데, 늘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1년에 두어 권 읽는다면 둘 다 재미있을 수 있겠지만, 1년에 열 권 읽는다면 그중에 재미없는 책도 여럿일 테다. 1년에 100권은 읽는다는 것은 재미없는 책을 70권 넘게 읽는다는 의미다.게다가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국은 특유의 입시문학으로 독서를 끔찍이 고통스러운 행위로 자리매김해버렸다. 초중고의 진정한 국어·문학 교육은, 사회구성원이 평생 누려야 할 소중한 권리인 독서 기초 훈련으로써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맛보는 스스로의 법을 찾도록, 글쓰기를 통해 자기의 견해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여 타자와 소통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보면 내 견해보다 훨씬 훌륭한 목표와 목적으로 도배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저 문제풀이 연습일 뿐이다. 다 그만두고 왜 그토록 괴롭게 읽어야 한단 말인가? 의무적인 독후감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저 숙제일 뿐이다. 책 읽기 하면, 먹음직한 과일을 눈앞에 둔 듯 설렘이 앞서야 하는데, 주제 찾고 의도 파악하고 수사법 따지고 수행평가과제 해야 하고 엄청난 숙제가 바윗덩이처럼 굴러오는 듯한데, 읽고 싶겠는가. 골치만 아프고 재미도 없는 일은 하기가 싫은 법이고, 누가 어떤 식으로 강력 코치를 해주거나 숙제를 덧붙여주면 더욱 하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면 책을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어느 세대에게나 독서인은 딱 그만큼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한 명도 못 만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한 학 년에 세 명은 분명히 '독서가 취미 혹은 특기'라고 할 만한 친구가 있을 테다. 책 읽는 것밖에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안 읽은 것보다, 할 일이 너무 많은 상황 속에서 책 읽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가공할 입시제도와 만화경 같은 스마트폰과 볼 거 너무 많은 텔레비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청소년들,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들은 평생토록 친구들의 몫까지 짊어지고 읽어나갈 테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국민 연간 평균독서량 1권 가량을 유지할 테다. 그들의 독서 취미가 참 고맙다./김종광 소설가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정말, 사람이 먼저다

[춘추칼럼]정말, 사람이 먼저다

文정부 '지역밀착형 생활 SOC' 정책 제시많은 편의시설 '왜 개점휴업인지' 살펴야 주민과 공동체활동 역량갖춘 활동가 부족실생활에 필요한 사람 발굴 미래 달려있다문재인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Social Overhead Capital) 투자 정책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핵심은 '생활 SOC' 개념이다. 지금까지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즉 4대강 사업과 같은 대형 토목공사와의 차별화를 통해 지역밀착형 생활 부문에 다양한 사업을 통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등을 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 2019년도에 국비 8조7천억원과 지방자치단체 매칭 예산을 합치면 12조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는 '10분 내 체육시설' 등 편의시설 확충에 1조6천억원, 노후 공공임대주택 시설개선과 같은 생활안전 인프라 확충에 2조3천억원, 취약지역 도시재생 사업에 1조5천억원이 투입된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역밀착형 생활 SOC' 개념은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기존의 도로, 철도, 건설 등 개발 위주의 사업이 아니라 체육센터, 박물관, 도서관, 어린이집, 공공의료기관 신설, 전통시장 등 실제 주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문화시설 중심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람들이 정책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결국 자신들의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느끼는 체감도와 맞닿아 있다. 단순히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는 대단한 변화나 발전은 더 이상 개인이 자신의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활 SOC는 그러한 구체적인 삶의 과정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공간과 시설 등을 통한 정책의 개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용을 할 것이다. 지난 9월4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도 "그동안 우리는 대규모 SOC 위주의 정책을 펼쳐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상대적으로 우리 일상에서 필요한 생활 기반 시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앞으로는 공공 투자도 지역 밀착형 SOC로 전환해 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생활 SOC는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지역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구산동도서관마을에 대해 "지역 주민이 주도하고 지자체와 정부가 지원하는 주민 참여와 협치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이번 '지역밀착형 생활 SOC' 정책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도로나 철도 건설에서 생활편의시설로의 사업 방향이 전환되었다는 점만 강조하게 되면, 결국에는 같은 비슷한 '건설' 사업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번 정책과 예산이 정말 지역에 대한 투자가 되려면 지역에서 생활편의시설 등이 어떻게 기능하고 운영되는지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금 많은 지역에서 절대적 공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산 부족과 운영 관리 등의 문제로 인해 많은 생활문화시설이 개점 휴업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 문제가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업은 단기적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여타의 사업과 크게 구별되지 않을 것이 뻔하고 인구절벽과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 앞에서 향후 발전적인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결국 사람이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현장을 누비면서 활동할 수 있는 민관의 활동가가 얼마나 많은가의 문제이며, 공간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공동체활동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주체들이 얼마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가 '생활 SOC' 사업의 중요한 방향을 설정해 두지 않으면 지역과 동떨어진 형태로 남아 소수 정치인의 업적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지금 지역에는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부족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동네 기반의 지역사회 활동에 등장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책을 썼다. 사람이 중요하다. 이제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사람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진짜 실생활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을 발굴할 것인지에 국가의 미래뿐만 아니라 지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소득주도성장` 좋은정책 거듭나려면

[춘추칼럼]'소득주도성장' 좋은정책 거듭나려면

단순히 경제살리기 보다 '시대정신' 부합국민 체감 '방향·방법·속도' 조화 이뤄야기대만큼 효과 없을땐 '잘못됐다'고 인정원인 찾아내 빠르게 '수정'하는 용기 필요모든 정부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고유의 상징적인 정책들을 펼친다. 무엇보다 집권 초기엔 이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선정해 추진한다. 그런데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는 좋은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아야 한다. 시대정신과 시대과제는 다르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룩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한 것이 시대정신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지방 분권, 성 평등 등이 이에 해당된다. 단순히 경제를 살리는 것은 시대과제는 될 수 있지만 시대정신은 아니다. 둘째, 방향과 방법, 속도의 세 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아무리 방향이 옳더라도 방법이 투박하고 잘못되면 기대하는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또한 방향과 방법이 조화를 이뤄도 속도를 내지 못하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없다. 방향이 아무리 옳더라도 잘못된 방식에 기대어 과속으로 추진하면 실패하기 쉽다. 셋째,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대응력이 뛰어나야 한다. 일반적으로, 정책은 '입안-결정-집행-평가'라는 4단계를 거친다. 정책을 입안할 때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 넓게 수렴하고 최종 정책 결정을 할 때는 권력자가 아니라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을 집행할 때는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기대한 정책 효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원인을 잡아내어 빠르게 수정해야 한다. 이것이 대응력이다. 통상 대응력이 떨어지면 정책의 적시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정책 효과가 반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 일방적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평가해보면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난다. 시대성은 있지만 조화성과 대응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소득 주도 성장을 통해 고용을 늘리고 소득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려는 방향성은 공정사회 구축이라는 시대정신과 부합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핵심 정책 수단으로 삼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이 '고용참사, 소득 양극화 심화, 투자 부진'이라는 3대 쇼크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우리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흔들림 없이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청와대 정책 참모들의 현실 인식이 치명적인 오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옳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정책은 성공할 것이다. 정책 집행의 속도를 내면 정책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기대한 만큼의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과거 보수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다. 정책은 좋은 데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잘못된 인식의 함정에 빠져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정부는 내년 예산을 470조5천억원 규모의 슈퍼 예산으로 편성했다.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22% 늘어난 23조5천억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 질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일자리 정책에 쓴 예산은 약 43조원에 달했지만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통계청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취업자는 8년 6개월 만에 최소치인 5천명(전년 대비)만이 증가하는 데 그쳤고 제조업 일자리는 10만개 이상 사라졌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이 좋은 정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춘추칼럼]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독 상주대표부

[춘추칼럼]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독 상주대표부

교류확대 따른 제반문제 해결하는 창구役정부·지자체등과 소통·협력 역할 수행판문점 선언과 3차 정상회담 합의문 통해남북관계 '되돌릴 수 없는' 제도화 이뤄내야지난 판문점 선언에 기초하여 남북 정상 간 합의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곧 출범할 예정이다. 필자는 몇 년 전 독일 통일 전문가들과 동서독 상주대표부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독일은 통일에 앞서 동서독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두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바 있다. 하나는 동서독 기본조약이고 다른 하나는 상주대표부 설치에 관한 의정서이다.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은 동독에 대한 서독 정부의 정책적 전환의 산물이다. 서독은 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화와 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동서독 기본조약 8조에 상주대표부 설치를 명명하였고 그 합의에 따라 1974년 동서독의 수도에 상주대표부가 설치될 수 있었다. 독일 전문가들은 상주대표부는 통일이 될 때까지 동서독 관계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물론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과거 동서독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첫째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상징적 의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경축사에서 언급했듯이 남북관계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이번 연락사무소의 설치는 매우 중대한 진전이다.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 인적 물적 교류를 본격화했던 독일의 경우 각기 수도에 설치된 상주대표부는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외교관계에 있어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이 존재하듯이 정식 외교관계 수립 이전의 상주대표부나 연락사무소는 교류 확대에 따른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는 주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통일 전 동서독의 경우 한해 300만~4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오고 갔고 교류에 따른 절차들을 상주대표부와 해결해 나갔음을 상기해 보자. 향후 남북 간 교류 확대에 따른 우리 국민들이 의논하고 기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이는 연락사무소장의 급이나 대북제재 문제 등 정치적 문제는 차치하고 그 자체로서 우리 국민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적, 제도적 장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둘째는 실질적 측면이다. 남과 북은 공동으로 마련된 연락사무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실질적 기능을 부여하고 보장하여야 한다. 동서독 상주대표부의 경우는 대화 통로, 주민 편의제공 등 기본적인 기능뿐 아니라 각기 상대방의 접촉면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기능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청소년 교류, 스포츠 교류, 학술 및 문화 교류 등 동서독 관계 확대 발전에 따른 새로운 업무들 또한 창출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정치범 석방, 대동독 지원 등 동서독 인도적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상주 대표부는 협의 창구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물론 동서독의 경우도 그 이상의 레벨이나 중대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중앙정부 및 각기 협상 파트가 직접 협상에 임하였다. 따라서 우리 연락사무소의 경우도 실제 남북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소통과 협의의 창구로서 협력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남북관계의 확대 발전에 대비하여 상주대표부와 같은 역할의 확대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전 동베를린 상주 대표부 대표였던 한 인사는 동서독 기본조약과 상주대표부 운영에 대해 의미심장한 평가를 한 바 있다. 그는 동서독 기본조약과 상주대표부는 독일이 통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 국내외 정치적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독일 문제를 관리하는 데 기여했다고 언급하였다. 우리의 공동 연락사무소 설치도 한반도 상황 관리와 남북관계의 제도화에 있어 중대한 진전이다. 우리는 독일이 해온 두 가지의 제도적 장치와 같이 지난 판문점 선언과 앞으로 있을 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통해 남북관계의 '되돌릴 수 없는' 제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당면한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선순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선 독일인사의 언급처럼 우리가 스스로 통일을 할 수 있는 대내외적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남북관계의 상황은 제도화된 장치를 통해 관리되고 발전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지금 새로 태어났고 첫발을 뗀다. 우리 스스로가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금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기점임을 인식하자./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작가와 글쓰기의 자유

[춘추칼럼]작가와 글쓰기의 자유

글쓰는 자유로움 여전히 부족한 우리 실정제도권 작가사회는 썩을 대로 썩었다비제도권에서 좋은 글 많이 생산한다면인식 새로워지고 작문의 자유 확산될 것'작가'도 뭘 쓰느냐에 따라 과일 종류만큼 세분된다. 드라마작가, 웹툰작가, 게임작가, 동화작가, 시나리오작가, 소설가, 시인, 영화평론가, 저널리스트, 수필가……. 어떤 식으로든 등단 혹은 데뷔를 한, 권위를 얻은 제도권 작가들이다.지명도로 따져도 다양한 작가가 존재한다. 텔레비전에 자주 혹은 이따금 나오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뜨기도 하는, 페이스북 팔로워가 몇 명인, 무슨 상을 받은,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물론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이 훨씬 많다.우리나라에서 인세(책이 1권 팔릴 때 그 책값의 10%가 작가의 몫이다)와 원고료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작가는 스무 명이 채 안 된다. 유명한 작가도 글세(인세+원고료)보다 부가수입(원작료, 강연료, 심사료, 출연료 같은)이 더 클 테다. 흔히 '전업작가'는 일반적으로 '글세+부가수입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작자'를 말한다. 드물지만 글세로부터 자유로운 작가들도 있다. 회당 얼마씩 받는다는 드라마작가, 인터넷문화상거래의 선봉 대세 웹툰작가…….대개 작가는 따로 직업이 있다. 글과 가깝고 안정적으로 글을 쓸 환경이 되는 직업이 압도적이다. 교수, 교사, 언론인, 공무원, 법조계 종사자……. 하지만 그 환경 그 조건에서 어떻게 글을 쓰는지 반대로 그 환경 그 조건에서 왜 글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되는, 육체적으로 혹독한 직업에서부터 재벌까지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다. 작가 자신이 직업이 없다면 배우자가 있다.글쓰기는, 일기가 아닌 이상, 누군가 읽고 재미를 느끼든 감동하든 메시지를 얻든 뭔가 해주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글이 돈과 연관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해도 인정은 받고 싶다.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는 까닭이다. 욕망 자체가 '프로정신'이겠지만, 아직은 아마추어인 제도권 진입을 꿈꾸는 작가가 무수히 존재한다.'엽서시문학공모전'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공모전 정보를 취합해놓았다. 깜짝 놀랄 테다. 이렇게 많은 출판사가 지자체가 사공기업이 학교가, 이토록 많고 적은 상금을 걸고, 이처럼 허다한 글쓰기 공모전을 열고 있다니. 그러한 공모전이 매년 시행될 수 있는 것은 매년 글을 써서 응모하는 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응모자는 청소년(학생작가)이다. 여러 가지 까닭으로 청소년 대상의 백일장과 공모전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수한 비제도권 작가가 있다.유사 이래 수천 년 동안, 글쓰기와 읽기는 문자를 만들고 소유하고 장악한 특권계급(상류층)의 것이었다. 모든 계층이 고루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채 백여 년이 되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정음을 창제하신 게 1443년이지만 80% 이상의 한국인이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모든 한국인이 '독자'가 되었지만, 작가는 오랫동안 상류층과 지식인과 등단자의 것이었다. 쓸 수 없었던 게 아니다. 써도 발표할 수가 없었다. 권력자와 상류층이 지면을 소유했고, 그 지면에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자는 등단이라는 문학제도를 돌파했거나 권력집단·상류사회·지식인사회의 일원으로 작가적 권위를 덤으로 얻은 이들이었다./김종광 소설가제도권 작가들과 제도권 진입을 열망하는 예비작가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터넷의 발전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새 세상을 열었다. 말 그대로 종이밖에 없던 지면이, 저 사이버 공간에 무한히 있게 되었다. SNS의 무한 확장을 보라! '모두가 작가인 세상'은 우리 한국사회가 이룬 가장 소중한 진보다. 누구나 마음껏 글을 읽고 쓸 수가 있고, 누구나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글을 발표할 공간을 가지는 사회! 아직 이런 자유를 못 누리는 나라와 사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세세히 따지면 우리나라도 갈 길이 멀다. 여전히 글쓰기의 자유가 부족하다. 제도권 작가사회는 썩을 대로 썩었다. 비제도권 작가들이 '재미와 감동과 메시지를 겸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중에 하나는 있는' 좋은 글을 많이 생산하면, '작가'에 대한 인식은 새로워지고 글쓰기의 자유는 확산될 것이다.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대학과 지역

[춘추칼럼]대학과 지역

'내부의 보수화' 새 시대·문화 못담는 대학인구절벽·청년실업 환경 변화에 존립 위기학문·생활·문화·노동 등 최적 공동체 대안지역사회 연계 '캠퍼스타운' 실질적 노력을대학이 위기이다. 위기의 원인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먼저 외적 요인으로는 '인구 절벽'이라는 환경변화에 따른 문제이다. 대학을 구성하는 핵심인 학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대학은 존립 자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향후 국내 상당수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문을 닫는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장기적인 청년실업 문제도 대학 위기의 외적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대학이 더 이상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적 요인으로는 대학 내부의 보수화다. 사학 비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와 문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교육 내용으로 인해 대학은 더 이상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빠르게 변해야 하지만 가장 느리게 대응하는 곳이 대학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대학 붕괴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나아가 새로운 대안을 발견하는 차원으로 이어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학 붕괴의 원인과 결과로는 대학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과 교수, 직원의 관계가 파편화되고 무너진 것을 들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대학공동체의 붕괴이다. 이는 2000년을 전후로 신자유주의 논리가 대학사회에 빠르게 전파된 결과로서 학생과 교수, 직원이 대학공동체 차원에서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지 않고 '각자도생'의 길로 달려간 결과이다. 학생은 취업 전쟁에 뛰어들었고, 교수는 평가와 연봉에 매달렸고, 직원들은 경영 관점으로 수익 관리를 하는 집단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대학에 대안은 있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대학공동체의 복원이다.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취업 등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대학은 최소한 몇 년 동안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대학공동체에 들어오는 학생들과 함께 교수와 직원이 함께 대학사회를 일종의 공동체로 만들어 간다면 이는 지금 시대에 필요한 중요한 모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청년 세대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이미 사라진 공동체의 경험을 대학에서 수 년 동안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대학공동체는 학문과 생활과 문화와 노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동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공 분야로 분절되어 있는 대학 내부의 구조부터 혁신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방치한 채, 엉뚱한 곳에서 공동체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대학은 지역사회와 연계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학은 지역과 별개로 존재해왔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상권 정도에 기여할 뿐 지역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더라도 대학이 별다른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학과 지역은 상호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역은 급격한 인구 감소에 대응해서 어떻게 하면 대학자원이 지역자원으로 연계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며, 대학 역시 단순한 취업 차원의 고민을 넘어 대학공동체가 지역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서울 소재 대학을 중심으로 '캠퍼스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과 지역을 연계하고 수업과 활동, 공간 등을 연결함으로써 일종의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대학을 사고하게 만드는 일이다. 취지는 좋지만 여전히 현실은 멀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성과주의와 대학 이기주의 등이 맞물려서 실질적이고 통합적인 협력과 연계는 가능하지 않다. 대학과 지역이 본질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캠퍼스타운이 되려면 기존 행정과 대학 구조를 흔들 수 있는 관점과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현재 한국사회의 대학은 일종의 섬으로 존재한다. 대학이 외로운 섬으로 남지 않으려면 대학과 지역의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노력 이상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과 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취업을 넘어 산업과 경제, 문화와 예술, 마을, 공동체, 일상 등 모든 영역에서 연결될 수 있는 지역과 대학의 관계를 상상해본다./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인식전환 골든타임 놓쳐서는 안된다

[춘추칼럼]인식전환 골든타임 놓쳐서는 안된다

한국경제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지지 않고국정안정 꾀하려면 대통령 생각 전환 필요경제 기조 '소득주도→혁신 성장' 바꾸고주류세력 교체론 벗어나 내각에 권한 줘야집권 2년차 문재인 정부는 몇 가지 '인식적 오류'에 직면해 있다. 첫째, 방향((목표)이 옳으면 방법(수단)이 다소 거칠고 투박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 기조는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면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이런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 수단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정책 목표에는 공감한다.그런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정책 효과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저소득층 일자리는 줄어들고, 물가는 상승하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내년도 최저 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 절벽, 생산 부진, 경기 비관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한국 갤럽 조사(7월 24-26일) 결과,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62%로 6주 연속 떨어져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대로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28%로 역대 최대였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37%)이 압도적인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12%)이 뒤를 이었다. 방향과 방식의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다.둘째, 주류세력이 교체되어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다. 정권이 교체된 것은 넒은 의미에서 주류 세력이 교체된 것이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세력이 권력을 이용해 사회 주류 세력을 교체하겠다는 것은 자칫 권력의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야당 인사를 장관에 임명하는 협치 내각을 제안했다. 국민통합을 이루고 국회에서 야당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그런데 한손엔 적폐청산을 통한 보수 주류세력 교체, 다른 한손에 야당과의 협치를 내 세우면 꼼수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류 세력이 교체되지 않아서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혁신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주류 세력은 권력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국민만이 교체할 수 있다.셋째, 대통령 친정체제가 구축되어야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사고다. 그 일환으로 집권 초기부터 총리와 내각 대신 청와대가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최근 청와대는 국민홍보, 정책 조정, 연설 기획 등을 신설하는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 각 부처의 정책과 홍보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모든 현안을 챙기는 만기친람의 행태를 보일 때 역설적으로 국정 효율성은 떨어진다. 5년 단임 대통령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경험적으로 입증된 법칙이 있다. 새 정부 출범이후 1년 6개월 동안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고, 그 실망이 분노를 넘어 혐오로 치달으면 민심이 폭발한다. 올 연말까지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대통령이 열심히 일하고 정책 목표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지지 않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이젠 경제 정책 핵심 기조를 소득주도 성장에서 혁신 성장으로 전환하고, 이념적 양극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주류 세력 교체론에서 벗어나고, 총리와 내각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통령이 적기에 정부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경제는 휘청거리고, 협치는 사라지며, 민심도 크게 이반될 수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더보기
나도기자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