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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에세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풍경이 있는 에세이]"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즐기는단점 많은 곰돌이 푸 친구들그들 우정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힘들때 이들의 세상 걱정없는 대화읽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뉴스를 끊은 지 꽤 됐다. 명색이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적절한 방법은 아니지만 '뉴스'로 다뤄지는 소식들에 들썩이는 마음을 주체할 길 없어 고민 끝에 한시적으로 선택한 방법이다. 사실 뉴스보다 먼저 끊은 건 SNS다. 하루라도 업데이트되는 소식들을 못 보면 마음이 불안했는데 막상 끊고 나니 또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두 번째 선택으로 뉴스를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안 보고 모르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이 또한 효과가 괜찮다. 가장 놀라운 것은 꼭 알아야 할 것처럼 챙겨보던 그 모든 소식들을 몰라도 일상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뉴스를 비롯한 각종 소식들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 소식을 모르다 보니 자칫하면 이 귀여운 곰돌이와 유쾌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뻔했기 때문이다. 바로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 Exploring a Classic)' 전시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인 꼬마 크리스토퍼 로빈과 이 꼬마의 둘도 없는 친구인 곰돌이 푸가 주인공이다. 물론 꼭 이 전시를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디즈니 만화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히고 노란 곰으로 캐릭터화되기 이전, 보송보송한 털 인형에 가까운 원형의 푸우를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놓치기 아까웠다. 바로 지금, 매일매일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날인 푸에게는 다양한 모험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다. 소심한 피글렛, 항상 우울한 당나귀 이요르, 에너지 넘치는 호랑이 티거, 허세 가득한 부엉이 아울, 간섭대장 래빗까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 보이는 친구들이지만 이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오늘은 무슨 신나는 일이 생길까?"라니! "그냥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들을 수 없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비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이런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 철학적인 곰은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꿀단지를 껴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준다. 노는 것조차 딱히 뭘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푸와 친구들이 하는 '푸스틱(poohsticks)'놀이가 그렇다. 다리 위에서 동시에 나뭇가지를 떨어뜨린 뒤 다리 반대편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강물을 따라 가장 먼저 흘러내려오는 나뭇가지의 주인이 이기는 놀이다. 푸가 자신의 앞발에 튕겨져 강물로 떨어진 솔방울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보다가 발명한 게임이라고 한다. 강물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바람에 다리 난간에 붙어 서서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봐야 할 때도 있지만, 로빈과 푸에게는 즐거운 놀이 중 하나다. 사실 실제 해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놀이일 수도 있고 뭔가를 하기보다는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는 놀이지만, 이 둘에게는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실제 동화의 배경이 된 영국 하트필드에서는 일 년에 한번, 푸스틱스 시합이 공식적으로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만큼은 어른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 동화 속 세계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그것밖에 할 게 없는 바로 그때 '모험'이 시작되고 소년과 곰이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정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우린 평생 친구지? 그렇지?"라는 물음에 "그보다 더 오래!"라고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워진 나는, 이들의 우정이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름다워 보이는 이들의 우정이 동화이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책을 덮으며 싱긋 웃고 만다. 로빈과 푸, 친구들이 나누는 우정이 '왜 나에게는 없을까' 고민하며 우울해하는 대신, 힘들 때 이들의 순진무구하고 세상 걱정 없는 대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원작 책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뭔가에 쫓기듯 분주하던 마음과 들끓는 욕망을 슬그머니 내려놓아 본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쉽지 않지만, 이 동글동글한 곰돌이 푸와 함께라면 좀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풍경이 있는 에세이]죽서의 애절한 시편들

[풍경이 있는 에세이]죽서의 애절한 시편들

10세때 지은 '창밖에서 우는 저 새는…두견화는 피었는지' 서정 넘쳐서기보의 첩실로 님 향한 그리움병약함으로 애잔한 시 짓기 낙 삼아늘 홀로 지내는 고적함 잘 드러내가을밤 깊어진다. 밤 깊어지며 생각이 깊어지는 건 계절 때문이리라. 찬바람이 인다. 별빛이 흔들린다. 열엿새 달빛이 유난히 밝고 시리다. 밝은 달빛으로 검은 하늘이 푸르게 보인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은 고즈넉함이 사위를 흐른다. 귀뚜라미 울음이 울컥 숲을 토해놓는다. 이런 밤을 죽서는 수없이 보냈을 것이다. 밤 지새 눈물지으며 조용한 사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것이고, 오지 않는 님을 기다려 가슴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박죽서(1817~1851)는 원주 출신의 시인이다. 원주는 여류들의 문향이었다. 금원과 경춘이 원주 출신의 시인이다.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편을 생각하면 고향 마을이 원주 어디인지 전해지지 않은 것이 못내 안타깝다.박죽서는 부사 서기보(1785~1871)의 첩실로 들어간 이후 길지 않은 생애를 병약함으로 보내며 시를 짓는 일을 평생의 낙으로 삼았다. 그녀는 첩실이어서 늘 남편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지 않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슬프도록 애잔한 가락으로 많은 시편을 흐른다. 그녀는 병 깊은 몸으로 애달픔과 기다림의 십몇 년을 보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시문이 뛰어나 십세시를 짓기도 했던 그녀는 첩실이거나 기녀였던 여류시인 금원, 운초, 경산, 경춘과 어울렸다. 모두 빼어난 시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용산에 있었던 삼호정에서 '삼호정시사'라는 동인을 만들어 시를 짓고 거문고를 뜯으며 수심을 달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그녀의 유고를 모아 '죽서시집'을 엮은 사람이 남편 서기보의 재종 돈보다. 166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돈보의 서문과 문우 금원의 발문이 뒤에 수록되어 있다. 남편 서기보는 시문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관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돈보는 '죽서시집' 서문에서 '혼자 있을 때는 단정하고 침중하고 그윽하여 마치 사색하는 듯하였다'고 적고 있다. 죽서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발문을 남긴 금원은 한마을에서 나고 자란 벗이었다. 금원은 '아! 이 책은 죽서가 지은 것이다. 책을 대하니 그 사람을 보는 것 같구나. 반짝이는 눈과 붉은 뺨이 은은하게 책장 사이에 어려 비쳐 있으니 아! 아름답구나'라고 죽서의 부재를 가슴 아파한다. 그녀가 10세 때 지었다는 시에서 '창밖에서 우는 저 새는/어느 산에서 자고 왔는고/아마도 산속의 일 알겠지/두견화는 피었는지'라고 노래한다. 왕유의 시를 차운했다고는 하지만 어린 소녀의 시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서정이 넘친다. 늘 홀로 있는 고적함이 잘 드러난 시가 '감회에 젖어서'다. '비낀 해 서산에 지고 달 동쪽에서 떠오르자/홀로 등불 앞에 누우니 온갖 일 공허하네/천지에 밤 들자 모두 적막해졌는데/어찌하리 이 마음속 번뇌를'에 이르면 그녀의 외로움이 뼈에 사무친다. 그녀의 그리움의 원형은 고향일 것이다. '고향을 그리며'에서 '난간에 홀로 기대니 시름 더욱 끝없는데/북풍에 눈 날리며 날이 저문다/멀리 구름 밖에서 들려오는 몇 마디 기러기 소리/동쪽 바라보니 고향은 하늘 서쪽'이라고 읊었지만 주로 한양에서 생활하던 죽서였으므로 원주는 남쪽이어야 맞을 것이지만, 서쪽이라야 울림이 있다.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병을 얻고서'라는 시에서 '병 들고나자 한번 웃는 일도 드물어/꿈 속에서 생각만 오락가락/이 몸이 만약 새가 된다면/잠시도 헤어지지 않고 님 찾아 날아가리'라고 노래해 병든 몸이 님에게 얼마나 몹쓸 일인지 자책하는 것으로 읽히는 문장이 '잠시도 헤어지지 않고 님 찾아 날아가리'다. '병 앓고 나서'라는 시에서는 '앓고 나니 살구꽃 피는 봄 시절도 지나/마음은 흔들흔들 매지 않은 배와 같네/……/거울 속 파리한 모습 도리어 슬플뿐/스물 세 해 긴긴 세월 한 일이 무엇인고/절반은 바느질로 절반은 시를 써 없앴다네'라고 노래한 것으로 보아 병이 얼마나 오래고 깊었는지 짐작케 한다. 안타깝고 애처로운 일생이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풍경이 있는 에세이]가장 보통의 결혼식

[풍경이 있는 에세이]가장 보통의 결혼식

평소 절친한 선배 시인 늦은 장가축가도 훌륭한 이벤트도 없었지만양가 부모님께 쓴 편지 읽어가는데별다른것도 아닌데 순간순간 울컥그 시간이 너무 짧은듯해 아쉬움만결혼식에 대해서라면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알다시피 '결혼'보다는 '식'에 방점이 찍힌 탓에 예의 인사치레만 남곤 한다. 신랑 신부도 고되겠지만, 하객 입장에서도 제법 벅찬 노동이다. 얼른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몇 장의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런저런 일정을 떠올려 스킵 할 방도를 궁리했다. 귀한 주말 시간을 할애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서 여러 가지를 재게 된다. 관계의 정도를 가늠한 뒤 더도 덜도 아닌, 욕먹지 않을 만큼으로 신중히 책정한 축의금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는 일찌감치 업무에서 해방되는 편을 택한다. (결국, 그 결혼식의 주인공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욕을 피할 수는 없겠으나) 축하의 마음만은 진심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어쩌다 마지못해 결혼식에 참석한 날에는 엇비슷한 복장을 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정신을 놓게 된다. 얼굴 도장 찍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작 나를 초대한 신랑 신부와는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채 떠밀리다시피 멀어진다. 신랑 신부 옆에 엉거주춤 서서 다급히 찍은 사진이라도 한 장 건진다면 그나마 다행. 식이 시작되면 보는 둥 마는 둥 가장자리에 섰다가 주례사가 끝나기도 전에 냉큼 식당으로 가 뷔페를 몇 접시 퍼먹고 돌아오면 마침내 일을 끝냈다,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일순간 밀려드는 회의를 막을 길이 없다. 씁쓸하지만 한국에서의 결혼식이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다른 뭔가를 기대해선 곤란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결심한다. 아, 결혼식이란 이름의 저 서글픈 부조리극을 나는 결코 연출하지 않으리. 행여 결혼을 한대도 결혼식만은 절대 사양. 그런 나는 얼마 전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토요일 낮에 있은 보통의 결혼식에서였다. 지방 소도시의 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와 일행은 새벽같이 모여 신랑 신부가 마련한 전세버스에 올랐다. 세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작고 오래된 예식장. 여느 결혼식과 다른 점이라곤 딱히 없어 보였다. 신랑 신부와 눈 맞춤에 가까운 짧은 인사를 나눈 다음 축의금을 내고 식권을 받고, 시끌시끌한 식장에 들어 식을 지켜본 뒤 사진을 찍고 뷔페가 있는 식당으로 총총총. 그간 익히 해왔던 방식 그대로 하객으로서의 업무를 얌전히 수행했다. 그러나 분명 달랐다. 그 결혼식의 신랑은 평소 절친한 선배 시인으로, 그의 늦은 장가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내 일처럼 기뻤다. 결혼식 일정을 체크하며 다이어리에 크게 별표를 그려두었는데, 그걸 보며 괜히 혼자 들뜨곤 했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신혼집이나 신혼여행 등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도 하고. 결혼식 전날 나는 선배에게 엽서를 썼다. 쑥스러워 건네지도 못할 마음을. 좋은 선배, 좋은 시인이기에 앞서 좋은 남편이 되면 좋겠다고. 선배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쭈뼛거리다 결국 축의금 봉투에 감추듯 넣어 전한 엽서는 분주한 그에게 제대로 닿지 못했을 것이다.축가도 그럴듯한 이벤트도 없었다. 다만 신랑이 양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었고, 그 과정은 지극히 단출하고 소박했다. 별다를 것도 없는데 순간순간 울컥한 뭔가가 밀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재빨리 감정을 가다듬곤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평소 가까이 지내는 몇몇 또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물론 객석의 대다수는 언제나 그렇듯 부산하고 어수선했지만. 예식은 사십여 분 만에 끝이 났고, 어쩐지 그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나는 알았다. 결혼식이란 얼마나 숭고한 의식인가. 유의미한 절차인가.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여태껏 기계적으로 다닌 여러 결혼식들을 곰곰 되짚어봤다. 그래,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결혼식이 아니었던 것이다./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풍경이 있는 에세이]마흔에도 예쁘다

[풍경이 있는 에세이]마흔에도 예쁘다

늘 바빴고 늘 허둥거리며 살았고이젠 '하루치 더 늙었겠지' 무심 속맞은 나의 마흔,얼마전 만난 후배는좀 더 열심히·신나고·즐겁게인생을 정리한 '건강 삶'… 응원마흔을 앞두었던 겨울, 나는 하도 우울하고 쓸쓸해서 친구들에게 투정을 옴팡 부렸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동갑내기가 아니어서, 한 명은 마흔세 살을 앞두고 있었고 한 명은 서른일곱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사십 대가 된 친구는 심드렁한 얼굴로 "별것도 아닌 걸로 우울해하긴"이라며 중얼거렸고 아직 삼십 대인 친구는 "나도 마흔이 되면 저러겠지"하며 나를 동정했다. 시간을 막을 도리가 없으니 나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마흔 살을 맞고야 말았다. 얼마 전 후배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녀는 내게 반짝 손을 흔들며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언니! 제가 벌써 마흔 살이 된 거 알고 계세요?"나는 까르르 웃고 말았다. 천방지축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전 세계를 헤집고 여행을 다니던 스무 살짜리가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고? 서점에서 만난 우리는 종이냄새가 물씬 퍼지는 서가를 돌아다니며 늦은 안부를 나누었다. 여전히 그녀는 건강해 보였다. 오래 걸어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여유가 표정에 묻어나서 그런 것이었을 테다. "여행, 할 만큼 했고 직장, 다닐 만큼 다녔고요. 세상에 제가 농사도 지어봤어요. 시골에 땅을 사서요. 신기하지 않아요?" 농사꾼인 적이 있었다는 건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얼굴은 영 서울내기 깍쟁이 스타일인 데다 하늘하늘한 시폰 드레스 차림으로 긴 머리 휘날리며 나온 이 녀석에게 농사라니.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 농사꾼은 분명 그녀가 맞았다. 목에 두른 수건과 헐렁한 작업 바지마저도 그녀가 입으니 꽤나 힙해 보였달까. 뭐든 즐겁게 했구나, 이 녀석은. 그러니 이렇게 예쁜 마흔 살로 자랐겠지.손님이 드문 맥주집에 앉아 그녀가 주섬주섬 꺼낸 건 원고 뭉치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이렇게라도 내 인생을 정리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쓴 원고예요. 언니가 한번 읽어봐 주세요."그러니까 마흔 살에, 마흔 살을 돌아보며 가만가만 써내려간 에세이 원고 뭉치였다. 나는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이 안에 이 녀석의 지난 삶이 오롯이 담겼겠구나, 하면서 말이다.마흔 살을 앞두고 투정을 부린 것 외에 나는 다른 기억이 잘 없다. 물론 삼십 대와 마찬가지로 늘 바빴고 늘 허둥거렸고 어느 때엔 별 이유도 없이 자신만만하기도 했다. 연애를 하기도 했고 소설도 썼고 변함없이 책을 출간하고 번역을 했다. 달라진 건 없었다. 눈가 주름이 더 늘었을까 걱정하며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늘었지만 그 습관도 곧 사라졌다. 주름 따위에 신경을 계속 쓰다간 스트레스 때문에 더 늙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이제는 '하루치 더 늙었겠지, 뭐' 하는 정도로 무심하게 넘길 수 있다. 원고 속 후배의 삶은 참 예뻤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을 조금 더 신나게 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웠고 친구들과 파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해 요리를 익혔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보이차를 즐겼다. 덕분에 영어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요리강좌도 열고 보이차 살롱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이 키운 것들로 배를 채워보고 싶어서 농사도 지었던 거다. 여간 찬연한 청춘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마흔 살이 하도 예뻐 원고를 덮은 후 말을 꺼냈다."넌…… 마흔에도 예쁘다."이번에는 후배가 까르르 웃었다. "정말 마흔에도 예쁠까요?"얼마 후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에세이집 제목을 '마흔에도 예쁘다'로 하고 싶다고. 언제쯤 출간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부디 잘 만들어서 세상의 모든 마흔 살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풍경이 있는 에세이]금산사 미륵전

[풍경이 있는 에세이]금산사 미륵전

혼자 깨닫고 즐거워한다는 '독락'그렇게 위로하는 말 찾았던것 같다이 고요하고 깊고 단순한 여백에 한가로이 머무르지 못하는 아쉬움그래, 또 오리라… 다시 오리라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母岳山) 아래 터를 잡은 사찰 금산사는 첫 방문이다. 지금껏 본 국내 사찰들을 떠올려보면 거기도 거기 같고 여기도 거기 같은 곳이 많아 전에 다녀왔는지 아닌지 불분명한 곳이 있었다면 금산사는 처음부터 가보지 못한 사찰이란 확신이 들어 이번 남도 여행 마지막 코스로 계획을 잡았다.많은 이들이 금산사는 벚꽃 피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지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벚꽃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배롱나무꽃은 주로 남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꽃이라 이것만으로도 남도 여행의 이유는 충분했다. 선운사, 내소사, 백양사, 내장사를 거쳐 금산사를 향하는 오후 내내 비가 내려 길을 더디게 했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 마지막 코스이니 우산을 쓰고라도 돌아볼 작정으로 매표를 하고 들어가니 입구에 '견훤성문'이라는 현판이 기다린다. 다행히 비는 가늘어지고 사찰은 한산했다. 그날만 그런지 절 앞까지 차가 들어가도록 허락해주었다. 당연히 걸으면서 즐겨야 하지만 비 때문에 지체되는 바람에 문 닫을 시간을 걱정했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정형화된 산지 가람의 틀을 깨고 비교적 완만한 곳에 자리를 잡은 금산사의 첫인상은 웅장하지만 차분하다. 그것은 미륵보살을 모시는 미륵도량이 한몫 했을 것이다. 사찰 마당으로 들어서면 차분하게 물러나 앉은 정면에 단정한 대적광전 건물을 마주하게 되는 자리가 금산사의 중심공간이다. 대적광전은 정면 7칸 건물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최근에 신축한 건물이어서 오른편 미륵전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나는 되도록 멀리서 대적광전과 미륵전을 감상하고 싶어 세 그루 배롱나무가 한가로이 절마당에서 붉은 꽃을 피우고 선 고목 뒤로 나앉아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미륵전은 기대가 컸으므로 마지막에 보기로 하고 천천히 사찰을 돌아본다. 대적광전을 마주하고 사찰의 가람배치도를 살피니 한 평 땅이라도 요사체를 지어 신도를 끌어오기 바쁜 여느 사찰과 비교하면 이렇게 단순하고 큰 여백을 지켜온 금산사가 새삼 대단해 보이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금산사 마당의 넓고 아름다운 여백에 반했다는 말을 여기서 굳이 아끼고 싶지 않다. 한참 동안 대적광전과 너른 마당을 서성거리다 뒤편 작은 법당을 둘러보는데 법당의 아름다운 문살과 흰배롱나무 꽃과 산수국이 어찌나 내 마음을 홀리는지.그러나 서둘러야 한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문 닫을 시간이 가깝다는 걸 알고 방등계단을 올라서자 피안과 차안의 경계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곳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보물 제26호 종형사리탑과 보물 제26호인 단아한 오층석탑이 있다. 방등계단은 부처님 계율을 내리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몇 개의 석상이 있고 적멸보궁은 뒤편으로 살짝 몸을 숨기는 형국이다. 방등계단 위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모든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꼭 필요한 부분만 살린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고 보니 사찰 중심에 저리 큰 공간(여백)을 남겨두기 위해 건물을 얼마나 절제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방등계단 반대편으로 내려와 미륵전으로 향한다. 금산사 가람배치를 보면 중심건물은 대적광전이지만 큰 의미로 미륵전은 금산사의 상징이며 본당이라 할 수 있다. 미륵전은 국보 제62호로 거대한 3층 목조건물이다. 이곳은 금산사 대가람의 연륜과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곳으로 위엄이 느껴지며 두 팔로도 모자라는 거목을 기둥으로 세워 건물을 받들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내부는 층을 나누지 않는 통층으로 높이 12m의 거대 미륵불과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미륵전 1층은 대자보전, 2층은 용화지회, 3층은 미륵전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이들 모두 미륵불을 의미한다.부처님 거대 입상은 촬영금지라 아쉬워하던 차에 스님이 미륵전 문을 닫기까지 한다. 내가 마지막 방문자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혼자 깨닫고 즐거워한다는 독락,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말을 찾았던 것 같다. 이 고요하고 깊고 단순한 여백에 한가로이 머무르지 못하는 아쉬움이라니, 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배롱나무 아래 한참을 서있었더니 오금이 저리고 두 발이 땅에 붙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 또 오리라. 다시 오리라./김인자 시인·여행가김인자 시인·여행가

[풍경이 있는 에세이]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풍경이 있는 에세이]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우리나라 사람이나 외국인이나모두 불친절·친절한건 아니지만분명한 것은 여유·배려 베푼다면삶이 더 편안해져… 그러기 위해선'나부터 먼저' 타인에 너그러워져야지금 이 글을 아이슬란드에서 쓰고 있다. 창밖엔 비가 퍼붓는다. 여행자에게 날씨는 여행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니 짜증이 난다. 짜증과 화를 낸다고 비가 멈출 것도 아닌데, 그냥 나 자신을 향한 상처일 뿐인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을 땐 즐기라 했는데,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다. 대상이 없는 짜증과 화는 우리 삶을 갉아먹는 좀벌레 같은 것,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자주 화를 내는 건 아닌지.좀 지난 일이지만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 욕실을 새로 리모델링하고 두 달이 안 돼 샤워기 머리가 부러졌다. 수리를 신청했더니 기사가 왔다. 이거 조심해 써야 해요. 플라스틱이니까 막 떨어뜨리고 두드리면 부서지잖아요. 짜증이 나지만 꾹 참는다는 말투다. 나 역시 약간 화가 났지만, 일부러 힘을 준 적도 없는데 이렇게 두 달 만에 부러지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녜요. 그 기사가 한 걸음 더 나간다. 이번엔 무료로 해주지만 다음에 또 부르면 유상처리할 거예요.또 이런 일도 있었다. 샌들 뒤 끈 고무밴드가 늘어나 수선을 신청했다. 열흘 만에 다 고쳤으니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고친 게 좀 이상했다. 밴드를 새것으로 교체한 게 아니라, 늘어난 걸 절반으로 잘라붙여 놓았다. 나는 좀 어이없어서, 양쪽이 안 맞네요, 여긴 늘어나질 않아요. 점원 얼굴색이 바뀌며, 짧게 잘라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줬잖아요. 짜증이 나지만 참는다는 말투다. 나는 주눅이 들어, 그래도 탄력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죠. 점원이 신경질적으로, 그럼 다시 보낼 테니 길이가 줄어들어도 몰라요.두 경우 모두 꽤 이름난 기업 제품이었는데,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와는 아주 대조적인 두 사례를 들려드리고 싶다. 지금 아이슬란드로 오기 전에 나는 노르웨이와 페로제도를 보름간 여행했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매우 느긋하고 여유가 있다고 느끼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북구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무표정하고 무뚝뚝해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한 예이다. 페로 토르샤븐의 한 민박집에서 나흘을 묵었다. 내 숙소는 일층이고 주인은 이층에 살았는데, 집이 청결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고급 호텔보다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중 내 카메라 삼각대의 나사가 느슨해져 사용이 매우 불편하게 되었다. 삼각대 나사는 육각형 드라이버로만 죌 수가 있는 특이한 구조라서 주변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주인에게 도움의 메일을 보냈다. 그는 주말 동안 가족 여행을 떠나 지금 집에 없다고, 하지만 기다려보라는 답을 보내왔다. 잠시 후 이웃집 낯선 아저씨가 내 문을 두드리더니, 뭐 도움이 필요한 게 없느냐, 묻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감동했다. 그 친절한 사람들 덕에 나는 삼각대도 고치고, 여분의 육각형 드라이버까지 하나 얻어 여행 내내 잘 사용하고 있다.아이슬란드의 한 마트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이다. 저녁나절 손님이 꽤 붐비고 있었고, 온통 아이슬란드 언어로 쓰여 있는 매장에서 나는 달걀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실패했다. 그때 물건을 가득 싣고 와 선반에 바삐 정리하던 직원을 발견하고, 달걀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젊은 직원은 일과를 마칠 때라 조금 지쳐 보였다. 나도 조금 미안해졌다. 그런데 그녀는 불러줘 고맙다는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하던 일을 멈추고 꽤 큰 매장을 이리저리 돌아 나를 안내했다. 그 순간 나는 많이 미안해졌고, 그만큼 많이 행복해졌다. 다시 보니 그녀가 아주 많이 예쁜 것 같았다.물론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불친절하다는 말은 아니다. 더욱이 모든 외국인이 우리보다 친절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유와 배려를 통해 우리 사는 곳이 더 넓어지고 편안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세상을 향한 사회 시스템도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우선 '나부터 먼저' 타자에게 너그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짜증은 짜증으로 돌아오고, 화는 화로 돌아올 뿐이다./정한용 시인정한용 시인

[풍경이 있는 에세이]`일잘러`와 `일못러` 사이

[풍경이 있는 에세이]'일잘러'와 '일못러' 사이

휴게소 예능 '맛남의 광장' 보니…백종원 누구보다 많이 주문량 소화자신만만하던 양세형은 '우왕좌왕''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믿음 취해 덜 중요한 일에 정성 쏟는게 아닌지추석 연휴, '맛남의 광장'이라는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백종원이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신메뉴를 개발해 휴게소에서 장사하는 내용이었다. 메뉴는 충북 영동의 특산물을 이용한 영표(영동표고)국밥과 덮밥, 촉촉한 복숭아 파이, 튀긴 마약옥수수였다. 모두 매력적인 메뉴들이었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출연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4명의 출연자 중 으뜸은 역시 백종원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주문량을 거뜬히 소화해냈고, 일을 많이 해 본 사람 특유의 여유롭지만 꼼꼼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손님들에게 영동 특산물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의 미션을 잊지 않고 다른 출연자들의 일까지 살피면서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일처리 방식은 신뢰감을 더했다. 의외였던 출연자는 양세형이었다. 백종원의 수제자를 자처하며 누구보다 자신만만하던 양세형은 쉴 새 없이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당장의 주문 처리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도 잘못된 확신으로 일을 처리해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다. 주문이 밀리자 선호출 후 국밥을 담아주는 센스를 발휘해 여유롭게 상황을 돌파한 백종원과 달리 양세형의 주문은 밀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호출 기계가 고장난 돌발상황까지 겹쳤는데도 양세형은 밥을 퍼서 밥공기에 담고 덮밥 그릇에 옮기면서 '밥 푸는' 과정에 시간을 과도하게 쓰는 것도 모자라, 고명으로 올라가는 계란을 정확히 반 토막 내는 등 중요하지 않은 과정에 집중하면서 정성을 들인다. 양세형이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란 신념으로 엉뚱한 데에 공을 들이는 사이 주문은 밀리고, 늦게 나오는 덮밥에 사람들의 불만도 쌓여간다.처음에 백종원이 알려준 방법 그대로, 너무 정석대로 한 것이 양세형의 실수였는데 사실 이 정도 실수는 초보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저와 젓가락을 챙겨주고, 밥 양을 밥공기에 맞춰 계량해주고, 달걀을 반으로 정확히 갈라 올려주다니 나는 아주 잘 하고 있어"란 생각과 태도가 문제였다. 전형적인 '일못러(일을 못하는 사람)'의 착각이라 할 수 있겠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손님에게는 수저를 누가 챙기느냐보다 음식이 빨리 나오는 게 훨씬 중요한데, 양세형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뿐더러 자신의 선한 의도에 스스로 취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실제 일하다 보면 양세형처럼 어떤 상황에서 '선함' 혹은 '옮음'을 선택해 문제가 있는데도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못러'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들의 문제는 그 '선함'의 기준이 보편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일못러'들은 '선하게,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나 자신'에 도취해, 자신의 일과 일처리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리더의 잘못이거나 전체 구조의 문제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상황이 어려워도 열심히 일하는 나'는 힘들다고 푸념하며, 자신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결국 개선은커녕 상황이 더 나빠지는 '착각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데, 이미 주변 사람들조차 떠나버린 후다.'사람이 힘들지 일이 힘든 것이 아니다'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을 힘들게 만드는 것 역시 사람이다. '맛남의 광장' 방송 속에서는 백종원이라는 시대의 '일잘러'가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의 문제로 일이 커지지 않게 수습해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됐지만 현실에서는 일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일 그 자체인지, 본인 자신인지, 타인인지, 어떤 상황 때문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그동안 나는 백종원과 양세형 중 누구처럼 일해 왔을까? '일잘러(일을 잘 하는 사람)'라는 확신으로 일해 왔는데 요즘 들어 부쩍 내가 '일못러'는 아닌지 혼란스럽다.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는 없는 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요즘,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다'는 나만의 믿음에 취해 버스를 놓칠까 속 타는 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계란을 예쁘게 자르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온 정성을 쏟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따름이다./정지은 문화평론가정지은 문화평론가

[풍경이 있는 에세이]송강과 진옥의 화답시

[풍경이 있는 에세이]송강과 진옥의 화답시

광해군 세자책봉 진언 '강계 유배'깊은 밤 취흥 도도해지자 '즉흥시' 조용히 듣고있던 진옥 수줍게 화답적소생활 청산 기쁨속 이별의 고통詩 '송별'로 아픈마음 가슴에 새겨기녀 진옥은 오로지 송강 생각뿐이었다. 어떤 여흥의 자리에 불려나가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은 송강이 정신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송강의 시문을 거문고에 실어 노래하는 것으로 모련(慕戀)과 그리움을 달래며 10년이었다. 송강이 왕의 진노로 강계에 유배되어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듣고 그를 찾아 나선 것이 달포 전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평안도 강계까지 삼천리 길을 걸어서 마침내 그의 적소에 이르러 위리안치의 초막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계곡을 찾아가 목욕재계 후, 가지고 온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송강을 위해 술과 안주를 장만하고 거문고를 손에 들고 그의 적소를 찾았다. 밤중에 죄인의 적소를 찾은 그녀를 송강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송강에게 큰절을 올렸다.송강 정철(1536-1593)은 풍운의 정객으로 정적에게 가혹했던 가사문학의 대가다. 송강의 나이 48세에 전라감사로 남원에 내려갔을 때 자미라는 어린 기생의 머리를 올려준 일이 있었다. 시문에 재능을 보이는 그녀를 가까이 불러 거문고를 뜯게 하거나 자신이 쓴 시를 읊게 했었다. 머리를 올려주었다고는 해도 너무 어린 기생이어서 송강은 그녀를 고이 지켜주었고 그녀는 그런 송강의 인간적인 배려에 감동 받아 평생의 지아비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미라는 기녀의 이름을 강아라고 바꾼 것도 송강의 '강'을 빌어쓰는 것으로 송강의 여자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송강은 일 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양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을 때 '자미화를 읊다'라는 시를 강아에게 준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그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네 모습 사랑하리라'라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남원을 떠났던 것이다. 강아는 그 후 진옥이라는 이름으로 남원 일대에서 춤과 노래와 거문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송강은 56세 때 광해군의 세자책봉을 진언하다 선조의 노여움을 사 강계로 유배를 갔다. 유배를 떠날 때 선조로부터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져 있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던 송강이다. 그의 유배와 낙향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속미인곡 등 불후의 가사문학을 남기게 했다. 유배지의 밤은 깊어가고 취흥 도도해지자 송강은 진옥에게 화답시를 제안한다. 진옥은 말없이 거문고의 현을 고른다. 송강이 먼저 즉흥시를 읊는다. '옥이 옥이라커늘 반옥만 너겼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적실하다/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조용히 듣고 있던 진옥이 거문고 낮은 현을 고르더니 수줍게 화답시를 읊는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만 녀겨떠니/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지그시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송강이 필경, 와락 진옥을 끌어안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스물대여섯의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 밤이 얼마나 짧았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송강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진옥의 시가 이 화답시다. 그 후 강계의 유배생활은 송강에게 새로운 활력과 재기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강계의 초막에서 송강이 풀려난 것은 임진왜란 때문이다. 선조 25년 5월의 일이었다. 송강이 왕명을 받아 전라와 충청지방의 도체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진옥은 매우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두렵고 불안했다. 송강 역시 적소의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 속에서도 진옥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마음 아팠을 것이다.진옥은 송강을 환송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시라고 알려진 이옥봉의 '송별'을 읊어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새긴다. '오늘 밤도 이별하는 사람 하 많겠지요/슬프다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애닯다 이 밤 그대는 어디서 자나/나그네 창가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진옥은 그 후 강계를 떠나 여승이 되었다고 전한다./김윤배 시인김윤배 시인

[풍경이 있는 에세이]새 옷

[풍경이 있는 에세이]새 옷

제법 화려하고 특이한 '로브 카디건'내 취향 아니었지만 고민끝에 구입외출때 걸치면 영락없이 눈길끌어친구들도 예상대로 '깔깔'대는 반응옷으로 웃는 분위기에 흐뭇함 느껴옷 얘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여름 나는 특이하게 생긴 옷을 하나 샀다. 주로는 휴양지에서 입는 로브 카디건으로, 노란색 바탕에 파랑·보라·주황의 갖은 꽃잎이 그려진, 마구 그려진 제법 화려한 아이템이다. 평소 패션에 민감하고 과감한 스타일링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사실 유별날 것도 없는 수준이겠으나 내게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인터넷 쇼핑으로 이 옷을 샀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다가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한 연예인이 입고 나온 것을 보고 "우앗!" 하고 반해버린 뒤, 간단한 서칭을 통해 브랜드와 제품명을 확인하고는 쇼핑몰까지 곧바로 직행했다. 그러나 막상 주문 버튼을 누를 엄두는 잘 나지 않았는데, 과연 입을 수 있을까? 이걸 입고 어딜 가지? 같은 고민들이 줄줄이 늘어섰기 때문이다. 일터에도, 학교에도, 어디에도 입고 가기에 뭣한 옷이랄까. 고향집에 입고 내려갔다간 아버지를 흠칫 긴장하게 만들 게 분명한 그런 옷. 아닌 게 아니라 이 옷은 평소의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히 취향이라고 한다면, 검정을 중심으로 회색이나 남색 같은 채도 낮은 색상의 옷을 나는 선호하는 편이다. 덕분에 옷장은 대개 어두컴컴하다. 디자인도 단순한 게 좋다. 내겐 그런 옷들이 어울리니까, 라기보다 언젠가부터 그런 색, 그런 디자인이 안정적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불편한 자리에 나설 때마다 나는 더욱 그런 옷들을 찾아 입곤 했는데, 그 옷들이 나를 조금은 진정시켜주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누구의 눈에도 거슬리지 않는 옷. 어느 곳 어느 때나 무난히 어울리는 옷. 일종의 보호색이라 해야 할까. 그러니 갑작스레 화려한 옷에 눈이 간 것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잠시 익숙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내게 이런 옷이 어울리기나 할까? 이걸 입은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진 않을까? 나를 본 사람들은 놀라겠지. 그리고 놀리겠지. 속으로 좀 비웃을지도 몰라. 유별난 취향의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갖가지 걱정은 옷을 입는 내내 나 자신을 쭈뼛거리게 만들 것이다. 이쯤 되면 옷이 아니라 웬수로구나. 옷을 입기 전부터 이미 피곤해진 꼴이라니. 이런 스스로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다 나는 옷 하나 입는 데에도 이토록 많은 걸 재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그만두고 싶었다. 아, 지긋지긋해, 남들 눈 의식하는 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일부러라도 나는 꼭 이 옷을 사야만 하겠다,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문제의 옷은 며칠 뒤 택배 상자에 싸여 무사히 내 앞에 놓였다. 한동안은 역시 잘 입게 되지 않았다. 어쩌다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할 때 슬쩍 걸치고 나가면 길거리의 사람들이 한두 번은 꼭 돌아보았다. 너무 대놓고 쳐다볼 때는 당황스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차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지. 무뎌진다고 해야 할지. 그러려니, 적응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도서관에 갈 때도, 슈퍼에 갈 때도 이 옷을 입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옷을 나풀거리며 책을 고르고 장을 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체로 엇비슷한 옷들을 입고 있었고, 어딘가 튄다 싶은 옷을 입은 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너 요새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그 옷은 뭐임? 대체 어디서 주운 거?" 놀리고 싶어 안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아주 가끔은 "오, 예쁘다! 완전 내 취향"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얼마 전 편한 사람들 몇이 모인 술자리에서는 내 이 특별한 옷을 돌려 입어보는 희한한 의식이 행해졌다. 물론 벌칙 같은 것이었으나…. 옷을 입은 지인들을 보며 "아, 이런 느낌이군" 새삼 깨닫게 되었다. 웃기다, 정말 웃겨. 그 각각의 모습이, 옷 하나로 달라지는 우리의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취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흐뭇함마저 느꼈다. 그래서 결론은, 사길 잘했다는 것. 입길 잘했다는 것. 뭐 어쨌든 웃으면 좋은 거니까./박소란 시인박소란 시인

[풍경이 있는 에세이]새벽이 전하는 이야기들

[풍경이 있는 에세이]새벽이 전하는 이야기들

잠투정 아기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할아버지 혈액순환 허벅지 때리기친정엄마와 낯선 할머니 벤치대화그래서 가엾고 곤한 냄새가 난다…창문 닫고 자야할 가을 다가와 다행아파트 2층에 산다. 그건 무엇을 뜻하냐면, 여름이 조금 괴롭다는 건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더운 밤 창문을 열어놓고 자려면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마치 담을 사이에 두고 나와 둘이 소곤거리는 것인양 가까이 들린다는 것이다. 안 자겠다고 떼쓰는 우리 집 아기를 겨우 재우고 나면 창밖에선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너 정말 이러기야? 지금이 몇 시야? 진짜 안 잘 거야?" 내다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 집 아기만큼이나 안 자고 떼쓰는 아기를 어르려 밖에 데리고 나온 엄마의 목소리다. "제발 자자. 좀 자자. 엄마도 졸리다고." 아기를 업은 채 아파트 화단 근처를 살살 걷는 그 엄마는 자신의 목소리가 우리 집에 그렇게 스며들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을 터라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제발! 자라고! 엄마도 좀 살자고!" 그럼 아기는? 당연히 운다. 우리 집 아기도 깬다. 아기 좀 재우고 영화나 한 편, 소설이나 한 권…… 그건 꿈에서나 일어날 일이었다. 단지 내에 몇 개 없는 예쁜 벤치는 왜 하필 우리 집 아기방 아래에 놓였는지. 정말이지 여름은 괴로웠다.며칠 전 새벽녘에 잠을 깼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것을 보다 잠이 들어서 처음에는 나를 깨운 것이 빗소리인 줄 알았다. 찰박, 찰박…… 잠시 후에 또 찰박. 어딘가서 물이 떨어지는 건가. 발코니 문을 열어두었는데 어딘가로 물이 새고 있나. 개수대 수도를 덜 잠갔나. 찰박찰박 소리는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언뜻 내다본 창밖에는 이미 환한 새벽빛이 올라 있었고 비는 그친 후였다. 주방 수도꼭지도 잘 잠겨 있고 발코니도 멀쩡했다.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씻어낸 여름의 새벽 풍경은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더워도, 밤중 소음이 있어도 여름만큼 예쁜 계절이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예쁜 초록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소음의 근원지는 찾지 못한 채 창문을 닫으려던 찰나, 다시 찰박 소리가 들려왔다. 벤치였다.놀랍게도 할아버지 한 분이었다. 반바지를 입고 이른 산책을 나온 어르신이 벤치에 앉아 허벅지를 찰박찰박 때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나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물안개가 나직하게 내려앉은 화단 옆 벤치에 앉아 반바지 자락을 허벅지 끝까지 끌어올리고 허벅지를 소리 나게 때리고 있다니. 한참 만에야 그건 그냥, 혈액순환을 위한 할아버지 나름의 운동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마침 젖은 바람도 서늘해 나는 창문을 닫고 침대에 도로 누웠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 광경이 쉬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몇 달 전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다니러 왔다가 새벽녘 혼자 산책을 나섰다. TV라도 틀면 곤히 자는 딸네 식구들 깨울 것이 빤하니 아무도 몰래 조용히 나선 것이었다. 아침에 잠을 깨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고 창문을 열어보니 벤치에 웬 낯선 할머니 한 분과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 들어와요!" 내 말에 손만 흔들어 보이고는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모르는 할머니와 벤치에 앉아있었다. 아침을 먹자고, 몇 번을 조른 후에야 들어온 엄마가 가만가만 이야기를 해주었다."아들네서 살다가 며느리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딸네로 옮겼대. 근데 딸네랑도 안 좋아서 아들이랑 딸이 돈을 보태 여기다 전세를 얻어줬나 봐. 옛날에야 할아버지랑 살았겠지. 그러다 혼자되니까 아들네로 딸네로 돌다가 결국 혼자 사는 거지. 외롭대. 여긴 젊은 부부들만 살아서 노인네들도 없다고, 나랑 조금만 더 놀다 가자, 조금만 더 있다 가자, 그래서 붙잡혀 있었지." 나는 공연히 조금 찡해져서 "그럼 아침 드시고 가라 그러지." 그랬더니 엄마가 웃었다. "뭘, 처음 보는 노인네인데. 아이고, 자식들한테 좀 애살 있게 잘하지, 늙었다고 잔소리나 풀풀하고 그러면 누가 좋아한다고." 새벽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잠 못 이룬 사람들이 먼저 걷고, 바쁜 사람들이 먼저 걸으며 속엣말을 훌훌 아무 데나 떨어뜨린다. 그래서 새벽엔 가엾고 곤한 냄새가 난다. 나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당기며 이제 곧 창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자야 할 가을이 부쩍 다가와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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