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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트럼프 대통령

[방민호 칼럼]트럼프 대통령

우방 관계 해친다는 비판 '아랑곳'김정은 치켜올리면서도 대북제재 사업가 출신… 협상 성공법 '자신'평화 유지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아기대·우려 함께 품고 기다려 볼 뿐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쪽 지역으로 건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지역에 발을 디딘 첫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말들이 아주 많았다. 미국의 지성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트럼프 당선은 무슨 재앙이라도 만난 듯 충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미국의 언론 주도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때문에 페이스북 같은 신종 '독립' 매체를 통한 직접 호소 방식을 즐겨 활용한다. 그가 한국인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가 고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그의 이미지는 그렇게 긍정적이었던 것 같지 않다. TV 화면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된 것 같았다.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기보다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바다 건너에서 보기에도 어째서 미국인들이 저렇게 안정감 없어 보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걸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원래 미국 공화당은 우파, 보수파라 하고, 민주당은 좌파도 더러 섞인 진보파라 생각하는 게 통상적이다. 당연히 미국 공화당은 한국으로 보면 현재의 야당에 가까운 정강 정책들을 가졌을 법하다. 민주당은 또 우리의 여당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그런 통념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민주당의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인 존 바이든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맹렬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의 대북 유화 제스처가 일본과 한국 같은 전통적 우방들과의 관계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정은과 자신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북한이나 김정은에게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TV 앞에서 한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양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은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대북 정책이 북한 수뇌부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한편으로 김정은을 치켜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를 쉽게 끝낼 수는 없다는 그는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여유 같은 것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는 기자 회견 중에 국무장관 어디 있느냐며, 그가 협상을 이끌 것이라고 고개를 돌려 폼페이오를 찾았는데, 이 또한 미리 예정한 연기 같은 인상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김정은과 계속 협상을 하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폼페이오에 대한 신임을 거듭 재확인한다?듣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사업가였다고 한다. 사업가라면 밀고 당기는 협상이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법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듯도 하다. 그 하나의 예로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인상적 기억 하나. 그는 공화당 지지자들을 향해 자신은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며 팔을 치켜세우고 흔들었던 것이다. 과연 트럼프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그는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당선될 수 있는 전략을 찾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그것은 아마도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아니면서도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스스로 풀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가장 값이 싸게 먹히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니 그는 여유 있게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치켜올리 며 핵무장을 풀기만 하면 뭔가 획기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그런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핵무장을 당장 풀지 않아도 나쁠 것은 없다. 한반도 문제가 자신의 손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기를 즐기는 북한의 지도자와 함께 자주 등장하면서 웃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입증하면 그뿐이다.한국 정부도 그것이 꼭 나쁘지는 않다. 평화와 대화가 그로써 그만큼은 유지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까? 무대가 무대만은 아니라 현실이기를, 연기가 연기만은 아니기를 기대와 인내와 우려를 함께 품고 기다려 볼 뿐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방민호 칼럼]'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경리~최인훈 사이 세대 박완서첫 소설 '나목' 욕망·양심 드라마단편 '…가르칩니다' 병적 감수성윤리적 양심의 뿌리, 늘 의식하는'부끄러움'의 능력에 무릎을 탁 쳐작가 박완서 선생은 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 지금은 갈 수 없는 휴전선 위쪽에서 나서 2011년 불과 몇 년 전에 담낭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작가다.나는 먼저 선생의 세대적 위치를 가늠해 본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생 그의 성장기 전체는 일제 강점기에 걸쳐졌다. 태평양 전쟁과 이후 육이오 한국전쟁을 통하여 문학의 문제를 생명의 문제로 초점화할 수 있었다. 최인훈은 1936년생이고,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사회주의 체제 교육을 접했다. 1·4후퇴를 얼마 앞두고 원산철수로 부산에 내려온 선생은 평생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이 두 20세기 사상이 내건 숙제들과 싸우는데 바쳤다.박완서 선생은 이 둘 사이에 끼인 세대의 작가였다. 그녀는 일제 말기에 숙명여고에 들어가 해방 후에 숙명여고로 졸업했으니 1950년 5월이었다. 곧이어 육이오를 맞는 바람에 대학 입학과 더불어 수학은 좌절되고 6·28 서울 함락부터 9·28 수복에 이르는 3개월여를 인민군 치하에서 보낸다. 다시 1·4 후퇴 이후의 정적 감도는 서울에 남은 끝에 전쟁의 죽음과 폐허, 모순과 불합리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으로 남게 된다.이 선생의 첫 작품은 젊었을 때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박수근의 그림을 모델로 삼은 장편소설 '나목'이다. 선생은 여기서 선생 자신을 썩 빼어 닮은 여성 주인공 이경과 박수근을 모델로 그린 화가 옥희도의 사랑을, 그리고 대학을 두 해 다니다 군대에 갔다 온 전공 '황태수'와 미군 '죠오' 사이에서의 방황과 선택을 그렸다.이경은 여기서 자신의 잘못된 제안으로 행랑채에 숨어 있던 두 오빠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그럼에도 젊고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갈망하는 여성이었다. 이 이경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박경리의 '생명'의 여인도 아니요, 좌우익 선택 문제에 귀착하는 최인훈의 '이념'의 청년도 아니다. 전쟁이라는 사회적 부조리, 불합리 속에서 온갖 고통을 떠안은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러면서도 한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세속적 여성의 욕망과 양심의 드라마가 바로 '나목' 그것이다.이 '나목'은 어째서 선생이 이 육이오를 겪은 1950~1953년으로부터 근 이십 년이나 동떨어진 1970년에야 '여성동아' 현상 공모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하여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선생은 그보다 훨씬 더 '문학적으로', 더 일찍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스무 해 동안 선생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민음사 판 새로운 '나목'에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가 함께 붙어있어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 여기에는 세 번이나 결혼하면서 농사꾼 부자, 가난한 전임강사에 이어 일본 무역상을 자처하는 사업가에게 시집을 간 한 결벽증적 여인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꽤나 풍자적이어서 이야기 전개에 재미가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이 여성 특유의 독특한 '부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세 번 결혼한 것쯤이야 하등 부끄러울 것 없지만 돈 많다고 떠벌리는 것,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물욕과 명예욕에 허덕이며 사는 것, 육체를 팔아서라도 먹고는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물질주의, 육체주의를 지독히도 혐오한다.그런 그녀가 작중에서 하는 말이 있다. "……혹시 내가 쓴 작문을 잘 됐다고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기라도 하면, 저 구절은 어디서 표절한 것, 저 느낌은 어디서 훔쳐온 것 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이 읽을 때마다 나를 찌르는 것 같아 안절부절 못했다. / 분명히 내 내부에는 유독 부끄러움에 과민한 병적인 감수성이 있어서 나는 늘 그 부분을 까진 피부를 보호하듯 조심조심 보호해야 했다."이 작중 여성 인물의 자기 인식에 관한 대목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 '부끄러움'의 능력. 정말 자기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고 아는 능력이야말로 박완서 선생을 오늘 우리 문학사에 남은 존재로 만들어 준 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작가로서 박완서는 무엇보다 윤리적 양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생명처럼 근본적이지도 이념처럼 숭고하지도 않되 자신의 양심의 뿌리를 늘 의식하고 써나간 작가였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신동엽을 읽는 봄

[방민호 칼럼]신동엽을 읽는 봄

금강 제9장 '누가 하늘을 보았다…구름 한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지금 우리들 하늘엔 몇겹의 구름이눈부신 햇살 가로막고 있는가심지어 스스로 하늘이라고도 한다황사라는 말이 미세먼지로 바뀐 지 얼마나 되었나. 오늘은 실로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맛보는 날이다. 봄꽃들 피었으나 다시 춥고 어둡고 비까지 내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았다. 과연 깨끗한 눈으로 세상 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한갓 큰 것 같지만 작은 정치에 눈이 흐려져 옳은 것, 근본적인 것을 보지 못하던 일이 그 얼마나 많던가. 큰 배를 타고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기가 막힌 일들을 겪고 수중 원혼이 되고 이로부터 수년 내 이어진 항의가 모여 새로운 정부가 세워졌건만 그로부터 벌어진 일들 맑기만 했던가.마흔 살 나이로 세상 떠난 시인 신동엽(1930.8.18~1969.4.7)의 전집을 펼쳐들고 서사시 '금강'의 페이지를 열었다. '금강'은 아주 긴 시, 그중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제9장을 사랑한다. 그는 외쳤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당신이 본 것은 먹구름, 당신은 그것을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았다.""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아침저녁으로 당신의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줄 아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외경,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을 이름이다. 그러나, 무엇을 공경하며 두려워한다는 말일까. '금강'은 동학의 이야기다. 제4장에 수운 최제우의 역사가 나온다. 그는 집에 있는 '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켜 하나는 며느리로, 하나는 양딸로 삼았다. 가지고 있던 금싸라기 땅 열두 마지기를 땅 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무상 소리만 나오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들 솥뚜껑도 보고 놀라는 우리.'바다의 달' 최시형은 관헌의 추적을 피해 전국 방방곡곡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여름 동학교도 서 노인의 집에서 저녁상을 받을 때 바깥에서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월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노라고 대답한다. 이에 해월이 이렇게 말한다. "서 선생, 며느리가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한울님이십니다. 어서 모셔다가 이 밥상에서 우리 함께 다순 저녁 들도록 하세요."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데 그 집 막내아들이 따라 나오며 우는 것을, 서 노인이 쫒아버리려 한다. "이 어린 분도 한울님이세요. 소중히 받드세요."혁명이란 무엇이냐, 신동엽 시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모두가 평등하게, 아니 한울님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러면 경제적 평등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옛날부터 천도교, 곧 동학에 이르기를, 이 우주의 삼라만상, 산천초목, 짐승과 사람은 모두들,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양반이나 상민이나 돈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큰 하나인 한울로부터 나온 것이니 같다. 평등하다. 높고 낮음 없다.사람들은 평등을 말하면 경제적 평등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알고 대경실색들을 한다. 부자도 얼마나 한없이 불쌍하며 가난한 사람도 그 얼마나 깨끗하게 행복한가. 그러나 먹구름을 하늘로 알고 살아오는 우리는 정말로 된 하늘을 보지 못한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과연 우리는 하늘을 보았는가. 나는 하늘을 보았는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을, 영원의 하늘을 본 사람은 외경을 알련만.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니, 바른 주장이려니, 행동이려니, 한다.외경이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할 것을 공경할 줄 알고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되기는 참말 어려운 말이다.우리들 하늘에는 지금 얼마나 두꺼운 구름이 몇 겹씩 끼어 눈부신 햇살을 가로막고 있는가. 그래도 저마다 하늘을 보았노라고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가 하늘이라고도 한다. 아무도 두려움을, 공경을 알지 못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하노이발 뉴스에 관하여

[방민호 칼럼]하노이발 뉴스에 관하여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하게정치·경제로 논할 수 있는게 아냐'한국인' 인류적 종 존속위해 필요냉정과 침착속에서 서로 공존하고北동포들과의 미래위한 슬기 모아야하노이발 뉴스를 접하고 선배 작가 한 분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글쎄요. 저는 언젠가부터 현안에 어두워져서 잘 모르겠는데요, 했다. 다른 한 분은, 충격이라니,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것부터 의외였거든, 하고 들뜬 사람들을 쉽게 타박한다.지금 청년들 중에는 이데올로기에 찌들고 가난한 북한 싫다고 통일이 절대적 필요 명제는 아니라 한다. 입만 벌리면 경제, 경제하고 경제병 걸린 나이 든 분들도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한다. 아무리 속물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도 일단의 진실은 있다고 봐야 한다.필자로 말하면 386세대,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며 자란 세대의 일원이다. 유신체제 때 '국민학교'를 다녀,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줄 알았고, 국가와 민족을 지상 명제로 끌어안고 성장했다. 이른바 '범생'이었기에 다른 친구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도 철학이 아니라 국민윤리였으니, 왜 국민 윤리가 철학보다 먼저이고 철학은 중고등학교 과정에 있지도 않은 건지 물음표조차 생기지 않았다.이 국가 교육 때문에 생긴 부작용의 하나는 강렬한 정치 감각일 것이다. 필자가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부모님은 절대 현실 문제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만 하라 당부하셨다. 그러나 한 일 년 지나는 사이에 사람이 달라져 버렸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유신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어디로 가는지,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자들이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조국'의 통일이라는 것도 필자에게는 처음에는 그런 차원에서 당위적인 명제로 받아들여졌다. 1945년 해방과 독립이 미완에 그쳤고 그나마 분단으로, 전쟁으로 치달았으니 원래의 상태를 회복해야 함은 당연지사 아닌가. 그래도 '통일 지상주의'에는 용케 빠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나중에는 우리나라가 섬 같아서 갑갑해졌다. 동서남 쪽이 모두 바다에 접해 있고 북쪽은 철책으로 가로막혔으니 어디 먼 곳으로 떠나기도 어렵지 않은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면 되지 않느냐 해도 땅을 밟고 바깥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공중 이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해야 한다.여행 핑계를 댔지만 사실 어디 여행 같은 문제일 뿐이겠는가. 아무리 세계화, 국제화가 전개되어도 한국 사람들의 '고인 물' 같은 우물 감각은 좀처럼 벗을 수 없는 것이 위쪽 통로가 막힌 데도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인데 그 대륙과 살을 맞대고 살 수 없는 상황은 사람들을 비좁게 만들기 쉬운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신채호를 즐겁게 읽는다. 그는 한말의 유생 출신으로 비범한 재능과 목숨을 건 공부를 통해 '조선사'의 '비밀'을 캐내는데 접근할 수 있었던 드문 선각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느니, 상상과 공상이 많았느니 하지만 비난은 쉽고 깊이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과연 중국 청대의 사고전서를 접하여 우리 역사책에 잘 안 나오는 우리 역사를 사리에 맞게 맞추려 한 사람 얼마나 되던가. 이 선생 신채호를 통해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대저 역사라는 사람살이의 기억은 만만히 볼 것 아니요, 경제나 정치 따위로 논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 인류적 종의 '자연사'를 정리해 놓은 것이니, 이것 없이는 그 종의 현재의 삶도 있을 수 없고, 현재를 살아도 덧없는 삶에 그치기 쉽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같은 '현재' 때문에만 아니라 이 '한국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 인류적 종의 존속을 위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무슨 무슨 '지상주의자'는 되지 않아야 할 일이다. 냉정과 침착 속에 우리 안에서도 서로 공존하고, 북한 동포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태움`

[방민호 칼럼]'태움'

간호사 사회 '괴롭히며 규율잡기'김용균군 희생된 火電 '사람 차별'책임 면하는 '이상한 논문 표절'썩을대로 썩은 문화 없애지 못하면영혼은 늘 굶주리고 고통은 연속며칠 전에 신문에서 한 간호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유서에 썼다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병원 사람들 조문도 오지 마라." 오죽 괴로웠으면 죽고 나서도 병원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 했을까?이런 일이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고, 얼마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때 네이버에 들어가 도대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태움'. 이 말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참 이런 문화도 있을까 싶다. 어떻게 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집단의 이름으로 길들이고 말 듣지 않거나 적응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태워져 재가 될 때까지 태워 버리는 것일까. 참 말도 실감 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면 그렇게 태워져 버린다는 말이냐. 그러나 이 말을 처음 들은 후 그 생생한 어감의 놀라움과 함께 나를 괴롭힌 것은 이 '태움'이 병원 간호사 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없는 곳 없다 할 정도로 사람들을 지독히 괴롭히는 형태로 끈질기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실 카풀 문화라는 것이 왜, 얼마나 필요한지 알지 못하지만 서구에서도 그런 문화가 있다고들 하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이 도입되어야 한다고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잖던가. 그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바다 건너 이 나라에 들여오려면 이곳 사정에 얼마나 맞는지, 어떻게 해야 무리 없이 들여올 수 있는지, 그런 제도가 시행될 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 이리저리 고민도 해봐야 할 게 아닌가? 정말 그렇게 한 후 그 카풀이라는 제도를 시행하려고 하는 걸까. 결과가 얼마나 좋을지는 아직 기다려 보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니, 사람 '태우는' 사람들이 광화문 앞이며 어디 앞에 십여 만 명씩 빽빽하게 서서 시위를 하고 항의를 하고 파업을 벌이는 통에 그 추운 한겨울 밤에 택시를 '타는' 사람도 새벽길을 걷고 걸어 집에 지쳐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택시 기사 두 분이 자신의 몸을 태우는 일까지 일어났다. 김용균 군을 태안 화력발전소의 어이없는 희생양으로 만들고 만 것도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그 '태움' 문화 때문이 아니던가. 석탄을 태워야 하는 화력 발전소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사람을 차별하고 자격을 '못 갖춘' 사람들은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그가 내몰릴 대로 내몰려 몸과 영혼이 몽땅 태워질 때까지 몰아대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아니던가. 그 어린 젊은이가 전생에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생에 와서 그런 처절한 고통을 맛봐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이 '태움'은 어디에서 와서 이렇게 병원 간호사들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귀신같은 힘을 발휘한단 말인가. 대학교에도 온갖 태움 문화가 만연하는 가운데, 그중 이상한 태움 문화로 표절이라는 것도 있다. 남의 논문이나 글을 몰래 가져다 쓴 사람이 3년만 그 소행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절대'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런 이상한 '태움' 때문에 표절한 사람은 요행히 책임을 면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사람이나 그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속이 타도 탄다고 어디에 말할 곳조차 없이 숨어서나 괴로워하는 끝에 영혼 자체가 태워져 버린 것만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 '태움'을 태워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상처가 곪을 대로 곪고 문제가 썩을 대로 썩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 태워 버리는 식의 문화를 없애지 않고는 이 사회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영혼은 늘 굶주리고 태움을 당하는 고통을 맛봐야 할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방민호 칼럼]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입은 먹는것 말고 말하기도 한다남을 칭찬만 않고 험담도 일삼아정화하자 해놓고 더러운 말 더 써말이 무서운 올해 이제 한달 남아더러움 속에서 자기도 보라… 몇 날 며칠째 입안에 맴도는 시구절이 있다. 창랑 뭐라 했는데 그게 어땠더라. 갓끈, 뭐라고도 했는데. 옛날 같으면 나중에 찾지 하고 말 것을, 인터넷은 뭐든 단번에 답을 주고야 만다. 어디? 아하, 굴원이었다. '어부사'에 나오는 시구였다. 한문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옛사람의 이야기를 알까만, 그래도 한번 들추어 보자면. 옛날에 굴원(약 B.C.~B.C. 278년)이라는 초나라 사람이 정계에서 물러나 강가에 머물러 있었다 한다. 그때 어부 하나를 만나 세상 한탄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 홀로 맑구료.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건만 나만 홀로 깨어 있었구료. 이로 인해 추방을 당하고 말았소"라 하였다. 이 어부는 한갓 이름없이 살아가는 이겠지만 굴원의 '고고' 포즈가 마음에 들리 없었으리. 세상에서 물러나 세월의 흐름에 뜻을 맡기는 이는, 저희들끼리 중앙이니 서울이니 자부하는 곳에서 아웅다웅 다투는 꼴 한없이 부질없이 느껴졌으리라. 몇 번 문답 끝에 노옹이 남기고 떠나간 시구가 다음과 같다.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큰 바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그 물이 흐리면 발을 닦으리. 시원스럽기 짝이 없는 말 같지만 간단치는 않다. 아니, 이 무슨 해괴한 '시류'주의자의 요설이란 말인가? 창랑이라 하면 큰 바다 물이라 할 텐데, 이 시는 왜 강물이라 해도 될 것을 굳이 바다라 했나. '나'는 아무리 커도 작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 것일까? 바다 위에 떠 있으면 '나'만큼 작은 것도 없으리니 말이다. 세상이란 가뒀다 풀 수 있는 한갓 강물 따위가 아니요 제 혼자 힘으로는 너무나 감당하기 벅찬 산더미 바다라는 것이다. 그 물을 퍼내어 내 맘대로 깨끗하게 할 수 없고 또 제 맘대로 더럽힐 수도 없다. 곧 세상은 창랑, 큰바다 물, 내가 수초처럼 떠 있는 곳이다. 몇 날 며칠 그 더럽다는 그 한 단어가 자꾸 입안에 맴돌아 어찌할 수 없다. 충청도나 그 이남 사투리에 '더럽다'는 '드럽다'라고 한다. '더'와 '드'가 큰 차이 없건만 하필 드럽다고 하면 정말 더러운 느낌이 난다. 그러고 보면, 십 년도 전에 서울 북쪽 어느 큰 대학교 선생님들을 뵙는데, 송 아무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 입처럼 드런 게 없어"하고, 혼잣말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손이니 발이니 하는 사람 몸이 다른 생물 것들보다 깨끗하지 않단 말을 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이 더럽다? 딴은 그런 것도 같다. 손발은 온갖 더러운 것 다 만지고 밟은 '도구'지만, 그래도 눈에 잘 보여 늘 씻고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거울 보고 이를 닦을 때도 입안은 좀처럼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그 입안으로 사람들은 온갖 것을 쓸어 넣는데, 사람처럼 안 가리고 먹는 짐승도 드물다. 쓴 것, 매운 것, 싱싱한 것, 썩은 것, 냄새 고약한 것, 향기 나는 것, 못생긴 것, 탐스럽게 생긴 것, 이 모두가 입을 통해 사람 몸으로 든다. 그러니 입이 어찌 깨끗하랴.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분의 그 말씀은 사람의 몸에 관한 얘기가 아닌 것도 같다. 사람의 몸의 각 부위는 한 가지 역할만 하지는 않아서 입도 먹는 것 말고 또 한 가지 일, 말하는 일을 한다. 그 입으로 남을 칭찬만 하지 않고 온갖 험담을 일삼는다. 있는 일 갖고 비난만 하는 게 아니요 없는 일 갖고도 더러운 말을 지어낸다. 남자만 더럽게 말하는 게 아니고 여성도 그런 말들을 꾸며낸다. 없는 사람, 낮은 사람, 못난 사람의 말은 차라리 그럴 수라도 있다 하지, 가지고 높고 잘난 사람이 더러운 말도 상급이다. 말을 정화하자며 더러운 말을 하고 우리끼리만 말하자며 더 더러운 말을 한다. '더럽다'라는 이 한 마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게 들릴 때가 없다.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 살며 벌이는 일이 어떻게 이렇게 치사스러울 수 있나. 문제는 창랑의 물만 더러운 게 아니라는 사실. 나도 더럽다 아니할 수 없어, 창랑의 물만 보고 더럽다, 더럽지 않다 할 계제가 아니다. 올해 무술년이라 했다. 심상찮은 바람, 광풍이 분다 했다. 이제 양력으로 한 달, 음력으로 두 달. 말이 무서운 이 해가 언제 가려나 한다. 어느 신문에서 올해의 한자성어를 뽑았다. 왜 '지록위마'는 후보에 없었나. 하지만 명심하라. 무명 어부의 지혜를 배우라. 더러움 속에서 자기도 보라./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지금, 국가와 정부, 그리고 시민들

[방민호 칼럼]지금, 국가와 정부, 그리고 시민들

현재 국민들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보여주는것에 만족하고 찬사 보내그 덕에 인터넷이 언론과 표현 점령오늘날 민주주의 과거보다 더 위험진실 가리는 정보들 교묘하게 작동어느 순간, 더 이상은 나라가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둘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예전에는 무엇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비교적 명백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때는 '나'도 주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순하게, 투명하게 생각할 줄 알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사태는 결코 명백하지 않고, 늘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의문을 갖는 순간, 복잡함, 불투명함을 자기 사유의 기반으로, 근본적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주의하거나 둔감하게 지나치면 이 순간은 다시 사라져버린다.국가를 믿고, 국가가 시민들의 의지에 의해 수립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러지 않은 정부라면 뒤집어 버리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때, 국가가 없는 세계야말로 유토피아겠지만 그 국가 없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가 아닌 국가', '국가를 폐절시키는 국가'의 단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도 순진하다면 순진했다. 그런 국가가 얼마나 타락했던가를 깨닫고 국가 없는 세계에 대한 꿈도 함께 잊었을 때 국가라는 문제는 곧 어떤 정부냐 하는 문제로 바뀌어버렸다. 국가를 심문하지 못하게 되자 '근본주의'적 사유는 빛을 잃고 앞에 놓인 정부들 중 하나를 양자택일 식으로 골라잡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진함이여, 썩 물러가라. '내'가 선택하고 지지한 어떤 정부도 선하지만은 않았으니, 다시는 '내' 의지를 어떤 정부를 위해 사용치 말라. 아깝지 않느냐, 낭비해 버린 젊음의 시간들이. 위선에서 교활을 거쳐 야만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쇼로. 쇼가 펼쳐지는 무대 뒷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홉스는 만약 정부가 없다면 사람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날을 지새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자연 상태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정부에 위임코자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부를 갖고 있는가? 악 대신에 선이 활동하는 국가 말이다. 살의에 관해서 생각한다. 만약 정부가 선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사람들의 살의는 정부의 선한 중재에 의해 사그라들 수 있겠다. 과연 정부는 그런 선의로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가?과거에 어떤 정부는 자신이 저지른 악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그런 때만 해도 좋은 통치를 위한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선의를 위한 타협과 거짓, 선을 행하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단 한 번 계약을 맺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본분은 유혹에 빠뜨려진 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 유혹에 응한 욕망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그 어떤 정부는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 갈기갈기 찢기우고 말았다. 악수인 줄만 알았던 것이 수렁에 빠진 격이 되어 끝 모를 이중성을 이어가다 마침내 파멸해 버린 것이다. 만약 순진했던 정부가 악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 정부를 이끄는 사람들이 이중성에 익숙해지면, 무대에서는 선을 보이고 장막 뒤에서 악을 행하는 데서 편리를 취하는 기술을 익힌다면. 그 어떤 파산한 정부의 뒤를 이은 정부들은 사실상 그러했다. 그들은 교활하기도 했고 야만적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보여주고 보임 뒤에서 다른 수를 내는데 익숙했다. 오늘날에도 시민들은 순진하고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보여주는 것에 만족해서 찬사를 보내며 머물기 좋아한다. 옛날에 어떤 지도자는 그래서 국민들보다 반 보만 앞서 가라 했지만, 차라리 반 보를 늦게 가야 더 큰 찬사를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 보여지는 것에 약한 시민들 덕분에 인터넷 가상 현실이 언론과 표현을 점령하다시피 한 오늘날 민주주의는 과거보다 더 큰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 능력은 보여주는 세력에게만 이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각 이면의 진실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기는 한다. 그러나 사태는 절대 간단치 않다. 진실을 가리는 정보들의 숱한 집적과 '좋은' 정보를 향한 접근 자체를 가로막는 온갖 교묘한 기술과 트릭이 작동한다.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정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실감하게 되면서, 아하, 이제 천치가 되자 생각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진정한 친구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편할 것 같다. 이미 모든 게 뒤얽히고 엎어져 버렸다. 이 비관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도 없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말의 피흘림

[방민호 칼럼]말의 피흘림

세상 사람은 모두 불쌍한 존재월급 못받고 주지도 못해 딱하다서로의 처지 관대하게 볼 줄 알고이해·동정의 마음 담은 말들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썼으면 한다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말의 피흘림도 함께 시작되었다. 인터넷 댓글은 피 흘리는 말들의 전시장 같았다. 댓글은 어떤 기사나 의견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글인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룰 때 그것은 거의 언제나 비판을 넘어 비난과 비방, 비아냥, 냉소로, 또 한도를 넘는 잔인한 공격으로 나타나곤 했다. 옳은 견해도 말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중하게, 유머러스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 거침과 투박함, 공격성으로 인해 듣고 보는 사람의 오해를 사고,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그 올바름마저 옳지 못한 것으로 뒤바뀌기까지 한다. 옛날부터 말을 곱게 해야 한다 했다. 옛날에 국왕이 남면해야 한다고 한 것은, 단순히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야 한다는 것만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국왕부터, 그러니까 지금 식으로 말하면 정치 지도자부터 말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곡진하고, 때로는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민심이 덩달아 편안해질 수 있다는 뜻이리라.말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넘쳐나는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보다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이나 집단의 성정에 관계하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느 대통령께서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면 부드럽고 완곡하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잘 보여주지 않았고, 이 때문인지 그분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치적 견해가 조금만 차이나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자유자재로 퍼나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롱과 풍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말의 쓰임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같은 '편' 사람들조차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아주 곤란하다. 그래도 그분은 뜨거운 사람이어서 그 안에 어떤 모순과 잘못됨이 있었는지 몰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말이 피 흘리는 일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지난 십 년 사이에 사람들은 진정함이 결여된 말의 성찬, 차라리 교활하다고까지 해야 할 어법에 잔인하고 비정한 짓누름의 말들을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함께 썼다. 말로 이루어지는 온갖 담론 장들, 토론과 댓글과 선언, 성명 같은 모든 곳에서 말들은 피를 흘린다. 상처가 덧나 염증이 생기고 병세가 아무리 심각해져도 사람들은 말쯤이야 자신들의 의지와 올바름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한갓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예전에 우리에게도 뛰어난 말의 예술사 한 분이 계셨다. 돌아가신 대통령 가운데 한 분으로, 늘 비방, 마타도어에 시달리는 처지였건만 야당 지도자일 때도 여간해서는 화내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셨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새해 인사를 할 때는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좌중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끌곤 하셨다.이 분이 돌아가셨을 때 필자는 동교동의 어떤 출판사에서 책 편집 일을 하다 장례 주최 측에서 나누어주는 그분의 일기 발췌본을 받아보았다. 그중 어떤 부분은 음력설을 앞둔 때의 기록이었다. 거기서 그분은 설을 앞두고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면서,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뿐 아니라 월급을 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동정을 금치 못하셨다. 그때 필자는 세상 경험이 적은 데다 없는 사람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확고하던 때였다. 제때 월급 못 받으며, '노동 착취' 당하는 사람들을 말할 수 없이 동정하면서도, 월급을 주지 못해서 당하는 괴로움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별반 헤아려 보지도 못했었다. 확실히 세상 사람은 모두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주지 못하는 사람도, 그리고 돈이 아주 많은 사람도 사실은 불쌍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처지를 보다 관대하게 볼 줄 알아야 하고 이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담은 말들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때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고독한 항해사 최인훈 선생

[방민호 칼럼]고독한 항해사 최인훈 선생

소년시절 북한 초기사회주의 경험월남이후 그의 문학에 결정적영향전후 남북 이념대립 '광장'에 녹여자신을 난민간주 이상적사회 추구고단했던 탐색자여 고이 잠드소서작가 최인훈 선생이 영면에 드셨다. 공식적으로는 1936년생이라지만 실제로는 1934년생, 1·4 후퇴를 앞두고 북한 원산에서 부산으로 월남해서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셨다. 원래 원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계셨지만 여기 와서 다시 입학해야 했고 부모님이 학교 다니기 좋게 출생 연도를 낮춰 주었다고 한다. 필자는 요즘 이른바 월남문학이라는 것에 관심이 간다. 처음 이 말을 쓸 때는 국문학자가 베트남 문학을 공부하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1948년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거쳐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는 약 8년의 세월 동안 남으로 내려올 사람들은 '전부' 내려오고 북으로 올라갈 사람들은 '전부' 올라갔다. 최인훈 선생은 원산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이른바 원산철수라는, 흥남철수 직전의 철수 작전 때 한 가족 모두가 미군 수송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최인훈 문학은 바로 이러한 '월남'이 낳은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은데, 왜냐하면 소년 최인훈은 해방부터 월남하기까지 모두 5년 정도 북한 초기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고 이것이 그의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자 소년 최인훈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중에 최인훈은 그의 긴 소설에서 해방이 되자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보다 사람을 때리지 않는 것이었다고 했다. 해방되기 전에는 조선 사람은 어디서든 얻어맞았다고 했다. 병원에서까지 사람을 때렸다는 문장을 읽을 때 필자는 가슴이 아팠다. 해방이 되자 북한 사회주의 정권은 학교나 병원에서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대신 유산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살던 곳에서 추방시키고 학교에서는 계급주의 사상교육을 기계적으로 시행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소를 운영하던 최인훈의 부친은 유산자 계급으로 몰려 재산을 내놓아야 했고 원산으로 이주했다. 원산 중학교의 소년 최인훈은 소설에 따르면 공부를 잘했어도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담임선생이 사주하는 냉혹한 '자아비판'에 시달려야 했다.원산고등학교에 가서는 경험의 빛깔이 달라지기는 한다. 그러나 전체주의-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체험적 인식은 월남 후 그가 자신의 이념적 방향을 조율해 나감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과연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분법적 대립을 거절하는 최인훈 문학의 고유한 특질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문제작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친일파가 득세하는 남한 사회를 떠나 월북하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그는 6·25 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한다. '회색인'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 독고준은 '임박한 파국'을 앞두고 혁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친구의 주장을 거절하고 사랑을 원리로 삼는 이상적 사회를 구상하기 위한 고독한 작업에 몰두한다. 앙가주망, 곧 참여냐, 순수냐 하는 이분법적 선택을 거절하는 독고준의 '회색빛' 이념은 순백색이나 순적색보다 진실에 가까운 빛이라고, 필자는 늘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그것은 그러하다.미군 수송선을 타고 월남했던 그는 그 자신을 '난민'으로 간주했고 전후의 한국 사회 또한 '난민촌'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스마트폰, 인터넷에 온갖 첨단 문화로 들썩이고 있으므로 이런 규정은 비록 비유적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른다.그러나 이 고도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대 문명이라는 거친 바다를 풍파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도는 폐선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아무리 높이 쌓아 올리는 고층 아파트에서도 싸구려 임시가옥 냄새가 나지 않던가? 오래된 것들은 어느 사회에서보다 일찍 제 빛을 잃고 혼탁한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던가?최인훈은 한국 사회가 난파선으로 현대의 바다를 이리저리 표류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 작가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화두'라는 소설이 보여주듯 미국과 구 소련이라는 두 개의 제국을 차례로 순례했다. 제국과 식민지, 좌와 우, 남과 북이라는 이항대립의 주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평생을 건 긴 여행을 했다.고단하고 외로웠던 문명의 탐색자여, 풍랑치는 현대 바다 위 고독한 항해자여, 이제 고이 안식을 취하소서. 그대의 오랜 손때 묻은 키를 누군가는 이어받을 수 있으리니./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무궁화호 타기

[방민호 칼럼]무궁화호 타기

바랑·트렁크·백팩 등 다양한 가방맨발·농구화·샌들 갖가지 신발들빽빽한 기차안의 '사람 사는 풍경'사람 살리는 정치라는게 무엇일까그들 삶 이해하는 일 생각케 한다요즘엔 무궁화호 타는 게 옛날보다 쉽지 않다. 한두 시간 전에도 코레일 어플에 좌석표가 남아 있던 시절은 지나갔다. 휴일 날 대전에 가려고 급하게 표를 찾으면 없다. 비상이다.4호 칸은 열차카페라 하는데 실상은 입석 승객 천국이다. 카페 기능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차내 서비스가 없는데 카페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판기가 이 차 중 카페의 전부다. 그래도 앉아서 먹으라고 창을 향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2~3인용이 셋 있다. 반대편에는 서서 먹으라고 긴 배튼도 놓여 있다.한 이십 분 전에 이 카페를 찾으면 입석이라도 버젓한 좌석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아뿔싸, 늘 늦듯 이번에도 늦었다. 방법이 있기는 하다. 긴 배튼 아래 바닥에 '철푸덕' 앉아 가는 것이다. 긴 좌석 의자에 셋이 비좁게 앉아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그래도 꽤 일찍 플랫폼에 들어온 덕분에 제법 좋은 자리에 '일요신문'을 깔고 앉았다. 바닥에 깔고 앉으려고 '스토리웨이'에서 일부러 샀다. 인터넷, 휴대폰을 지금만큼 많이 안 볼 때는 '일요신문' 어지간히도 봤다. 그걸 봐야 갈증이 풀릴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정치에서 멀어졌다. 지방선거라는데도 뉴스가 귓등 바깥으로 스쳐 지나간다.출발할 때가 가까워오자 드디어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 온다. 옛날 전쟁 때 피난 갈 때야 비할 바 없고 비둘기호 때보다도 낫겠지만 그래도 사람 많다. 먼저 내 옆에 사람들이 혹은 서고 혹은 앉더니 그 앞사람 지나다니는 곳에도 엉덩이 붙이고 앉고들 한다. 기차가 영등포에 서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밀려든다. 공기가 점차 사람들 숨으로 덥혀진다. 아직 사람 냄새는 여름이 덜 되어 나쁘지 않다.한 스님이 사람들 꽉 들어찬 곳으로 커다란 바랑을 짊어지고 문간에 나타났다. 어떻게 될까. 스님은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오시더니 나와 흰 트렁크를 모셔놓고 선 키 큰 젊은이 사이 약간의 빈 공간에 커다란 엉덩이를 '들이밀고' 나처럼 '철푸덕' 앉아버리신다. 그보다 먼저 짊어지고 오신 바랑은 내 에코백이 놓여 있는 모퉁이에 털썩 던져 놓으셨다. 이런 경우에 화가 나는 사람은 유머 감각 없거나 야박한 치다. 다 같은 신세인 때문이다. 자리를 슬쩍 옮겨 공간을 드린다. 스님의 엉덩이는 '크다'. 스님 앞에 있게 된 여학생 둘이 고개를 돌리고 휴대폰에 더욱 열중한다.나는 스님의 모습을 옆으로 살펴본다. 승복은 낡디낡으셨는데 걷어붙인 팔뚝에 검버섯이 졌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데다 원래 붉어 보인다. 연세가 있으시다. 예순은 넉넉히 넘으셨다. 기차가 떠나자마자 크록스 신발을 아예 벗어놓고 맨발이 된 채 발을 뻗고 주무신다. 수원까지 내리 주무시다 문득 잠을 깨셔서는 옆에 사람한테 동대구까지 간다고 사투리 섞인 말씀 툭 던지시고는 또 주무신다. 천안에서 문득 잠을 깨셔서는 여기 대전이냐고 물으시고 또 주무신다. 휴대폰만 보던 여학생 둘이 일어선다. 자리가 여유가 났다. 트렁크 젊은이도 천안에서 나간다. 인총 빽빽하던 카페가 갑자기 숨통이 트인다.이제 여유로운 마음으로 카페에 둘러앉고 선 사람들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사람보다 차라리 가방들이 보인다. 바랑에, 트렁크에 비닐백에, 에코백에, 가죽 가방, 캐리어, 백팩에, 가방도 가지가지다. 이번에는 발들을 본다. 맨발에, 농구화에, 축구화에, 샌들에, 슬리퍼에, '삐딱구두'에, 스니커즈, 삼선화도 있다.가끔 무궁화호는 뜻하지 않은 곳에도 선다. 이번에는 부강역이다. 언젠가는 전의역에도 섰다. 나는 작은 역도 빠짐없이 쉬어가던 비둘기호가 지금도 그립다. 스님은 여전히 수면 삼매경이시다. 크록스 신발은 벗어 두 다리 사이에 끼워 놓으셨다.사람 사는 일이 무엇이냐. 사람을 살리는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사람들 삶을 이해하는 일을 생각한다. 기쁘게도 슬프게도 생각 말고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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