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뉴스홈

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반드시 밝혀야 할 `세월호` 진실

[방민호 칼럼]반드시 밝혀야 할 '세월호' 진실

해경청장 헬기로 이동하는 사이배로 옮겨다니다 희생된 학생이야기일부 구조담당자 책임으로 축소 우려중추·하위 권력이 무슨일 벌였는지왜 구하지 않았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세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홍콩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맞은 사람이 위독상태라고 한다. 시위 중 추락사 한 대학생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을 향해 또다시 국가적 폭력이 행사된 것이다. 사태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중국 정부에서는 의도적으로 '비상사태'를 방치 내지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홍콩 사태는 당장 1989년 4월에 베이징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중국 정부는 대학생이 주축을 이룬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해서 오늘에 이르렀던 것을, 이번에는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새로운 '반복'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홍콩 사태에 관해 채널 티브이들은 숨 가쁜 어조로 그 심각성을 전달한다. 그러나 좀처럼 이 사태를 한국의 과거에 오버랩시키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알고 느끼는 사람은 느낀다. 경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쏜다는 것, 그것은 1980년에 우리 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향해 참혹한 폭력을 행사했던 사실에 직접 연결된다. 헬리콥터에서 기총 소사가 있었다는 최근의 '전언'은 '5·18'이 사십 년 가까운 지금에까지 아직도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국가 또는 국가의 특정한 중심 세력이 국민, 시민을 향해 살상 무기를 드는 행위는 현대 국가가 결코 문명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문명이 진보하는 만큼이나 야만도 훨씬 더 큰 규모로 증대하고 있는 것이 이 현대 국가의 커다란 모순 중 하나다. 프랑스 현대비평가 미셸 푸코는 현대 이전에 '국가'는 그 구성원들을 죽게 내버려두거나 살게 하는 반면, 현대 '국가'는 그들을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 둔다고 했다. 이를 받아 이탈리아 비평가 조르지오 아감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예증을 들어, 이제 이 현대국가는 '생명 정치'만큼이나 '죽음의 정치'를 행한다고, 이 수용소 같은 국가 체제는 그 구성원들의 생명을 처분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권력을 소유한다고, 그리하여 죽음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는 인간들을 재생산하는 체제라고 말한다. 정확히 옮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아감벤의 '죽음의 정치'는 필자로 하여금 필자의 시선을 늘 2014년 4월 16일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기이하고도 참혹한 참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처음에 기성세대들은 한껏 양심적인 척하면서 경제주의, 물질주의의 탐욕이 이 참사를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안개 짙은 밤에 출항을 결정한 선박회사의 책임을 부각시키면서 이 책임을 다시 사회 전체와 특히 기성세대의 물질주의로 분산, 해소시키는 논리였다. 필자 또한 처음 며칠 동안은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생중계를 하는 와중에 어떤 구원의 손길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침몰해 가던 배 안의 고등학생들의 절규는 그러한 분산, 해소 논리를 의심하게 했다. 해경청장이 헬기를 타고 날아가는 사이에 배에서 배로 옮겨 다니다 생명을 잃은 학생의 이야기도 자칫 무성의하고 안일한 일부 구조 담당자들의 도덕적, 법적 책임 문제로 세월호 참사를 축소시키기 쉽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때 국가가, 국가를 움직이던 중추 세력이, 그 상위 권력의 의지를 받든 하위 권력이 무슨 일을 어떻게 벌였는지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왜 가만히 있으라 했는지,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들을 가로막았는지 밝혀져야 한다. 국가가 국가의 이름으로 명백하게 또는 은밀하게 행사하는 죽음의 통치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이 나라에서도, 황해 너머에서도, 현해탄 건너에서도 국가의 죽음의 폭력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변명하는 시대에 종언을 고해야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관전평

[방민호 칼럼]관전평

조국이 문제다·윤석열이 문제다…요즘 나라가 '두쪽… 세쪽' 난 느낌'시비 가리지말라' 부처님 말씀 무색日·北·中·美 앞에서 두패로 갈려 난리패 나눈 어느 한쪽 선택당하지 않길…토요일에는 춘원연구학회 주관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춘원은 이광수의 호, 그러니까 이광수 문제를 연구하는 학회다. 서울여자대학교 정문 앞 어문교육회관이 대회 장소, 필자는 여기서 '김구의 '백범일지'와 이광수'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김구라면 기미년 삼일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이래 광복 때까지 독립 투쟁에 헌신한 분인데, 어째서 이 분의 '자서전' '백범일지'가 '대일협력자'로 '악명' 높은 이광수에 의해서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미 김원모 선생 같은 역사학자가 이 문제를 논문으로 밝힌 적도 있지만 역사와 문학이 만나고 항일 독립운동가와 대일협력자가 만나는 이 진귀한 풍경을 명쾌하게 논의하기란 쉽지 않았다.몇 주간 이기웅 선생의 열화당에서 3년여 각고 끝에 2015년에 펴낸 '백범일지' 한글 정본을 가지고 다니며 '상권', '하권', '계속' 편 등으로 이루어진 김구 '직필'의 '백범일지'을 읽다 보니 모르던 사실도 많고 '깨닫는' 일도 많다. 그중에 생각하게 되는 한 가지는 김구 선생이 '한국독립당'을 이끌어 나간 어떤 방침에 관한 것이다. 당시에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등이 여러 갈래를 치며 분립해 있었고 이 분산된 역량을 하나로 모을 지혜가 절실한 터였다. 이때 김구, 이시영, 조소앙, 차리석 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한국독립당이 내건 이념은 '독립'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으니 어떤 주의보다 앞서는 가치는 독립일 것이요, 이 독립이 이루어지고서야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그 밖의 어떤 주의든 독립된 사회를 어디로 만들어 가자는 논의가 현실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요, 그러므로 현재는 모든 주의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 '독립'을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 바로 한국독립당의 취지였던 것이다. 이 문제를 국민대학교의 장석흥 교수는 차리석의 논리를 들어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차리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던 안창호의 '대공주의' 이념에 연결 지었다. 이 대공주의는 여러 가지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 작은 '나', 작은 분파의 이익이나 이념에 치중하지 않고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김구는 이러한 안창호, 그리고 차리석 같은 사람의 논리를 실천에 옮긴 독립운동가였다. 학술대회가 끝나고 저녁식사도 마치고 마침 자동차가 갑자기 방전이 되어 긴급출동을 불러 어렵게 고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강남에서 강북으로 가는 길이 멀었다. 더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서초동 검찰청, 사랑의교회가 있는 큰길에서 교대 앞 사거리까지 교통을 완전 통제 중이었다. 이날의 교통 통제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어디 가도 나라가 두 쪽, 세 쪽이 난 느낌이다. 도대체 조국을, 검찰을 어찌해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조국이 문제다, 윤석열이 문제다, 진중권, 유시민은 왜 저러느냐, 황교안, 나경원은 어떻다, 김어준이 어떻다, 세상에 정권 잡고 있으면서도 데모하는 건 또 뭐냐 등등 세상이 난리가 나도 이런 난리가 없다. 불교에 시비를 가리지 말라 했건만 요즘 세상은 부처님 말씀 무색하게 시비투성이이다.대공주의, 독립노선, 이런 것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듯이 한갓 몽상적 이상에 불과하단 말이냐. 세상은 어찌 됐든 보수나 진보, 우파나 진보, 이런 식으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냐. 일본, 북한, 중국, 미국 앞에서 우리는 지금 두 패로 나뉘어 난리를 치른다. 왜 호불호가 없겠는가, 왜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없겠는가. '절대로' 이 나라의 거대한 두 파 중 어느 한쪽 편에 서고 싶지는 않다. '김갑수 TV', '장기표', '이해생각' 같은 생각들에 귀 기울여 보며 두 패로 나눈 어느 한쪽을 선택 당하지 않는 길을 생각한다. 어둠과 혼란, 혼돈이 이렇게 넓고 깊기도 어렵지 않은가 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사람의 통성으로 역사를 생각할 때

[방민호 칼럼]사람의 통성으로 역사를 생각할 때

동북부 대지진·후쿠시마 원전 참상日 국민 마음에 큰 구멍 뚫렸을 것'제국'의 총칼 아래 삼십오년 고통조국 산야 잃은 마음은 어떠했을까'아베' 같은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3·11 때가 생각난다. 2011년이었을 것이다. 일본 동북부에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동북부를 강타하며 거대한 쓰나미를 몰고 온 것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유튜브가 막 활성화되고 있었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세상에서 나는 한밤 내내 유튜브를 통해서 전달되는 대지진과 쓰나미의 참상을 보고 안타까워했다.재난은 단지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밀려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미증유의 규모였지만 그렇게 갈라지고 넘어지고 휩쓸려 유명을 달리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아물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이어 벌어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태는 그날의 일들을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일들로 만들었다. 모두 네 개의 원자로가 있었고 그것들이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작동이 중지되면서 냉각수를 돌리는 기능들이 마비되고 원자로가 달구어지면서 노심이 녹고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원전 사람들이 황급히 대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풍문에 들으면 원래 곡창지대고 과일도 잘 되는 곳이라 했다. 그 좋은 땅들이 그날 이후 사람이 제대로 들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나는 그날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토를 사랑하기는 일본 사람도 한국사람 못지않고 자신들만큼 완전하게 무엇인가를 해내온 사람들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네들이다. 그런 사람들로서 뜻하지 않은 원전 사태로 후쿠시마 주변 반경 몇십 킬로미터까지는 아예 버려진 땅이 되어 버렸을 때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필자가 무슨 특별한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면, 이렇게 남이 아픈 일을 당하면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역시 사람의 보편적인 심성에서 우러나는 감정의 작용이라 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새끼손톱 밑에 조그만 상처만 나도 아려하고 괴로워하는 짐승이다. 하물며 한 민족이 정들여 사는 땅이, 그것도 '본토' 한복판이 하루아침에 몹쓸 곳이 되었을 때, 그들이 느꼈던 아픔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없지 않다. 도쿄에서 조금 있으면 올림픽이 열리기도 한다는데,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땅을 가져야 하므로, 나는 일본이 원전 사태의 괴로움에서 하루바삐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그렇다면 이른바 '제국'의 총칼 아래 삼십오년을 살아야 했던, 조국의 산야를 잃어버린 백성들은 그 마음이 어떠했을 것인가. 들어줄 리도 없지만 아베 같은 이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최근에 그는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하면서 이른바 '경제 제재'라는 '무기'를 들고 흔들어댔다. 마치 상대방을 후안무치한 사람 대하듯, "약속" 운운하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한테는, 그러니까 또 국가한테는 이런 식으로 행동해도 좋다고, 얼굴이 뻘겋게 되도록 언성을 높이는 그는 마치 술이라도 한 잔 걸친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이름도 얄궂은, 고노 다로인지 야로인지 모르는 외상은 예절을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주일 대사를 불러 젖혀서는 하는 말도 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그만이었다. 도대체, 징용이니 위안부니 하는 문제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일본 국민들이 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통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은 아니었다. 일 억 일본 국민을 그때 움직이던 도조 히데키니, 고노에 후이마로 같은 지도자들, 버마 방면의 15군을 이끌며 '천황'의 '적자'들을 3만 명씩이나 죽음으로 몰아넣은 무타구치 렌야 같은 지휘관들, 바로 그들이 패전 전의 일본을 움직이며 일본인들과 아시아인들을 죽음과 환란에 몰아넣었던 것이다.경제전쟁이라고 하지만 독일에서 일본을 비판하듯이, 이 사태의 본질은 역사인식에 있다. 일본 정부, 특히 아베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과거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 잊고 싶어 하거나 알지 못하거나 반성이 필요 없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념 가득한 데마고그들, 정치 선전꾼들이 나라를 전화에 밀어 넣고 이웃나라 사람들을 즐겨 괴롭히고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트럼프 대통령

[방민호 칼럼]트럼프 대통령

우방 관계 해친다는 비판 '아랑곳'김정은 치켜올리면서도 대북제재 사업가 출신… 협상 성공법 '자신'평화 유지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아기대·우려 함께 품고 기다려 볼 뿐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쪽 지역으로 건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지역에 발을 디딘 첫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말들이 아주 많았다. 미국의 지성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트럼프 당선은 무슨 재앙이라도 만난 듯 충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미국의 언론 주도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때문에 페이스북 같은 신종 '독립' 매체를 통한 직접 호소 방식을 즐겨 활용한다. 그가 한국인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가 고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그의 이미지는 그렇게 긍정적이었던 것 같지 않다. TV 화면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된 것 같았다.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기보다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바다 건너에서 보기에도 어째서 미국인들이 저렇게 안정감 없어 보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걸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원래 미국 공화당은 우파, 보수파라 하고, 민주당은 좌파도 더러 섞인 진보파라 생각하는 게 통상적이다. 당연히 미국 공화당은 한국으로 보면 현재의 야당에 가까운 정강 정책들을 가졌을 법하다. 민주당은 또 우리의 여당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그런 통념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민주당의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인 존 바이든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맹렬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의 대북 유화 제스처가 일본과 한국 같은 전통적 우방들과의 관계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정은과 자신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북한이나 김정은에게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TV 앞에서 한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양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은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대북 정책이 북한 수뇌부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한편으로 김정은을 치켜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를 쉽게 끝낼 수는 없다는 그는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여유 같은 것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는 기자 회견 중에 국무장관 어디 있느냐며, 그가 협상을 이끌 것이라고 고개를 돌려 폼페이오를 찾았는데, 이 또한 미리 예정한 연기 같은 인상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김정은과 계속 협상을 하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폼페이오에 대한 신임을 거듭 재확인한다?듣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사업가였다고 한다. 사업가라면 밀고 당기는 협상이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법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듯도 하다. 그 하나의 예로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인상적 기억 하나. 그는 공화당 지지자들을 향해 자신은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며 팔을 치켜세우고 흔들었던 것이다. 과연 트럼프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그는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당선될 수 있는 전략을 찾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그것은 아마도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아니면서도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스스로 풀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가장 값이 싸게 먹히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니 그는 여유 있게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치켜올리 며 핵무장을 풀기만 하면 뭔가 획기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그런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핵무장을 당장 풀지 않아도 나쁠 것은 없다. 한반도 문제가 자신의 손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기를 즐기는 북한의 지도자와 함께 자주 등장하면서 웃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입증하면 그뿐이다.한국 정부도 그것이 꼭 나쁘지는 않다. 평화와 대화가 그로써 그만큼은 유지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까? 무대가 무대만은 아니라 현실이기를, 연기가 연기만은 아니기를 기대와 인내와 우려를 함께 품고 기다려 볼 뿐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방민호 칼럼]'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경리~최인훈 사이 세대 박완서첫 소설 '나목' 욕망·양심 드라마단편 '…가르칩니다' 병적 감수성윤리적 양심의 뿌리, 늘 의식하는'부끄러움'의 능력에 무릎을 탁 쳐작가 박완서 선생은 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 지금은 갈 수 없는 휴전선 위쪽에서 나서 2011년 불과 몇 년 전에 담낭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작가다.나는 먼저 선생의 세대적 위치를 가늠해 본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생 그의 성장기 전체는 일제 강점기에 걸쳐졌다. 태평양 전쟁과 이후 육이오 한국전쟁을 통하여 문학의 문제를 생명의 문제로 초점화할 수 있었다. 최인훈은 1936년생이고,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사회주의 체제 교육을 접했다. 1·4후퇴를 얼마 앞두고 원산철수로 부산에 내려온 선생은 평생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이 두 20세기 사상이 내건 숙제들과 싸우는데 바쳤다.박완서 선생은 이 둘 사이에 끼인 세대의 작가였다. 그녀는 일제 말기에 숙명여고에 들어가 해방 후에 숙명여고로 졸업했으니 1950년 5월이었다. 곧이어 육이오를 맞는 바람에 대학 입학과 더불어 수학은 좌절되고 6·28 서울 함락부터 9·28 수복에 이르는 3개월여를 인민군 치하에서 보낸다. 다시 1·4 후퇴 이후의 정적 감도는 서울에 남은 끝에 전쟁의 죽음과 폐허, 모순과 불합리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으로 남게 된다.이 선생의 첫 작품은 젊었을 때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박수근의 그림을 모델로 삼은 장편소설 '나목'이다. 선생은 여기서 선생 자신을 썩 빼어 닮은 여성 주인공 이경과 박수근을 모델로 그린 화가 옥희도의 사랑을, 그리고 대학을 두 해 다니다 군대에 갔다 온 전공 '황태수'와 미군 '죠오' 사이에서의 방황과 선택을 그렸다.이경은 여기서 자신의 잘못된 제안으로 행랑채에 숨어 있던 두 오빠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그럼에도 젊고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갈망하는 여성이었다. 이 이경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박경리의 '생명'의 여인도 아니요, 좌우익 선택 문제에 귀착하는 최인훈의 '이념'의 청년도 아니다. 전쟁이라는 사회적 부조리, 불합리 속에서 온갖 고통을 떠안은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러면서도 한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세속적 여성의 욕망과 양심의 드라마가 바로 '나목' 그것이다.이 '나목'은 어째서 선생이 이 육이오를 겪은 1950~1953년으로부터 근 이십 년이나 동떨어진 1970년에야 '여성동아' 현상 공모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하여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선생은 그보다 훨씬 더 '문학적으로', 더 일찍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스무 해 동안 선생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민음사 판 새로운 '나목'에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가 함께 붙어있어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 여기에는 세 번이나 결혼하면서 농사꾼 부자, 가난한 전임강사에 이어 일본 무역상을 자처하는 사업가에게 시집을 간 한 결벽증적 여인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꽤나 풍자적이어서 이야기 전개에 재미가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이 여성 특유의 독특한 '부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세 번 결혼한 것쯤이야 하등 부끄러울 것 없지만 돈 많다고 떠벌리는 것,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물욕과 명예욕에 허덕이며 사는 것, 육체를 팔아서라도 먹고는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물질주의, 육체주의를 지독히도 혐오한다.그런 그녀가 작중에서 하는 말이 있다. "……혹시 내가 쓴 작문을 잘 됐다고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기라도 하면, 저 구절은 어디서 표절한 것, 저 느낌은 어디서 훔쳐온 것 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이 읽을 때마다 나를 찌르는 것 같아 안절부절 못했다. / 분명히 내 내부에는 유독 부끄러움에 과민한 병적인 감수성이 있어서 나는 늘 그 부분을 까진 피부를 보호하듯 조심조심 보호해야 했다."이 작중 여성 인물의 자기 인식에 관한 대목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 '부끄러움'의 능력. 정말 자기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고 아는 능력이야말로 박완서 선생을 오늘 우리 문학사에 남은 존재로 만들어 준 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작가로서 박완서는 무엇보다 윤리적 양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생명처럼 근본적이지도 이념처럼 숭고하지도 않되 자신의 양심의 뿌리를 늘 의식하고 써나간 작가였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신동엽을 읽는 봄

[방민호 칼럼]신동엽을 읽는 봄

금강 제9장 '누가 하늘을 보았다…구름 한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지금 우리들 하늘엔 몇겹의 구름이눈부신 햇살 가로막고 있는가심지어 스스로 하늘이라고도 한다황사라는 말이 미세먼지로 바뀐 지 얼마나 되었나. 오늘은 실로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맛보는 날이다. 봄꽃들 피었으나 다시 춥고 어둡고 비까지 내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았다. 과연 깨끗한 눈으로 세상 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한갓 큰 것 같지만 작은 정치에 눈이 흐려져 옳은 것, 근본적인 것을 보지 못하던 일이 그 얼마나 많던가. 큰 배를 타고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기가 막힌 일들을 겪고 수중 원혼이 되고 이로부터 수년 내 이어진 항의가 모여 새로운 정부가 세워졌건만 그로부터 벌어진 일들 맑기만 했던가.마흔 살 나이로 세상 떠난 시인 신동엽(1930.8.18~1969.4.7)의 전집을 펼쳐들고 서사시 '금강'의 페이지를 열었다. '금강'은 아주 긴 시, 그중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제9장을 사랑한다. 그는 외쳤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당신이 본 것은 먹구름, 당신은 그것을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았다.""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아침저녁으로 당신의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줄 아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외경,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을 이름이다. 그러나, 무엇을 공경하며 두려워한다는 말일까. '금강'은 동학의 이야기다. 제4장에 수운 최제우의 역사가 나온다. 그는 집에 있는 '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켜 하나는 며느리로, 하나는 양딸로 삼았다. 가지고 있던 금싸라기 땅 열두 마지기를 땅 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무상 소리만 나오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들 솥뚜껑도 보고 놀라는 우리.'바다의 달' 최시형은 관헌의 추적을 피해 전국 방방곡곡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여름 동학교도 서 노인의 집에서 저녁상을 받을 때 바깥에서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월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노라고 대답한다. 이에 해월이 이렇게 말한다. "서 선생, 며느리가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한울님이십니다. 어서 모셔다가 이 밥상에서 우리 함께 다순 저녁 들도록 하세요."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데 그 집 막내아들이 따라 나오며 우는 것을, 서 노인이 쫒아버리려 한다. "이 어린 분도 한울님이세요. 소중히 받드세요."혁명이란 무엇이냐, 신동엽 시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모두가 평등하게, 아니 한울님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러면 경제적 평등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옛날부터 천도교, 곧 동학에 이르기를, 이 우주의 삼라만상, 산천초목, 짐승과 사람은 모두들,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양반이나 상민이나 돈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큰 하나인 한울로부터 나온 것이니 같다. 평등하다. 높고 낮음 없다.사람들은 평등을 말하면 경제적 평등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알고 대경실색들을 한다. 부자도 얼마나 한없이 불쌍하며 가난한 사람도 그 얼마나 깨끗하게 행복한가. 그러나 먹구름을 하늘로 알고 살아오는 우리는 정말로 된 하늘을 보지 못한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과연 우리는 하늘을 보았는가. 나는 하늘을 보았는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을, 영원의 하늘을 본 사람은 외경을 알련만.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니, 바른 주장이려니, 행동이려니, 한다.외경이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할 것을 공경할 줄 알고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되기는 참말 어려운 말이다.우리들 하늘에는 지금 얼마나 두꺼운 구름이 몇 겹씩 끼어 눈부신 햇살을 가로막고 있는가. 그래도 저마다 하늘을 보았노라고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가 하늘이라고도 한다. 아무도 두려움을, 공경을 알지 못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하노이발 뉴스에 관하여

[방민호 칼럼]하노이발 뉴스에 관하여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하게정치·경제로 논할 수 있는게 아냐'한국인' 인류적 종 존속위해 필요냉정과 침착속에서 서로 공존하고北동포들과의 미래위한 슬기 모아야하노이발 뉴스를 접하고 선배 작가 한 분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글쎄요. 저는 언젠가부터 현안에 어두워져서 잘 모르겠는데요, 했다. 다른 한 분은, 충격이라니,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것부터 의외였거든, 하고 들뜬 사람들을 쉽게 타박한다.지금 청년들 중에는 이데올로기에 찌들고 가난한 북한 싫다고 통일이 절대적 필요 명제는 아니라 한다. 입만 벌리면 경제, 경제하고 경제병 걸린 나이 든 분들도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한다. 아무리 속물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도 일단의 진실은 있다고 봐야 한다.필자로 말하면 386세대,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며 자란 세대의 일원이다. 유신체제 때 '국민학교'를 다녀,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줄 알았고, 국가와 민족을 지상 명제로 끌어안고 성장했다. 이른바 '범생'이었기에 다른 친구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도 철학이 아니라 국민윤리였으니, 왜 국민 윤리가 철학보다 먼저이고 철학은 중고등학교 과정에 있지도 않은 건지 물음표조차 생기지 않았다.이 국가 교육 때문에 생긴 부작용의 하나는 강렬한 정치 감각일 것이다. 필자가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부모님은 절대 현실 문제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만 하라 당부하셨다. 그러나 한 일 년 지나는 사이에 사람이 달라져 버렸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유신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어디로 가는지,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자들이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조국'의 통일이라는 것도 필자에게는 처음에는 그런 차원에서 당위적인 명제로 받아들여졌다. 1945년 해방과 독립이 미완에 그쳤고 그나마 분단으로, 전쟁으로 치달았으니 원래의 상태를 회복해야 함은 당연지사 아닌가. 그래도 '통일 지상주의'에는 용케 빠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나중에는 우리나라가 섬 같아서 갑갑해졌다. 동서남 쪽이 모두 바다에 접해 있고 북쪽은 철책으로 가로막혔으니 어디 먼 곳으로 떠나기도 어렵지 않은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면 되지 않느냐 해도 땅을 밟고 바깥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공중 이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해야 한다.여행 핑계를 댔지만 사실 어디 여행 같은 문제일 뿐이겠는가. 아무리 세계화, 국제화가 전개되어도 한국 사람들의 '고인 물' 같은 우물 감각은 좀처럼 벗을 수 없는 것이 위쪽 통로가 막힌 데도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인데 그 대륙과 살을 맞대고 살 수 없는 상황은 사람들을 비좁게 만들기 쉬운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신채호를 즐겁게 읽는다. 그는 한말의 유생 출신으로 비범한 재능과 목숨을 건 공부를 통해 '조선사'의 '비밀'을 캐내는데 접근할 수 있었던 드문 선각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느니, 상상과 공상이 많았느니 하지만 비난은 쉽고 깊이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과연 중국 청대의 사고전서를 접하여 우리 역사책에 잘 안 나오는 우리 역사를 사리에 맞게 맞추려 한 사람 얼마나 되던가. 이 선생 신채호를 통해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대저 역사라는 사람살이의 기억은 만만히 볼 것 아니요, 경제나 정치 따위로 논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 인류적 종의 '자연사'를 정리해 놓은 것이니, 이것 없이는 그 종의 현재의 삶도 있을 수 없고, 현재를 살아도 덧없는 삶에 그치기 쉽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같은 '현재' 때문에만 아니라 이 '한국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 인류적 종의 존속을 위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무슨 무슨 '지상주의자'는 되지 않아야 할 일이다. 냉정과 침착 속에 우리 안에서도 서로 공존하고, 북한 동포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태움`

[방민호 칼럼]'태움'

간호사 사회 '괴롭히며 규율잡기'김용균군 희생된 火電 '사람 차별'책임 면하는 '이상한 논문 표절'썩을대로 썩은 문화 없애지 못하면영혼은 늘 굶주리고 고통은 연속며칠 전에 신문에서 한 간호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유서에 썼다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병원 사람들 조문도 오지 마라." 오죽 괴로웠으면 죽고 나서도 병원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 했을까?이런 일이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고, 얼마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때 네이버에 들어가 도대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태움'. 이 말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참 이런 문화도 있을까 싶다. 어떻게 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집단의 이름으로 길들이고 말 듣지 않거나 적응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태워져 재가 될 때까지 태워 버리는 것일까. 참 말도 실감 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면 그렇게 태워져 버린다는 말이냐. 그러나 이 말을 처음 들은 후 그 생생한 어감의 놀라움과 함께 나를 괴롭힌 것은 이 '태움'이 병원 간호사 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없는 곳 없다 할 정도로 사람들을 지독히 괴롭히는 형태로 끈질기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실 카풀 문화라는 것이 왜, 얼마나 필요한지 알지 못하지만 서구에서도 그런 문화가 있다고들 하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이 도입되어야 한다고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잖던가. 그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바다 건너 이 나라에 들여오려면 이곳 사정에 얼마나 맞는지, 어떻게 해야 무리 없이 들여올 수 있는지, 그런 제도가 시행될 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 이리저리 고민도 해봐야 할 게 아닌가? 정말 그렇게 한 후 그 카풀이라는 제도를 시행하려고 하는 걸까. 결과가 얼마나 좋을지는 아직 기다려 보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니, 사람 '태우는' 사람들이 광화문 앞이며 어디 앞에 십여 만 명씩 빽빽하게 서서 시위를 하고 항의를 하고 파업을 벌이는 통에 그 추운 한겨울 밤에 택시를 '타는' 사람도 새벽길을 걷고 걸어 집에 지쳐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택시 기사 두 분이 자신의 몸을 태우는 일까지 일어났다. 김용균 군을 태안 화력발전소의 어이없는 희생양으로 만들고 만 것도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그 '태움' 문화 때문이 아니던가. 석탄을 태워야 하는 화력 발전소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사람을 차별하고 자격을 '못 갖춘' 사람들은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그가 내몰릴 대로 내몰려 몸과 영혼이 몽땅 태워질 때까지 몰아대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아니던가. 그 어린 젊은이가 전생에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생에 와서 그런 처절한 고통을 맛봐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이 '태움'은 어디에서 와서 이렇게 병원 간호사들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귀신같은 힘을 발휘한단 말인가. 대학교에도 온갖 태움 문화가 만연하는 가운데, 그중 이상한 태움 문화로 표절이라는 것도 있다. 남의 논문이나 글을 몰래 가져다 쓴 사람이 3년만 그 소행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절대'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런 이상한 '태움' 때문에 표절한 사람은 요행히 책임을 면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사람이나 그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속이 타도 탄다고 어디에 말할 곳조차 없이 숨어서나 괴로워하는 끝에 영혼 자체가 태워져 버린 것만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 '태움'을 태워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상처가 곪을 대로 곪고 문제가 썩을 대로 썩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 태워 버리는 식의 문화를 없애지 않고는 이 사회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영혼은 늘 굶주리고 태움을 당하는 고통을 맛봐야 할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방민호 칼럼]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입은 먹는것 말고 말하기도 한다남을 칭찬만 않고 험담도 일삼아정화하자 해놓고 더러운 말 더 써말이 무서운 올해 이제 한달 남아더러움 속에서 자기도 보라… 몇 날 며칠째 입안에 맴도는 시구절이 있다. 창랑 뭐라 했는데 그게 어땠더라. 갓끈, 뭐라고도 했는데. 옛날 같으면 나중에 찾지 하고 말 것을, 인터넷은 뭐든 단번에 답을 주고야 만다. 어디? 아하, 굴원이었다. '어부사'에 나오는 시구였다. 한문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옛사람의 이야기를 알까만, 그래도 한번 들추어 보자면. 옛날에 굴원(약 B.C.~B.C. 278년)이라는 초나라 사람이 정계에서 물러나 강가에 머물러 있었다 한다. 그때 어부 하나를 만나 세상 한탄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 홀로 맑구료.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건만 나만 홀로 깨어 있었구료. 이로 인해 추방을 당하고 말았소"라 하였다. 이 어부는 한갓 이름없이 살아가는 이겠지만 굴원의 '고고' 포즈가 마음에 들리 없었으리. 세상에서 물러나 세월의 흐름에 뜻을 맡기는 이는, 저희들끼리 중앙이니 서울이니 자부하는 곳에서 아웅다웅 다투는 꼴 한없이 부질없이 느껴졌으리라. 몇 번 문답 끝에 노옹이 남기고 떠나간 시구가 다음과 같다.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큰 바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그 물이 흐리면 발을 닦으리. 시원스럽기 짝이 없는 말 같지만 간단치는 않다. 아니, 이 무슨 해괴한 '시류'주의자의 요설이란 말인가? 창랑이라 하면 큰 바다 물이라 할 텐데, 이 시는 왜 강물이라 해도 될 것을 굳이 바다라 했나. '나'는 아무리 커도 작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 것일까? 바다 위에 떠 있으면 '나'만큼 작은 것도 없으리니 말이다. 세상이란 가뒀다 풀 수 있는 한갓 강물 따위가 아니요 제 혼자 힘으로는 너무나 감당하기 벅찬 산더미 바다라는 것이다. 그 물을 퍼내어 내 맘대로 깨끗하게 할 수 없고 또 제 맘대로 더럽힐 수도 없다. 곧 세상은 창랑, 큰바다 물, 내가 수초처럼 떠 있는 곳이다. 몇 날 며칠 그 더럽다는 그 한 단어가 자꾸 입안에 맴돌아 어찌할 수 없다. 충청도나 그 이남 사투리에 '더럽다'는 '드럽다'라고 한다. '더'와 '드'가 큰 차이 없건만 하필 드럽다고 하면 정말 더러운 느낌이 난다. 그러고 보면, 십 년도 전에 서울 북쪽 어느 큰 대학교 선생님들을 뵙는데, 송 아무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 입처럼 드런 게 없어"하고, 혼잣말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손이니 발이니 하는 사람 몸이 다른 생물 것들보다 깨끗하지 않단 말을 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이 더럽다? 딴은 그런 것도 같다. 손발은 온갖 더러운 것 다 만지고 밟은 '도구'지만, 그래도 눈에 잘 보여 늘 씻고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거울 보고 이를 닦을 때도 입안은 좀처럼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그 입안으로 사람들은 온갖 것을 쓸어 넣는데, 사람처럼 안 가리고 먹는 짐승도 드물다. 쓴 것, 매운 것, 싱싱한 것, 썩은 것, 냄새 고약한 것, 향기 나는 것, 못생긴 것, 탐스럽게 생긴 것, 이 모두가 입을 통해 사람 몸으로 든다. 그러니 입이 어찌 깨끗하랴.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분의 그 말씀은 사람의 몸에 관한 얘기가 아닌 것도 같다. 사람의 몸의 각 부위는 한 가지 역할만 하지는 않아서 입도 먹는 것 말고 또 한 가지 일, 말하는 일을 한다. 그 입으로 남을 칭찬만 하지 않고 온갖 험담을 일삼는다. 있는 일 갖고 비난만 하는 게 아니요 없는 일 갖고도 더러운 말을 지어낸다. 남자만 더럽게 말하는 게 아니고 여성도 그런 말들을 꾸며낸다. 없는 사람, 낮은 사람, 못난 사람의 말은 차라리 그럴 수라도 있다 하지, 가지고 높고 잘난 사람이 더러운 말도 상급이다. 말을 정화하자며 더러운 말을 하고 우리끼리만 말하자며 더 더러운 말을 한다. '더럽다'라는 이 한 마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게 들릴 때가 없다.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 살며 벌이는 일이 어떻게 이렇게 치사스러울 수 있나. 문제는 창랑의 물만 더러운 게 아니라는 사실. 나도 더럽다 아니할 수 없어, 창랑의 물만 보고 더럽다, 더럽지 않다 할 계제가 아니다. 올해 무술년이라 했다. 심상찮은 바람, 광풍이 분다 했다. 이제 양력으로 한 달, 음력으로 두 달. 말이 무서운 이 해가 언제 가려나 한다. 어느 신문에서 올해의 한자성어를 뽑았다. 왜 '지록위마'는 후보에 없었나. 하지만 명심하라. 무명 어부의 지혜를 배우라. 더러움 속에서 자기도 보라./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칼럼]지금, 국가와 정부, 그리고 시민들

[방민호 칼럼]지금, 국가와 정부, 그리고 시민들

현재 국민들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보여주는것에 만족하고 찬사 보내그 덕에 인터넷이 언론과 표현 점령오늘날 민주주의 과거보다 더 위험진실 가리는 정보들 교묘하게 작동어느 순간, 더 이상은 나라가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둘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예전에는 무엇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비교적 명백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때는 '나'도 주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순하게, 투명하게 생각할 줄 알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사태는 결코 명백하지 않고, 늘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의문을 갖는 순간, 복잡함, 불투명함을 자기 사유의 기반으로, 근본적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주의하거나 둔감하게 지나치면 이 순간은 다시 사라져버린다.국가를 믿고, 국가가 시민들의 의지에 의해 수립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러지 않은 정부라면 뒤집어 버리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때, 국가가 없는 세계야말로 유토피아겠지만 그 국가 없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가 아닌 국가', '국가를 폐절시키는 국가'의 단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도 순진하다면 순진했다. 그런 국가가 얼마나 타락했던가를 깨닫고 국가 없는 세계에 대한 꿈도 함께 잊었을 때 국가라는 문제는 곧 어떤 정부냐 하는 문제로 바뀌어버렸다. 국가를 심문하지 못하게 되자 '근본주의'적 사유는 빛을 잃고 앞에 놓인 정부들 중 하나를 양자택일 식으로 골라잡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진함이여, 썩 물러가라. '내'가 선택하고 지지한 어떤 정부도 선하지만은 않았으니, 다시는 '내' 의지를 어떤 정부를 위해 사용치 말라. 아깝지 않느냐, 낭비해 버린 젊음의 시간들이. 위선에서 교활을 거쳐 야만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쇼로. 쇼가 펼쳐지는 무대 뒷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홉스는 만약 정부가 없다면 사람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날을 지새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자연 상태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정부에 위임코자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부를 갖고 있는가? 악 대신에 선이 활동하는 국가 말이다. 살의에 관해서 생각한다. 만약 정부가 선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사람들의 살의는 정부의 선한 중재에 의해 사그라들 수 있겠다. 과연 정부는 그런 선의로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가?과거에 어떤 정부는 자신이 저지른 악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그런 때만 해도 좋은 통치를 위한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선의를 위한 타협과 거짓, 선을 행하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단 한 번 계약을 맺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본분은 유혹에 빠뜨려진 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 유혹에 응한 욕망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그 어떤 정부는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 갈기갈기 찢기우고 말았다. 악수인 줄만 알았던 것이 수렁에 빠진 격이 되어 끝 모를 이중성을 이어가다 마침내 파멸해 버린 것이다. 만약 순진했던 정부가 악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 정부를 이끄는 사람들이 이중성에 익숙해지면, 무대에서는 선을 보이고 장막 뒤에서 악을 행하는 데서 편리를 취하는 기술을 익힌다면. 그 어떤 파산한 정부의 뒤를 이은 정부들은 사실상 그러했다. 그들은 교활하기도 했고 야만적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보여주고 보임 뒤에서 다른 수를 내는데 익숙했다. 오늘날에도 시민들은 순진하고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보여주는 것에 만족해서 찬사를 보내며 머물기 좋아한다. 옛날에 어떤 지도자는 그래서 국민들보다 반 보만 앞서 가라 했지만, 차라리 반 보를 늦게 가야 더 큰 찬사를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 보여지는 것에 약한 시민들 덕분에 인터넷 가상 현실이 언론과 표현을 점령하다시피 한 오늘날 민주주의는 과거보다 더 큰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 능력은 보여주는 세력에게만 이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각 이면의 진실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기는 한다. 그러나 사태는 절대 간단치 않다. 진실을 가리는 정보들의 숱한 집적과 '좋은' 정보를 향한 접근 자체를 가로막는 온갖 교묘한 기술과 트릭이 작동한다.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정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실감하게 되면서, 아하, 이제 천치가 되자 생각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진정한 친구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편할 것 같다. 이미 모든 게 뒤얽히고 엎어져 버렸다. 이 비관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도 없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더보기
나도기자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