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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X 시대 인천이 바뀐다·(1)]새 교통혁명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 시대 인천이 바뀐다·(1)]새 교통혁명 수도권광역급행철도

유휴지 활용·노후주거지 개선 등 기대… 서울중심 주택 수요 완화도이동시간 획기적 단축 기업유치·인력유인 쉬워져 체계적 대비 필요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와 고속도로가 놓인 곳으로 늘 신(新) 교통의 시험무대였다. 인천은 이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라는 교통혁명과 또다시 마주하고 있다.GTX는 인천 도시 공간의 판을 흔드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서 도시 발전의 방향마저 새롭게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GTX는 지하 40~50m 깊이에 철도 노선을 깔아 수도권을 연결하는 초대형 건설사업이다. 지하철과 달리 정거장 최소화·노선 직선화를 통해 최대속도를 시속 200㎞까지 낼 수 있도록 계획됐다. 전체 3개 노선 중 인천이 포함된 B노선의 경우 송도에서 청량리까지 이동시간이 27분에 불과하다. 기존 110분에서 무려 87분이 단축된다.대중교통의 측면에서는 서울로 통근하는 시민들이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인천·경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는 하루 147만명으로 이 중 인천시민이 19만1천여명이다. 1시간 이상 장거리 통근 비율은 26%에 달한다. 경인전철의 혼잡을 분산해 기존 철도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GTX는 단순히 이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편의성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GTX를 중심으로 한 개발축 재배치는 물론 이미 개발된 도심에도 유휴공간 활용, 노후 주거지 개선 등이 이뤄지는 등 도시공간에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 서울 중심의 주택 수요 집중이 완화돼 수도권 부동산 안정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서울로의 이동이 단축됐다는 것은 반대로 인천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투자와 기업 유치, 우수 인력의 유인도 보다 쉬워진다. 인천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정거장이 예정된 부평과 인천시청, 송도국제도시 간 빠른 연결이 지역 간 교류 활성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다만 인천의 경우 GTX 정거장 주변은 도시개발이 이미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대비 없이 역세권 개발로 인한 낙수효과만 기대했다가는 오히려 인천이 서울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한국교통연구원 철도운영·공공성연구센터 김연규 연구위원은 "GTX의 핵심은 이동시간의 획기적인 단축으로 인천시민이 서울에 살지 않고도 서울 중심의 각종 문화·상업·의료·교육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이라며 "도시 쏠림 현상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에 서울이나 경기도 사람들이 거꾸로 인천으로 올 수 있게끔 지역 특성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GTX 시대 인천이 바뀐다·(1)]철도와 함께 한 인천발전

[GTX 시대 인천이 바뀐다·(1)]철도와 함께 한 인천발전

우리나라 최초 철도 개통 개발 초석공항철도는 환승역 수준 아쉬움…7호선 연장선 서울연결 새 길 의미선심성 혈세낭비 중복 노선 우려도1883년 개항 이후 근대 인천이 발전해 온 주요 동력 가운데 하나는 바로 철도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어촌마을이었던 인천이 국제도시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를 수도권 교통 혁명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인천제물포~노량진 간 약 33㎞ 구간의 개통을 시작점으로 하고 있다. 걸어서 하루 꼬박 걸렸던 시간을 1시간 40분으로 단축했다. 이후 인천은 동인천과 주안, 부평 등 경인선을 중심으로 발전해 갔다. 주거지와 상업시설, 행정기관, 공장 등이 경인축을 중심으로 짜였고, 지방에서 서울을 향하는 수요를 중간에서 흡수하기도 했다. 지하철 등 도시철도망이 지금처럼 촘촘히 갖춰지기 전까지 경인선은 서울과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철길이었다.인천의 철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수인선이다. 꼬마열차라 불리는 궤도 폭 76.2㎝의 '협궤열차'는 1937년 8월 6일 개통해 인천과 수원(52㎞)을 달렸다. 쌀과 소금을 인천항으로 쉽게 나를 수 있도록 만든 수탈의 상징이라는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다. 해방 이후에는 여객 중심으로 개편돼 추억의 낭만 열차라는 이미지가 강렬하다. 수인선은 1995년 12월 31일 폐선됐지만, 2012년 복선 전철로 재개통해 현재 오이도∼인천역(20.4㎞)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수인선은 인천과 경기 남부를 이어주는 동맥으로 조만간 수원까지 연결돼 완전한 부활을 앞두고 있다.도시화 이후 인천의 광역철도망은 공항철도와 서울 7호선 연장선 등 기존의 도시철도망 연장 사업으로 추진됐다. 인천공항철도는 2001년 개항한 인천공항과 서울을 연결하기 위해 놓인 철도다. 인천에서는 검암과 계양에 정거장이 설치됐지만, 철도를 바탕으로 한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공항과 서울이라는 확실한 목적지를 위해 추진된 철도였기 때문에 중간 기착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환승역이라는 이미지에 머물렀다. GTX-B 사업의 환승 거점인 인천시청과 부평 지역의 연계 발전 계획에 참고해야 할 사례다.서울 7호선 연장선은 인천 북부권 주민들을 위한 철도다. 부평과 서구 구도심, 청라국제도시를 서울 강남과 연결해 기존 경인선 루트인 인천~구로~서울역 외에 새로운 길을 텄다는 데 의미가 있다.인천시는 현재 사업이 확정된 GTX-B 노선 외에도 제2경인선과 서울 2호선 청라 연장, 서울 5호선 검단 연장, 제2공항철도 등 새로운 광역 철도망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하지만 정치권이 민심을 얻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야 하는 철도 사업을 선심쓰듯 쏟아내 불필요한 중복 노선이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내년도 '주민참여예산' 118건… 인천시, 주민투표로 우선순위 결정

인천시가 내년 시행할 주민참여예산 사업 후보 118건을 확정하고, 주민 투표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했다.인천시는 2020년 주민참여예산사업 선정을 위한 온라인 주민투표를 26일부터 9월 20일까지 실시한다고 25일 밝혔다. 인천시는 9월 26일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열리는 '주민참여예산 한마당 총회'의 현장 투표 결과와 온라인 사전 투표 결과를 합산해 순위를 정할 예정이다.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해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을 제안하는 주민참여예산은 지난해 14억원이었다가 올해 200억원으로 확대 편성됐다.인천시는 공모와 분야별 토론회 등을 통해 사업을 제안받았고, 타당성 검토와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심사를 거쳐 총 사업비 243억원에 이르는 사업 118건을 후보로 선정했다. 제안 사업은 재난안전, 보건복지, 문화관광, 환경녹지, 교통, 해양환경 등 13개 분야로 구성됐다.온라인 투표는 인천시 홈페이지에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참여할 수 있고, 13개 분야별로 각 1~3건의 사업에 투표할 수 있다. 송태진 인천시 예산담당관은 "예산의 투명성과 공정성, 건전성 마련을 위한 주민참여예산사업 선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며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인천시의 재정민주주의 실현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인천시 `국비 확보` 한국당에 초당적 협조 요청

인천시 '국비 확보' 한국당에 초당적 협조 요청

市 당정협, 22개사업 지원안 제시바이오공정센터 등 예산반영 요구의원·원외위원장 지역민원 청취도인천시가 자유한국당 인천시당에 현안사업의 원활한 추진과 내년도 국비 예산 확보를 위한 초당적 협조를 요청했다.인천시는 지난 23일 오전 인천 로얄호텔 영빈관에서 당정협의회를 개최하고 한국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지원을 당부했다.인천시는 주요 현안으로 수도권매립지 2025년 종료와 대체매립지 조성, 인천관련 철도망 구축 사업의 조속한 추진, 백령공항 조기 건설 등 22개 사업을 들고 나왔다. 사업 추진을 위해 필요한 관련 법 개정과 예산 확보 등 국회 차원에서 지원할 방안을 제시했다.인천시는 또 인천과 관련한 국가 직접·보조사업 예산 3조4천억원과 보통교부세 6천500억원 등 내년 국비 확보 목표액이 총 4조500억원이라고 밝혔다. 바이오공정 전문센터 구축, 인천지방국세청 청사 건립, 하수도 사업비가 각 부처 내년도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인천시는 이날 당정협의회에서 지역구 의원과 원외 위원장으로부터 민원사항을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민경욱·이학재 의원 등은 청라 소각장 증설과 송도 화물주차장 설치 등 지역구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안상수 한국당 시당위원장은 "야당 입장에서 시정에 건의도 하고 나름대로 좋은 대안을 마련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며 "지역을 담당하는 국회의원과 당협 위원장으로서 인천시 건의를 경청하도록 하겠다"고 했다.박남춘 시장은 "숙원사업이었던 GTX-B 노선과 군부대 재배치, 국립해양박물관 유치, 스타트업파크 유치 등을 이뤄냈고, 한국당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난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인천 발전을 위해 한국당과 함께 논의하겠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박남춘 인천시장이 23일 인천시 남동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인천시당-인천시 당정협의회'에서 안상수 시당위원장 및 국회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

정희윤 인천교통공사 사장 내정자 "무임수송 정부가 보전해줘야"

시의회 간담회 적자해소 집중 질의담당 인력 부족 지적에 '협의' 답변민주당 경력에 '보은' 의혹도 제기인천시의회가 22일 정희윤 인천교통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간담회를 열어 적자 상태에 놓인 공사의 경영 개선 등을 내정자에 요구했다. 인천시의회 인사간담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정희윤 내정자에 교통공사의 적자 해소방안을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정창규(미추홀구2) 의원은 "2018년 한 해 동안 1천215억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는데 앞으로 계획을 시민들에 알려달라"며 "수송원가 대비 낮은 요금 수준을 해소할 방안이 있는가"라고 물었다.정희윤 내정자는 "요금 책정은 수도권 각 지자체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요금 인상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65세 이상 노인 등의) 무임 수송에 대해서도 정부가 실시하는 건데 비용은 운영기관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복지차원에서 정부가 보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정자는 또 "취임을 하면 영업 부서와 함께 수송 인원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다.도시철도 운영과 관련해 담당 인력이 다른 광역시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천교통공사의 경우 도시철도 궤도 1㎞당 담당 직원이 24명으로 전국 최저 수준이다. 특히 광주는 1㎞당 직원이 26명으로 2명 더 많지만, 하루 수송인원은 인천시가 4배나 더 많은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현장 안전점검이 부실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고, 근로자의 근무 강도가 높아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정희윤 내정자는 "1㎞당 인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재정 문제와 연동이 되기 때문에 시와 협의해서 촘촘하게 살펴보겠다"며 "취임 이후 노조 의견을 듣고 현장 상황도 충분히 살펴보겠다"고 했다.낙하산 인사 논란도 제기됐다. 박성민(계양4) 의원은 "프로필을 보니 1976년부터 철도청에서 근무했고, 이후 2006년 민주당 이호웅 전 국회의원 보좌관, 민선 5기(송영길 시장) 인천교통공사 감사, 민주당 인천시당 수석부위원장, 박찬대 의원 입법보좌관 경력이 있다"며 "(민주당의)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이밖에 안병배(중구1) 의원은 "월미바다레일이 성공적으로 개통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고, 김성준(미추홀1) 의원은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물 개선에 힘써달라"고 했다.박남춘 인천시장은 시의회로부터 정희윤 내정자에 대한 인사간담회 결과 보고서를 제출받으면 오는 26일 인천교통공사 사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인천경영포럼]윤상현 의원 "문재인대통령이 아베에 비공개 특사 보내야"

[인천경영포럼]윤상현 의원 "문재인대통령이 아베에 비공개 특사 보내야"

한일관계 개선 외교적 해법 제시"그래도 안되면 국제재판소 가야"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천 미추홀구을)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총리실에 비공개 특사를 보내 무역 보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윤상현 위원장은 22일 인천 연수구 라마다송도호텔에서 열린 인천경영포럼 408회 조찬강연회에서 한일관계 개선 해법을 이같이 제시했다. 윤상현 위원장은 "이 문제를 끝낼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서 양측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면 12월 31일까지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윤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관계를 "마주 달려오는 기차"로 비유한 뒤 "감정적 대응을 하지 말고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윤 위원장은 "일본은 수출 규제가 아닌 '수출 관리'라고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강제 징용자의 청구권을 인정한 작년 말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며 "결국 정치·역사 문제가 경제보복으로 가게 됐는데 정말 졸렬하기 짝이 없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그러면서 "일본의 요구는 과거 박정희 정권과의 한일협정으로 강제 징용 배상 문제가 해결됐는데 지금의 대법원 판결로 다른 입장이 나왔으니 이를 해소해달라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일본이 요구하는 외교적 협의와 중재위원회 구성,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구성에 대해 모두 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윤상현 위원장은 "대법원 판결이 한일협정과 불일치하게 나왔다면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정부가 이를 방치했다"며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했는데 이미 일본은 작년 말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부터 대화를 계속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양국은 현재 진행하는 모든 조치를 올스톱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윤상현 위원장은 이 문제가 풀리지 않고 양국의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국제법의 조류가 개인의 청구권은 인정하는 추세"라며 "일부 승소, 일부 패소 판결을 이뤄낼 수 있고 완전히 지지는 않기 때문에 외교적 해법이 안 되면 ICJ라도 가야한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22일 라마다송도호텔에서 열린 인천경영포럼 조찬간담회 강연자로 나와 한일관계 전망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인천경영포럼 제공

[독립운동과 인천·(24)]장봉도 할아버지 송두용

[독립운동과 인천·(24)]장봉도 할아버지 송두용

옥고도 치러… 2010년 유공자 인정해방이후 남북통일 염원 밝히기도인천 장봉도에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사업에 헌신했던 기독교 신앙인 송두용(1904~1986) 선생.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라는 다소 생소한 신념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빈민구제 활동가로 잘 알려진 그는 독립운동 행적과 사상과 관련해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편이다.송두용은 뜻을 함께한 신앙인들과 함께 만든 기독교 잡지 '성서조선'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했다. "매서운 추위에도 살아남는 개구리는 있다"는 내용의 성서조선 158호(1942년 3월)의 권두언은 칼끝과 총부리로 우리 민족을 겨누고 말살하려 했던 일제에 일침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송두용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송두용은 이 사건에 대해 "일본 경찰은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모조리 검거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치성은 전혀 없고 다만 기독자로서 양심생활을 한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 정치적 행동과 거리가 먼 신앙 그 자체를 위한 활동(신앙만의 신앙)이었다고 밝혔지만, 순수한 신앙심이 결국 민족의 해방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불러왔다. 정부는 2010년 그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다. 송두용은 해방 이후에도 신앙과 관련한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많은 글을 남겼다. 3·1 운동 정신은 거창한 행사가 아닌 실력 양성으로 일본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그토록 염원하던 해방 이후 송두용은 남북을 비롯한 전 세계의 평화를 원했다. 평화를 바탕으로 남북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그의 바람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송두용은 해방 22주년을 맞았던 1967년 8월 "이제는 각각 남의 나라처럼 또는 피차 독립국가인 양 당연한 것 같이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듯이 체념하고 있는지 모른다. 천만의 말이다. 어서 남북이 합쳐야 한다. 하루속히 통일 국가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인천항 곡물창고 벽화, 美 IDEA 디자인어워드 `본상`

인천항 곡물창고 벽화, 美 IDEA 디자인어워드 '본상'

세계최대 규모 기네스북 등재행안부 우수 혁신사례 선정도아파트 20층 높이의 인천항 곡물 저장시설 벽화(사일로 슈퍼그래픽)가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 IDEA 디자인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인천항 사일로 슈퍼그래픽은 1979년 세워진 노후 곡물 저장시설(둘레 525m, 높이 48m)의 외벽에 그림을 입힌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다.월미도 초입에 있는 이 시설은 거대한 규모와 투박한 외관 때문에 위압감을 주며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이에 인천시는 사일로를 운영하는 한국 TBT와 인천항만공사, 인천테크노파크와 함께 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해 외벽에 그림을 그렸다. 나란히 줄지어 있는 사일로가 마치 책장에 꽂힌 책처럼 보이도록 구성했고, 봄·여름·가을·겨울을 콘셉트로 한 그림을 각 사일로에 그렸다.제작기간 100일 동안 외벽 2만5천㎡에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한 페인트양만 86만5천400ℓ에 달했다. 인천항 사일로 슈퍼그래픽은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인천항 사일로 슈퍼그래픽은 1천700여 작품이 출품하는 미국 IDEA 디자인어워드에서 상위 5%에 주어지는 본상(Finalist)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가 주관하는 국제 디자인상으로 'iF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 어워드'와 함께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힌다.사일로 슈퍼그래픽는 디자인 혁신, 사용자 혜택, 사회적 책임이라는 수상 요건을 모두 만족했다. 사일로 슈퍼그래픽은 앞서 지난 3월에는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본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행정안전부의 우수 혁신사례로 선정돼 각 지자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독창적인 콘텐츠와 디자인을 적용한 환경개선을 통해 낙후된 산업시설에 대한 인식개선을 이뤄냈다"며 "앞으로 내실있는 산업시설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해 인천시를 쾌적하고 선도적인 산업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슈퍼그래픽 美 IDEA 디자인 어워드 2019 본상을 수상한 인천항 사일로의 모습. /경인일보DB

[독립운동과 인천·(23)]장봉도 할아버지 송두용과 성서조선사건

[독립운동과 인천·(23)]장봉도 할아버지 송두용과 성서조선사건

일본서 성경 중심 무교회주의 들여와 연구회 조직 '성서조선' 발행158호 弔蛙 통해 '한두 마리는 살아남듯' 말살정책 극복의지 표현해방 후 장봉도 푸른학원 이어받아 빈민구호·교육사업에도 힘써태평양전쟁 발발로 일제의 식민지 수탈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초반 서울에서 발행된 한 기독교 잡지 첫 장에 의미심장한 내용의 권두언이 실렸다.권두언의 제목은 개구리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의 '조와(弔蛙)'. 1942년 3월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기독교 신앙 잡지인 '성서조선(聖書朝鮮)' 158호에 겨울잠을 자다 얼어 죽은 개구리를 빗대 민족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한 글이 실렸다.일본은 잡지 발행에 가담한 인물과 독자들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이른바 성서조선사건이었다.이 사건의 중심에는 훗날 인천 장봉도에서 빈민구제 활동과 교육 사업에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송두용(1904~1986) 선생이 있었다.송두용은 1904년 7월 31일 충청남도 대덕군(지금의 대전시 대덕구)에서 부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4살 때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에 입양됐다가 서울로 유학해 제동공립보통학교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그는 18세 나이에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 사건이 발생해 귀국했다. 그리고 21살 때 다시 일본 도쿄농업대학 예과로 진학했다. 그는 일본 유학생활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인생이 바뀌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제도권 아래 있는 교회 제도를 비판하며 성서와 신앙만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는 '무교회주의'가 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교인 수를 늘리고 헌금 걷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기성 교단을 부정했다.송두용은 일본에서 무교회주의를 설파하던 우치무라 간조의 강연에 감명을 얻어 한국인 유학생인 김교신, 함석헌, 유석동, 양인성, 정상훈과 함께 '성서연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1927년 무교회주의 신앙을 기반으로 한 잡지 '성서조선'을 처음 발행했다. 송두용은 성서조선 6인방 중 가장 나이가 어린 23세였다.1930년 귀국한 송두용은 부천군 오류동(지금의 구로구)을 기반으로 성서집회를 열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송두용 등 6인방은 성서조선 발간과 함께 서울, 인천, 부천 등지를 다니며 강연을 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이때부터 율목동의 인천모임을 만들어 무교회주의를 알리고 주변에 성서조선을 전달했다.김교신이 1927년 7월에 쓴 성서조선의 창간사는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 신자보다도 조선혼을 가진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뭇군 한 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는 내용이다.민족의식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우상숭배를 거부하며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하는 등 종교 운동을 바탕으로 한 항일의식이 확산하자 일제는 기독교를 철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1942년 3월 송두용과 김교신 등이 성서조선 권두언에 실은 '조와'가 일제의 감시망에 잡혔다."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이 바위틈의 빙괴(永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 만에 친구 와군(蛙君)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潭)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 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하고 있지 않는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작은 담수(潭水)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한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마리 기여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이 글은 혹독한 추위가 와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죽어 나가더라도 한두 마리는 살아남듯이 일제가 아무리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더라도 끝내 살아남는 한국인이 있다는 얘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일제는 송두용과 김교신 등 6인방과 주요 독자 12명을 치안유지법 혐의로 체포하고 서대문 형무소에 가뒀다. 이 사건으로 송두용은 10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고 결국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성서조선도 '조와'가 실린 통권 158호를 끝으로 폐간됐다.송두용과 동시대에 무교회주의 활동을 했던 노평구는 당시 일제가 무력 투쟁이나 드러내놓고 하는 독립운동보다는 이 같은 종교·문화 운동을 더 두려워했다고 회상했다. 노평구는 송두용이 잡지에 쓴 글을 모아 총 6권 분량의 송두용신앙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성서조선사건 당시 일본 경찰은 "너희 놈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잡은 조선놈들 가운데서 가장 악질의 부류들이다. 결사니 조국이니 해가면서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놈들은 오히려 좋다. 그러나 너희들은 종교의 허울을 쓰고 조선민족의 정신을 깊이 심어서 백년 후에라도 아니 오백년 후에라도 독립이 될 수 있게 할 터전을 마련해 두려는 고약한 놈들이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노평구는 밝혔다.송두용은 해방 이후에도 개인의 신앙생활과 함께 구호활동과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1930년 오류동에서 오류학원을 설립해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펼쳤던 송두용은 1969년부터 장봉도에서 지인의 제안을 받아 '푸른학원'이라는 교육기관의 운영을 맡았다. 건강 문제로 요양차 장봉도에 들렀다가 1967년 푸른학원을 설립한 무교회 신앙인 노연태로부터 푸른학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는 '장봉도 할아버지'라는 별칭이 붙었다.당시 장봉도에는 초등학교밖에 없어 육지의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바다에 나가 굴이나 조개를 따거나 선주 밑에서 새우 선별작업을 하는 고된 일을 하면서 자랐다. 강화도와 영종도, 신·시·모도, 장봉도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노연태는 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 송두용은 '정직'을 교훈으로 내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박정수 등 인천에서 함께 신앙 모임을 갖던 사람들도 푸른학원에서 교사 활동을 했다. 푸른학원은 1974년 정식으로 중등학교 인가를 받아 푸른고등공민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육지로의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푸른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급격히 감소했다.송두용의 건강이 악화되고, 학생 수가 자연스럽게 줄면서 1982년 푸른학원은 결국 문을 닫고 만다. 인천섬연구총서 '장봉도'편을 보면 1982년 장봉도 초등학교 졸업생이 36명이었는데, 푸른학원으로 진학하겠다는 학생은 겨우 4명에 불과했다고 한다.10년 넘게 장봉도의 학생들을 위해 헌신했던 송두용은 1986년 4월 10일 서울 구로구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따르던 제자들과 무교회주의 신앙인들은 송두용의 추모집을 발간하고, 그가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내기도 했다.송두용은 무교회주의 종교인이면서 민족의식을 지닌 독립운동가였다. 2010년 송두용은 성서조선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이 인정돼 독립유공자 서훈(건국포장)을 받았다. 국가보훈처는 그를 '인천' 출신으로 분류하고 있다.송두용은 1958년 3월 잡지 '성서인생' 33호에 쓴 '진정한 3·1 정신'이라는 글을 통해 60년 뒤를 내다보기라도 하듯 현세대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을 남겼다.그는 3·1 정신은 말이나 형식이 아니고 마음이며 산 생명이라고 했다.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각종 기념식 행사에만 치중해 진정한 독립의 의미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을 일찍이 우려했던 거다. 그는 "3·1 운동은 한 개인, 한 정당, 또는 한 단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정치인도 근로대중도, 부호도 빈자도, 남녀노유의 구별 없이 도시와 촌락의 차이가 있을 리가 없다"고 했다.그는 특히 3·1 운동의 정신은 국민 개인이 실력을 양성해 각자 자기의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의 무역보복 조치로 반일 감정이 확산하면서 정부와 국민들이 '극일(克日)'의지를 불태우는 현 시국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송두용은 "우리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무서워하거나 일본의 침략정신을 겁낼 것이 없다. 일본을 이기고 소련을 물리치려면 오직 실력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허위와 외식을 버리고 허영과 기만을 떠나서 다만 진실 일로로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 3·1 정신은 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실천궁행으로 사는 것이며 이룰 것이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성서조선 158호에 일제 저항정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권두언 '조와(弔蛙)'를 실었다가 옥고를 치른 무교회주의 6인방. 뒷줄 왼쪽부터 양인성, 함석헌, 앞줄 왼쪽부터 유석동, 정상훈, 김교신, 송두용. /송두용신앙문집간행회 제공송두용 등 무교회주의 신앙인 6명이 발행한 잡지 '성서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1930년 오류학원을 설립할 당시의 송두용. /송두용신앙문집간행회 제공1958년 3월 송두용이 3·1정신에 대한 글을 썼던 잡지 성서인생. /송두용신앙문집간행회 제공

[뉴스분석]발표 앞둔 인천 중장기 전략 '2030 미래 이음'

시장 바뀔 때마다 휴지통에 버려져비전, 선거결과 따라가면 안될 사안인천시가 한 달 동안 분야별로 발표할 예정인 중장기 발전계획 '인천 2030 미래 이음'의 최대 과제는 실현 가능성과 지속성이다. 매번 내놓았던 저마다의 미래발전 전략은 시장이 바뀔 때마다 휴지통에 버려졌다. 인천시는 오는 26일부터 9월 30일까지 2030년을 목표로 한 중장기 발전 과제 11개를 차례로 발표할 계획이다. 인천의 경제·지역·민생을 살리기 위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건데 어딘지 낯익은 설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2002년 출범한 민선 3기 인천시는 2020년을 목표로 한 '인천미래발전계획'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 때도 복지, 환경, 교통 분야 등 11개 분야별로 전략과제를 도출하고, 과제별 세부 시책 58개를 개발해 발표했다.17년 전 만든 계획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금 적용해도 어색하지 않은 과제가 많다. 당시에도 구도심 균형발전과 섬 활성화, 노후 기반시설 정비, 폐기물 처리시설 확충, 배출가스 저감, 교통망 확충 등이 담겼다. 비전 달성 목표였던 2020년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는 여전히 인천시가 풀어나가야 할 난제들이다.지속성도 중요한 과제다. 전임 민선 6기 때도 미래발전 전략은 있었다. 당시 인천시의 미래발전 전략은 유정복 시장이 강조한 '인천 가치재창조'였다. 임기 중반인 2016년 1월 '미래발전을 위한 가치 재창조 비전 선포식'을 갖고 4개 분야 47개 과제를 발표했다. 당시에도 해안철책 제거, 백령공항 유치, 섬 활성화 등 현안 사업이 담겼다. 하지만 민선 6기가 그린 미래 비전은 박남춘 시장의 민선 7기 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취를 감추거나 일부 이름을 바꿔 추진되고 있다.이처럼 미래비전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고, 민선 시장이라는 한계 때문에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사업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시 정권이 바뀌면 전임 시장의 핵심 사업이라는 이유로 예산이 삭감되거나 사업 방향이 틀어진다.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하는 공무원은 그대로인데 말이다.인천시는 올해 11개 분야별 발표를 시작으로 매년 초 업무토론회를 거쳐 미래비전을 업데이트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미래비전이 선거 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3년 짜리 단기 이벤트가 되지 않으려면 실현 가능성과 지속성을 위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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