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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않는 박애·봉사… '의사 이길여' 공익경영 태동기 복원

김명호
김명호 기자 boq79@kyeongin.com
입력 2016-06-13 23:16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개관

도서지역 무료진료후 이장으로부터 감사장받는모습
섬 지역 무료검진 후 마을 이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는 이길여 회장과 개원 초기 이길여 산부인과 모습(사진 왼쪽부터). /가천길재단 제공

의료 불모지였던 인천에 1958년 '산부인과' 개원… 지역여성환자의 '희망 등불'
동인천길병원 건물 개조 1960년대 진료 수술실·안내창구·의료장비 등 '오롯이'
보증금 없는 병원·바퀴 달린 의자 '길병원의 정신' 상징… 초음파 기기도 명물
학생들에게 의료 역사 교육기회 제공하고 부모세대는 추억 선물 '소통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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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꿈은 '외진 데', '낮은 데'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1958년 인천 중구 용동. 지금의 동인천역 인근에 문을 연 '이길여 산부인과'는 아픈 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자 했던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공익경영이 초석을 다진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의료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인천에 문을 연 이길여 산부인과는 돈 없고, 여자라는 이유로 병원 한번 가보지 못하고 죽어가던 지역 여성 환자들의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인천 의료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이길여 산부인과가 1950~60년대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13일 개관한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가천대 부속 동인천 길병원 건물 일부를 개조해 만들었다. 현재 동인천 길병원 자리가 바로 이길여 산부인과가 처음 문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진료실, 초음파장비 등 의료 시설은 물론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의 절절한 사연, 박애와 봉사 정신으로 환자를 품었던 의사 이길여의 따뜻한 정신까지 고스란히 재현됐다.

자궁암무료검진 01
현재까지 길병원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자궁암 무료검진. /가천길재단 제공

# 복원된 이길여 산부인과, 공익경영의 초석

기념관 1층에는 접수대, 대기실, 진료실이 2층에는 분만 대기실, 수술실, 병실이 꾸며졌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보증금 없는 병원' 간판과 인천 최초의 초음파기기, '바퀴를 붙인 의자', 당시의 의료 장비 등에 담긴 의사 이길여의 환자 사랑과 그 시대 서민들의 애틋한 사연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3층에는 국내 최고 공익재단으로 성장한 가천길재단의 현재 모습을 비롯해 왕진 가방 등 소품도 전시했다. 포토존과 함께 '마르지 않는 아름다운 샘'을 의미하는 이길여 회장의 호인 '가천(嘉泉)'의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이길여 산부인과가 모태가 돼 성장한 가천대 길병원은 현재 1천400병상의 국내 굴지의 대형병원으로 성장했으며 국내 'TOP3'의 연구중심병원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2012년 출범한 가천대학교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명문대학으로 발전 중이다.

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안내창구
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안내창구와 보증금없는병원 현판.(사진 왼쪽부터) /가천길재단 제공

# 보증금 없는 병원과 바퀴 달린 의자

기념관 입구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보증금 없는 병원' 간판이 걸렸다. 1977년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가 생기기 전까지 병원들은 환자들에게 입원 보증금을 받았다.

진료비를 내지 못하는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길여 회장은 전국에 있는 병원 중 유일하게 환자들에게 보증금을 받지 않았다. 접수대 앞에서 쩔쩔매는 환자나 행색이 초라한 환자가 보이면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가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기념관 1층 대기실에는 쌀가마니, 배추, 고구마, 옥수수, 생선 등을 가지고 온 환자들의 정감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진료비를 내지 못한 환자들이 보답으로 놓고 간 농산물이 병원 마당에 쌓이곤 했다.

1층 가장 안쪽은 진료실로 복원됐다. 보증금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에 환자들은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병원 밖에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

겨울이면 추위에 덜덜 떨며 기다리던 환자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나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이 회장은 3개의 진찰대를 나란히 설치하고 의자에 바퀴를 달아 진찰대 사이를 오가며 번갈아 치료했다.

지금은 아주 흔한 바퀴 달린 의자를 당시에는 구할 수 없어 작은 바퀴를 사다가 의자에 직접 붙였다고 한다. 바퀴 붙인 의자는 길병원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바퀴의자
길병원 정신을 대변하는 바퀴의자와 이길여 회장이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니던 청진기, 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소품 왕진가방. (시계방향)

# '가슴에 품은 청진기', 배려와 사랑

1층 진찰실로 복원된 곳에는 이길여 회장이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니던 '청진기'가 전시돼 있다. 청진기의 차가운 촉감 때문에 진료받는 환자가 놀라지 않도록 늘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체온으로 덥혔다.

이 청진기는 이길여 회장의 환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대변하는 마음의 상징물이다.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고자 했던 의사 이길여의 인술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당시의 수술실과 분만 대기실, 입원실이 복원돼 있다. 의료수준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지금은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1950~60년대만 해도 집에서 지푸라기를 깔아놓고 아이를 낳는 산모도 많았고, 병원 시설도 열악했다.

평생 처음 병원에 온 환자가 수두룩했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수술 도구 하나, 수술대 하나까지도 직접 환자 입장에서 누워보며 챙겼다.

기념관 2층에는 산모의 감격에 찬 얼굴, 입원해 회복 중인 산모와 그들을 보살피는 의사 이길여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체온을 느끼려 환자를 꼭 안아서 일으키는 의사 이길여의 정성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길여산부인과는 미역국이 맛있기로도 소문이 나 있었다. 병원에서 먹었던 미역국 맛을 잊지 못해 퇴원 후에도 냄비를 들고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도 있었다고 한다.

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수술실
수술실.(밀랍 인형) /가천길재단 제공

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입원실
사진 왼쪽부터 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입원실과 분만대기실. /가천길재단 제공

# 인천 최초의 초음파 기기와 엘리베이터

진료실 한쪽에 놓인 태아 심장 박동을 들려주는 초음파기기는 '인천지역 명물'이었다. 미국 유학 후 이길여 회장은 선진 의료시스템을 고국의 환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 '태아 심박' 초음파기기 4대가 도입됐을 때 그중 한 대를 들여왔다.

당시 4천만원(현재 7억원 상당)에 달하는 고가 장비였지만 초음파는 태아의 건강상태를 가족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기였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초음파 기기로 아기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면 산모와 가족은 물론, 기다리던 환자들 모두가 박수 치며 좋아했다.

이길여 산부인과에는 인천 병원 가운데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는데, 엘리베이터를 보려고 일부러 병원에 오는 구경꾼도 있었다고 한다.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역사, 의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부모 세대에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소통의 공간이자 의사 이길여의 인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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