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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용 교구 등을 생산하는 주식회사 파티오의 김태균 대표(사진 가운데)와 우종문 이사(오른쪽), 컨설팅을 지원한 김면복 한국소호진흥협회 인천지회장이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
김태균 대표, 미얀마 공장 한때 '잘나가던 사장님'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 맞아 한순간에 빈털터리
주유소 알바 등 전전할 때 가족 위로가 '재기 발판'
대상포진 꼼짝못하던 장모 모습에 사업 아이디어
90% 수입 의존하던 치매예방 교구에 '새로운 바람'
"정부서 받은 돈으로 사업… 일자리 많이 만들겠다""나는 참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업에 실패한 그에게 가족의 위로와 격려는 재기의 발판이 됐다. 특히 방황하던 그에게 창업을 권유한 아내는 인생 2막을 열어준 장본인이다.
한창 어려울 때 대리운전 일을 하면서 우연히 손님으로 만난 30여 년 경력의 목재 가공 전문가는 회사의 제품 개발 등을 담당하는 이사로 재직 중이다. 시제품까지 거의 다 만들어 놓고도 사업 방향을 잡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는 인천에서 활동하는 컨설팅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투자까지 이끌어냈다.
지난 10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구산동에 있는 한국폴리텍Ⅱ대학의 한 사무실. 사연의 주인공인 주식회사 파티오의 김태균(51) 대표가 재기를 꿈꾸는 곳이자, 인생 2막을 여는 공간이다. 파티오는 치매 예방 등을 위한 노인용 교구(校具)를 생산하는 기업(문의 : 032-519-7799)이다.
"우리나라도 곧 초고령사회로 진입합니다. 하지만 실버산업이 외국과 비교해 많이 뒤처져 있어요. 혹시 이런 교구 제품의 90%가 수입품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무실 한쪽 벽면을 채운 각종 제품이 눈길을 끌었다. 총 25개의 블록을 쌓아놓은 큐브 게임용 교구(2~6명이 작은 막대로 블록을 무너뜨리지 않고 하나씩 빼내는 게임으로 공이 달린 맨 위의 블록이 떨어지면 게임에서 지는 방식)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보기에는 단순해도 곳곳에 과학의 원리들이 숨어있다고 한다.
블록은 건강에 좋은 편백 나무를 썼다. 블록의 크기도 인체공학적으로 노인들이 손에 쥐기 딱 좋도록 했다. 블록에 칠한 초록, 빨간색 페인트는 친환경 제품이다. 이 색으로 정한 이유는 노인들이 식별하기 좋은 색이어서다.
김 대표는 "전체 디자인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빈컴퍼니'의 김빈 대표가 바쁜 일정에도 실버산업이 발전한 일본을 오가면서 직접 도맡아 한 것이고, 제품 개발 과정에서는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이 자문해줬다"며 "뒤늦은 나이에 창업하고 제품을 내놓는 데까지 여러 지인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복지관이나 요양원을 가보시면 아실 겁니다. 어르신들이 소일거리가 없어 온종일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십니다. 고작 일주일에 한두 번씩 노래교실이 열리는 것뿐이죠. 이런 교구들이 어르신들의 놀잇거리가 되고 치매 예방에도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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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대표가 '브레인 게임세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파티오에서 만든 치매 예방용 교구의 시연 장면. /파티오 제공·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
인천 토박이인 김 대표는 미얀마 현지에 공장을 운영하며 고급 원목 마루용 자재를 가공해 한국, 태국, 인도, 싱가포르 등지로 수출했다. 소위 잘나가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현지 종업원만 해도 3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리먼브러더스 부도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 2009년 부도를 맞는다.
김 대표는 "달러가 치솟자 바이어가 대금을 주지 않고 잠적해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이후 국내로 돌아와 3년간 대리운전,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을 시작했고, 살림하던 아내도 일을 다녔다"고 말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데 알아보라"는 아내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는 "대상포진으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던 장모의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며 "미얀마에서 사업할 때 국내 아동의류 회사의 주문을 받고 어린이 교구를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고 했다.
김 대표는 무작정 실버산업이 발전했다는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다.
김 대표는 2013년 충남경제진흥원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회사를 차렸다. 이어 순천향대 창업선도대학의 사업과제(2014년)와 기술보증기금의 벤처기업(2016년) 등에 잇따라 선정됐다. 또 한국폴리텍Ⅱ대학 사무실에 입주할 기회도 얻었다.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선 남서울대와 백석대 등 노인복지 분야 교수들이 자문해주며 도움을 줬다. 올 들어서는 자금, 판매처 확보 등에 대해 방향을 못 잡아 어려움을 겪을 때 인천의 한 컨설팅 전문가의 지원을 받고 투자처를 연결받기도 했다.
"저는 정부에서 준 돈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그 돈은 국민들이 낸 세금이죠. 그러니 저는 국민들에게 빚을 진 겁니다. 대리운전 일을 하며 밤 새벽에 뛰어다닐 때 '이렇게 일자리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업하면 소외된 약자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로 다짐했죠. 그 다짐을 꼭 지키겠습니다."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