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수요광장]금석지감으로 바라보는 '민촌문학제'

유성호 발행일 2018-06-06 제18면

해방후 곧바로 북으로 간 '이기영'
최근 그를 기념하는 행사 잇따라
월북작가라고 금기됐던 '민촌문학'
그의 고향 천안에서 새삼 관심 받아
냉전체제 황혼기로 바라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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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최근 급변해가는 남북관계는 그동안의 분단체제가 남북 양쪽을 모두 피해자로 만들었으며, 우리 역사를 불구의 것으로 몰아왔다는 사실을 잘 시사해준다. 그 점에서 지금 한반도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화와 상생 지향의 움직임은 우리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는 70여 년 동안 누적해왔던 서로에 대한 적의(敵意)를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역사적 지평을 열어갈 것을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해방과 전쟁을 전후하여 북으로 가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던 이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물론 그들의 선택은 이념적인 것일 수도, 인맥에 관련된 것일 수도, 그저 고향을 찾아간 것일 수도, 불가피한 폭력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들 역시 분단의 피해자라는 것, 그들의 작품이 그 피해 양상의 극점을 증언하고 있고 우리 근대사의 첨예한 반영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일 터이다. 1988년 납월북작가 해금 이후 행해졌던 홍명희, 정지용, 이태준, 김기림, 임화, 김남천, 박태원, 백석, 이용악, 오장환 등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수용의 과정은 그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우리가 민촌(民村) 이기영(李箕永·1895~1984)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가 한국 근대사의 사상적, 이념적 궤적을 체현한 대표 작가의 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는 프로문학 최고의 작가였으며 식민지 시대 농민소설의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준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그는 철저히 현장의 구체성을 작품 속에 담아냈고, 인물들도 생생한 구체성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든 탁월한 작가였다. 그는 최고 농민소설로 일컬어지는 '고향'에서 식민지 체제를 비판하면서 소작농, 마름, 지식인, 노동자 등의 역동적 관계망을 통해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귀농인이며 지식인인 김희준의 형상은 그의 사상과 미학을 통합시키는 문제적 인물이었다. 그의 창작 궤적은『서화』(1933), '고향', '신개지'(1938), '봄'(1940) 등의 농민소설뿐만 아니라 '종이 뜨는 사람들'(1930) 같은 현장 중심의 노동소설, '인간수업'(1936) 같은 지식인소설 등으로 확장되어감으로써, 그의 작가로서의 폭넓은 관심을 잘 보여주었다. 이 작품들은 당대 민초들의 경험적 진실성과 근대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전망을 동시에 담아냄으로써 민족사의 과제라고 여겼던 민족과 계급 문제를 통합적 시선으로 암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일찌감치 북으로 간 이기영은 대하소설 '두만강'으로 인민상을 수상했고, 1984년 8월 9일 90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비교적 유복한 천수를 누리다가 작고 후에는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그가 북쪽에서 쓴 중요한 작품은 '땅'과 '두만강'인데, '땅'(1948)에서는 식민지 자본주의 현실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다루었고, '두만강'(1954)에서는 20세기 초부터 해방 때까지 벌어진 민족해방 투쟁의 양상을 그려내기도 하였다. 이 작품들 역시 민촌 소설의 특징이었던 생활의 구체성과 활달한 인물상의 재현이 고스란히 약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성취라 할 것이다.

최근 이기영을 기념하는 행사가 충남 천안에서 학생 주도로 열렸다고 한다. 지난 5월 26일에 복자여고, 북일고, 천안고 학생 연합 모임이 북일고에서 천안 출신의 이기영을 기념하는 '제1회 민촌문학제'를 개최했는데, 이날 고등학생들의 이색적인 문학제는 백일장, 발표, 특강 순으로 모두 160여 명이 참여하여 진행되었다고 한다. 근자에는 단편 '민촌'의 무대가 된 천안 지역 문인들을 중심으로 민촌에 대한 추모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고 하는데, 분단체제 내내 월북작가라는 금기 안에 유폐되었던 민촌 문학이 그의 고향에서 이렇게 새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우리로서는 다시금 냉전 체제의 황혼기를 금석지감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불어 분단의 뿌연 장막 때문에 가려졌던 우리 근대문학의 여러 모습이 더욱 활발하게 연구되고 수용되어가기를 마음 깊이 바라게 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