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인칼럼]분노 조절장애 사회

이한구 발행일 2018-06-13 제23면

개개인의 인성이나 공동체 질서 붕괴로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결정적 요인인듯
공자 가라사대 "세상의 모든 길흉화복은
자신에게 달려있고 모든 일은 결국 내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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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내 탓이오!" 90년대 초에 천주교계에서 벌인 사회운동의 슬로건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의 티코 승용차 뒷 유리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붙인 것을 계기로 천주교 평신도협의회가 캠페인을 전개해서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불법 끼어들기와 신호위반 등이 비일비재하고, 운전자들이 백주대로에서 멱살잡이하는 등의 목불인견들이 빈번히 목격되던 시기였다. 추기경님의 점잖은 훈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며 한동안 회자되었다.

근래 들어 주말 오후의 서울 도심 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과 문재인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들로 몸살을 앓는다. 작년 초부터 거의 한주도 거르지 않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보무도 당당하게(?) 대로를 누비는 것이다. 서울에서만 태극기집회 개최횟수가 70회에 육박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주말 저녁마다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소시민들이 박근혜정부를 강판시키더니 이번에는 보수단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의 아크로폴리스광장은 '네 탓'을 연호하는 무리들로 만원사례여서 외국인 방문객들은 의아하다.

요즘의 우리네 인심은 각박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나 지하철 내에서 눈길이라도 잘못 주었다간 낭패 당하기 일쑤인 것이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모 그룹 회장 사모님의 패악질 유튜브 영상은 압권이었다. 이혼건수가 3쌍 중 1쌍으로 세계제일의 이혼대국인 스웨덴에 버금간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인 세태이니.

자신의 잘못이 명백함에도 나라님 탓으로 돌리는 석기시대의 관습도 부지기수이다. 여의도 국회 앞이 365일 소란한 이유이다. 오죽했으면 참여정부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짓도 못 해먹겠다"며 푸념해댔을까. 대한민국은 이미 '네 탓'공화국이 되었다. 또한 5천만 국민 전체가 집단 분노조절장애란 중병에 걸린 듯하다. 일찍이 존 S. 밀이 '불만족한 소크라테스'를 지지했지만 작금의 국내 상황은 지나치다는 인상이다.

유엔 지속가능개발연대(SDSN)는 2012년부터 매년 3월 20일에는 세계 150여 국가의 행복지수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물리적 지표들에 근거해서 작성한 행복지수가 얼마나 실제상황을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나 잘 사는 나라, 정부가 투명하고 관용이 지배하는 나라, 평균수명이 긴 나라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복지천국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항상 최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순위는 첫해인 2012년에 156국 중 56위를 기록했었는데 금년에는 57위로 별 변화가 없다. '동양의 북유럽'이라 불리는 일본의 행복지수 순위도 한국과 '도토리 키 재기'이다.

만연한 '네 탓'현상은 사회불안의 주요 변수이나 한국의 행복지수와는 상관관계가 없는 듯하다. 개개인의 인성이나 혹은 공동체질서 붕괴, 짧은 민주주의 역사 등에 눈길이 가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결정적 요인으로 판단된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금수저 타령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절정을 이룬다. 아시아 선진국 중 한국의 부패지수가 가장 높다는 홍콩 정치사회리스크컨설턴시(PERC)의 설문결과는 점입가경이다.

'국풍(國風)81'이 떠올려진다.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전두환 정부가 민족문화의 계승과 대학생들의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를 명분으로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치른 문화축제이다. 전국 194개 대학의 6천여 명의 학생들과 전통 민속인 및 연예인 등이 참여해 총 659회의 공연을 벌였는데 주최 측에서는 연인원 1천만 명이 참여했단다. 가요제가 특히 인기를 끌었는데 '잊혀진 계절'의 이용과 '불놀이야'의 홍서범이 이때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허문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기를 앞두고 군사정권에 대한 학원가의 저항을 약화시킬 목적 때문이었으나 집단지성을 현혹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자 가라사대 "세상의 모든 길흉화복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모든 일은 결국 내 탓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