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기도지사 당선자 이재명 그는 누구인가]'흙수저' 소년공, 인권변호사 거쳐 '1300만 도정 책임자'로

강기정·신지영 발행일 2018-06-14 제4면


중학교 대신 공장行 팔 다쳐 검정고시 매진
중앙대 법대 4년 장학생 졸업 사법시험 통과
1986년 경인일보 인터뷰 "억울한자 도울것"

민변활동중 성남시의료원 계기 정치인 변모
2010년 시장 당선 무상복지·SNS소통 화제
재선 성공 전국구 발돋움 대선 경선 참여도
스캔들 의혹등 악재딛고 35대 도지사 확정


성남시의 한 소년공이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를 거쳐 100만 성남시정의 중심이 됐다. 2018년 6월 13일, 성남시를 품고 있는 1천300만 경기도정의 총책임자로 확정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의 얘기다.

01. 어린 시절
이재명 당선자의 어린시절 모습. /경인일보DB·이재명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가난했던 소년공,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가 되기까지


이재명 당선자는 '가난'을 몸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이른바 '흙수저'로 자라난 배경은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억강부약'(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이란 정치 철학의 바탕이 됐다.

1963년(호적상 1964년생)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5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성남 상대원동으로 상경한다.

그의 유년 시절은 '소년공'이란 단어로 축약된다. 이때 아버지는 상대원 시장 청소부, 어머니와 여동생은 시장 화장실에서 이용료를 받고, 본인은 공장에 취직하는 어려운 생활이 시작된다.

어린 나이로 정상적인 취직이 불가능했던 이재명 당선자는 다른 이의 신분을 빌려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공장 생활에서 발생한 사고로 그의 손가락에는 고무조각이 박혀 있고, 프레스기에 팔이 눌려 '차렷자세'를 취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이때 얻은 장애로 병역이 면제됐다. 치료받지 못해 멋대로 비틀어진 팔을 숨기려 사계절 내내 긴 소매만을 고집했던 소년 이재명은, 오히려 통증으로 공장일을 할 수 없게 된 그 기간 동안 검정고시 공부에 매진한다.

생계를 위해 아버지가 폐지와 고물을 주워다 팔던 그 시절, 이재명 당선자는 이렇게 썼다. "아버지가 지금 회화용 record 1개 주워 오셨다. 쓰레기 장사 하니까"(1980년 1월 24일 일기 중)

이재명 당선자가 중앙대학교 입학식에서 어머니와 찍은 사진. /경인일보DB·이재명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1년 3개월 만에 중고등 검정고시와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그에게, 전두환 정권이 단행한 교육개혁조치가 기회로 다가왔다. 입시를 불과 몇 달 앞두고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학력고사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과외가 금지되면서 장학금 제도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을 얻은 이재명 당선자는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는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한다. 법대 4년을 장학생으로 졸업한 이재명 당선자는 1986년 28회 사법시험을 통과한다.

1986년 11월 3일 경인일보 기사에는 합격의 부푼 꿈을 안고 더 나은 세상을 바랐던 청년 이재명의 포부가 담겨 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앞으로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는 이재명 당선자를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3세 때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한 李씨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밤잠을 미뤄 가며 공부, 78년과 80년에 중학교와 고교졸업자격 검정고시에 각각 합격했다. 중앙대 법대 재학 때에도 4년 동안 줄곧 장학생으로 지낸 李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올해 첫 도전에 영광을 안았다'고 썼다.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에서 노동 운동에 얽힌 시국사건이나 인권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활동을 했다.

20. 시민운동 (정자백궁지구 부당용도변경 사건)
시민운동 중인 이재명 당선자. /경인일보DB·이재명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지역 토착 비리 등을 파헤치며 왕성히 활동하던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시의료원 설립 문제를 다루며 정치인으로 변모한다.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병원이 문을 닫으며 공공의료원 설립 요구가 높아지자, 이재명 당선자는 시민 2만 명의 동의를 얻어 공공의료원 설립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해당 조례가 시의회로부터 날치기를 당하면서, 이재명 당선자는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재명 당선자의 첫 도전은 실패였다. 2006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성남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고, 이어 펼쳐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전했으나 연이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두 차례의 실패에도 낙담하지 않았던 그는,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드디어 첫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10. 사법고시 합격 인터뷰 (경인일보 86년 11월 3일자)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재명 당선자를 인터뷰한 경인일보 지면(1986년 11월 3일자 5면 보도). /경인일보DB·이재명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성남시장, 경기도지사가 되다…'시민이 행복한 성남', '경기 퍼스트'로


"우리는 변화의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변화의 원동력은 시민 여러분입니다."

2010년 7월 성남시장에 취임한 이재명 당선자는 취임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새로운 성남을 향한 발걸음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면 쉬었다 가더라도 서로의 어깨를 보듬고 한 걸음 한 걸음 웃으며 나아가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시민이 주인되는 성남, 시민이 행복한 시정, 기회가 균등한 성남을 함께 만들자"고 강조한 그는 '호화' 논란을 빚던 전직 시장의 집무실을 북카페로 내놓은 후, 한층 좁은 공간으로 시장실을 옮기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시장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재명 당선자는 재정난으로 LH·국토부 등에 내야 할 판교신도시 조성사업비 5천200억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는 국토부와의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취임 직후부터 전국적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그는 여느 단체장과는 차별되는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SNS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거리낌 없이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시장실에는 "돈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CCTV마저 설치했다. 특히 각종 복지정책에 중점을 뒀다.

31. 문재인 대통령과 성남시장실 (2018)
문재인 대통령과 성남시장실에서. /경인일보DB·이재명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취임 직후부터 성남시립의료원 강화에 나섰고, 올해 경기도에 도입된 무상교복을 2011년부터 추진했었다. 시행이 가로막히면 시의회·정부와 각을 세우거나 소송도 불사했다.

'성남시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무상교복·산후조리지원)'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복지 예산은 정부의 동의를 받지 못했지만 이재명 당선자는 편성, 시행을 밀어붙였고 경기도는 이를 대법원에 제소했다.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이재명 당선자는 차츰 전국적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날을 세우며 '사이다'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재명 당선자는 정부를 비판하며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고, 2016년 정부가 성남 등 불교부단체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방재정개편안을 추진하자 11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해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발언 등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촛불혁명 당시엔 맨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탄핵 정국 속 지지층도 한층 두터워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7년 초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다. 당시 문재인 현 대통령,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3위를 기록했지만 차기 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15. 아내(김혜경)와 큰 아들
이재명 당선자와 부인 김혜경 여사 그리고 큰 아들의 어릴적 모습. /경인일보DB·이재명 당선자 선거사무소 제공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에 부인 김혜경 여사와 출연한 점도 그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 '독설가'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고 '친근한 이웃'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 나온다.

대선 이후 전국 정치인으로 거듭난 이재명 당선자의 행보에 많은 시선이 쏠렸다. 차기 서울시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경기도지사 선거를 택했다. 16년 동안 보수진영에서 계속 도지사가 나왔던 점을 거론하며 이재명 당선자는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이 경기도지사를 탈환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2017년 하반기부터는 남경필 도지사와의 공방도 잦아졌다. '성남시 3대 무상복지'의 대법원 제소 취하 문제, 버스 준공영제 시행 문제 등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치열했던 민주당 도지사 후보 경선을 거쳐 이재명 당선자는 도지사 본선행 열차에 올랐고, '여배우 스캔들 의혹' 등 각종 악재 속에서도 남경필 현 도지사를 꺾고 35대 도지사로 확정됐다.

8년 전 성남시장 취임 당시 밝혔던 것처럼 이재명 당선자는 "서울의 변방이 아닌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으로 거듭나게 하겠다. 경기도의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이 도민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경기 퍼스트'를 만들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강기정·신지영기자 kanggj@kyeongin.com

27. 촛불집회 (2016)

■이재명 프로필

-1964년 12월 22일 경상북도 안동 출생

-검정고시·중앙대학교 법학과 졸업

-제28회 사법시험 합격

-전 성남시장(2010~2018)

-전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

-전 민주통합당 기초단체장협의회 의장

-전 국가청렴위원회 성남부패방지신고센터 소장

-전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공동대표·성남참여연대 집행위원장

-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