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풍경이 있는 에세이]걷기 예찬, 영축산 통도사

김인자 발행일 2018-08-10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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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결 고스란히 전하는 고찰서
마음속 평정심 찾아주는 숲 발걸음
두 발로 걷기 멈출땐 내 삶도 정지
감정이입 배제 생명순환 지켜볼뿐
속도·방향 동시 탐하는건 어리석어


에세이 김인자2
김인자 시인·여행가
부산 해운대에서 며칠을 보내고 귀경길에 찾아간 곳이 양산 통도사다. 사찰 분위기는 여전히 차분하고 고즈넉했다. 21세기 최첨단 문명을 누리는 우리에게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전하는 고찰의 무게감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담담하다. 특히 도로에서 사찰로 이어지는 들머리 소나무 숲은 가히 조선소나무의 미적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절로 걸음이 가볍다.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통도사는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 극락보전 등 12개의 법당과 보광전, 감로당 외 6방과 비각, 천왕문, 불이문, 일주문, 범종각 등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두 차례에 걸쳐 재건축하였으며 대광명전을 제외하면 모두 근세의 건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소속암자가 13개나 된다고 하니 사찰의 규모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목탁소리에 묻혀 한나절 경내를 둘러보고 영축산 자락으로 들었다. 비 갠 후라 풀냄새가 진하다. 계절과 더불어 초록이 깊어지니 계곡의 물소리도 깊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장치에 오류가 생겼는지 눈에 보이는 꽃보다 향기로 느끼는 꽃이 더 강하게 각인되는 이유가 뭘까. 본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은 없는 것이라 했지만 꽃이 좋은 건 감출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라 해두겠다. 복잡한 생각들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채 그것이 조금씩 정리되고 그러다 마음의 평정심 즉 무심이 찾아들 때 떠오른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숲에서의 걷기가 아니었던가.

오래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롱라를 넘어 신성의 불국정토 묵디나트에서 바라본 메마른 풍경, 산 하나만 넘으면 있을 불국정토 무스탕과 황량하기 그지없는 오래된 미래 라다크 땅을 어찌 잊으랴. 얼마 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읽으면서 내면의 성찰과 걷기라는 인문학적 연관성을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가.

"당신의 내면으로 가는 문을 다시 열어 보라. 걷는 것은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다. 우리 발에는 뿌리가 없다. 보행은 가없는 넓은 도서관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걷기는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다. 침묵은 어떤 저울의 균형 같은…."

브르통의 인상 깊은 제언은 몸과 내면과 실존과 언어라는 단어를 길항으로 퍽이나 오래 내 정신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정지는 숨이 멎는 순간이 아니라, 두 발로 걷기를 멈추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두 발이 오래 묶여 있었으므로 행여 내 발이 땅을 겁내지 않을까 두렵긴 하나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남았으니 게으름은 거두어야겠다.

수많은 것이 존재하는 지구에 우리가 마음을 나누고 익숙해져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영원에 기댄 자연이라면, 거의 모든 존재감을 영영 알아채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숲에 들 때마다 느끼는 그 작은 변화들에 대한 알아차림도 어쩌면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다만 감정 이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조용히 생명의 순환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힐 뿐.

어려움을 넘어서는 건 쉬운 곳에 닿으려는 열망이라 했다. 외로움을 넘어서려면 외로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지만 감추는 법도 없다. 작아도 부끄럽지 않고 커도 자랑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속도와 방향을 동시에 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수치스럽고 두렵다. 이 실수투성이인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갈망이나 의심이 없는 사람은 퇴보한 사람이라 했다. 나는 누구든 만나고 돌아서는 순간 외롭고 애틋한 게 아니라 헤어지기 직전이 가장 절망적으로 애틋한데 통도사도 그랬다.

통도사 일주문 돌기둥에 새겨진 글이다. 方袍圓頂常要淸規(방포원정상요청규) 異性同居必須和睦(이성동거필수화목)' 삭발염의한 수행자들은 늘 청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서로 성격이 다른 대중이 모여 사는 데는 반드시 화합하고 우애롭게 지내야 한다는 뜻이란다. 그러므로 그대와 나와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인자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