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1)프롤로그]1883년 항구가 열리고… 파도처럼 밀려온 '양악'

김영준 발행일 2018-09-28 제9면


제물포 개항후 첫 서양음악 수용·확산
전통문화 대신 근대 신문물 체화 노력
강점기~1960년대 시향 설립 역사조망
인천의 지리·사회적 의미 들여다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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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공간 속에서, 인위적인 공간 표상을 통해 작용한다.

음악 등 모든 역동적인(Energischen) 예술들은 연속적인 시간에서뿐 아니라 그를 통해, 즉 인위적인 음의 시간적 변화를 통해 작용한다. 시의 본질 역시 이러한 근본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시는 임시적인 기호, '힘(Kraft)'이라 하자. 그렇다면 형이상학에서 공간·시간·힘이 세 개의 근본개념이듯, 또한 수리적인 학문들이 이들 개념 중 어느 하나로 환원되듯이 문예 및 예술이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제작물을 제공하는 예술은 공간 속에서 작용하고, 에네르기를 통한 예술은 연속적인 시간에서 작용하며, 문예 혹은 오히려 유일한 문예인 시는 힘을 통해 작용한다.

-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최초의 비판적인 작은 숲' 중에서

헤르더(J G Herder·1744~1803)는 18세기 독일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문학자, 신학자였다.

평생 음악에 심취했던 인물이기도 한데, 고대 독일 민요를 복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민요집>을 펴내기도 했다.

'민요(Volkslied)'라는 용어를 만든 인물이기도 한 헤르더는 음악을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문화와 교육의 원천 중 하나로 보았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처럼 그는 당대 지식인들의 식견을 훌쩍 뛰어넘는 음악에 대한 혜안을 보여줬다.

헤르더의 사상은 후대 사상가와 작곡가들에 의해 확대 생산됐다. 그중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클래식(Classic)'으로 인정받으며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땅에선 우리(동양) 사상가들과 음악가들에 의한 음악이 고래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1883년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우리는 서양음악(이하 양악)을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 인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큰 소리를 경험했다.

무시무시한 대포 소리와 우렁찬 나팔 소리였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군함을 끌고 와 인천 앞바다에서 대포를 쏘면서 무력시위를 했고, 이에 우리 선조들은 외세에 문호를 개방했다.

근대화 시기 신문물의 도입부로서 역할을 했던 인천은 정치·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요지였다.

금요와이드 인천항(인천권)
인천은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가장 급격히 변한 도시이다. 인천의 급변에는 바다가 큰 역할을 했다. 바닷길은 사람과 물품이 오가는 통로였다. 1883년 제물포 개항은 국제무역항의 기능을 더욱 강화시켰고, 신문물의 도입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인천은 서양음악 수용의 창구 및 한국 근대음악 진원지의 하나로 역할을 하면서 선도적으로 한국 근현대 음악 문화를 개척해 나갔다. /경인일보DB

서구의 새로운 문물은 인천을 통해 수입되고 국내에 확산했다. 그에 따라 근대 시기 인천은 전통문화보다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체화(體化)하는 데 더욱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실례는 미술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신문과 각종 자료에 따르면 1920~19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한 인천 출신 작가는 대다수가 서양화부에 쏠려 있다. 나아가 1920년대라는 이른 시기 인천에 이미 화단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천이 동서양 문물의 최 접경지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경인일보는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인천 근대 양악'을 주제로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20회로 구성될 이번 기획에선 양악의 수용과 일제 치하, 해방, 전쟁 후, 1960년대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설립까지 인천 양악사(史)를 짚어볼 계획이다.

기획 시리즈의 주제는 장소(인천)와 시기(근대), 대상(양악)을 지칭하는 세 단어로 구성됐다. 이번 기획에서 장소(인천)의 범위는 최대한 넓힐 예정이다.

일례로, 음악을 하는 행위는 연주와 감상으로 이뤄진다. 그 때문에 연주와 감상은 불가분의 관계다.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인천에서 공연했다면, 인천시민이 공연장을 찾아 감상했기 때문에 인천 음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천이란 지리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는 '인천에 사는 인천사람들'이 아닌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인들로 구성된 베를린 필하모닉의 인천 연주를 인천 음악으로 규정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모두 포괄할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인천에서 일어난 양악과 관련한 사건과 작품, 인물, 장소 등 규정짓지 않고 들여다볼 계획이다.

모든 도시가 흐르는 시간을 타고 변하지만, 한반도에서 인천만큼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는 드물다.

근대 이후만 놓고 본다면, 개항과 함께 한적한 어촌에 외국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 항만이 건설되고 군사기지가 조성됐다.

철도가 놓였고, 최초의 천일 염전이 만들어졌다.

해방되어선 미군이 들어왔으며, 전쟁 후에는 휴전선이 그어지며 고향을 등진 실향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인천문화재단 CI
급격히 변한 도시의 모습만큼 짧은 국내 양악사 속에서 다채롭게 피어난 음악과 관련 요소들을 다룰 이번 기획을 통해 인천을 새롭게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린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