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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글밭]건축에 빠진 경영학도, 건축책을 쓰다… 나에게 선물하다

권선영 발행일 2018-10-1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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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영 건축작가
공간디자인을 공부한다는 큰 꿈을 품고 파리에 갔으나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학교에 들어가서 일 년 동안 많은 노력을 했으나 일 년이 지난 후 교수님은 나를 부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건축은 너의 길이 아닌 것 같아. 다른 길을 알아보렴." 그렇게 많은 고민과 고심을 통해 결정한 전공이었는데, 내 길이 아니라니… 맑게만 보이던 하늘이 파리의 전형적인 흐린 회색빛 구름이 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일주일 동안 회색빛 파리 하늘만 우울하게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교수가 내 인생을 살아줄 것도 아닌데 내가 굳이 건축을 포기할 필요가 있나? 아무리 유명한 건축가가 나를 보고 건축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나만 좋으면 하면 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난 학교를 다니면서 틀에 박힌 디자인 교육에 짜증이 났었다. 교수님이 코멘트를 해주시면 그대로 해야 했고, 성적 때문에 한 번도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많은 정보를 다 습득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실기 과제 양이 많아서 보통 실기 외 과목인 건축사나 이론을 여유 있게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그건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것이었다. 일 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수많은 건축물들을 이미지로 접했지만 실제로 보러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 학교에서 내가 건축을 할 수 없다고 하면 뭐 어때, 그럼 나 혼자 공부해보지 뭐." 그 날 저녁 내 이야기를 들은 아빠가 말했다. "학교 안 다녀도 돼, 6개월이라는 너 인생에서의 황금 바캉스를 줄게.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그렇게 해서 나는 6개월이라는 기간을 잡고 내가 평소에 보고 싶었던 건축물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은 프랑스건축물 위주로 보러 다니기로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유일하게 점수가 좋았던 건축사시간에 봤던 대표 현대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Le Corbusier)에 건축물부터 보러 가기 시작했다.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것은 우리 가족한테 큰 즐거움이었다. 프랑스에 있는 웬만한 관광지는 다 가본 터라 새로운 여행장소를 물색 중이었는데, 건축여행은 정말 새로운 여행 거리였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내가 짜놓은 건축여행을 함께했다.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가 파리에 지은 메종 라로슈, 빌라사보아를 방문하였고, 빛을 공부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의 스위스 기숙사부터 프랑스 중부 지역에 있는 롱샹 성당까지 갔었다. 재료를 공부하기 위해 유리벽을 이용해서 장누벨(Jean Nouvel)이 지은 께브랑리 박물관, 알루미늄 파사드가 돋보이는 파리 아랍연구소, 나무틀 구조물이 인상적인 메츠 퐁피두센터를 갔었다. 또한 자신만의 건축을 잘 표현한 건물로는 파리 퐁피두 센터, 센 강변에 위치한 초록색 용형태의 레 도츠, 색으로 공간을 분리한 피에르-마리 퀴리 파리 공과대학교 아트리움 그리고 큐브 형태를 이용한 파리 12호선 공사를 찾아갔었다.

건축물 하나하나를 직접 보러 다니는 것은 2차원적인 이미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건축이라는 3차원적 시간 예술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건축재료를 직접 만져볼 수 있었고, 건축물의 웅장함과 형태 그리고 빛의 깊이와 분위기를 느낀다는 것은 마치 사진으로만 짝사랑하는 상대를 보다가 실제로 만나는 느낌과 같았다. 건축답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학교를 다니기 전에 이런 건축물들을 방문하고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면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덜 헤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엄마한테 하니 엄마가 말했다.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해 책을 써보는 거 어때? 건축에 대해 관심은 있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건축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경험한 것처럼 건축은 재미있고 어렵지 않다고 느끼게 해줄 그런 책." 그렇게 해서 그 날부터 파리에 있는 건축도서관에 박혀서 자료조사를 하고 건축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물을 사진으로 찍는 게 더 건축물을 잘 보여주지 않냐는 조언을 많이 해주었는데, 내가 보고 느낀 건축물의 감동을 담아내기에는 사진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감동을 담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느낀 따뜻한 빛, 색감, 형태를 나의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6개월 후, '썬과 함께한 열한 번의 건축수업'이라는 책이 나왔고, 나는 그 책을 파리에서 선생님한테 혼나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집으로 쓸쓸히 돌아가는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괜찮다고.

/권선영 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