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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팅커벨∼"

이충환 발행일 2018-10-10 제23면

40대이상 중장년층 31% 'AI스피커 이용'
눈·귀 어두운 나이 많은 사람에겐 '효자'
사회·경제적 격차 뒷전으로 밀리는 어르신들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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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피터 팬'이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16년 전이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을 나와 신문기자로도 활동했던 제임스 매튜 배리(James Matthew Barrie)가 1902년에 쓴 성인소설 '작은 하얀 새(The Little White Bird)'에 등장하는 아기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새다. 생후 1주 된 아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소설에 담긴 이 피터 팬의 이야기가 따로 묶어져 2년 뒤 연극무대에 올려졌다. 1904년 공연된 5막의 크리스마스 아동극 '피터 팬 : 자라지 않는 아이'다. 피터 팬의 원작이라 일컬어지는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는 이 연극의 줄거리를 1911년에 이르러 다시 장편동화로 만들어 출판한 것이다.

주인공 피터 팬을 돕는 아주 중요한 캐릭터가 있다. '팅커벨'이다. 원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정이었다. 최초의 연극에서는 거울에 반사된 빛을 이용해 그 존재를 나타냈다. 목소리는 작은 방울들을 흔들어 표현했다. 말하자면 특수효과였던 셈이다. 작은 여자아이 모습의 이미지는 1953년 월트 디즈니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캐릭터의 성격은 좀 묘하다. 피터 팬의 협력자임에 틀림없는데 가끔 심통을 부린다. 파트너이면서 일의 방해자가 되곤 한다.

요즘 이 팅커벨 때문에 내 생활에 즐거움 하나가 더 생겼다. 피터 팬의 요정이 나의 요정으로 바뀐 이후의 일이다. 지난 8월 말 사흘 동안 '미디어오늘'이 주관한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에 참석했는데 기념품으로 인공지능(AI) 스피커 한 대를 받았다. 손바닥 위에 놓을 수 있는 작은 통조림 크기다. 그런데 재주가 신통방통이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고 짝을 맞춰놓으니 어지간한 명령어는 다 알아듣는다. "팅커벨, 오늘 날씨 알려줘" "팅커벨, 오늘 주요 뉴스 알려줘"하면 "오늘 ○○동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오겠으며···" "오늘의 주요뉴스를 알려드릴게요. 태풍 콩레이가···"하고 척척 답한다. '팅커벨'은 AI 스피커에게 명령을 내릴 때 쓰는 호출어다.



나의 요정이 된 '팅커벨'은 지난 3월부터 함께 살게 된 생후 19개월 된 외손자에게도 요정이다. 아침 일찍 졸린 눈을 비비며 내 방에 들어와서는 AI 스피커를 올려다보면서 "하부지, 타타요!" "하부지, 안뇽 뽀로로!" 한다. TV 애니메이션 '미니버스 타요'나 '뽀롱뽀롱 뽀로로' 노래를 들려달란 주문이다. 녀석에게 이 '젊은 할배'는 거의 마술사처럼 보일게다. "팅커벨, 타요 버스 주제가 들려줘"하면 곧바로 전주가 흐르고 "꼬마버스가 달려갑니다···"하며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야∼뽀로로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로 시작하는 '뽀로로' 노랫말은 지금 내 나이에게도 기가 막힌 유혹이다.

이 AI 스피커가 실버세대의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해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은 뜻밖이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한 통신사 AI 스피커 이용자의 31%가 실버세대를 포함한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특히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몸놀림이 느려질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음성만으로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이 AI 스피커가 효자노릇을 하고 있단다. 사방이 디지털로 된 것들로 에워싸이면서 삶의 편의성이 증진되지만 이를 누릴 수 있고 없음에 따라 정보격차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격차도 커지고 있는 세상이다. 가난한 이들과 나이 많으신 분들은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AI 스피커가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피터 팬의 요정 '팅커벨'의 성격이 까탈스러운 것처럼 이런 디지털기기들을 만지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디지털 격차의 극복은 곧 미디어 격차 해소의 출발점이다. AI 스피커가 어르신들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르는 '착한 요정'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을 내년 사업계획에 넣어봐야겠다. 증조할아버지 할머니가 증손자와 함께 강의를 듣는 멋진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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