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기)

[이슈&스토리]'역사편찬원 설립' 학계·시민사회 한목소리

김민재 발행일 2018-10-19 제12면

좁은 어항 벗어나 독립 꿈꾸는 '인천의 史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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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해방 이후 '인천 市史' 단행본 꾸준… 2001년부터 '역사자료관' 운영
별도기구 아닌 문화재과 소속 '한계' 국·시장 지시 받는 종속적 관계
연속성 상실·홍보용 전락등 문제의식 느껴 서울서도 연구행정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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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역사 편찬과 사료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역사편찬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최근 인천지역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

역사 편찬을 단순히 애향심 고착과 시 정부의 홍보의 수단으로 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남겨줄 하나의 기록 유산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역사편찬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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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역사자료관.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인천시사편찬의 역사


한국전쟁 이후부터 인천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인천부사'(1933년)가 아닌 인천 사람들이 만든 인천 역사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1956년 당시 김정렬 시장은 향토사 편찬 작업에 착수해 지역 향토사학자인 고일과 김인규, 이종우 등에게 자료 수집과 편찬 업무를 맡겼다. 그러나 작업 도중 이종우가 타계하면서 흐지부지됐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강옥엽 전문위원이 정리한 시사 편찬 연혁을 살펴보면 '인천시사편찬위원회'가 정식 발족한 시기는 1965년이다.

당시 윤갑노 시장이 고일, 최정삼, 한상억을 시사편찬위 상임위원으로 위촉하고, 시사 발간을 책임지게 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73년 9월 30일 총 12편 70장으로 구성된 '인천시사(상·하)'가 세상에 나왔다.

시사는 고대부터 해방 후 25년까지의 역사를 다룬 500쪽 분량의 '향토사'편을 비롯해 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 백서 형태로 구성됐다.

이어 1982년에는 첫번째 인천시사를 보완하는 형식의 '인천시사(70년대편)'가 추가 발간됐고, 1993년 3번째 '인천시사(상·중·하)'가 나왔다.

1995년 인천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옹진군과 강화군이 인천에 편입돼 인천시사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인천시는 2002년 '인천광역시사'를 발간했고, CD-ROM으로도 처음 제작해 컴퓨터로 원하는 대목만 쉽게 검색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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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자료관 내부 전시.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2002년 인천광역시사 발간 과정에서 인천시 역사편찬 업무에 큰 변화가 생긴다. 2000년 6월 시사편찬에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전문위원 2명을 뽑았고, 2001년 10월 중구 송월동 인천시장 공관을 개조해 '역사자료관'을 설립했다.

자유공원(응봉산) 기슭에 자리한 역사자료관은 개항 후 일본인 사업가의 자택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이후에 서구식 레스토랑과 사교장으로 사용된 건축물이다.

1965년 인천시가 시장 공관으로 활용하려고 매입했고, 2001년 최기선 인천시장을 끝으로 모두 17명의 시장이 거쳤다.

2명의 전문위원이 시사편찬 업무를 전담하면서 역사자료관 운영까지 함께 맡았다.

역사자료관은 이때부터 분야별, 시대별 역사를 다룬 '인천역사문화총서' 시리즈를 발간해 80여 권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2013년에는 '인천'이라는 이름을 얻는지 600년 되는 해를 기념한 '인천광역시사-미추홀 2000년 인천 정명 600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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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역사편찬원 설립방안 토론회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시사 편찬의 독립성 문제

인천시 역사 편찬 업무는 1975년 제정된 관련 조례를 근거로 운영되고 있다. 위원장은 당연직으로 인천시장이 되고 2명의 부위원장 중 한 자리도 행정부시장이 맡는다.

25명 이내로 구성하는 시사편찬 위원은 시장이 임명·위촉하도록 돼 있다. 인천시 입김에 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향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천시 역사편찬 독립성과 관련해서는 과거부터 안팎으로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역사'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기 보다는 인천시의 발전상이나 미래 비전을 담아내는 백서 형태의 모습은 인천시사가 홍보용으로 전락했다는 따가운 비판도 받아왔다.

인천시 역사 연구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자료 축적에 대한 미흡도 문제점으로 대두되어왔다. 2001년 역사자료관의 설립과 전문위원 채용으로 이러한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됐으나 독립성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역사자료관은 얼핏 별도의 기구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천시 문화재과 소속이다. 역사자료관을 운영하는 2명의 전문위원도 문화재과 소속 임기제 공무원 신분이라 담당 과장, 국장과 시장의 지시를 받는 종속적인 관계에 묶여 있다.

서울시도 일찍이 이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2015년 1월 서울시사편찬위원회를 서울시 산하의 사업소(서울역사편찬원)로 개편했다.

1927년 구성된 경성부사편찬위원회를 모태로 하는 서울시사편찬위원회는 이미 1990년부터 위원장을 시장에서 민간으로 전환해 일부 독립성을 갖췄다.

그럼에도 역사 편찬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가 이어지자 서울시는 2015년 1월 서울역사편찬원을 설립했다.

서울역사편찬원이 설립된 이후 서울시 역사 편찬 행정은 확 달라졌다. 기존에는 모든 업무의 결재권자가 일반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모든 업무가 행정 관점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조직이 만들어진 이후 전문적인 기획과 연구가 역사 연구가의 입장에서 가능해졌다. 시정 논리에 따라 사업이 축소되거나 부풀려지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역사 편찬 업무가 가능해졌다고 서울역사편찬원 측을 설명한다.

조직의 확대로 5~6명의 연구원이 전담하던 시사편찬 업무를 20여 명이 맡아 하게 되면서 매년 7~8권 발간하던 책자도 20여 권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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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역사자료관 전경.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인천역사편찬원을 설립하자


올해 인천에서는 인천역사편찬원 설립을 위한 2차례의 의미 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5월 인천시 역사자료관 주관 심포지엄에서 역사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모여 역사편찬원 설립의 당위성을 고민했고, 지난 10일에는 인천시의회와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인천역사편찬원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특히 인천역사편찬원의 설립은 독립성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조선시대 기록을 담당한 사관은 왕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처럼 인천시 역사편찬 업무는 시장 등 권력자로부터 철저히 독립돼야 한다는 얘기다.

인천역사편찬원은 큰 틀에서는 서울시를 모델로 하되 인천만의 특색을 담은 운영 방식을 갖춰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안도 있다.

강화, 부평, 원인천, 옹진 등 권역별 연구와 고대 역사, 전쟁, 개항, 해양, 평화 등 주제별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하고, 각 군·구 시사편찬위원회와도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민선 6기 강화고려역사재단과 인천문화재단의 통폐합으로 만들어진 '인천역사문화센터'의 기능 중복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