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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에세이]페르소나의 정치학

정한용 발행일 2018-10-26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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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치인 떠드는 말 거짓이란걸
과거 발언통해 스스로 증명하는데
여전히 가면 쓴채 큰소리 치고있다
그들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너무 오래 탈 써서 아예 잃어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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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1963년에 만든 '페르소나'라는 영화가 있다. 다소 어렵다는 평과 함께 인간의 심리를 철학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인정받는 작품이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유명 연극배우 엘리자베트가 '엘렉트라'를 공연하던 중 갑자기 말을 잃고 쓰러져 요양원으로 떠난다. 그녀를 돌보는 간호사 알마는 엘리자베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하지만 엘리자베트가 알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구경거리로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격적 태도로 바뀐다. 엘리자베트 남편이 방문했을 때 알마는 마치 엘리자베트라도 된 듯, 그녀의 말과 행동을 대변하는 이상한 증상을 보인다. 정신을 차린 후에도 알마는 점차 엘리자베트와 비슷해지다 마침내 두 인격이 하나로 겹쳐진다. 끝으로 가면서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데, 두 사람은 자아와 가면 사이에서 오히려 자신을 더 정확하면서도 고통스럽게 볼 수 있게 된다.

'페르소나'는 원래 그리스 연극에서 '가면'을 뜻하는 용어로, 근대 심리학에서 '자아 밖의 자아' '가면을 쓴 인격' 등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극 중에서 연기를 하면 그 배우는 자신의 삶이 아닌 극 중 인물의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배우의 페르소나이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영화배우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본래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타자에게 비치고 싶은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내재해 있다 어느 순간 밖으로 슬그머니 나타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척한다든지, 불우한 처지에도 행복한 듯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때에 따라선 타인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선한 양의 가면을 쓰는 일도 있다.

특히 옛날보다 미디어와 SNS가 생활의 중요 공간이 된 요즘은 이런 형상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미디어와 SNS상에서는 상대방과 '진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페르소나를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전면에 내세우기가 간편하다. 일례로 전화, 메일, 메시지 등을 통해 검찰이라고 사칭해 돈을 뜯어내려는, 소위 '피싱'이 요즘 심각하다. 그리 악의적인 것은 아니라 해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진을 일명 '뽀샵' 처리해서 실제 모습과 다른 사진을 게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타인에게 해가 되느냐 아니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둘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는 같다. 즉 내 얼굴이 아닌 '페르소나'를 내세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위장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진짜 얼굴과 페르소나 사이의 간격이 멀면 멀수록 진실로부터는 멀어진다. 특히 이것이 개인의 영역에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타자와 어떤 식으로든 소통이 되는 과정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로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정치란 개인과 타자 사이의 권력관계이기 때문이다. 페르소나가 타자의 영역으로 손을 뻗치는 순간, 우리는 두 얼굴을 구별하기 위해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실과 허구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마치 알마가 엘리자베트에게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듯 타자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 틈새가 커져 임계점을 넘으면 자연히 알마가 속았다는 걸 알고 분노하듯 우리도 공격하게 된다. 한번 속고 나면 그 실망과 분노는 다시 원래의 얼굴을 보인다 해서 쉬 해소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우리 사회 각처에서 그런 과잉된 페르소나를 본다. 일부 정치가는 지금 떠드는 말이 거짓이라는 걸 과거 자신의 발언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는 데에도, 여전히 가면을 쓴 채 큰소리를 치고 있다. 대기업이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당한 수단을 쓴다는 걸 다 알고 있는 데도, 마치 국가 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듯 애국 마케팅을 강조하기도 한다. 적폐세력과 내통해 법질서를 무참히 짓밟아 놓고도 아직도 잘못한 게 없다고 국민을 한참 아랫것인 양 깔보는 자들도 있다. 그들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너무 오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어서 이제 진짜 얼굴을 잊은 건 아닐까. 아예 잃어버린 건 아닐까.

/정한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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