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풍경이 있는 에세이]잘가요, 아부지

김서령 발행일 2018-11-09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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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이번에 강원도 갔다왔지
돌아가신지 벌써 65년된 아버지
묘지 없애고 화장해 뿌려드렸어
슬프지는 않은데 마음이 좀그래
산속에 홀로있다 맘껏 노시려나


에세이 김서령1
김서령 소설가
별일은 무슨. 어디 좀 다녀왔지. 어디면? 니가 뭔 상관인데? 와, 늙은 에미 어디서 뭔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강원도 갔다 왔어. 니 외삼촌들이랑. 외숙모들도 갔었지. 니 아빠까지 모두 여섯이서. 외할아버지 산소. 제사 아니야. 그런 거 아니고, 오늘 산소 없애고 화장해서 보내드렸어. 니 큰외삼촌이 얼마 전부터 자꾸 얘기를 하더라고. 누나, 나는 이제 자신이 없소. 우리 애들이 크면 즈이 할아버지 산소 찾아가기나 하겠어요. 나는 고마 산소 이제 없애고 화장해서 뼛가루 뿌려드리고 싶네. 자꾸 그러는 거야. 니 큰외삼촌이 몸이 한 번 되게 아프고 나더니 그런 생각이 났나 봐. 낫기야 나아도 사람 마음이 그런 거지. 나 죽으면 이거 누가 챙겨주겠나 싶고. 사실 나야 싫었어. 그래도 우리 아부지 산소인데, 그걸 홀랑 없애면 어쩌나. 자식이 그래도 되나 싶고. 그런데 나야 말을 보탤 수가 있나, 어디. 난 아부지 산소 안 간지 20년도 더 됐다. 다 큰외삼촌, 작은외삼촌이 벌초하고 제사 지내고 했지. 외할머니도 어차피 화장해서 보내드렸으니 외할아버지만 거기 둘 필요도 없는 거고.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해. 그래, 알았다,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랬지. 그래서 삼남매가 오늘 새벽부터 강원도서 만났지. 산이 그렇게 높았나 싶더라. 높고 높은 고뱅이에 산소가 있어. 50만 원에 다 해준대. 인부 둘이 왔더라고. 그래서 큰외삼촌이 10만 원 더 얹어주면서 깨끗하게 잘 해달라 했어. 처음엔 아무리 파도 파도 안 나와. 왜 이러나, 왜 이러나 하는데 가느다란 팔뼈가 나오더니 나중엔 머리뼈가 나오더라고. 아이고, 야야. 65년 됐어. 안 슬퍼.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게. 니 작은외삼촌이 그래서 예순다섯이잖나. 아버지 돌아가시던 해에 태어나서. 내가 열 살이었고. 언제 시간이 그렇게 갔나, 참말로. 산소 자리에서 여만치 걸어 올라가니까 너무너무 이쁜 소나무가 있어. 아이고, 여기 소나무 좀 봐라, 어찌 이리 이쁘나, 했더니 외삼촌들도 다 그래. 정말 잘생긴 소나무라고. 그래서 내가 아부지 여기다 뿌리자, 했더니 큰외삼촌은 좋대. 누나, 그렇게 합시다, 하는데 작은외삼촌이 절대 안 된다잖아. 그게 뿌리는 장소가 다 정해져 있대. 그렇게 막 뿌리는 거 아니고 이것저것 다 따져서 뿌려야 한대. 걘 교회를 안 다니니까 뭘 그런 걸 다 물어보고 댕겨. 그래서 소나무 밑에 못 뿌렸어.

으응, 슬플 게 뭐 있나. 난 그 사진 아니었으면 아부지 얼굴도 잘 기억 안 났지. 그 사진, 내가 얘기했지? 저고리 입은 여학생들 줄줄이 서 있고 아부지가 맨 앞줄에 앉았어. 양복 입고. 아부지가 가르치던 여학생들인 기야. 아유, 우리 아부지 이뻤다. 참 이쁜 얼굴이었어. 나나 작은외삼촌은 엄마 닮아서 이래 생겼지만 큰외삼촌은 아부지 닮았잖아. 그래서 걔도 이뻐. 아니야, 너는 그 사진을 못 봤지. 그 사진은 우리 고모네 집에 있어. 내가 가끔씩 놀러 갈 때마다 봐. 니가 봤을 리가 없지. 내가 하도 얘길 하니 넌 그 사진을 니가 본 줄 알았나보다. 글쎄, 나는 그 사진을 왜 그 집에다 두고 가져올 생각을 안 했나. 다음에 가면 달라고 해야겠네.

다 끝내고 났는데도 아직 오전이더라고. 그래서 근덕 장에 가서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바다도 보고 바람도 쐬고 그랬지. 아유,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지. 이것들이 둘 다 확 늙어버렸어. 새벽에 봤을 때는 그렇게 화가 나더라고. 이놈의 자식들이 뭘 벌써 이래 늙나. 나 늙는 것도 신경질이 나 죽겠는데 뭐 지들까지 이래 늙나. 그런 생각도 들고. 한참 놀다 왔어. 자고 오긴 뭘 자고 와. 집이 젤 편한데. 어두워지면 운전하기도 이젠 힘들어. 니 아빠도 나이 들어서 이제 밤운전은 하면 안돼.

이모할머니네? 강원도에 이제 이모할머니가 누가 있나? 다 돌아가셨지. 안 돌아가신 분들은 아파 누웠고. 그래,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네. 이모할머니만 일곱인데, 다 강원도 살았는데, 이젠 들를 데도 없네.

안 슬프다니까. 우리 아부지 이상순씨, 그 산속에서 혼자 65년을 누웠다가 이제 훌훌 뿌려줬는데, 신나게 놀러 가시는 거지. 아쉬울게 뭐 있나. 그냥, 조오금 마음이 뭐랄까, 모르겠다, 뭐래야 할지, 아무튼 뭔가 조오금 그렇기는 한데, 슬픈 건 아닌 것 같애.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