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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9)]교가(校歌)

김영준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18-11-30 제9면

백년전과 변함없이 '우뚝솟은 문학산봉'… 오늘도 힘찬 '네박자 행진곡' 청춘의 기상

제녕학교 설립을 주도한 인천신상협회의 장정
제녕학교 설립을 주도한 인천신상협회의 장정(章程). /인천시 제공

국내 첫 서구식 교육기관, 1892년 영화학당
순수 민간학교 첫 설립은 1903년 제녕학교
각각 영화초교·창영초교로 현재까지 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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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달 중순 전국 고사장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해마다 그렇듯 이른 시간부터 수험장 마다 배치된 각 학교 후배들은 열띤 응원전을 펼치며 선배들의 '수능 대박'을 기원했다. 후배들은 수험생들을 위해 저마다 각종 구호와 힘찬 노래들로 응원전을 준비했다.(11월 15일 인터넷 보도)

이른 아침 시간에 모인 후배들이 목청껏 부르는 각 학교의 교가(校歌)들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마치 '학교의 모든 기를 모아서 응원을 보내니 힘을 내서 시험 잘 치르고, 학교의 이름도 널리 알려달라'는 바람이 담긴 듯한 모습이었다.



이렇듯 학교의 정신을 반영한 교가는 학생들로 하여금 애교심과 단결심을 갖게 한다. 또한, 학교의 교육관도 담고 있다. 교가는 학교의 의례나 체육대회, 축제 등 각종 행사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때문에, 졸업 후 성인이 되어서도 학교를 떠올리며 교가를 읖조리게 된다.

이처럼 학창 시절 부르는 횟수가 많은 교가는 학생들의 음악적, 심성적 측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수업 외 학교생활에서 부르는 교가의 교육적 영향력이 결코 무시될 수 없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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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해바다 푸른물결 소리 들으며 우뜩솟은 문학산봉 바라 보라 보면서 배움의 길 닦고 닦는 대한의 딸들 이룩하세 주의 뜻을 우리의 땅에

2. 샛별보다 슬기로운 우리 눈동자 뿌리깊은 백향나무 기상을 삼고 한데뭉쳐 진리찻는 영화 학도야 삼천리에 새벽종을 등불이 되세

3. 푸른 마음 높은 뜻을 길벗을 삼아 빛내리라 영화학당 힘을 합하여 거룩하다 주의 이름 길이 받들어 우리겨레 이강산에 빛을 삼으리

영화학당 교가 (1913년), <영화 백년사(1892~1992)> 발췌

개항지 인천은 신교육 발상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초등 교육 기관인 영화학당(현 영화초등학교)이 1892년에 문을 열었다.(11월 16일자 9면 보도)

인천 관학의 효시인 관립인천외국어학교(현 인천고등학교)는 고종의 칙령에 따라 1895년 개교했다.

'간추린 인천사'(인천학연구소 刊)에 따르면 인천외국어학교 초기 수업 연한은 3년 과정의 영어과와 일어과가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영어과를 폐지하고 1909년 학교명마저 관립인천일어학교로 개정했다.

해방 후인 1949년 인천공립상업학교에 이어 1951년 인천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도고 교가, 초기의 음악적 원형태 유지
1906년 개성서 윤치호가 설립 첫 가사 써
'천년고도' 등 표현 인천 이전前 작사 추정

인천에서 종교 계통이거나 관학이 아닌 순수한 민간 학교로서 처음 문을 연 곳은 제녕학교였다.

1903년 6월 인천의 유지 서상빈이 신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제녕학교를 설립했다. 러일 전쟁 후 침몰한 바랴크호의 인양을 맡아 거금을 쥔 김정곤이 도움을 줬다.

인천시가 펴낸 인천역사문화총서 74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장면'에 제녕학교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나와 있다.

서상빈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인단체이자 상공회의소의 전신인 인천신상협회를 설립해 실질적인 사장 역할을 했다. 이처럼 제녕학교 설립에는 인천신상협회와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았다.

제녕학교는 학생 수가 120명에 달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1906년 이후 학교 운영 경비를 전부 제공했던 인항전운회사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 교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지경에 봉착했으며, 1907년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에 통합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인천공립보통학교가 현재 명칭인 '창영'을 갖게 된 건 1936년 인천창영공립보통학교로 바뀌면서다. 창영초교 구 교사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돼 있다.

주민들의 성금으로 1907년 세워진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가 지금의 창영초등학교이다. 인천 지역 교육사에 이정표를 세운 곳이며, 한국 근대사를 대표 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경인일보DB

학교들은 교표와 함께 교목, 교화, 교가 등 저마다의 상징을 갖는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 학교들 중 개교 당시나 초기 교가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학교는 찾기 힘든 가운데, 송도고등학교의 경우 음악적 측면에서만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06년 개성에서 설립된 송도고 교가의 첫 가사는 학교 설립자인 윤치호(1865~1945)가 썼다.

'애국가'의 작사가로 언급되는 그는 교회 '찬미가'도 다수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도학원 90년사'(송도중·고등학교동창회 刊) 등에 따르면, 교가의 곡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군가로 사용됐던 노래다.

1857년 작곡된 이 곡은 코넬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 밴더빌트대학교 등 미국 다수의 학교에서 교가로 사용되고 있다. 에모리대학교에서 유학한 윤치호가 미국 교가 문화를 우리에 접목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스코틀랜드 민요인 '밀밭에서'와 '올드랭사인'에 각각 가사를 붙인 '경부철도가'와 '애국가' 등 서양음악 선율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일명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가 유행할 때였다.

현재 송도고 교가 가사의 원형은 이상춘이 쓴 것으로, 1절 가사에서 개성을 나타내는 문구 '산수 좋고 역사 깊은/천년고도에'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송도고가 인천으로 이전(1952년)하기 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

해방·한국전쟁후 교가제정 관행 현재까지
대부분 일률적 구성… 특색있는 작품 기대


영화초등학교의 경우 1913년 3월 교가가 제정됐다. '영화 백년사(1892~1992)'(이성삼 박사 집필·영화학원 刊)에 3절로 이뤄진 당시 교사 가사 전문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작곡자와 작사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교가 가사에는 '황해바다'와 '문학산봉' 등 공간적 배경이 나오며, '주의 뜻', '주의 이름' 등의 노랫말을 통해 신앙에 입각한 근면함과 성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불리는 영화초등학교 교가는 1953년(이은상 작사·김용환 작곡)에 만들어졌다.

이 밖에 역사를 지닌 지역 학교들의 현재 교가는 작사·작곡가의 이름 등을 유추해볼 때 해방 후부터 1950~1960년대 만들어진 곡들로 판단된다.

이전 곡들은 한자 용어가 많고, 전래 과정의 서양음악을 활용하다 보니 구조가 단순해서 이에 맞춰 가사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제시대와 해방 후 시기에 우리 학제가 바뀌면서 교명이 변경된 경우도 있고, 교육 내용도 수정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교가 대부분은 서양의 7음 음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남녀 학교 구분 없이 박자(4분의4박자)도 행진곡풍으로 일률적이다.

인천문화재단 CI
해방 후와 한국전쟁 후에 이뤄진 교가 제정 관행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는 학교의 이미지와 특성을 반영한 개성 넘친 다양한 교가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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