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풍경이 있는 에세이]영어 문항이 불편하다

정한용 발행일 2018-12-07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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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하면 영어 잘할 수 있는 걸까?
의사소통력 향상 목표와 거리 멀어
배우는 근본 목적 다시 생각해 봐야
'수능: 한국에 침묵이 가라앉는 날'
BBC기사 '괴상한 시험' 의미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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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지난달 치른 수학능력평가의 결과가 학생들에게 통보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늘 말이 많은데, 올해는 너무 어렵게 출제되어 소위 '불수능'이라 떠드는 걸 들었다. 문제가 조금만 쉬우면 '물수능'이라고, 조금만 어려우면 '불수능'이라고 비난한다. 물과 불의 그 가운데 절묘한 수준을 예측해 문제를 내는 게 과연 가능할까? 아니 그런 가운데 지점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문제 난이도란 상대적이어서 출제자뿐 아니라 수험생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국제적 공신력을 가진 토익 같은 경우, 전체 수험생의 성적을 상대평가로 재배열하여 점수를 부여한다. 수능에서 등급을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난도가 높다고 지적받은 영어 문항을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학생들이 낯설어하는 과학철학 사고 과정을 다루는 지문이었다. 그런데 어휘가 다소 어렵고 문장이 길어서 그렇지, 문제 자체는 쉬운 것이었다. 나는 영어 선생으로 현장에 있을 때 이런 유형의 문제를 수없이 보았고 또 학생들에게 대처 방법을 가르쳤는데, 아직도 그 유형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출제된다는 데 우선 놀랐다. 더구나 이런 지문을 읽어냈다고 해서, 이게 수험생의 영어 능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지 사뭇 의심스러웠다. 이걸 독해하면 영어를 잘하는 걸까? 영어교육의 목표는 영어를 이용해 의사소통능력을 향상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 관점으로는 이 교육 목표와도 거리가 먼 문제 같았다.

나는 이 영어 지문을 '구글' 번역기와 '파파고' 앱에 넣고 돌려보았다. 둘 다 번역이 깔끔하지 못하고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지만, 대충의 뜻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걸 독해하려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학생이라 해도 1분 이상 걸릴 터인데, 스마트폰은 단 1초도 안 걸려 해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순식간에 번역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사람이 이 수준에 이르려고 초중고 12년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인 것 같았다. 더구나 기계는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하게, 영어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언어를 번역할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젠 영어 교육에 대한 우리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언어 교육은 말을 배우는 것이다. 즉,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단순히 문자가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까지 익히는 것이다. 글자를 읽고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게 물론 첫 단추이긴 하지만, 사회적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언어는 의미를 잃는다. 예를 들어, 위 문항의 지문에 나오는 'refining ignorance'라는 어려운 어휘보다, 지하철을 어디에서는 'metro', 또 어디에서는 'tube'라고 쓰는지 아는 게 급한 것 아닐까? 아프리카계 사람을 우리나라에서는 거리낌 없이 '흑인'이라고 부르지만, 영어권에서 'black people'이라고 썼다간 심히 곤란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배우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영어를 배우면서 셰익스피어나 예이츠의 작품 한두 편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 대사를 들으며 문어체와 구어체가 어떻게 다른지 토론해봐야 하지 않을까. 왜 영어가 지금 세계 공용어가 되었는지 그 역사를 조금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이 지점에서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근본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수능이 끝난 직후, BBC에서는 '수능: 한국에 침묵이 가라앉는 날'이라는 제목의 의미심장한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그들 눈에 우리 수능은 정말 '괴상한' 시험인 듯했다. 12년간 준비해서 하루에 평가한다고? 항공기 이착륙도 통제하고 증권시장 개장도 늦춘다고? 시험 일정에 맞춰 교회나 절에 가서 부모가 기도한다고? 겨우 2%만 들어가는 SKY에 모든 진학 희망자가 목을 맨다고? 그 대학에 들어가야 겨우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에서 압도적 1위라고? 나는 이 기사의 제목이 섬뜩했다. '침묵이 가라앉는 날'에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정한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