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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고서산책']3·1운동 백주년에 꺼내 보는 '삼일운동 비사(秘史)'

조성면 발행일 2019-02-11 제22면

전문가 조성면2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3·1운동이 백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백성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알린 민주공화정신이 백 살이 된 것이다. 3·1운동을 두고 이념적 지향이 뚜렷하지 않은데다가 조직화되지 못했고, 쌀값 폭등에 대한 민중적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며, 때마침 국장일(고종인산일)이었기에 대규모 군중집회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냉정한 지적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3·1운동은 이런 비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임시정부 수립의 근거였으며, 헌법 전문을 장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기도 하다. 그 3·1운동이 백주년을 맞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백(百)은 완전수요, 완성의 동의어다. 백일기도·백화점·백과사전·백발백중 등에서 보듯 백은 '모든 것', '완전함' 등과 관련이 있다. 백의 순우리말은 '온'인데, 모두를 뜻하는 '온통', '온갖'도 여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이병헌의 '삼일운동비사'(1959)와 홍성원의 대하소설 '먼동'(1992), 그리고 횡보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1922)이다. '만세전'은 아내의 부고를 받아든 동경유학생 이인화의 귀국 과정과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만세전(萬歲前)'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시간적 배경은 만세 이전의 시기 곧 3·1운동 이전의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3·1운동의 정신은 여전히 미완의 상태 곧 '만세전'의 상황에 머물러 있다.

오암 이병헌(1896~1976)의 '삼일운동비사'(이하 '비사')는 3·1운동 연구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저서이다. 1천17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비사'를 쓴 이병헌은 경기도 진위군 권관리, 즉 현재의 평택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민도는 유학자였음에도 일찍 동학에 입도했다. 부친의 영향으로 오암도 동학에 투신했으며, 의암 손병희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면서 천도교 수원 지부를 창설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택에서 태어나 서울을 오가며 주로 수원에서 활약한 애국지사, 이를테면 평택시민과 수원시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기의 문화인물이며 국가유공자다.

오암의 '비사'는 '독립선언서'를 비롯하여 49인의 애국지사들에 대한 취조서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지역별로 정리해놓고 있다. '비사'에 따르면, 경기도의 만세운동은 수원군 23건과 인천부 4건 등을 포함 모두 119차례에 걸쳐 전개됐다. 요즘처럼 빅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실증적으로 자료를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러 부분적인 오류나 신뢰하기 어려운 기록도 있기는 하다. 가령 '비사'에는 3월 1일 수원 방화수류정(용두각)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아쉽게도 일제 측 자료와 『매일신보』 기사 등 어디에서도 당일 수원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다는 기록이나 정황 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

연구에서 정확성과 실증은 양보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오암의 '비사'는 정확성과 실증에 방점을 찍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비사'는 실증을 압도하는 정신에 가치가 있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정부를 비롯해서 그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3·1운동에 대해 고군분투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해주려 했던 오암의 고귀한 정신과 혼신의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다. 팔만대장경이 마음 심(心)자 하나를 이길 수 없듯 때로는 한 개인의 정성과 정신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앞지를 수 있다. 백년을 맞이하는 3·1운동이 살아있는 정신이요 우리의 역사적 과제로 남아있는 한 '비사'는 재야사학이 아니라 '정사(正史)'이며, 흘러간 '고서'가 아니라 동시대성을 갖는 엄연한 역사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