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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하노이발 뉴스에 관하여

방민호 발행일 2019-03-05 제22면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정치·경제로 논할 수 있는게 아냐
'한국인' 인류적 종 존속위해 필요
냉정과 침착속에서 서로 공존하고
北동포들과의 미래위한 슬기 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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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하노이발 뉴스를 접하고 선배 작가 한 분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글쎄요. 저는 언젠가부터 현안에 어두워져서 잘 모르겠는데요, 했다. 다른 한 분은, 충격이라니,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것부터 의외였거든, 하고 들뜬 사람들을 쉽게 타박한다.

지금 청년들 중에는 이데올로기에 찌들고 가난한 북한 싫다고 통일이 절대적 필요 명제는 아니라 한다. 입만 벌리면 경제, 경제하고 경제병 걸린 나이 든 분들도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한다. 아무리 속물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도 일단의 진실은 있다고 봐야 한다.

필자로 말하면 386세대,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며 자란 세대의 일원이다. 유신체제 때 '국민학교'를 다녀,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줄 알았고, 국가와 민족을 지상 명제로 끌어안고 성장했다. 이른바 '범생'이었기에 다른 친구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도 철학이 아니라 국민윤리였으니, 왜 국민 윤리가 철학보다 먼저이고 철학은 중고등학교 과정에 있지도 않은 건지 물음표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 국가 교육 때문에 생긴 부작용의 하나는 강렬한 정치 감각일 것이다. 필자가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부모님은 절대 현실 문제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만 하라 당부하셨다. 그러나 한 일 년 지나는 사이에 사람이 달라져 버렸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유신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어디로 가는지,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자들이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조국'의 통일이라는 것도 필자에게는 처음에는 그런 차원에서 당위적인 명제로 받아들여졌다. 1945년 해방과 독립이 미완에 그쳤고 그나마 분단으로, 전쟁으로 치달았으니 원래의 상태를 회복해야 함은 당연지사 아닌가. 그래도 '통일 지상주의'에는 용케 빠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나중에는 우리나라가 섬 같아서 갑갑해졌다. 동서남 쪽이 모두 바다에 접해 있고 북쪽은 철책으로 가로막혔으니 어디 먼 곳으로 떠나기도 어렵지 않은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면 되지 않느냐 해도 땅을 밟고 바깥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공중 이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해야 한다.

여행 핑계를 댔지만 사실 어디 여행 같은 문제일 뿐이겠는가. 아무리 세계화, 국제화가 전개되어도 한국 사람들의 '고인 물' 같은 우물 감각은 좀처럼 벗을 수 없는 것이 위쪽 통로가 막힌 데도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인데 그 대륙과 살을 맞대고 살 수 없는 상황은 사람들을 비좁게 만들기 쉬운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신채호를 즐겁게 읽는다. 그는 한말의 유생 출신으로 비범한 재능과 목숨을 건 공부를 통해 '조선사'의 '비밀'을 캐내는데 접근할 수 있었던 드문 선각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느니, 상상과 공상이 많았느니 하지만 비난은 쉽고 깊이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과연 중국 청대의 사고전서를 접하여 우리 역사책에 잘 안 나오는 우리 역사를 사리에 맞게 맞추려 한 사람 얼마나 되던가.

이 선생 신채호를 통해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대저 역사라는 사람살이의 기억은 만만히 볼 것 아니요, 경제나 정치 따위로 논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 인류적 종의 '자연사'를 정리해 놓은 것이니, 이것 없이는 그 종의 현재의 삶도 있을 수 없고, 현재를 살아도 덧없는 삶에 그치기 쉽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같은 '현재' 때문에만 아니라 이 '한국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 인류적 종의 존속을 위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무슨 무슨 '지상주의자'는 되지 않아야 할 일이다. 냉정과 침착 속에 우리 안에서도 서로 공존하고, 북한 동포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