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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에세이]어느 긴 새벽에 대하여

김서령 발행일 2019-03-15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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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제마음 읽는법 배워본적 없다
마흔 넘도록 선택할 땐 손끝 파르르
내가 다섯살짜리 키우기 벅찬시대
열여덟살 엄마가 갓난아이 키우는데
'좋은시절 금방 온다' 헛된꿈도 못꿔


에세이 김서령1
김서령 소설가
집 근처에는 김밥집이 한 곳 있다. 내 손바닥 반만 한 길이로 말아주는 꼬마김밥집인데 메뉴가 수십 가지다. 햄치즈 김밥, 제육 김밥, 낙지 김밥, 게살 김밥 등등 고르는 데에도 머리통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 줄에 천 원. 두 줄을 주문하면 내 속에 딱 맞았다. 그날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 손님이 막 나가던 길이었고 나는 김밥 진열대 앞에 서서 "아줌마, 불오뎅 김밥 두 줄 주세요." 그러면서 이천 원을 건넸다. 주인아줌마는 약간 골이 나 있었다. "아니, 지가 매운 걸 시켜놓고 맵다고 야단이면 어째?" 나는 좀 뜨끔했는데 생전 먹지도 않던 매운 음식이 당겨 마침 불오뎅 김밥을 주문한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막 나간 그 손님이 매운 걸 먹다 말고 투덜거린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 조막만 한 김밥들을 절반도 먹지 못했다. 매워도 너무 매웠다. 주인아줌마 눈치가 보여 기를 쓰고 먹어보려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슬그머니 반 넘어 남긴 접시를 두고 일어서는데 딱 걸렸다. "왜? 매워? 매워서 못 먹겠어?"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배가 불러서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그랬다. 늘 가던 콩나물국밥집이었는데 그날도 희한하게 매운 국물이 먹고 싶어서 처음으로 매운 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역시나 나는 반도 먹지 못했다. 내가 절절 매니 깍두기를 더 주러 다가왔던 아줌마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왜 먹지도 못하면서 매운 걸 시킬까나? 그냥 먹던 대로 먹지."

분명 내 입맛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인데도 무언가를 주문하면서 실패를 거듭한다. 아기 내복이나 좀 살까 싶어 들어갔던 인터넷쇼핑몰에서 봄 원피스를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기에 나는 열 벌도 넘게 샀다. 백화점에 가면 한 벌도 못 살 값이었다. 옷감이 좀 후지더라도, 디자인이 좀 촌스럽더라도 어차피 아이들은 쑥쑥 자라니 만원 값만 하면 된다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막상 배송이 된 옷들을 쳐다보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정말 딱 만 원짜리들이었다. 이걸 입혀 어딜 데리고 나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 원 값만 하면 된다 해놓고는 이 무슨 변덕이람. 옷장 속에 개어 넣으면서 이 옷들을 정말 입히게나 될까, 싶었다. 매운 걸 시켜서 매운 음식이 나왔고, 만 원짜리 옷을 사서 만 원짜리 옷이 온 걸 나는 어쩌자고 후회하고 있는 걸까. 다 내가 고른 것인데.

친구는 새벽녘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울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여고 2학년 딸이 아기를 낳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딸의 마음은 확고하고 단단해서 더는 어쩌지 못하겠다 말하며 그녀는 펑펑 울었다. 알겠다고, 돕겠다고 말은 했다는데 아직 제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했다. 내 딸은 아직 다섯 살이라 나로서는 상상도 안 갈 일이었다. 친구의 딸이 마음을 이미 다졌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를 응원하는 일뿐이었다. "꼭 전해줘. 이모가 응원한다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도 전해줘." 고작 엄마 친구가 응원하는 일이 그 아이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지만 다른 건 해줄 것이 없어서 나는 그 말만 바보처럼 되풀이했다. 친구가 말했다. "난 마흔도 넘었지만 내 선택을 온전히 믿지 않아. 아직도 내 선택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 그런데 그 앤 고작 열여덟 살이야. 그 앤 정말 제 선택을 믿고 있는 걸까? 이왕이면 그 애가 끝까지 제 선택을 스스로 믿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제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는 법, 우리는 그런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배워서 될 일이 아니겠지만. 친구의 말처럼 나 역시 마흔도 넘었지만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릴 때가 많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여태 무능한 나를 반성하느라 나는 친구의 전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은 내가 다섯 살 아이를 키우기도 벅찬 시대인데, 갑자기 천지개벽해 열여덟 살짜리 엄마가 갓난아기를 키우기 좋은 시절이 금방 오리라는 헛된 꿈을 꾸지도 못했다. 새벽은 길었고 친구의 울음도 길었다. 무섭도록 긴 밤이었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