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명문가 4형제중 둘째로 태어나
학창시절부터 일제 저항의식 강해
박종화 만나 1922년'백조'지 詩 등단
그의 시는 낭만과 민족주의로 구분
후기엔 식민 현실 민족울분 드러내 |
김윤배 시인 |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니다. 하늘을 무겁게 덮고 있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숨조차 쉬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미세먼지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행히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계와 정부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를 만들 것에 합의했다. 조직을 이끌 위원장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수락을 받아냈다. 기대해 볼 만한 일이다. 그렇기는 해도 다시 찾은 산하와 들을 미세먼지에게 빼앗긴 불행한 봄이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노래한 이상화(1901~1943)다. 그는 대구의 명문가 출신이다. 1901년, 대구부 서문로 12번지에서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학창시절부터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했다. 1919년 3·1운동 때 백기만 등과 함께 대구 학생봉기를 주도한 것이 그의 나이 열아홉 때의 일이었다. 학생봉기는 사전에 발각돼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1927년, 의열단 이종암 사건에 연루돼 구금되기도 했다. 이종암은 의열단 부단장으로, 근무하던 대구은행에서 당시 화폐로 1만900원(현 100억원 정도)을 인출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독립투사가 되기 위해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던 인물로 국내로 잠입해 대구를 주무대로 투쟁했다.
이상화는 1921년, 박종화를 만나 '백조' 동인에 참여하고, 이듬해 '백조'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의 시세계는 감성적 낭만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로 나뉜다.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을 드러냈고 후기에는 식민지의 민족현실을 직시하는 저항정신을 드러냈다.
감성적 낭만주의 시로는 '나의 침실로'가 있다.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오너라.//「마돈나」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마돈나」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오, 너의 것이냐…'는 연인 마돈나를 기다리는 애절함과 안타까움으로 차있다. 그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연인은 폐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그의 촛불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마돈나는 혹 그녀에 대한 애달픔을 노래한 시는 아닌지 모르겠다.
저항적 민족주의 시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는 민족적 울분과 저항정신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시인은 푸른 하늘과 푸른 들이 맞붙은 들판을 가고 있다. 그러나 그 들판은 시인의 것이 아니다. 남의 나라 땅이다.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게 된 것은 봄 신령이 잡혔기 때문이라고 노래하지만, 분명 독립정신이고 저항의식이다. 마지막 행이 가슴을 친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