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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예단포 유배' 계봉우 선생 60년만에 고국품으로

김민재 발행일 2019-04-23 제1면

'편히 쉬소서'
카자흐스탄에 안장돼 있던 독립유공자 계봉우 지사의 유해가 22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2호기에서 운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2만세운동 선언 초안 만든 인물
카자흐 방문 文대통령이 직접 '배웅'
서울현충원서 부부 '안장식' 거행


경인일보가 연중기획으로 진행 중인 '삼일운동·임시정부 100년 특별기획'에서 '인천의 독립운동가'로 집중 보도한 계봉우(1880~1959) 선생의 유해가 22일 고국으로 돌아왔다.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지 60년 만이다.

국가보훈처는 22일 오전 11시 서울현충원에서 유가족과 광복회, 시민 5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계봉우 선생 부부 유해 안장식을 거행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조국 광복을 향한 험로를 걷다가 이역만리에서 숨을 거둔 지사님의 의로운 삶 앞에 한없는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며 "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을 깊이 새기고 계승하겠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시각 21일 오후 5시 40분께 수도 누르술탄 국제공항에서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외국 현지에서 독립유공자 유해봉환 행사를 주관했다.

문 대통령은 선생을 배웅하며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군 2호기에 실려 이날 오전 6시 45분께 서울공항에 도착한 계봉우 선생 부부의 유해는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서울 동작구 현충원으로 옮겨졌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던 계봉우 선생은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16년 12월부터 1년 동안 인천 영종도 어촌마을 예단포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 일대에서 학생들이 이끈 '제2 만세운동'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계봉우 선생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이후 한국어와 역사 보급에 힘쓰다가 1959년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이날 계봉우 선생 부부 유해와 함께 고국 땅에 돌아온 황운정 지사 부부 유해는 이날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