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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부시의 노무현 초상화

이영재 이영재 발행일 2019-05-2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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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그림을 꽤 잘 그렸다. 두 번의 미대입시에 떨어지고 좌절 끝에 정치인이 됐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후에 각국의 수많은 미술품을 약탈했다. 그 그림들을 모아 베를린에 세계 최대의 미술관을 짓고 싶어 했다. 전쟁 중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고전주의식 화풍을 고집한 그는 2천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전쟁 중 소실되고 현재 700점이 남아 있다.

윈스턴 처칠은 40세가 넘어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것은 '반복성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림이 하나의 치료법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그가 "내가 천국에 가면 처음 100만 년은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에 푹 빠져 500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그림 중에는 정부(情婦)로 알려진 도리스 캐슬로시의 초상화도 포함돼 있다. 피카소가 "처칠이 그림만 그렸다면 정치인 처칠보다 화가 처칠로 더 명성을 날렸을 것"이라며 높이 평가할 만큼 말년에 그의 그림솜씨는 수준급이었다.

우리의 경우 그림 그린 정치인 중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첫째로 꼽힌다. 김 전 총리는 42세 때 그림에 입문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일요 화가회' 회원들과 그림을 그렸다. 그는 생전 그리는 즐거움을 "마치 갓 태어난 아이로 돌아간 듯 순백의 마음"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정화되는 것이 느껴지고, 온갖 번잡한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정신적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서는 생전 300개의 유화작품을 남긴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정치를 하면서 받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아마추어 화가로 알려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노무현 초상화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토크쇼 제이 레노 쇼에 출연해 "내 안에 렘브란트가 있다"는 조크를 날렸던 부시는 재임 중 만난 각국 정상이나 지인 등의 초상화나 자화상, 풍경화 등을 그려오고 있다. 전 세계 진보 좌파에게 '전쟁광'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부시에게 그림 재주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재임 시절 관계가 껄끄럽던 그가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직접 찾아온다는 사실이 왠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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