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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우생순 신화 주역' 굳건히 골대 지키고 있는 오영란

임승재 발행일 2019-06-12 제15면

골키퍼 싫어 치마 입던 소녀, 한국 여자핸드볼 역사를 쓴다

인터뷰공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인 인천시청 여자 핸드볼 실업팀의 골키퍼 오영란 선수가 지난 10일 인천 문학경기장 체력단련장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며 근력 강화 운동을 하고 있다.

마흔여덟, 조카뻘 후배들과 함께 선수생활 할 수 있는 비결은 '타고난 건강'
경기할 땐 '센 언니'로 통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엄마처럼 다정다감한 선배
아테네 올림픽, 1등 같은 2등… 메달 받을 땐 울지말자던 감독님 말 생각나
'그 나이까지 하느냐' 댓글도 보지만… 버티게 해준 조한준 선생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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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엄마, 오십 살까지 뛰어 주면 안될까? 내가 기네스북도 찾아볼게'라고 하네요. '얘, 엄마 골병든다'고 했죠." (웃음)

'72년생 쥐띠',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이 아직도 코트를 누비고 있다.

여자 핸드볼 실업팀 인천시청의 '맏언니'인 골키퍼 오영란이다.

지난 10일 오전 문학경기장 체력단련장.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조카뻘 후배들을 이끌고 훈련 중이던 오영란에게 오랜 선수 생활의 비결부터 물었다.

"타고난 건강이 아닐까요"라며 웃음 짓던 오영란은 "운동하는 사람들은 내 나이쯤 되면 연골 통증이 있고 할 텐데, 아무렇지도 않다"며 "그 흔한 부상도 거의 없었고, 당연히 수술이란 것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요즘은 나이가 들어 몸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한다"고 말했다.

오영란은 경기장에 들어서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으면 팀 후배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거침없이 욕설도 날린다.

상대 팀 선수들도 인천시청 골문을 막아선 대선배 오영란 앞에서 주눅이 들 만하다. '센 언니'로 통하는 오영란은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경기장에선 누구도 봐줄 수가 없죠. 왕년에는 내가 생각해도 좀 무서운 언니였어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선 어린 선수들을 더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후배가 잘못해 혼을 내고 나면 혼자서 마음 아파하다가 결국 카톡을 보내서 위로를 해줘요. 혼낼 때는 확실히 혼내야 하는데…."

오영란은 '플레잉 코치'로 뛰며 조한준 감독을 도와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누구 하나 이유 없이 대들거나 삐뚤어진 적이 없는 착한 선수들"이라며 후배들에게 고마워했다.

그에게 '오엄마'라는 애칭을 붙여준 인천시청 '주장' 신은주는 "엄마처럼 밥 먹는 것 하나까지도 후배들을 꼼꼼히 챙겨주는 선배"라고 한다.

인터뷰공감

인천시청은 얼마 전 막을 내린 2018~2019 SK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리그 초반만 해도 하위권을 맴돌며 부진했다. 두텁지 않은 선수층에 그나마 주축으로 뛰어야 할 선수들이 연이어 부상을 당한 탓이다.

전열을 가다듬은 인천시청은 선두를 달리던 부산시설공단에 시즌 첫 패배를 안기는 등 강팀들을 연거푸 제압하며 리그 판도를 뒤흔들 복병으로 떠올랐다.

정규리그 막바지에는 매 경기 극적인 명승부로 여자부 최다인 9연승 기록을 세우며 최종 3라운드를 전승으로 마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오랜 맞수인 삼척시청과의 준플레이오프 단판 대결에서 20-23으로 분패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오영란은 "삼척시청 홈 관중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아쉽게 졌다"며 "우리 후배들이 여자 핸드볼 명문인 인천시청 소속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대범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산 성호초등학교 4학년 때 핸드볼을 시작한 오영란은 "원래 초등학교 때 배구를 했다"면서 "어느 날 선배 언니가 나를 때리는 모습을 본 원재옥 핸드볼 감독 선생님이 '너 핸드볼 한번 해볼래?'라고 하길래, 그 언니 앞에서 보란 듯이 '그러겠다'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골키퍼가 하기 싫어서 울기도 많이 울고 일부러 치마를 입고 오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오영란은 이번 시즌에 2011년 리그 출범 이후 통산 1천200회 세이브를 달성했다.

30대 초반인 삼척시청 골키퍼 박미라에 이어 두 번째다.

인천시체육회는 오영란이 리그가 출범하기 한참 전인 1991년부터 실업팀 선수 생활을 시작해 당시부터 쌓아온 세이브가 공식 기록으로 남아있다면, 한국 남녀 핸드볼 선수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대기록이 쓰여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영란은 "역대 두 번째 1천200회 세이브 달성이라고 하길래, 우스갯소리로 '내 잃어버린 20년(세이브)은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했다"며 멋쩍어했다.

한국 여자핸드볼의 산실 인천은 몇 해 전만 해도 여자 핸드볼 리그를 주름잡던 '챔피언'이었다.

1974년 국내 최초의 여자 핸드볼 실업팀으로 창단한 인천시청은 1990년 2월까지 운영된 뒤 진주햄(1990.3 ~ 1997.7), 제일생명 알리안츠(1997.8 ~ 2004.8), 효명건설(2004.9 ~ 2007.9) 등으로 인천 연고 팀의 명맥을 이어왔다.

효명건설 부도로 해체 위기에 놓인 팀을 인천시체육회가 2007년 잠시 맡았다가 이듬해인 2008년 3월 벽산건설이 이어받았는데, 회사 경영 사정으로 인천시체육회가 2010년 9월부터 다시 팀을 운영했다.

그러다 2014년 1월 인천시청팀이 재창단했다. 최근 유럽 무대로 진출한 국가대표 '에이스' 류은희(전 부산시설공단)를 비롯해 SK슈가글라이더즈의 김온아·김선화 자매 등이 인천시청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우승컵을 독식한 바 있다.

오영란은 "후배들이 팀을 떠났을 때에는 서운한 마음이 컸다"면서도 "그 팀에서 없어선 안 되는 선수로 잘 성장해 기특하다. 그동안에는 서먹서먹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만나면 등도 두드려주고 격려를 많이 해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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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핸드볼 실업팀 인천시청 맏언니인 골키퍼 오영란.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영화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으로 오영란을 기억해 주는 이들이 많다.

그는 "아테네 올림픽 때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며 "1등 같은 2등이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임영철 감독님(현 하남시청 감독)이 우리를 다독이면서 '(은)메달을 받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고 했다.

오영란이 속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세계 최강인 덴마크와 연장전을 2번 뛰고 승부 던지기까지 이어진 128분 혈투를 펼치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

오영란에게 다음 시즌에도 코트에서 만나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며 핸드볼을 시작한 큰 딸(강서희·인화여중1)의 응원에 더욱 용기를 얻게 됐다고 한다.

"힘든 길이라는 걸 잘 알아서 핸드볼을 시키지 않으려 했어요. 하지만 재능이 있는 아이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어요. '너희 엄마가 오영란 선수냐'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저께 '엄마, 오십 살까지 뛰어 주면 안 되느냐'고 묻더군요. 둘째(강동희·정각초3)도 핸드볼에 흥미를 보이고요. 간혹 '후배를 안 키우고 그 나이까지 너만 하느냐'는 인터넷 댓글도 보게 되는데, 딸아이 덕분에 힘을 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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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란은 끝으로 "(조한준) 감독 선생님의 배려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뛰어 보겠다. 많은 격려 부탁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글/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오영란은?

오영란은 오산 성호초등학교 4학년 때 핸드볼을 시작했다.

오산여중과 송원여중, 신갈고를 나온 그는 1991년 부산 대선주조 실업팀에 입단했다.

이어 온양 종근당과 광주시청을 거쳐 아테네 올림픽이 열린 2004년 인천에 연고를 둔 효명건설에 합류했다.

오영란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인물이다.

그의 배우자인 강일구씨도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했다. 강씨는 남자 실업핸드볼 인천도시공사 감독을 역임하는 등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