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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에세이]해인사와 팔만대장경

김인자 발행일 2019-07-1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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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세월 변함없이 지켜온 경판들
오랜 침묵 전하는 메시지 크고 장엄
고작 한나절에 불가사의한 말씀들
다 새긴다는것은 허무맹랑한 욕심
눈과 마음으로 차곡차곡 담아본다


에세이 김인자2
김인자 시인·여행가
집을 나선 지 나흘째, 가야산 자락으로 들어선다. 계곡의 물소리는 짐승의 포효처럼 우렁차다. 다행히 바람은 알맞게 살랑거리고 햇살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얼마 만에 찾아가는 해인사인가. 거두절미 천년의 시간을 견뎌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으로 알려진 팔만대장경(불교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아 기록한 기록물)이 예전 그대로 잘 있는지 보고 싶었다.

해인사 가람 배치도를 보면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구광루를 지나 정중탑과 대적광전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면 네모 모양의 장경판전이 기다린다. 그 뒤로 수미정상탑이니 영락없이 부처님께서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셈, 여기서 북쪽 건물은 법보전 남쪽 건물은 수다라전이다. 해인사가 자리한 지형은 떠가는 배의 형국이라 돛대바위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겨 근자에 다시 세운 탑이 단아하기 이를 데 없는 8각 7층 석탑이다.

해인사라면 그 무엇을 봐도 대장경을 보는 것이라 했던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20분쯤 오르막을 걸어 일주문을 통과 대적광전을 지나 가장 뒤쪽에 자리한 장경판전 앞에 서자 가슴이 설렌다. 아침나절이라 햇살이 서고 안쪽으로 길게 들어서고 나무 칸막이 사이로 천년의 시간을 변함없이 지켜온 경판들, 보일락 말락 하는 오랜 침묵의 시간들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는 크고 장엄했다. 생각해 보라. 우리 조상들은 후세를 위해 목판본을 만들고 이걸 지키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했겠는가.

경판이 보관된 법보전에는 스님 한 분이 나지막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고 계셨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처럼 잠시 왔다가 서둘러 돌아가기 바쁘지만 나는 쉬이 자리를 뜰 수 없다. 천년의 시간과 불가사의하다는 말씀들을 나 같은 범인이 고작 한나절에 새긴다는 건 얼마나 허무맹랑한 욕심이겠는가. 허나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저 경판들, 손으로 쓰다듬을 수 없으니 눈으로 마음으로 더듬고 또 더듬을 수밖에, 그리고 차곡차곡 심연 깊이 눌러 담아 두는 도리밖에.

해인사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숲은 우람하고 계곡의 노거수들은 푸르다 못해 검다. 이 좋은 자리에 대장경을 모시고 유구한 세월을 견디고 있는 저 부처님의 살 같은 말씀들, 불자가 아니어도 사람인 우리가 새기며 살아야 할 말씀들은 얼마나 차고 넘치던가.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을 것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판 팔만대장경은 1962년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경판은 8만1천258판이다. 8만여 판에 8만4천 번뇌에 해당하는 법문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 이른다. 1237년(고종 24)부터 16년간에 걸쳐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의 격퇴를 발원((發願)하여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을 두어 만든 것이라고. 경판고 안에 5층의 판가를 설치하여 보관하고 있으며, 판가는 천지현황 등의 천자문 순서로 함의 호수를 정하여 분류배치하고, 권차와 정수의 순으로 가장하였다고 한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69.6㎝ 내외, 두께 2.6∼3.9㎝로 양 끝에 나무를 끼어 판목의 균제를 지니게 하였고, 네 모서리에는 구리판을 붙이고, 전면에는 얇게 칠을 하였다. 판목으로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 소나무, 후박나무 등의 목재를 썼고, 무게는 3∼4㎏가량으로 현재까지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천지의 계선만 있고, 각 행의 계선은 없이 한쪽 길이 1.8㎜의 글자가 23행, 각 행에 14자씩 새겨져 있는데, 그 글씨가 늠름하고 정교하여 고려시대 판각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고한다.

처음엔 강화 서문(江華西門) 밖 대장경판고에 두었고, 그 후 강화의 선원사(禪源寺)로 옮겼다가 1398년(태조 7)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김인자 시인·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