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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외국인화

이완 발행일 2019-08-07 제22면

열악한 작업현장 시스템 개선 대신
기본 안전교육 조차 제대로 못 받은
이주노동자 대거 투입 산업재해 속출
더이상 맨몸으로 당하는 일 없도록
실태조사·보호조치 반드시 선행돼야

수요광장 이완2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영국의 작가 '존 버거'는 유럽의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책 '제7의 인간'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을 표현하며,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 자체가 부정되고 그저 부족한 인력을 메워주는 커다란 기계의 대체 가능한 부속이 된 이주노동자를 표현했다. 지금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의 삶도 바로 이렇다.

며칠 전, 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농촌에서 작업 준비를 하던 중, 일을 하기 위해 장갑을 달라고 했다가 한국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리고 7월 31일 비가 아주 많이 내렸던 서울에서는 6명의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23살 미얀마 청년이 폭우가 내릴 때 서울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빗물 펌프장 안전 점검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국가재난에도 이주노동자가 최일선을 맡고 있다. 가축에게 전염병이 발생하는 경우, 몇백만 마리에 달하는 가축을 도살하거나 생매장하면서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전염성 질환 등에 대한 위험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그래서 초기에 많이 투입되던 관계 당국의 공무원은 점차 줄었다. AI가 가축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수 있는 수인성 전염병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후, 군인들도 동원하기 어려워졌다. 더 이상 위험한 현장에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다.

정부는 위험을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외주화를 했고, 이 외주화의 현장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외국인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는 현장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꾸는 대신, 그곳에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내고 있다. 결국,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거 투입되고 있다.



2018년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3천798명이었고 사망자도 511명이나 되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0.18%인데 반해, 외국인노동자 산재발생률은 1.16%로 내국인노동자에 비해 6.4배가 높았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소규모업체에서 일하고 있고, 체류가 불안정안 이주노동자도 많아 산재 신고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 산재 발생률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항의를 해줄 노동조합도 가족도 없고, 이들의 외침에 반응해줄 정치권력도 없는 이들이 적절한 예방 교육도 후속조치도 없이 현장으로 더욱더 내몰리고 있다.

한 국가의 경제의 버팀목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안전과 재난 현장에 투입되면서도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이중 잣대로 정당한 대우 없이 대체 가능한 일회용 딱지를 붙여 놓고 있다.

우리의 일상 어느 부분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과 고통을 담보한 것이라면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미얀마 등에서 온 어떤 20살 젊은 노동자들을 등 떠밀어 위험한 곳에 보내고, 부당한 대우를 통해 착취해서 나온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우리 가족'만의 화목한 일상을 꿈꾸고, '우리 국민'만의 평등하고 평화로운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몰염치한 환상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더 이상은 맨몸으로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지는 않는지 제대로 된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 위험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조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이중적 잣대를 버리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이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겠다.

8월 3일 아침, 콘크리트 제품 생산업체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에서 온 19살 청년이 지게차에 깔려 숨지는 일이 다시 일어났다. 언제까지 이런 죽음을 방치할 것인가.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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