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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광복절과 극일(克日)

최창렬 발행일 2019-08-14 제23면

日, 안보 빌미로 수출규제 계획된 프로세스
극우적 사고 '아베에게 사죄' 혐오발언까지
미·중·러·일·북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
식민지배 반역사관·냉전주의 장막부터 제거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북미 관계의 변화 등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보환경의 변화는 일본으로서는 당혹스러운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아베 정권 등 자민당 정권들에게 북한이라는 외부 적의 존재는 우익의 결집에 주요 동력으로 기능했고, 이를 평화헌법 개정의 도구적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일본의 극우세력 결집을 통한 평화헌법 개정은 일본 시민의 개인적 호불호를 넘어 일본의 일관된 흐름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전략의 근본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분위기를 부인할 수 없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기존의 안보 질서가 바뀌고 북미도 과거의 극한적 적대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남북협력의 답보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다. 이를 추동하는 남한 정권의 존재 역시 일본 우익 정권의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한일 간 격차 감소도 일본으로선 방치할 수 없다.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은 근인(近因)에 불과하다. 일본은 어떠한 구실로라도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고, 이는 일본의 기본 국가전략이기도 하다.

물론 미시적 차원의 갈등은 조정국면을 거치면서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배와 과거사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넘기 어려운 벽이다. 게다가 일본은 남한에 냉전적 수구세력이 집권하여 남북관계가 긴장상태로 회귀하고, 북미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것이, 개헌을 통하여 '전범국가'에서 '전쟁 가능 국가'가 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경제보복은 현 집권세력의 경제성적표를 나쁘게 만들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하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있을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의 안보를 빌미로 한 무리한 수출규제는 다목적이며 계획된 프로세스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현대사를 규정하는 결정적 변수는 분단이다. 분단은 일제가 패망한 해방공간이 독립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독립이 통일로 이어지지 못해서 겪는 현실이다. 1945년 맥아더 사령관이 발령한 작전명령 4호에 의하면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 일본 본토와 구별하지 않고, "천황 및 일본 제국의 각종 통치 수단을 통해 통치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 제24군단 하지 중장이 조선총독부 주요관리를 유임시키고 총독부 행정기구를 통치기구로 사용한 이유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방 이후 전전긍긍하던 일제 협력자와 친일세력은 미군정에 편승함으로써 '친일'에서 '친미'로의 신분세탁에 성공했고, 일제 잔재 청산의 기회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친일세력이 특위 해체를 주장하면서, 특위가 조사해서 기소하고 최종 실형을 받은 자가 고작 10여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일제 청산이 미약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과의 이해관계의 일치로 친일세력이 국가의 요직에 다시 등용되면서 일제 잔재 청산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체결, 쿠데타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경제성장지상주의와 반공국가는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와 결합하면서 냉전세력을 형성했다. 친일 세력과 수구반공 세력이 동일한 역사적 기원을 갖는 이유이다.

극우적 사고의 반역사적·비민주적 행태는 '한국이 아베 총리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혐오 발언으로까지 연결되는 현실이다. 미·중·러·일과 북한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반역사적 사관의 극복과 냉전주의 장막의 제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없는 극일(克日) 정책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내일이 광복절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