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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대 이사장 지선 스님

민정주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9-10-30 제15면

"각성한 시민들 '걸림돌'에 저항하며 '민주화' 노력 계속해야"

지선 스님-집무실에서
1980~9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종교계 인사인 지선 스님은 "민주화 운동은 인류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이라며 "민주화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고 완성도 없다. 남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화다"라고 강조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한국 민주사 100년 소회는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 섣부른 자부심 경계
과거엔 이데올로기 미래엔 종교가 '방해 요소'

#진보 서초동-보수 광화문 '대립 상황'

헤게모니 쟁탈전 불과 둘다 민주화에 도움안돼
욕망 버려야… 헌신하지 않는 사회 장래 어두워



#교단 반대 무릅쓰고 헌신

수행 목적은 나만 깨닫는 것이 아닌 세속 구제
가르침은 '현실적인 모순' 극복하기 위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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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지선 스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사를 아우르는'민주·인권·평화 박람회'를 29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개최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이번 박람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전시, 포럼 등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100년사를 조망한다.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지난 2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6대 이사장 지선스님이 방장으로 있는 백양사를 찾았다.

단풍을 기다려온 상추객들이 벌써부터 산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눈에 담고, 지선 스님에게 한국 민주사 100년을 맞이하는 감회를 들었다.

지선 스님은 1980~9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종교계 인사다.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성공회 서울대성당 종탑에 올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같은 해 구속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초를 당했다.

30여년이 지난 지난해 비민주, 비인권의 상징물인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모했다. 

 

2022년 정식 개관을 목표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선스님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이 돼 이런 변화를 지켜봤다.

지선스님

# "민주화 운동은 인류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입니다."

10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아우르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때, 지선 스님은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섣부른 자부심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건 사·오십 년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란 말은 대한제국이 생길 때부터 나왔고, 북한의 나라 이름에도 민주주의란 말이 들어간다. 수백 년 전에 민주주의가 시작됐다는 서구사회에서도 비민주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민주화 운동은 인류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이상임을 강조했다. 


모든 사람이 역사와 사회의식에 각성해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한편, 민주화를 방해하는 것들에 끊임없이 반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그는 말했다. 민주화를 방해하는 요소로는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지목했다.

지선스님은 "과거에는 이데올로기가 민주화의 걸림돌이 됐다.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양극화해 민주주의를 묵살했다. 지금은 다극화를 거쳐서 다시 양극화로 가려는 것이 미국이나 중국의 생각이라고 본다. 그들은 양극화의 주의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또 미래에 이보다 더 문제가 될 것은 종교다. 미래에는 종교가 더욱 끈질기게 민주화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광화문 집회에서 헌금을 모금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은 과거 파시스트 정권 때는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만약 지금 부당한 계엄령이 발포된다면 그들이 광화문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민주화의 형식을 흉내 내며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시민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정치권력과 종교세력은 계속해서 부딪힐 것"이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각성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했다.

지선스님

# "우리나라는 아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지선스님은 민주화란 '남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민주화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고 완성도 없다.

진보세력은 서초동에서, 보수세력은 광화문에서 대립하는 상황을 두고 지선스님은 "주의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한 어느 쪽도 민주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공통점은 애국애민"이라며 "우리나라는 독립운동할 때까지는 보수가 있었지만, 이승만 이후로 보수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이승만 집권 당시 상당수의 일본 잔재 세력이 살아남았다. 애국애민과 정반대의 행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진보 역시 자기 고집을 버리지 못해 민주주의와 멀어지고 있다. 그들은 결국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경험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성숙했다고 평가하거나 혹은 '완성'을 거론하지만 지선스님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면 우선 나쁜 습관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미루지 말고, 내가 더 갖고 싶은 욕망, 내가 더 잘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장했는데, 그 수혜자들이 중산층이 되고 돈이 생기니 정치에 관심을 갖고 권력에 욕심을 부린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이다. 가진 자와 아는 자가 헌신하지 않는 사회는 장래가 어둡다. 한편으로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존논리가 강하니 각성이 힘들다. 그래서 민주화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꾸준히 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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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현실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지선스님이 민주화운동에 자신을 내던진 유신독재 시절, 천주교와 개신교가 반유신투쟁에 나설 때 불교는 침묵하고 있었다. 

 

16살에 출가해 나와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고 자기 구제를 위한 수행에 정진하던 지선스님은 교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외롭고 고달픈 시간이었다.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승려로서 그는 개인 수행과 중생구제가 동시에 가능할 수가 있는가, 개인 구원과 사회구원을 한 사람의 몸으로 이룰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해야 했다.

그는 "답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한용운 스님이나 계시면 찾아가서 물어봤을 텐데, 아무도 없으니 외로웠다. 다행스럽게도 승가대와 동국대 젊은 스님들이 열심히 함께 해줘서 외로움을 이겨내고 답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구한 답은 자비에 있었다. 지선 스님은 "수행의 목적은 세속을 구제하는 데 있다. 나만 깨닫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 아니다. 수행자는 결국 현실 참여를 해야 한다. 초월적인 논리나 가르침은 현실적인 모순, 업보와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회피하는 것은 초월이 아니다. 모든 것은 현실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현실참여를 하지 않고 수행만 하면 종교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지선스님은 어느덧 민주화 100년의 역사를 헤아리고, 촛불 혁명을 이루어낸 우리 사회가 앞으로 '모든 것을 넘어선 아름다움'의 의미를 깨닫고 추구해 나가기를 희망했다.

그는 "달라진 사회 현실에 따라 민주화운동도 변화하며 계속돼야 한다"며 "올해를 기념하고자 한다면 비본질적인 것,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착각하고 나만을 위한 주장을 고집하는 행동을 멈추고, 모든 생명이 나와 똑같이 공존공생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시작점으로 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지선 스님은?

▲ 백양사 승가대학교 졸업(1970년)

▲ 전남 영광 불갑사 주지(1972년)

▲ 제주 관음사 주지(1976년)

▲ 대학생 불교연합회 결성(1980년대)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6·10국민대회' 주도하다 구속(1987년)

▲ 전남 장성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1994년)

▲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제2대 이사장(2007~2010년)

▲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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