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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나태주 발행일 2020-02-07 제19면

공주문화원장 8년은 내 생애의 좋은시절
재정 돕기에 찬조금 걷던 일을 떠올리며
베풀며 사는 분들의 '나눔·배려심' 배워
자기가 못한다고 선행 헐뜯지는 말아야


나태주 시인--춘추칼럼 새필진 저장해주세요
나태주 시인
내 생애 가운데 좋았던 시절을 꼽는다면 우선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 초등학교 시절과 교장이 되어 8년 동안 시인 교장 소리를 들으며 살던 시절일 것이다. 거기다 더 하나를 보탠다면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 역시 8년 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며 지내던 시절을 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공주 태생이 아니다. 서천 출신인데 30대 초반부터 공주에 와서 사는 사람이다. 어느 고장이든 문화원장은 그 고장 출신을 앉히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자존심 높은 공주 사람들이 나를 문화원장으로 허락해준 것이다. 두고두고 감사한 노릇이다.

만약 나에게 문화원장 경험이 없었다면 나의 생애는 매우 단조롭고 조그마했을 뻔했다. 교직 생활은 어린 학생들과 엇비슷한 성향을 지닌 교직원들과 어울려 약간은 울타리 안에 갇혀진 생활이고 소극적인 생활이다. 하지만 문화원장은 어른들을 상대로 하면서 문화 일반에 폭넓게 관여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나의 생애는 비로소 문화원장의 날들을 추가해야만 어렵사리 완성된다고 본다.

내가 문화원장이 되어 시도한 일 가운데 하나가 찬조금을 많이 받아 문화원의 재정을 보다 부드럽게 하는 일이었다. 나부터 찬조금을 많이 내도록 노력했다. 그런 다음 그 찬조금 명세를 문화원 소식지에 상세히 밝혔다. 그것이 찬조금을 낸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찬조금을 더 많이 받아내는 길이라 여겼던 까닭이다.

몇 차례 찬조금 명세를 밝히고 났더니 조금씩 반응이 왔다. 소식지를 받아본 분들 가운데 생각이 깊은 분들이 찬조금을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찬조금은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찬조금이 들어왔다. 바로 이것이다 싶은 쾌재가 왔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것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회원 한 분이 말했다. 왜 찬조금 명세를 자꾸만 밝히느냐고. 그렇게 하면 안 낸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실은 찬조금을 낸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찬조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명세를 밝히는 거라고 대답해줬다. 그랬더니 그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많이 바꾸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 있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좀 생각해주어야 한다. 돈이나 학식이나 교양이나 지위나 권력이나 명예나 모든 면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그 반대편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 사람들을 배려해주어야 한다. 나누어 줄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나누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문화원장을 하는 동안 나에게 모범과 교훈을 보여주신 분이 한 분 계시다. 그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신데 내가 문화원장이 되면서 고문으로 모신 분 가운데 한 분이시다. 그분은 내가 문화원장이 된 뒤부터 해마다 상당한 액수의 찬조금을 주셨다. 그것도 당신이 손수 연금통장에서 돈을 찾아가지고 문화원장실로 와 살그머니 봉투를 놓고 가시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여러 가지를 깨치고 결심하는 기회를 가졌다. 가능하면 나도 선생님처럼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자! 여유 있는 돈이 생기면 그 돈을 문화계를 위해서 쓰자. 참 이런 생각은 이전의 나로선 불가능했던 생각이다. 선생님이 몸으로 본을 보여주셨기에 스스로 배운 결과이다.

그 뒤로 나는 해마다 수월찮은 액수를 문화계를 위해서 사용해오고 있다. 고향 서천에 신석초문학상 제정을 지원하고 미주의 시인들을 위해 해외풀꽃시인상을 제정하여 시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가끔 어이없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가 무슨 특별한 의도나 사심이 있어 그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나태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