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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3·끝)결국 문제는 '일자리']구조조정보다 나은 길… 함께 그릴 '큰 그림'

공지영·신지영·김준석 발행일 2020-02-14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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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누적 폭스바겐, 노조에 'Auto 5000' 제안
별도 생산법인 만들어 실직위기 근로자 채용
극한 대립서도 공동의 목표 공유 전략 '성공'

장시간 이어진 싸움… 사회 시선까지 '냉랭'
2009년보다 '강도 높은 자구책' 필요한 시점
모두가 바라는 건 오직 '일자리' 잊지 말아야

# Auto 5000

독일 폭스바겐의 생산공장 중 하나인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Auto 5000'은 국내 첫 상생형 일자리로 추진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의 모델이다.

Auto 5000은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 일자리를 창출한 상생 모델로 주목받았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폭스바겐의 경영악화, 구조조정 등 쌍용차가 처한 위기상황과 닮은 점이 적지 않아 참고해 볼 만하다.

1993년 독일의 자동차산업 침체로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생산량이 감소했다. 당시 5만4천명의 근로자가 근무 중이었는데 이 중 3만여명이 유휴인력에 달할 정도였다.

계속해서 적자가 반복되자 결국 1999년 폭스바겐은 구조조정과 같은 중대한 결단을 해야 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결정은 파격적이었다. 손쉽게 해고를 통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노조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공장 내 별도의 자동차 생산법인인 'Auto 5000'을 만들자는 것.

기존 폭스바겐 직원 임금의 80%만 받는 대신 임금을 줄인 비용으로 Auto 5000에 5천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 실직 위기의 근로자를 다시 채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주당 노동시간, 임금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특히 한 지붕 아래 2개의 회사와 각각의 노조가 설립돼 대립도 심했다.

하지만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독일 정부와 전문가들은 노사에만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노사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대안까지 제시하며 신뢰를 지켜 나갔다.

그 결과 2005년엔 Auto 5000의 신모델 '투우란'이 독일 미니밴 시장의 27%를 점유하는 커다란 성과를 내며 경영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또 폭스바겐이 Auto 5000의 채용·생산평가 등의 제도를 본사에 이전시키고, Auto 5000 법인까지 흡수 합병했다. 결과적으로 Auto 5000 근로자는 다시 '폭스바겐'에 돌아왔다.

광주형 일자리 정책 연구를 맡은 한국노동연구원도 Auto 5000의 성공 요인에 대해 "극한의 대립 속에서도 노사 모두가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라는 목표를 공유하면서 전략적 협상을 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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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평택 출고센터. /기획취재팀

# 상생의 대안, 가능할까

정부의 상생형 일자리 정책이 현재 쌍용차 위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2009년보다 더 강도 높은 자구책이 필요한 지금, 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다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문호 소장은 "'해고는 살인이다'란 말이 우리나라 상황에선 진실에 가깝다"며 "2009년에도 노사가 극단적인 대립상황까지 치달았던 건, 해고가 됐을때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너무 헐겁기 때문이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고 재기할 수 있는 여건조차 녹록지 않다는 것이 쌍용차 사태뿐 아니라 다른 노동현장에서 증명되지 않았나. 2009년과 비교해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2천646명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도미노처럼 지역 경제가 무너졌던 평택의 지난 10년은 우리 사회 안전망의 부재를 보여주는 증거다.

2011년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가 평택시·평택대학교와 진행한 쌍용자동차 해고자 실태조사 자료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주장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줬다.

쌍용차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했거나 무급휴직 또는 정리해고된 노동자 547명(전체 조사대상자 1천994명 중 547명 응답)을 대상으로 생활여건·심리상태 등을 조사했는데,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52.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중 9%는 '매우 자주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을 잃은 뒤 가족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8%가 '안좋아졌다'거나 '매우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엔 407명이 '경제적 부분'을 가장 힘든 이유로 꼽았고, '언제 취업될 지 희망이 없어서'가 216명, '가족들 보기가 힘들다'란 답변이 212명으로 뒤를 이었다.

해고노동자의 상당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것은 해고와 함께 찾아온 경제적 위기, 그로 인해 발생한 가정의 붕괴가 원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해고 이후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 '생계문제'와 관련해서는 실제 생활비 지출 규모보다 수입액이 적은 가정이 많았다.

'한 달 간 가족 생활비 지출'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200만~300만원'이라고 한 답변이 36.7%였던 반면 '한 달 간 총수입'은 '200만원이 안 된다'는 답변이 47.9%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렇다 보니 당시의 해고자들은 정부나 지자체에 생계비 지원과 구직과 관련된 도움을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평택시가 도움을 주기 바라는 부분'에 대해서 응답자의 30.9%가 '생계 지원비'라고 했고, 26.4%는 '직업 알선', 19%는 '자녀학비 지원'을 원한다고 했다. 

 

이 설문조사가 쌍용차 사태를 겪은 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실시한 조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지역내 서민경제의 어려움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됐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시민연대는 보고서를 통해 "정리해고와 무급휴직이 조치된 노동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구체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향후 재발될 수 있는 대량해고로 인한 사회불안을 억제하고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지금도 개선되지 않은 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긴 시간을 이어 온 싸움에 쌍용차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냉랭해졌다는 것이다. 

 

이은우 평택시민재단 이사장은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상하이차나 마힌드라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사실이다. 투자와 같은 실질적 행동을 하지 않은 것 아니냐. 외국 투자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덩달아 쌍용차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회의적으로 변해가는 게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며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쌍용차 직원과 평택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건 '일자리'다. 모두가 바라는 건 오직 일자리이고 불안도 일자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해서 자동차를 만들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 가족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돌고 돌아 다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시간을 되돌려, 2009년의 쌍용차가 근로자의 절반을 거리로 내모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쌍용차는 어땠을까. 2020년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