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뉴스홈

탑가기
[사건줌인]손님 카드 '깜빡' 꽂아둔 채 택시 운행한 기사, 범죄일까?
박경호 입력 2020-02-14 15:14:39
2019110701000461200021201.jpg
/연합뉴스

누군가가 잃어버린 신용카드나 휴대전화를 발견했을 때는 가까운 경찰서로 갖다 주는 게 상책이다. 다른 사람이 분실한 물건을 습득해 무턱대고 쓰거나 돌려주지 않으면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는다.

그렇다면 모르고 썼을 때는 어떨까. 요즘은 택시를 탈 때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등을 사용하는 '카드 결제'가 일반적이다. 택시기사들은 카드에 부착된 IC를 요금기에 달린 카드단말기에 접촉하거나 직접 카드를 단말기에 삽입해 결제한다.

손님이 건넨 체크카드를 단말기에 꽂고 결제한 뒤 깜빡하고 돌려주지 않은 채 그대로 택시를 운행한 60대 택시기사가 '점유이탈물횡령', '컴퓨터등사용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맡은 인천지법 재판부는 최근 택시기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쏘나타 택시를 운행하는 A(69)씨는 2018년 11월 24일 저녁 무렵 인천 시내를 돌다가 손님 B씨를 태웠다. 목적지에 도착한 손님은 요금을 내기 위해 A씨에게 자신의 체크카드를 건넸다. 카드를 받은 A씨는 IC를 단말기에 접촉했지만, 결제되지 않자 직접 단말기에 꽂아 결제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정신이 없던 A씨는 깜빡하고 단말기에 삽입된 B씨의 카드를 돌려주지 않았다. B씨 역시 카드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택시에서 내렸다. A씨는 단말기에 B씨의 카드를 꽂은 채 계속 택시를 운행했다.

이후 A씨는 다른 손님을 태우면서 카드를 받아 택시 단말기에 접촉해 결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카드 단말기에 꽂혀있는 앞선 손님 B씨의 카드로 계속 결제가 이뤄졌다. 그렇게 A씨는 2시간 동안 B씨의 카드로 6차례에 걸쳐 2만9천100원의 다른 손님들의 택시비를 결제했다. 실제 카드 주인 B씨는 휴대전화에 계속 뜨는 '택시요금 결제 메시지'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경찰에 카드 도난신고를 했다.

검찰은 A씨가 B씨의 체크카드를 습득한 뒤 돌려주지 않고 뒤이어 택시에 태운 다른 손님들의 요금을 B씨 체크카드로 결제해 2만9천100원의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하며 '유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실수로 카드를 돌려주지 못했다"며 "다른 손님을 태운 뒤 해당 손님들의 카드를 단말기에 접촉했는데, 이미 삽입된 피해자의 카드로 결제가 이뤄진 것"이라며 고의로 저지른 범행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A씨가 무죄라고 봤다. 재판부는 "불특정인이 탑승했다가 하차하는 택시 운행의 구조상 피고인이 특별히 피해자가 하차한 이후의 승객을 대상으로 운임을 면제할 의도였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피해자가 하차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도 자신의 체크카드를 챙기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의 부주의가 개입됐을지언정 형사책임의 전제로 요구되는 고의가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며 "피고인은 체크카드를 발견하고 경찰서에 자신의 인적사항과 함께 습득물 신고를 했다"고 무죄 판단 이유를 밝혔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