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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흔이 된 동생 "마지막일까봐" 형에게 절을 올리다

김민재 발행일 2020-02-17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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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준 화백의 동생 석중씨가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조선화가 아카이브Ⅰ황영준 展-봄은 온다'에 찾아와 형의 두상에 헌화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황영준 인천전시 다시 찾은 석중씨
"능라도의 소나무, 형의 모습 보여"
나란히 선채 기념촬영 뭉클한 재회


전쟁의 포화 속에서 형과 헤어졌던 약관의 동생은 백발 노인이 되었다. 1주일 뒤에 오겠다던 형이었다. 북한으로 갔던 형은 70년이나 지나서야 그림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 아흔이 된 동생은 말없이 형에게 절을 올렸다.

지난 14일 북한 최고의 조선화가로 평가받는 화봉(華峰) 황영준(1919~2002) 선생의 작품전(조선화가 아카이브Ⅰ황영준 展-봄은 온다)이 열리는 인천문화예술회관에 선생의 막냇동생 석중(90)씨가 찾아왔다. 지난달 30일 방문 이후 두 번째였다.

한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온 석중씨는 전시장 입구에 놓인 황영준 선생의 두상 앞에 헌화했다. 이어 모자를 벗은 뒤 두 번 절을 올렸다. 그동안 제사도 올리지 못한 형의 얼굴을 보고 처음 하는 절이다.

충북 옥천에 사는 석중씨는 "내가 벌써 아흔인데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몰라 형을 다시 보기 위해 인천에 왔다"며 "처음 왔을 때는 너무 감개무량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다시 한 번 찬찬히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황석중씨는 이번 전시회에 걸린 200여 점의 작품 중에 유독 한 작품에서 형의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황영준 선생이 1992년 그림 '능라도의 소나무'.

가로 43㎝에 세로 54㎝의 그림은 백두산 천지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꽃과 새 그림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작품이다.

푸른 소나무 줄기 가운데 아래로 뻗은 가지는 색이 덜 칠해졌는지 일부러 시듦을 표현했는지 어딘가 힘이 빠진 모습이다. 석중씨는 "소나무 같은 형이 가족을 그리워할 때는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고 해석했다.

황석중씨는 처음에 형의 그림이 인천에 온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다. 경인일보의 취재도 거절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이날 흔쾌히 카메라 앞에 형과 나란히 섰다.

70여 년 전 화구를 짊어지고 형을 따라 전국 곳곳으로 그림을 그리러 다녔던 시절처럼 형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 전시 관계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시장의 한쪽 벽에는 그동안 다녀간 방문객들이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오길 원하는 마음을 적은 메모지가 한가득 붙어있다.

"어서 통일이 되어서 서로 오고 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는 글과 "남북이 하나 되는 봄을 기다리며…"라는 글이 70년 동안의 석중씨 마음을 대신하는 듯했다. '조선화가 아카이브Ⅰ황영준 展-봄은 온다' 인천 전시회는 18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