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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7)윤이상]아시아 최초 유럽 음악계 인정받은 작곡가

김영준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20-03-20 제1면

간첩으로 몰린 동백림 사건 겪어
정치·사회적 표현 150여편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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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1917~1995)은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럽 음악계의 인정을 받은 첫 작곡가였다. 그는 서양 모더니즘 음악기법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적 이미지를 구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해방 이후 부산과 통영에서 음악교사로 있었던 윤이상은 1957년 유럽으로 떠났다. 1966년 독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초연된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예악(Reak·禮樂)'은 윤이상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줬다.

윤이상은 1960년대 들어서 펜데레츠키와 리게티 등이 추구한 음향작곡(Klangkomposition) 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우리 전통음악에서 유래한 여러 요소들, 즉 미분음과 비브라토(농현), 장식음 등이 가미된 독특한 음향 세계를 선보이며 서양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67년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 북한에 다녀온 윤이상을 간첩으로 지목해 강제로 데려왔다.

북한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 평남 강서군의 강서대묘에 있는 고구려의 사신도를 보고 돌아온 윤이상에게 징역 10년이 최종 선고됐다. 윤이상은 옥중에서도 작곡을 이어갔다.

사신도를 보고 받은 영감을 실내악곡 '영상(Images)'에 담아냈다. 1968년 탄생한 이 작품에서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는 하나이자 넷으로 어우러지며 다채롭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곡가는 후일에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채로 빛났고, 넷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세계 음악계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2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윤이상은 이후 정치·사회적 경험들을 명확한 음악 언어로 구사했다.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축하작이었던 오페라 '심청'을 비롯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하라',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분신한 사람들의 넋을 추모한 '화염에 휩싸인 천사와 에필로그',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 15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작곡가 이건용(73)은 윤이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윤이상은 큰 인물이다. 그래서 전체를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통일운동가로서의 그를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작곡가로서의 그를 얘기한다. 또 다른 사람은 현대작곡가인 그를, 다른 사람은 민족음악가인 그를 주목한다. 그의 대강을 짐작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심이 모여서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룰 때에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는 크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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