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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잊지 말아야 할 것

전호근 발행일 2020-05-19 제18면

코로나로 美 일간지 부고 2배 이상
인류 진화사상 죽음의 경고도 의미
바이러스와 온몸 투쟁 역사에 동참
고대 로마 개선행렬 '메멘토 모리'
승자와 모든 산자들에 대한 경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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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미국의 어느 일간지에 16개면에 달하는 부고(訃告)가 실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가 많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 한다.

기사에 실린 해당 신문의 부고면 사진이 또렷하지 않아 내용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부고면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이라면 저명한 인사들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라면 신문 기사에 이름이 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부고면에는 부고 당사자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삶이 적혔을 법한 짧은 글들이 빼곡히 배열되어 있었는데 지면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신문의 부고면은 일종의 묘비명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묘비명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건 동서양을 통틀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의 '사생활의 역사'에 따르면 서양의 경우 19세기에 접어들어서야 자기 자신만을 위한 독창적인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개별화된 묘비명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점은 이름을 각별히 중시하는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해야 세울 수 있는 5천자가 넘은 신도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글자를 새기는 묘갈명이나 묘지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양반 신분 계층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작품에서나마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일러야 패관 문학이 유행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이었으며 묘지명을 새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생각해보면 인류는 진화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병원체와 싸우며 삶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어쩌면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의미 없는 삶이 없듯 의미 없는 죽음도 없다. 그들이 죽음으로써 경고해주었기 때문에 인류가 위험을 인지하고 생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치료하거나 돌보거나 떠나보내며 인간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어떤 사람은 살아남았고 어떤 사람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죽은 이들이 이번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온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웠다는 사실이다. 그들 또한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 동참한 것이다.

고대 로마의 공화정 시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성대한 전차 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성대한 전차 행렬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는 장군의 옆 자리에 앉아 쉴 새 없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외치는 한 사람의 노예였다. 모든 사람이 승자의 영광을 구가할 때 그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되뇌는 까닭은, 승자의 영광이란 전쟁터에서 죽은 모든 이의 죽음을 딛고 선 것이며, 장군 당신 또한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 분명하니 그들 앞에서 결코 오만하지 말라는 경계였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끝이 있는 것이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사망률 100%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메멘토 모리'는 승자의 오만에 대한 경고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이에 대한 경계다. 죽음이 저토록 가까이 있는데 마치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거니와, 우리 모두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우리가 왜 서로 연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려주는 절실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신문의 부고면은 내 이름 또한 언젠가 저곳 한 귀퉁이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 이후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기억할 것이다. 반드시 그들의 이름이 부고면에 실려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 이름이 반드시 빠져야 할 이유 또한 없다는 사실을.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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