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후 주택난 해결·종부세 폭탄 등
정국 현안에 '사이다 발언' 쏟아내자 깜짝
"장사꾼도 손실 감수" 무공천 언급땐 압권
이틀후 "의견과 주장은 달라" 변심에 실망 |
이영재 주필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후, 주요 정국 현안에 대해 발언을 쏟아내자 모두 깜짝 놀랐다. 이 지사의 '사이다 본능'이 더 강력하고 신선해졌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판결 다음날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되는 걸 로또에 비유하면서 "집값은 못 잡고, 전국적으로 분양 광풍만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발 더 나아가 대안도 제시했다. 그린벨트 해제 대신 도심 재개발이나 용적률 상향 조정으로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역시 대치동 '일타 강사' 뺨치는 발언이었다.
종부세 폭탄과 관련해서도 사이다 발언이 이어졌다. "비싼 집에 사는 게 죄인가. 집값 올랐다고 마구 세금을 때리면 안 된다. 주택은 가격보다 숫자, 숫자보다 실거주 여부를 따져 중과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실거주 1가구 1주택이 고가라는 이유로 압박하고 제재하는 방식을 동원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집 한 채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던 50· 60대들은 이 지사 말에 감동했다.
이 지사의 정치감각이 '천부적'이라는데 누구나 동의한다. 홍준표 의원보다 두 수 정도 위라는 말도 있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열광시키는 방법을 이 지사는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을 넘어 중도층까지 아우르기 위해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불러올 파장도 분명 예상했을 것이다.
그 다음 날 발언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 지사는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며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서울·부산시장 공천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지사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그분(이낙연)은 엘리트 출신이고 난 변방의 흙수저"라고 말했다. 이낙연 의원과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의원에 대한 공개 도전장으로 비쳤다. 이 발언에 충격을 받은 건 이낙연 의원도, 청와대도 아니다. 통합당 지지자까지 포함한 중도층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정책으로 전전긍긍했었는데 이 지사의 사이다 발언에 얹혔던 체증이 한순간에 꺼졌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날 밤, 지인들과 소통하는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평소 이 지사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한 지인이 "나 이재명 좋아질 것 같아"라며 마치 커밍아웃하듯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두세 명이 이 말에 동조하면서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물론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부류도 있었지만, 머리 좋고 상황 판단 빠른 이 지사가 무심코 이런 발언을 하진 않았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거칠다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냥 쇼 한번 하겠다고 저런 무리수를 두겠냐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지사의 발언이 화제였다. 통합당에 변변한 출마자가 보이지 않는데 이 지사가 정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면 굳이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호불호가 분명한 이 지사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권력을 잡는다면 신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것도 그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날 실시간 검색 상위에 오르는 등 이 지사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우리는 2016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기억한다. 문 후보는 라디오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을 칭찬하며 "제가 들어도 시원할 만큼 사이다가 맞다"면서 "분명하고 위치 선정이 빠르고 아주 훌륭한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이 지사는 대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정치인이다. 이 때문에 '포퓰리스트'라는 말도 듣긴 하지만 지금 대중이 원하는 건 이 지사처럼 의견이 분명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틀 후 이 지사는 자신이 했던 공천과 관련된 발언을 뒤집었다. "나는 무공천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말도 그렇지만, "의견과 주장은 다르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정치는 이 지사 말대로 '생물'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그 단톡방이 또다시 뒤집어졌다. "나 이재명 좋아질 것 같아"라며 몹시 흥분했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 이재명 좋아질 뻔했어. ㅜㅜ"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