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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24)]버드 스트라이크

박경호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20-07-30 제12면

겁없이 날아든 한마리, 수톤의 충격… 첨단장비 비웃는 새떼와 24시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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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이착륙시 항공기와 충돌 자칫 대형사고
조류, 소음커도 30m 접근해야 회피 습성
'허드슨강의 기적' 엔진 빨려든 새 원인

인천공항, 전담직원 30명 900만㎡ 담당
산탄엽총·음파퇴치기 동원… 일부 포획
"새들도 학습… 불규칙하게 순회 단속"
인근 습지 등 환경요인 분석·관리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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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가 공항에서 이착륙할 때면 새 한 마리조차 공항구역 안으로 들어와선 안 된다. 새가 항공기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고장을 일으키거나 기체와 충돌하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비행기와 새가 공중에서 충돌하는 이른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는 하늘에서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상황 중 하나다.

인천국제공항도 개항 후 20년 가까이 365일 24시간 새떼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활주로와 유도로, 계류장, 관제탑 등 인천공항 내 접근이 제한된 공간인 '에어사이드' 면적은 축구장 1천265개 규모인 약 900만㎡로 광활하다. 인천공항에서 버드 스트라이크를 막기 위해 새를 쫓는 사람들이 있다.

인천공항 야생동물통제관리소 소속 전담 요원 30명이 그들이다. 모두 수렵 면허증을 갖추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베테랑이다.

7월15일 오전 인천공항 활주로 인근 초지에서 만난 야생동물통제관리소 요원들은 허공을 향해 산탄 엽총을 겨누고 있었다.

"빵!" 새떼를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되도록 위협사격으로 공항 밖으로 쫓아내는 게 우선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유효 사거리가 50m로 짧은 엽총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음파퇴치기' 1대를 도입했다. 조류가 싫어하는 음파를 쏘는 기기다.

음파퇴치기는 사거리가 600m에 달해 항공기가 운항 중일 때 주로 사용한다. 요원이 다가갈 수 없는 활주로 등으로 날아든 새를 쫓기에 효율적이다. 음파퇴치기는 사람이 들어도 귀가 얼떨떨할 정도다.

연중기획 인천공항 조류퇴치
인천국제공항 야생동물통제관리소 요원이 첨단 장비인 음파퇴치기를 가동하고 있다.

그렇다고 음파퇴치기만 이용한다면 새들이 학습 효과로 적응하므로 엽총 퇴치 방식과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김진현 인천공항 야생동물통제관리소장은 "새를 직접 포획하는 것보다는 특정 장소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시켜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며 "물론 포획가능한 새들로 한 두 마리 정도는 실제로 잡아야 해당 장소가 위험한 줄 알고 새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6년 영화로도 제작된 항공 사고인 '허드슨강의 기적'(Miracle on the Hudson)은 새가 비행기를 불시착시키는 상황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2009년 1월15일 오후 3시25분께 미국 뉴욕 인근 라과디아공항을 출발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향할 예정이던 US 에어웨이스 소속 에어버스 A320 여객기가 이륙한 지 2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했다.

이 여객기에는 승무원과 승객 155명이 타고 있었다. 42년 경력의 베테랑 체슬리 설렌버거(Chesley sullenberger) 기장이 미끄러지듯 강에 비상 착수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엔진 고장의 범인은 다름 아닌 '캐나다 기러기'(Canada Goose)였다.

보통 시속 370㎞로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항공기에 900g짜리 청둥오리 한 마리가 충돌할 때 항공기가 받는 순간 충격은 4.8t으로 계산한다. 엔진이 아닌 항공기 기체나 유리에 부딪히더라도 기체가 움푹 패거나 깨질 수 있다.
청둥오리보다 훨씬 큰 캐나다 기러기(6.5㎏까지 성장) 여러 마리가 엔진에 충돌하듯 빨려 들어갔으니 엔진이 박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항공기 프로펠러의 일종인 팬 블레이드가 버드 스트라이크로 휘어지면 공기가 엔진 속을 부드럽게 흐르지 못해 정체하거나 역류하는 '서징'(Surging) 현상 등으로 엔진을 멈추게 하는 고장을 일으키게 된다.

1995년 알래스카 미 공군기지에서 승무원 24명을 태운 조기경보통제기 E-3가 이륙 2분 만에 캐나다 기러기떼와 충돌해 추락했고, 승무원 전원이 숨졌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할 예정이던 여객기가 호찌민공항 도착 직전 상공에서 버드 스트라이크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서 승무원과 승객 233명이 탄 우랄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 직후 갈매기떼와 충돌해 옥수수밭으로 비상 착륙했다. 탑승자들은 무사했다. 이처럼 버드 스트라이크는 새가 날지 않는 높은 고도보다는 이착륙 당시에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왜 새는 덩치가 크고 소음도 심한 비행기를 피하지 않고 충돌하는 경우가 잦을까. 자연 상태에서 새들은 천적이 다가오더라도 크기·속도와 관계없이 일정 거리 이내에 접근해야만 피하는 습성이 있다.

그 거리는 대략 30m라고 한다. 그보다 멀면 반응하지 않는데, 천적도 아닌 비행기가 다가오는 것을 새가 굳이 30m 밖에서부터 피할 이유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특히 비행기가 시속 300㎞ 이상의 빠른 속도로 날아들고 팬 블레이드가 돌아가면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자그마한 새가 30m 안으로 접근한 기체를 피할 재간은 없다.

인천공항에서 발생한 조류 충돌 사례는 2015년 9건, 2016년 11건, 2017년 9건, 2018년 20건, 2019년 17건이다. 이 기간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한 항공기 피해나 운항 장애는 없었다. 번식기 이후 새로 태어나는 조류가 많고, 철새가 인천공항 인근을 지나는 8~10월 버드 스트라이크가 집중된다.

야생동물통제관리소가 지난해 분산·퇴치한 새들을 월별로 살펴보면 1~3월 1만2천343마리, 4~6월 1만4천730마리, 7~9월 3만4천994마리, 10~12월 2만2천603마리다.

인천공항 일대에는 백로과, 오리과, 맹금류, 도요새·물떼새과, 갈매기과, 꿩, 까치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텃새인 종다리와 충돌하는 일이 가장 빈번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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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예방은 과학적 접근과 함께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8명씩 3개 팀으로 구성된 야생동물통제관리소는 시간과 동선을 규칙적으로 정해 움직여선 안 된다. 새들도 학습하기 때문에 요원들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동선으로만 활동한다면, 새들은 그 빈틈을 노려 출몰한다.

그래서 24시간 동안 불규칙하게 수시로 에어사이드 내를 순회하면서 활동한다. 에어사이드 바깥에서는 수렵 면허를 가진 야생생물관리협회 회원들이 버드 스트라이크 예방 활동을 돕고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벌레들이 땅 위로 올라와 새들이 많아진다. 공항 내 풀이 긴지 짧은지에 따라 몰려드는 새의 종류가 다르다. 계절별로도 다르다. 야간에는 수리부엉이 같은 야행성 조류를 경계해야 한다.

이처럼 인천공항 주변 조류의 서식·활동 특성을 요원들이 익혀야 효율적으로 버드 스트라이크를 예방할 수 있다. 야생동물통제관리소는 한 해 평균 10만마리 정도의 새를 공항 밖으로 쫓아내고, 연평균 530여마리의 야생동물을 잡고 있다.

새만 잡는다고 끝이 아니다. 야생동물통제관리소는 공항 외곽을 계속 이동하면서 조류 서식 여부를 파악하고, 습지와 농경지 등 야생동물을 공항으로 유인하는 환경적 요인을 분석하는 '랜드사이드' 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2001년 인천공항 개항 때부터 야생동물통제관리소에서 근무한 김진현 소장은 "개항 초기에는 현 스카이72 골프장 자리가 습지라서 오리떼가 엄청나게 많이 살았는데, 골프장이 조성되면서 사라졌다"며 "인천공항 주변 개발로 조류 서식 환경도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서식지 관리·연구도 중요한 임무"라고 설명했다.

항공기 기체 등에서 조류의 사체 등 버드 스트라이크 흔적이 발견될 때도 야생동물통제관리소 요원들이 사체·혈흔·깃털 등을 채취해 인천 서구에 있는 국립생물자원관에 DNA 분석을 의뢰한다. DNA 분석을 통해 조류의 종류는 물론 버드 스트라이크가 한국에서 있었는지, 국외에서 있었는지 파악해 조류 통제 활동에 활용한다.

인천공항공사, 서울지방항공청, 항공사, 학계는 조사 보고서와 분석 자료 등을 종합해 과학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2018년 공군, 한국공항공사, 학계 등 국내 공항 조류 통제 전문가 30여 명으로 구성한 야생동물통제관리협의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고라니 같은 육상 동물은 또 다른 골칫거리다. 외부에 있는 고라니가 공항구역 담장을 넘어들어올 가능성은 적지만, 영리하게도 에어사이드를 출입하는 차량의 뒤를 몰래 따라와 침입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공항구역으로 들어오려는 고라니를 다치지 않게 포획하고자 발이 빠지는 발판을 설치했다.

연중기획 인천공항 조류퇴치
인천국제공항 야생동물통제관리소 요원들이 지난 15일 인천공항 에어사이드 초지에서 엽총과 음파퇴치기를 통한 조류 퇴치활동을 시연하고 있다.

버드 스트라이크 대응책은 첨단화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올해 안에 음파퇴치기 1대를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포획을 지양하는 페인트볼건, 버드볼 및 레이져건 등의 조류통제장비를 도입할 예정이다.

유덕기 인천공항공사 운항안전팀장은 "해외 국제공항에서 활용하고 있는 레이저건 등 첨단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관련 당국과 협의 중"이라며 "친환경적이면서 과학적인 버드 스트라이크 예방 대책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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