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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를 구하지 마세요]숨막히는 어른세상서 잠든 아이들… 그들을 위한 레퀴엠
김종찬 발행일 2020-09-03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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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틀빅픽처스 제공

경제적 빈곤 때문에 자녀와 극단선택 '실화' 모티브
주인공 선유의 어두운 삶, 아동 시선 거치며 무뎌져
평범한 어른의 삶이라도 폭력적… 주변의 관심 강조

■감독 : 정연경

■출연: 조서연, 최로운, 양소민, 선화

■개봉일: 9월 10일

■드라마 / 12세 관람가 / 97분

겉으로 표현한 내용과 속마음에 있는 내용을 반대로 표현하는 수법을 '반어법'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어른들의 눈치를 볼 경우 '반어법'을 자주 사용한다.

이에 반해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전달하고, 나아가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지난 2016년 9월 대구에서 일어났던 비극적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한 소녀와 그를 구하고 싶은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숨진 모자의 집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에 슬퍼하던 아이의 심정이 담긴 메모가 발견되면서 대중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이 영화 역시 경제적 빈궁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회 문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어른들의 시선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팍팍한 삶을 사는 평범한 어른들의 삶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과장하지 않고 그린다. 부모의 고통은 가족의 고통이 돼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면서 전형적인 가족영화의 외피를 두른다.

영화는 또 다양한 어른들의 초상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빌려준 돈을 받으러 찾아오는 엄마의 친구,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간 슈퍼마켓에서 돈 대신 먹을거리를 담아주는 슈퍼마켓 아주머니의 사정 등을 보여주며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이어 초등학생인 딸 '선유'에게 술을 권하고, 경제적 사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며 우울과 불안을 전가하는 엄마 '나희'를 담담하게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반어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선유'의 삶은 아이의 시선을 거치면서 다소 무뎌지기도 하고, 때론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정국'과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따뜻한 마음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지시킨다.

영화 속 '선유'의 말인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사실 '구해달라'는 간절한 구조요청이었던 것이다.

연출을 맡은 정연경 감독은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비극적 사건에서 실제 아이가 남긴 메모에는 '내가 죽거든 색종이와 십자수 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세요'라는 글이 적혀있었다"며 "이 메모를 남기며 그 아이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