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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흑산' 일본어판 완성한 도다 이쿠코 인천관동갤러리 관장
김영준 발행일 2020-10-07 제20면
남주기 아까운 김훈 번역 "日 젊은이들, 한국소설 행간 읽는다"

공감인터뷰 도다 이쿠코 관동갤러리 관장
인천 관동갤러리 건물은 여러 세대가 지붕과 벽체를 공유하는 전형적인 '나가야(町屋)' 형식의 일제시대 서민 주택이다. 왼쪽은 도다 이쿠코 관장 부부가 사는 살림집이며, 오른쪽은 갤러리로 쓰고 있다. 도다 관장은 살림집을 2013년 3월 인수해 살다가 다음 해 1월 오른쪽 집을 추가로 사들여 1년여의 공사를 거쳐 갤러리로 꾸몄다. 특히 두 집을 관통하는 대들보 2층 천장 합판을 뜯어 지붕이 보이도록 개방한 뒤 바닥을 보강해 서재로 꾸몄다. 도다 관장이 다락 공간에서 포즈를 취했다.

2010년부터 아사히신문 기고 계기 한국 베스트셀러 거의 다 읽기 시작
갤러리·집필 이중생활 고충에 중국行 "원작 여운에 현실 복귀하기 싫어"
경색된 양국관계 '대화'가 해법 "우리같은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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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처음으로 '흑산'을 읽었을 때의 떨림은 번역을 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절해고도에 유배된 유학자, 섬에서 자란 맑은 눈동자의 청년, 옹기장이 남자, 도망치는 노예,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선장 등 이들은 당시 책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인물들이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김훈 작가 나름의 문체에 빨려들어 깊은 심연의 세계를 헤매다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내 길고 긴 번역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 소설 '흑산'의 일본어 번역자 도다 이쿠코의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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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했으며,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관동(官洞)갤러리(인천 중구 신포로 31번길) 관장이기도 한 도다 이쿠코(61)씨는 지난해 김훈 작가의 장편 소설 '흑산(黑山)'의 번역을 마쳤다. 

 

도다 관장의 번역본 '흑산'은 지난 2월 출판돼 일본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관동갤러리에서 도다 관장을 만났다. 코로나19로 인해 갤러리는 휴관 중이었다. 인사를 나눈 후 추석 연휴에 예정한 일정을 묻자 "원고 마감할 게 있고, 추석 당일엔 남편(사진작가 류은규)과 함께 서울의 시댁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했다. 여느 기혼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답이었다.

소설 '흑산'에 관한 이야기를 도다 관장과 나눴다. 김훈 작가가 '남한산성' 이후 4년 만에 쓴 역사 소설인 '흑산'은 1800년을 전후한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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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 관장은 2010년부터 '아사히 신문'의 주말판 속지인 '글로브(Glove)'에 한국의 베스트셀러 서적을 소개해 왔다. 세계 곳곳에 있는 필자들이 돌아가면서 현지 베스트셀러를 소개하는 신문 지면에 도다 관장은 3개월에 한 번씩 한국 베스트셀러를 소개했다.

해당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위까지의 작품이 표기되고, 그중 한 권에 대해 도다 관장의 상세한 소개와 평이 게재되는 형태다. 신문의 인터넷판에선 세 권의 평을 볼 수 있다.

도다 관장은 "베스트셀러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단순한 책 소개는 아니고, 그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그는 "2010년부터 이 글을 쓰면서, 한국의 베스트셀러는 거의 다 읽기 시작했는데 그 이듬해에 '흑산'이 나왔다"면서 "'흑산'을 만나고 나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배경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흑산' 만한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감인터뷰 도다 이쿠코 관동갤러리 관장

이미 번역을 여러 권 한 도다 관장은 역사 소설 번역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쉽게 번역하겠다고 나서지 못한 이유다. 두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도 책 속에는 이해하기 힘든 당대 언어를 비롯해 역사적 사실, 풍습과 같은 언어 외적 요소까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한국 소설이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어요. 때문에 번역가들도 많죠.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도 일본어판이 나와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흑산' 만큼은 다른 번역가에게 주기 싫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훈 작가 특유의 문체에 담긴 강한 힘을 일본 독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번역하기로 결심하고선 일본 출판사에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도다 관장은 근대일본사를 전공했다. 대학 3학년이던 1983년 우연히 서울 연수 기회를 얻어 한국 곳곳을 여행하면서 처음 '일제의 만행'과 맞닥뜨렸다. '도대체 왜?'란 의문 속에 한국 유학을 결정했다. 한국 근대사에 관한 이해와 함께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더욱 깊게 알게 됐다.

"소설의 배경인 1800년을 전후한 조선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주변의 천주교 성지도 다녀오고 자료도 찾았어요."

도다 관장은 2017년 개최된 영화 '남한산성' 시사회를 마치고 김훈 작가와 첫 만남을 가졌다.

"작가님과 한국·일본 출판사 관계자와 함께 만났어요. 긴장을 많이 해서 작가님과 많은 대화는 못 나눴어요. 책에 친필 사인은 받았죠(웃음). 한국 출판사 편집장님이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주셨어요.

한데 그분이 유학생일 때 저를 알고 계셨어요. 당시 다른 출판사에 계셨는데, 제가 고려대 사학과에 다닐 때 쓴 글을 본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한 30년 전 기억을 떠 올려 주셔서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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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번역에 들어갔지만, 관동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번역에 집중하려니 마음대로 안 됐다.

"초벌 번역 후 집중해서 문장을 다듬어야 하는데, 갤러리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전화받고, 메일 답장을 써야 하는 등 소설에 빠져들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선택한 게 중국에 혼자 건너가 한 달 정도 작은 방에 칩거하면서 번역을 마무리하는 거였어요.

1800년대 조선에 빠져있다가 번역을 한 후 현실(2019년 인천)로 돌아와야 하는데, 소설의 여운에 빠져서 현실로 돌아오기 싫었을 정도였어요."

번역 후 지난 2월 책 출간으로 이어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홍보 이벤트가 진행되지 못했다. 3월 서울에서 일본 평론가들과 한국 문학팬들의 행사에 이어 4월엔 김훈 작가와 함께 도쿄, 오사카에서 북콘서트를 열 예정이었다. 이달엔 일본 독자들과 흑산도에 가는 일정도 기획됐지만, 무산됐다.

"책 홍보를 할 수 없어서 아쉬워요. 얼마 전 인터넷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일본 평론가들, 일본 독자들과 가진 간담회를 통해 소설의 배경과 종교, 김훈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이번 인터넷 간담회를 통해 한국 소설이 일본에서 참 인기가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평론가들과 나눈 이야기인데, 1988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 음식과 문화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소개됐어요. 2000년대 들어선 K-팝과 한류 드라마가 대세가 됐습니다. 한국 음식점도 많이 생겼죠.

이런 과정을 지켜본 세대가 성숙하면서 이제 한국 소설을 보는 걸로 분석됐어요.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다르지만,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소설을 이해했던 거죠."

공감인터뷰 도다 이쿠코 관동갤러리 관장

끝으로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에 대한 도다 관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양국이 역사와 경제 문제 등으로 최근 들어 관계가 경색돼 있지만, 서로 만나서 대화하면 풀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왕래할 수 없는 부분이 아쉽죠.

일본 언론의 보도를 통해 활자화된 부분을 대중은 믿고, 오히려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을 알려야 합니다. 우리 같은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죠.

한국 소설을 보는 일본 독자들은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독자들에게 깊은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한 방식으로 '흑산'도 널리 알릴 겁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도다 이쿠코 관장은?


일본 나고야 인근 아이치현 도요하시에서 태어난 그는 1983년 한국에 유학 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근대사를 전공했고, 일제시대의 진상을 알기 위해 만주지역 조선인 항일운동을 연구하면서 중국에서 8년을 보냈다.

 

유학생 시절부터 일본 신문, 잡지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글을 기고해왔으며, 일본과 한국에서 15권의 단행본, 일본에서 17권의 번역본을 출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11년째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15년 1월 인천 관동갤러리를 개관해 해마다 이곳을 찾는 300여명의 일본인과 중국인한테 개항장답사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다. 

 

도서출판 토향을 운영하며 '모던인천', '80년 전 수학여행', '연변문화대혁명' 등 역사자료를 비롯해 한국 민요를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악보집 '소리길 찾아서-남도, 경기, 서도 민요' 등 문화를 전하는 책을 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