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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상자 속에 가둘 수 없는 민심
윤인수 발행일 2020-10-13 제19면
스키너 "조작된 조건 인간행동 통제 가능"
진보세력, 보수 부정적 시그널로 선거 승리
文정권, 문팬 지지·보수현실 안주할때 아냐
'적폐' 실망한 대중들 상자밖 세상 의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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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실장
지난 1월부터 국민은 정부의 방역정책에 순종하고 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공포로 정부의 통제를 거부하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마스크를 벗었다가 아내에게 혼난 적이 여러 번이다. 100m 이상 떨어진 사람을 의식해 마스크를 쓰라는 아내의 지적은 논리보다는 사회적 분위기, 감성의 영역이다. 감염 사정거리를 벗어났다는 논리적 반박이 먹히질 않는다. 자율방역이라는 자유의지를 주장하기엔 집단감염의 공포감이 워낙 크다.

하지만 개천절과 한글날, 차벽으로 봉쇄된 광화문 광장과 인파로 붐빈 행락지 풍경의 대조는 방역정책에 스며있는 정부의 선택적 의지를 직감케 한다. 정치 집회의 자유는 제한하면서 행락의 자유는 허용하는 정부의 선택적 방역행정은 방역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의심이다. 온몸으로 민주주의 권리를 쟁취한 국민들이 행락의 자유를 즐기며 제한되는 집회의 자유를 무심히 넘긴다. 자유에 대한 정부의 취사선택을 국민이 수용하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 코로나19로 가능해졌다.

권력의 선택적 행동은 방역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국방부는 월북이 의심되는 공무원이 서해를 표류하다 북한 수역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사살된 뒤 소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국방부가 밝힌 최초의 진상과 멀어지고 있다. 정부는 월북을 추정하는 정황만 반복하면서, 북한이 부인하자 소각됐다던 시신을 찾느라 20여일간 서해를 수색 중이다.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도 그의 표류는 실족이 아닌 월북이라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정부의 선택적인 정보 공개에 피살 공무원의 인간적 존엄은 무너졌다.

검찰개혁에 올인한 권력의 전략적이고 선택적인 법무행정은 사정기관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 조국 수사팀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팀이 해체되고 흩어진 사이, 그 자리를 채운 수사팀은 추미애 장관의 결백을 밝혔다. 하지만 추 장관은 '옆집 아저씨'라던 당직병에게 고소당했고, 윤미향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사모펀드 비리는 고개를 쳐들고 있다. 법원은 교사 채용 비리를 주도한 조국 동생보다 하수인에게 더 높은 처벌을 내렸다. 권력의 검찰개혁과 법원독립이 이룬 결실에 국민 절반은 환호했지만, 좌절하는 절반의 집회는 막혔다.

행동심리학의 대가 B.F.스키너는 역작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에서 조작된 조건으로 인간의 행동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자 속에 갇힌 동물들에게 조작된 조건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강화하면서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실험적 결과를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유, 존엄과 같이 증명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증된 조작적 수단이라는 얘기다.

동물들을 외부적 조건으로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스키너의 상자'를 완벽하게 인간계에 구현한 국가가 북한이다. 전체 인민을 수령주의 체제에 가두어 놓고 처벌과 보상이 수반된 세뇌교육으로 철저히 통제하는 사회다. 노엄 촘스키가 행동주의 심리학과 스키너를 "전체주의 사상의 지지자들"이라고 우려한 이유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권력의 선택과 집중은 권력 자체의 권위와 대중매체의 해석을 통해 대중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016년 가을과 2017년 봄 사이 박근혜 탄핵정국은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향한 대중의 인식에 결정적인 조작적 조건을 형성했다. 대중은 적폐의 굴레를 쓴 보수를 부정하고, 개혁의 월계관을 쓴 진보에 긍정하는 스키너의 상자에 갇혔다. 진보 권력은 상자 밖에서 보수에 대한 부정적 시그널만 주면 대중이 알아서 정권지지와 선거승리로 반응했다.

하지만 자유와 존엄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과학적 검증을 초월한 본성이다. 문재인 정권은 조건 없는 '문팬'들의 지지와 적폐낙인에 신음하는 보수의 현실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정권 스스로 쌓은 적폐에 실망한 대중들이 상자 밖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은 상자에 가둘 수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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