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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법정에 선 '배드파더스' 열혈 자원봉사자 구본창씨

손성배 손성배 기자 발행일 2020-10-14 제12면

무책임한 아빠들과 싸움 "양육비 미지급, 아동학대로 처벌해야"

배드파더스 구본창 활동가 인터뷰14
지난 9일 수원법원종합청사 조형물 '정반합' 앞에 선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 구본창씨. 세개의 직육면체로 이뤄진 조형물 정반합의 하부는 다각형으로 지면에 들려져 있다. 고착되지 않는 열린 생각을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작품 설명이다. 구씨는 은퇴한 뒤 필리핀과 한국에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현실에 분개하며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0.10.14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가족들에겐 내가 배드파더"

수능참고서 저자·영어강사로 이름 날려
유학 딸 따라 필리핀행 코피노맘 만나
아빠와 대신 담판… 말로 해선 안 통해
"3분의2가 틀니… 맞아서 다 부러졌다"

3년전 한국 피해자들도 손 내밀어

'배드파더스 원조' 코피노 사이트 운영
"지급의사 확인한후 운영자에 전달 역할"
신상공개 혐의 재판 회부됐지만 1심 무죄
사실적시 의한 명예훼손 위헌 심판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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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시 명예훼손, 모순적인 죄목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배드파더스(Bad Fathers)의 자원봉사자 구본창(57)씨는 양육비 책임을 저버린 '나쁜 아빠'들과 싸우고 있다.

지난 9일 수원법원종합청사의 조형물 '정반합(正反合)' 한가운데 그가 섰다.

그는 애초에 코피노(Kopino) 아빠 찾기 운동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법의 테두리에 갇힐 생각이 없었다. 구씨는 형사 처벌도 피하려 하지 않았다. 차라리 (현재 재판 중인) 검찰의 300만원 벌금 약식기소가 받아들여져 벌금을 낸 뒤 털어버리고 하루라도 빨리 다시 코피노 지원 활동을 하고 싶었다는 사람이다.

"나는 배드파더스의 대표도 운영자도 아니다. 자원봉사자일 뿐이다.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에 따른 보복을 두려워한 엄마들 대신 중간에서 고의로 양육비를 안 주는 사람의 지급 의사를 확인하고 운영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주범 없는 공범인 셈이다."

배드파더스 구본창 활동가 인터뷰4

배드파더스 대신 구씨가 법정에 섰다. 법원은 지난해 5월 검찰의 구씨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약식기소를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과 성격이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배심원들은 구씨에 대해 전원 무죄 평결했다.

검찰의 항소로 구씨는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형법상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위헌 여부 결정이 난 뒤에 재판을 재개하기로 했다. 위헌 결정이 나면 구씨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항소심에도 영향을 끼쳐 혐의를 벗을 수 있을 전망이다.

"벌금 내고 치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1심 선고할 때 무죄를 받았는지도 몰랐다. 새벽에 끝나고 법정 밖을 나와서 환호 소리를 듣고 그제야 알았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하지 않은 것이 무죄 판결의 이유라고 하더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함께 거론되는 디지털교도소를 두고 구씨는 배드파더스와 가장 큰 차이로 '신상공개의 근거'를 들었다. 배드파더스에 공개되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은 법원의 양육비 부담조서 또는 지급명령 등 합법적 테두리에서 법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디지털교도소는 강력범죄자를 신상공개로 응징한다는 목적이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의 신상도 공개했다가 인격 살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확실한 문서를 가지고 돈을 줄 것인지 안 줄 것인지 미지급자에게 물어본 뒤에 일주일에서 길면 한 달 동안 회신을 기다리다 신상을 공개한다. 무턱대고 무고한 사람까지 신상을 공개한 디지털교도소와는 차이가 있다."

한국의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이 구씨에게 손을 내민 시점은 2017년 겨울이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 '코피노' 아빠 찾기를 하는 신상공개 사이트를 운영하는 그에게 현재 배드파더스의 운영자들이 먼저 다가왔다.

"처음엔 당신(배드파더스 운영자)들이 보복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도 두렵고 처벌받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간 코피노 아빠들을 상대로 양육비 지급 소송을 해서 승소하더라도 양육비를 받아줄 방법이 없더라. 필리핀에 있는 남자랑은 싸워서라도 받아줬다. 법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배드파더스를 도왔다."

배드파더스 구본창 활동가 인터뷰12

구씨는 2010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수능참고서 저자이자 재수생 전문 영어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구씨다. 학원 강사 12년, 원장 8년, 도합 20년을 사교육 시장에 몸담으며 살 만큼 돈도 벌었다. 이제 은퇴를 하고 편하게 살기 위해 유학 중인 딸들과 아내가 있는 필리핀으로 떠났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코피노맘을 만났다. 한국 남자가 임신을 시켜놓고 돌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된다는 안타까운 사정을 들었다. 양육비를 주지 않은 코피노 아빠를 찾아다녔다. 그 패거리들과 싸움도 피하지 않았다. 말로 해선 통하지 않았다. 주먹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구씨는 유도 7단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경험 탓에 당당하게 양육비를 달라고 옛 배우자에게 말도 못하는 여성을 대신해 배우자를 만나 담판을 짓기도 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가정폭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무책임한 놈들이 싫었다. 의협심 같은 건 없었다. 학원장 하다 온 양반이 알고 보니까 조폭이었다는 소문도 막 돌았다. 아내는 이제 편하게 사나 싶었는데, 남편이 싸움하고 다니니까 많이 속상해했다. 3분의2가 틀니다. 맞아서 다 부러졌다. 언제 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서 임플란트는 정말로 은퇴하면 하려고 한다."

필리핀 교민 사회에선 그를 헐뜯고 깎아내렸다. '원래 조폭이었다', '코피노 피를 빨아 돈을 벌어 먹는다'는 등 온갖 구설에 올랐다. 밥 굶는 아이들을 도와주려다 유학 중인 딸들과 뒷바라지를 하러 온 아내에게 오히려 뒷말 무성한 '배드파더'가 됐다.

구씨는 시민단체 WLK(We Love Kopino)를 만들었다. 필리핀에 머무는 코피노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Kopinofather )도 운영했다. 신상이 공개된 '코피노 파더'들이 양육비를 지급하면 사진과 개인정보를 사이트에서 내렸다. 구씨의 코피노 아빠 찾기가 배드파더스의 모태로 꼽히는 이유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필리핀의 아이를 두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코피노 아빠들을 찾아다니면서 양육비를 받아주고 있다. 사람들이 한결같이 돈이 없다고 한다. 추석처럼 명절이 양육비 받으러 가기 가장 좋다. 이번 추석 때는 '양육비 무책임자'한테서 금팔찌, 금목걸이 80돈을 받아왔다. 2천400만원짜리를 몸에 두르고 다니면서 굶는 아이 양육비 줄 돈은 없다는 거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법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잘못하면 업무방해, 협박 등 형사 처벌 소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구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법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처벌하고 강제력을 부여할 때까지 기다렸다간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게 그가 선을 넘는 이유다.

"OECD 국가 중에 유일하게 한국만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처벌하지 않는다. 양육비는 그냥 돈이 아니고 생존의 문제다. 양육자가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하다가 힘들다고 아이를 버릴 수 있는가? 양육비를 미지급하는 사람은 정말 무책임하고 잔인한 짓을 하면서도 심각성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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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노력이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 5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양육비 채무자의 운전면허 정지 처분이 가능해졌다. 나아가 배드파더스를 대체할 공적인 신상공개 제도를 만들어 양육비 지급을 유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염원이다.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아이는 굶어 죽는다. 동물보호법에 동물에게 고의로 사료나 물을 주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양육비 미지급도 아동학대로 처벌해야 한다. 성범죄자처럼 신상도 공개하고 여권 제한을 둬 출국금지도 가능하게 법을 바꿔야 한다."

코피노 아빠들과의 험난했던 무용담을 웃으며 말하던 그는 '아이들이 굶고 있다'는 문장을 입 밖에 내뱉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참 숨을 고르기도 했다. 배드파더스의 친구, 구씨가 사는 이유는 '굶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글/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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