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뉴스홈

탑가기
[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2)빛나지 못하는 무지개]다름을 인정한 엄마는 '내편이 됐다'
경인일보 발행일 2020-10-27 제1면
"性 정체성 불편 없는 사회로" 가족 모두 인권운동가…"캐나다는 커밍아웃 슬퍼하지 않아"

1111.jpg
4년 전 아들 정예준(25·오른쪽)씨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밝혔을 때 어머니 강선화(52)씨는 큰 충격 속에서도 아들을 품고 이해하기로 했다. 아들의 고백 이후 가족들은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등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인권 운동가'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18일 고양 일산에서 만난 강선화씨는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도 불편함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0.10.26 /기획취재팀

중학교때 동성애자 정체성 깨달은 정예준씨, 4년전 털어놔
부모님, 성소수자 부모모임 등 나가 조언 구하고 위로받아
"가족인 내가 내 아이 부정하면 누가 지키겠나" 받아들여


2020102701000970000051082
A="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반대하지요."

A가 재차 묻는다.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는 같은 답을 한다. "그럼요."

2017년 있었던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의 모습이다.

이때 A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B는 문재인 후보다. 선거결과 A는 2위로 낙선했고, B는 당선돼 대통령이 됐다. 두 후보의 합산 득표율은 65.1%다.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했던 이들은 무엇을 반대할까. 동성애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다. 성 소수자 모두가 그렇다. 다수의 기준과 비교했을 때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다르게,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다.

고양 일산에 사는 강선화(52)씨는 4년 전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 토론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 18일 강선화·정예준(25) 가족을 인터뷰했다.

강선화씨는 "'내가 내 아이를 부정하면 누가 내 아이를 지키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들 예준씨가 커밍아웃한 뒤 든 여러 생각 중 하나였다.

예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처음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친구를 피해 다녔지만 이내 다른 남자아이에게 두근거림을 느꼈다. 고민 끝에 20살이 됐을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어렵게 말했는데 친구는 예상외로 시큰둥한 반응이었어요. '뭐 어쩌라고'라는 투였죠. 이후 1년 동안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렸고, 부모님에게도 말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정예준씨는 편지로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렸다. 그가 식탁에 올려두고 떠난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모님께.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저는 사실 동성애자예요'. 아들이 게이일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직업이 항공승무원인 선화씨는 "일 때문에 다음날 미국으로 떠나야 했는데, 비행기 탑승 전부터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48시간 가까이 잠을 못 잤다"며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면 아이가 두 번 다시 다수의 삶으로 못 돌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했다.

선화씨는 힘들게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에게 시간을 주면 좋겠다.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고 싶은데 아직은 힘이 드네'.

한국에 남아 있던 남편 정동렬씨는 아들의 권유로 커밍아웃 사흘 만에 '성 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갔다. 같은 처지의 부모에게 위로를 받고 아들과 함께 조언도 구했다.

선화씨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세 가족이 만났다. 소주에 삼겹살을 곁들이며 예준씨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선화씨는 "아이가 혹시 우리한테조차 버림 받을까봐 500만원 정도 모아뒀더라구요. 부모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죠"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또 "가족인 내가 아이를 부정하면 누가 내 아이를 지키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했다.

커밍아웃을 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선화씨는 남편과 함께 '성 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여했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한 달 전에 아들이 게이라고….'라며 말을 못 잇고 계속 울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모임 운영진을 맡고 있다.

예준씨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선화씨 가족은 모두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선화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성 소수자 관련 집회에 참석한다.

서울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나는 게이 아들을 둔 부모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군대내 동성 간 성행위 처벌법인 군형법 제92조 6항 폐지를 위한 집회에도 참여한다. 예준씨도 인권단체에서 제대로 공부하며, 게이합창단 단원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많은 성 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춘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성 소수자가 많다. 드러내놓고 그들의 존재를 "반대한다"고 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화씨는 많은 성 소수자가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더라도 불편함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 차별 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캐나다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은 자식이 커밍아웃을 해도 우리처럼 슬퍼하지 않더군요.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등의 걱정이 없기 때문이겠죠. 한국 아이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합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사썸.png


※기획취재팀

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

사진 : 김도우기자

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