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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현각'과 '혜민'의 야단법석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발행일 2020-11-18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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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대덕들이 남긴 법문들의 결론은 대체로 무소유에 이른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불성(佛性)을 방해한다는 이유일테다. 평생 누더기 승복 한 벌로 지낸 성철 스님은 "밥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옷은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면 된다"며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들에 미쳐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산다"고 탄식했다. 속세의 대중들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의 법문엔 무릎을 칠지언정, 막상 '소유'를 포기하라는 실천행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법정 스님은 난초를 향한 집착과 각성을 통해 무소유의 화두를 깨달았다. 죽어서도 자신의 글에 자신이 갇히고, 사부대중이 자신의 글에 집착하는 걸 꺼렸던 걸까, 죽음을 앞둔 법정은 그의 '사유(思惟)' 마저 버리고 갔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모든 출판물의 '출판 금지'를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 백석의 영원한 연인 김영한은 법정의 무소유에 감복해 요정 '대원각'을 시주했지만, 시주에 성공하기 까지 10년이 걸렸다. 법정은 결국 그 시주를 받아 길상사를 열었다. 속세는 천문학적인 시주에 놀랐지만, 정작 그녀에게 대원각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한" 티끌이었다. 그 스님에 그 보살이 탄생시킨 '무소유의 명장면'이다. 불교는 여러 선사들이 남긴 무소유 만행(萬行)의 흔적에 의지해 명맥을 유지하는지 모른다.

최근 현각 스님과 혜민 스님이 한바탕 야단법석을 피웠다. 혜민의 호화로운 거처가 방송된 것이 발단이었다. 현각은 혜민을 향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모르는 도둑놈"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으며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일갈했다. 혜민은 즉시 "참회한다"며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수행정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현각은 이튿날 "혜민은 내 영원한 도반"이라고 바로 화해의 메시지를 남겼다. 비판과 참회와 화해가 너무 돌발적이라, 두 스님의 대화가 과연 깨달음을 향한 불교적 논쟁인 '법거량'에 해당하는지 헛갈리고, 비판 여론도 많다.

그래도 미국 국적에 하바드 동문인 두 스님이 부처님 말씀을 중심으로 전광석화 같은 일갈과 주저없는 참회를 주고 받는 장면이 선사한 돈오(頓悟)의 쾌감도 적지 않다. 문제의 본질을 제쳐두고 티끌에 집착해 거짓과 비난의 악순환에 갇힌 세상 탓일 게다. 벽안의 스님과 한국계 미국인 스님의 한바탕 소동이 여러 화두를 남겼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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